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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미지의 파괴력을 체감하다

김도형 | 87호 (2011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에게는 그만큼 명예나 명성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굳이 명예나 명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하나 있다. 바로 평판(reputation)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외부에 비쳐지는 평판, 즉 브랜드를 갖고 있다. 어떤 기업은 좋은 브랜드 덕분에 상품의 실질가치보다 높은 대가를 받기도 하고, 어떤 기업은 좋은 상품에도 불구하고 내세울 만한 브랜드가 없어 고전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LBS에서 수강한 브랜드 매니지먼트(Brand Management) 과목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수업의 특징
LBS 학생들은 수십 개의 과목 중 10여 개의 과목을 선택 수강할 수 있다. 필자가 이 과목을 선택한 이유는 과거에 참여했던 컨설팅 프로젝트 경험 때문이다. LBS 입학 전 한 소비재 회사의 기업회생(turnaround)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필자는 제품전략 수립을 담당했다. 이때 브랜드라는 무형자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브랜드 매니지먼트 수업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수업마다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에서 살펴보는 회사의 직원이 직접 강사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둘째, 런던시내에 위치한 주요 회사들의 주력매장(flagship store)을 방문해 회사별 브랜드 관리 방식을 직접 보고 평가해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 방식 덕분에 학생들은 세계 유명 회사들의 브랜드 관리 담당자로부터 그들의 성패사례를 직접 들을 수 있고 흔히 접해왔던 제품들을 브랜드 관리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수업 내용을 토대로 브랜드 관리에 대한 교훈을 요약한다.
 
브랜드의 정의와 가치
브랜드라는 주제는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수많은 브랜드에 노출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자문해보면 이 주제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품의 이름 내지는 로고를 잘 만들면 좋은 브랜드가 되는 것인지, 제품이 좋으면 브랜드라는 것이 굳이 꼭 필요한지, 좋은 브랜드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 효용이 있는지 등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세계 최대 광고회사인 WWP에 따르면 상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브랜드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이다. 또 상품은 경쟁사가 복제할 수 있지만 브랜드는 복제할 수 없다. 상품이나 기업의 물리적인 속성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는 이미지를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가 확실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보(안전), 나이키(도전과 승리), 3M(혁신) 정도를 들 수 있다. 브랜드가 중요한 이유는 좋은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식품 기업 다농(Danone)의 생수제품 에비앙(Evian)은 시장 대비 월등히 높은 마진으로 판매하는데 이는 물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에비앙이라는 브랜드 덕분에 가능하다. 유럽의 명품 회사들이 만들어내는 명품 소비재들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들의 제품은 100% 가깝게 복제할 수 있지만 브랜드가 떨어져나간 구두나 핸드백에 수십 또는 수백만 원의 가격을 지불할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가격의 상당 부분이 상품 자체보다는 브랜드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브랜드 아파트 도입도 브랜드의 효과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하지만 브랜드가 항상 효자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기존 브랜드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대차는 최근 꾸준히 자동차 평가기관으로부터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으나 여전히 품질에 상응하는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해외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현대차=저가 자동차’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자동차 회사 볼보도 마찬가지다. 볼보는 안전이라는 이미지로 확실한 브랜드를 구축했지만 젊고 세련된 차를 선호하는 고객층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쟁사 제품과의 안전성 격차도 크지 않거니와 안전이라는 이미지가 딱딱하고 재미없게 비쳐지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브랜드 관리법
브랜드는 어떻게 육성하고 관리해야 할까. 하루아침에 우수한 브랜드를 일구어낼 해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은 적어도 네 가지 사항을 꼭 챙겨야 한다. 첫째, 제품 또는 회사가 지향하는 이미지(identity)가 명확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가 원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둘째, 소비자를 접하는 접점(delivery)을 관리해야 한다. 접점 관리는 지향하는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일관된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접점에는 광고, 매장은 물론 판매직원, 제품디자인, 포장재 같은 요소들도 모두 포함된다. 셋째, 소비자들의 경험(experience)을 통제해야 한다. 통제라는 것은 지향하는 이미지와 어긋나는 소비자 경험을 최소화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품질 제일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AS가 엉망인 회사는 브랜드 관리의 기본이 되지 않은 경우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은 소비자들의 마음속 이미지(image)를 추적하는 것이다. 기업이 지향하는 이미지와 소비자들의 인식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브랜드 관리를 잘 하는 회사로는 애플(Apple Inc.)과 애버크롬비앤피치(Abercrombie & Fitch)를 들 수 있다. 뉴욕, 런던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주력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두 회사는 매장 내외 모든 요소를 자신들이 지향하는 이미지에 맞추고 있다. 단순함과 편리함을 지향하는 애플은 넓은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마음껏 제품을 경험해볼 수 있게 하고 불필요한 광고나 부대시설은 최소화한다. 18∼22세 젊은이들을 위한 캐주얼 럭셔리를 지향하는 A&F 매장은 이곳이 옷가게인가 싶을 정도로 젊고 활기찬 클럽 분위기를 연출한다. 세련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이 회사의 옷을 사고 싶어하는 이유다.
 
만드는 것보다 바로잡기가 더 어려워
효과적인 브랜드 관리법 이외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브랜드는 바로잡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영국의 패션기업 버버리(Burberry)가 대표적인 사례다. 트렌치코트와 체크무늬로 유명한 버버리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했으나 무분별한 라이선스 확장과 위조품 관리 실패로 애초의 브랜드 가치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 게다가 ‘버버리= 늙고 고리타분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90년대부터는 영국 소비자들조차 버버리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2000년대 중반 대대적인 브랜드 정비 작업 덕분에 버버리 브랜드가 회생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과 고통이 수반됐음은 물론이다.
 
한국 경제의 효자 품목인 휴대폰 시장에도 비슷한 이슈가 존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최대 휴대전화 제조사였던 노키아, 삼성, LG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출시했다. 그나마 삼성과 LG는 각각 애니콜(Anycall)과 싸이언(CYON)이라는 대표 브랜드를 사용하긴 했으나 제품별 브랜드는 기억도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쏟아져나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브랜드를 출시한 회사들과 단일 브랜드(아이폰: iPhone)를 들고나온 애플의 성과는 어떨까. 2010년 기준으로 노키아는 애플 아이폰 판매 대수의 5배, 삼성은 3.5배, LG는 1.5배에 가까운 휴대전화를 판매했으나 휴대전화 시장 이익의 절반은 애플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애플은 아이폰 한 대당 약 30만 원의 이익을 챙긴 반면 노키아는 1만 원, 삼성은 2만 원 정도만 겨우 남겼기 때문이다. LG는 아예 휴대폰 한 대가 팔릴 때마다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브랜드 관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각 사의 사업전략, 기술, 마케팅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브랜드를 출시하고 유지하는 데 소요되는 자원과 소비자의 마음속에 각인되는 제품별 인지도를 생각해보면 노키아, 삼성, LG의 브랜드 정책이 과연 최선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최근 스마트폰 전용 브랜드를 출시한 삼성(갤럭시: Galaxy)과 LG(옵티머스: Optimus)가 기존에 사용해오던 브랜드(애니콜, 싸이언)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필자는 브랜드 매니지먼트 수업을 통해 브랜드라는 다소 애매하고 추상적인 주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브랜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품에도 다른 부가가치가 더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잘못된 브랜드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수업에서 배운 이론과 틀을 국가나 개인에 적용해서 생각해본 것도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김도형 런던비즈니스스쿨(LBS) Class of 2012 dkim.mba2012@london.edu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은 세계의 금융 허브인 런던에 위치한 학교답게 금융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 핵심 역량 이론의 창시자인 게리 하멜(Gary Hamel), 돈 설 (Don Sull) 등 경영 전략 분야의 석학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LBS의 MBA 과정은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가 선정한 글로벌 MBA 랭킹에서 최근 3년간 1위를 차지했다. 매년 70여 국가에서 온 400명의 학생이 입학한다.
 
필자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컨설팅회사 올리버 와이만(Oliver Wyman)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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