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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영업의 전설, 상품이 아니라 나를 팔았다

하정민,김남국 | 7호 (2008년 4월 Issue 2)
하정민·김남국 기자 dbr@donga.com
 
영업은 ‘비즈니스의 꽃’으로 불립니다. 고객에 대한 철저한 분석, 차별적 가치 제공, 인간적 신뢰 형성 등 비즈니스의 모든 성공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야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동아일보가 국내 1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 158명을 전수(全數) 조사한 결과, 자신의 ‘기업 내 주전공’을 ‘마케팅·영업’이라고 밝힌 CEO가 33명(20.9%)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영업을 모르고 고객을 모르면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업 달인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영업 관계자뿐만 아니라 초경쟁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한 주옥같은 지혜를 전해줬습니다. 영업 고수들의 노하우와 과학적 세일즈 방법론을 집약했습니다.
 
영업의 달인이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의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자동차, 보험, 금융, 제약, 물류, 교육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최고의 영업 능력을 인정받은 10인을 집중 탐구했다. 영업의 달인들은 고객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진심으로 고객을 대했으며 영업 과정에 발생한 다양한 한계 상황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또 자신의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서 효과적으로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10명의 고수가 전하는 10가지 영업의 ‘비전(秘傳)’을 들여다본다.
 
경청(敬聽)으로 마음을 얻어라
흔히 영업을 잘하는 사람하면 달변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자동차 판매 업계에서 ‘전설’로 통하는 대우차판매㈜ 혜화지점 박노진(54) 상무는 달변과는 무관하다. 매우 유순하고 조용한 성격이지만 그가 28년간 판매한 자동차 대수는 무려 4225대에 달하고 10년간 판매왕을 놓친 적이 없다.
 
그는 경청이 무한한 위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는 대화 중 고객이 80%를 말하게 하고, 제가 나머지 20%를 말합니다. 차에 대한 설명은 20%만으로도 충분해요. 안전도, 스타일, 경제성 등 차를 구매하려는 여러 이유 중 고객이 어떤 가치를 가장 우선시하는지 고객 스스로 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아 손님한테는 이런 이유로 이 차가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러면 역효과만 납니다.”
 
BMW 판매왕인 구승회 코오롱모터스 과장도 가장 중요한 영업 노하우로 경청을 꼽았다. “고객의 얘기를 듣다 보면 최고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고객이 어떤 상태인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아이들은 어떤지…. 이런 정보를 알고 있으면 고객의 니즈를 잘 채워줄 수 있습니다.”
 
삼성생명의 스타 보험 판매왕 중 한 명인 김혜영 중앙지점 도명브랜치 수석팀장도 마찬가지다. 김 팀장은 100억 원이 넘는 보험 계약을 올리며 10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스타지만 대화를 해보면 맥락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눌변(訥辯)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소 어눌할지라도 진정을 담아 얘기하면 오히려 고객들이 더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고객과 만났을 때 절대 자신이 이야기를 주도하지 않는다. 묵묵히 고객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한 후 그에 맞는 상품을 권한다. “제가 보험에 대해 더 많이 알지만 고객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입니다.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매우 간단하고 쉬운 일처럼 비친다. 하지만 경청은 음악을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상대방의 생각을 주의 깊게 듣고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청은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배려다. 영업의 달인들은 감각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고 실천해왔다. 경청을 통해 고객을 이해하고 아직 충족되지 못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청은 쉽지 않다. 내가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했다고 섣불리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내 주장을 펴고 싶은 욕구도 꾹 누르고 있어야 한다. 중간에 상대방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이 할 말을 궁리해서도 안 된다. 특히 주의를 분산시키지 말고 상대방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경청의 출발점이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눈과 손, 몸짓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것도 표현해야 한다. 이런 경청은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마법의 열쇠다.
 
회사가 안 하면 내가 한다
적극적인 직장인들은 회사에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기도 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고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관료주의적 장벽 때문에 이런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쯤에서 대부분 직장인들은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공이 뛰어난 고수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회사가 안 해주면 본인이 직접 한다.
 
국내 ‘빅 4’ 물류회사로 도약한 CJ GLS의 차동호 상무는 업계에서 B2B(기업간 거래) 영업의 전도사로 불린다. B2B 영업은 일반 소비재 영업과 매우 차이가 난다. “물류 컨설팅 영업은 자동차처럼 눈에 보이는 상품을 파는 게 아니어서 매우 어렵습니다. 자동차나 보험은 남에게 사야 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물류는 다릅니다. 어느 기업이든 대동맥과 같은 물류를 다른 기업에게 맡기려 하지 않습니다. 자사 정보를 노출시킨다는 부담도 있고 사내 물류 부서나 노조의 반대도 강합니다.”
 
이런 어려운 영업 여건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차 상무는 주먹구구식 영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CJ GLS에 오기 전 저는 물류의 ‘ㅁ’자도 몰랐습니다. 수주 계약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객은 어떤 식으로 만나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죠. 이런 상태에서 원시적 영업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고객관리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회사 설립 초기라 2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시스템 도입 비용을 쉽사리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까짓것 내가 직접 못할 게 뭐냐’는 심정으로 직접 시스템 개발에 나섰습니다.”
차 상무의 노력으로 ‘포커스(For our customers)’라는 이름의 고객관리 시스템이 개발됐다. 이 시스템은 고객사와의 거래내역과 손익계산서 같은 고객사 재무제표, 고객사 산업 분석, 업종 내 고객사 위치와 장단점, 고객사 관련 뉴스, 수주시에 CJ GLS가 제안할 수 있는 개선 방안 등을 집대성하고 있다. 포커스 덕분에 이제 말단 사원들도 손쉽게 입찰 제안서를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워낙 시스템에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어 제안서 내용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객들은 제안서가 1억 원짜리 컨설팅사 보고서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다.
 
BMW 판매왕 구승회 과장은 자동차 수리 전문가를 직접 고용했다. 고객들이 고장 신고를 했을 때 회사 차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지만 이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스스로 비용을 들여 직접 직원을 고용한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고객들의 만족도와 충성도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해라
삼성생명 대구지점의 예영숙 팀장(50)은 보험 영업의 절대 지존이다. 삼성생명에서 2000년 이후 8년 연속 판매왕 자리를 지켰고 작년 그녀가 거둬들인 보험료는 무려 233억원에 달한다. 연봉도 최소 15억에서 최대 20억 원 정도 받는다. 수도권에 비해 시장 규모가 훨씬 작은 대구에서 활동하는 그녀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영업 기반이 서울이 아니고 대구라는 게 판매왕 등극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된 지는 오랩니다. KTX가 생기면서 지리적 장애물은 훨씬 줄었죠. 저는 KTX가 없던 시절에도 비행기를 타고 서울과 부산 등 전국 각지를 누비며 수많은 고객을 확보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만난 고객은 ‘어떻게 비행기까지 타고 여기 올 생각을 했느냐’며 더 잘해주십니다. 지금 담당하는 시장이 작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어요.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고객의 범위와 수준이 달라집니다.”
 
대우차 박노진 상무도 대우차의 브랜드 이미지가 약한 탓에 그간 남모를 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이런 단점은 오히려 결과적으로 장점이 됐다. “지금도 대우차는 무조건 안 탄다는 분이 많아요. 명함만 줘도 ‘저리 치워. 난 대우차 안 타’라고 말하는 분들이 꽤 있죠. 1990년대 소형차 르망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 경쟁사에서는 ‘저 차 이름은 르망, 뒤로 보면 실망, 옆으로 보면 절망’이란 조롱까지 했죠. 마티즈는 또 어떻구요. 운전하다 바퀴에 껌 붙으면 차가 선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데모 많이 하는 회사, 그룹이 망한 회사, 조그만 차만 만드는 회사라는 대우차의 브랜드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결국 성실성밖에 없었습니다.”
 
억대 연봉에다 어엿한 임원 직함까지 달았지만 박 상무는 여전히 새내기 시절과 같은 자세로 영업에 나선다. 그는 얼마 전만 해도 마티즈를 몰고 다녔다. 지금은 라세티를 사용한다. 고객에게 곧바로 시승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대우차 품질이 나쁘다는 고객일수록 그 자리에서 제 자동차 키를 드립니다. 진짜 길 가다가 껌 붙으면 대우차가 서는지 한번 타보시라고 말하면서요. 시승해본 분들은 다 ‘생각보다 차 내부도 넓고 운전감도 좋다’고 하세요.”
 
우리투자증권 FICC 파생상품팀은 국내 증권사가 도전할 수 없다고 여기던 파생상품 시장을 개척해 금융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파생상품 시장은 한때 외국계의 독무대였다. 자본금 규모가 크고 신용등급이 우수한 외국사는 저비용으로 자본조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 금융회사는 자본금 규모나 신용등급이 낮다. 이런 단점에도 우리투자증권은 다양한 장외파생상품 시장을 개척했다.
 
FICC
파생팀에서 대표 세일즈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주형 차장은 영업 초기에는 상황이 암담하기만 했다고 말한다. “역동적인 업무를 하고 싶어 파생 부서에 지원했는데 초기 팀원이 3명밖에 없었고 책상 하나 달랑 있었어요.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외국계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우리투자증권은 한글로 만들어진 파생상품 계약서를 무기로 삼았다. “장외파생상품 계약서가 얼마나 복잡한지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복잡한 금융용어, 방대한 분량을 생각해보세요. 한글로 쓰여 있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데 영어로 돼 있으면 오죽하겠습니까.”
 
한글 계약서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솔직히 각 업체의 사장이 파생상품 계약서를 일일이 읽어보지는 않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요. 대신 사장은 자금담당 임원에게 ‘당신 이거 읽어봤소?’라고 묻죠. 이때 이 임원이 자신있게 ‘네, 제가 다 읽어봤는데 이러저러합니다’라고 답하도록 만들어주는 게 저희 임무죠. 처음 한글 계약서를 만들 때 국제적으로 영문 계약서만 효력이 있는데 한글 계약서가 통하겠느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런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일일이 법률회사의 자문을 받아 완벽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영업사원들 가운데 품질 경쟁력이 떨어져서 브랜드 파워가 약해서 본사의 지원이 부족해서 할당된 영역의 시장이 작고 고객들의 구매력이 떨어져서 판매가 부진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실제 자동차 영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대우차 출신이 많다. 단점과 시련은 이런 측면에서 자신을 더욱 담금질해주는 축복이다.
 
나는 을(乙)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 확고한 신념과 사명을 가져라
동아제약 의약정보팀 양태준 대리는 입사 1년 반 만인 2004년 동아제약 판매왕 자리에 오르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제약 영업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약품을 취급하는데다 고객 역시 일반 대중이 아닌 의사나 약사입니다. 저는 의사들에게 좋은 의약품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만 600여 개가 넘는 제약회사가 있습니다. 한 해에 새로 개발되는 신약의 수도 엄청납니다. 처방과 활용법도 시시각각 변합니다. 의사들은 환자 치료에 몰두하다 보니 의료계의 최신 정보나 트렌드에는 어두운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주는 사람입니다. 꼭 의사만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죠.”
학습지 업체인 대교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김설아 교사는 아이들의 학업 능력을 향상시켜 미래를 밝게 하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숙제를 거의 하지 않고 항상 태만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는데 학습 태도가 개선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다른 집에 방문할 때 그 아이를 데리고 갔어요. 다른 집에서 그 아이를 소개할 때 성실하고 의젓한 아이라고 한껏 추어올려줬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조용히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다른 가정에 서너 번 데려갔더니 학습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갖고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열정을 보이면 아이들은 변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학습지 판매원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안을 찾아주는 ‘교육’이 저의 본업입니다.”
 
물류 영업의 달인 CJ GLS 차동호 상무도 동조했다. “한번도 내가 을(乙)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생산원가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물류비를 대폭 줄여주는데 밥 얻어먹고 칭찬받지는 못할망정 왜 제가 을입니까.”
 
삼성생명의 김혜영 팀장은 스스로 ‘사랑의 전도사’라고 표현했다. “저는 한 번도 제가 고객에게 어떤 물건을 판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적은 돈으로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생명, 건강, 상해 등의 위협을 보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죠. 고객에게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잖아요. 제 자신에게 당당하기 때문에 고객의 냉대나 편견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고객에게 나를 각인시켜라
2001년부터 작년까지 7년간 현대자동차 전국 판매왕을 차지한 ‘최진실(39·본명 최진성)’ 과장은 사내에서 탤런트 최진실보다 더 유명하다. 놀라운 실적과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발한 영업전략 때문이다. 최 과장은 작년 289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연봉은 2억원.
 
그를 만난 사람은 누구나 “영업 대통령 최진실입니다”란 씩씩한 그의 첫 인사에 놀란다. 고객의 눈길을 붙잡기 위해 이름만 바꾼 게 아니다. 오토바이 배달부,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연미복, 밤무대 가수 같은 ‘빤짝이’ 의상 등을 입고 거리낌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최 팀장은 현대차 입사 후 가장 먼저 조끼와 리어카를 구입했다. 이후 스스로를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만들어 영업 현장 곳곳을 누볐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탤런트 최진실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다.
 
고객이 상대하는 영업사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튀는 것만으로는 곤란하죠. 자동차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사후 고객관리는 기본입니다. 잊을 수 없는 첫인상에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신뢰감을 준 것 같습니다.”
 
그의 영업 소품도 놀랍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표현하고 장소와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명함을 주기 위해 ‘금 명함’, ‘사진 명함’ 등 갖가지 명함을 준비하고 있다.
 
영업의 달인들은 고객에게 자신이 최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일례로 비나 눈이 오는 날 더 열심히 고객을 만나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거나 모두가 선물을 보내는 명절을 피해 선물을 주기도 한다. 해외 출장을 가면 현지에서 직접 엽서를 써서 한국 고객에게 보낸다. 연하장도 직접 자필로 인사말을 쓰거나 서명을 한다. 이런 행동은 고객에게 신뢰를 높여준다.
 
까칠한’ 고객을 잡아라
한 달에 1000만
1500만 원의 화장품을 팔아 치우는 김정해 아모레퍼시픽 주엽점 수석지부장은 평범한 전업주부 출신이다. 그녀는 초기 지인을 대상으로 영업했지만 곧 한계를 깨닫고 영업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꿨다. 연고 영업에서 벗어나 고객과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기로 했다. “고객이 미용실에 가거나 쇼핑을 할 때, 심지어 목욕탕에도 같이 갑니다. 밤에 바다에 가고 싶다고 전화하면 고객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고객의 일상 활동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 굳이 화장품을 팔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영업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녀는 까다로운 요구를 해 영업을 방해하는 골치 아픈 고객을 일컫는 이른바 ‘진상’을 관리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둔다. “예를 들어, 아파트의 한 집을 방문해 동네 아주머니들께 화장품을 홍보하다 보면 제가 열심히 설명하는 와중에 갑자기 끼여들어 ‘어머 내가 이거 써봤는데 진짜 별로더라’고 하는 고객이 꼭 있어요. 그 순간에는 웃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 후 일부러 그 고객에게 따로 연락해서 일 대 일로 만납니다. 만나서 제품 사용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화장품 샘플을 듬뿍 얹어주면 대부분 제 팬으로 변신해요. 이전에 판을 깼던 것을 보상하고 남을 정도로 열심히 입소문을 내주는 고객으로 변신하지요.”
 
현대차 최진성 과장은 ‘진상’ 고객을 적극 상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업직에 대한 인식과 사내 복지가 개선되면서 많은 세일즈맨들이 샐러리맨처럼 변하고 있습니다. 악착같이 판매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주는 고객을 상대 안 해도 어느 정도는 먹고 사는 게 보장되니까 진상 고객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거죠.”
 
CJ GLS 차동호 상무도 동조했다. “영업하는 사람은 자존심을 잃지 말되 자기 자신은 버려야 합니다. 스스로 ‘나는 을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것과 고객 앞에서 ‘저는 을이 아닙니다’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뜻이죠. 영업하기 전 철저한 자기 부정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내가 귀하게 자랐는데. 그래도 내가 대기업 임원인데’ 이런 생각은 말끔히 지워야 해요. 저 역시 저보다 한참 어린 중소기업 부장한테 3시간 동안 상소리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그 부장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봤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지금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투자증권 김주형 차장도 ‘까칠한’ 고객이 더 가치있다고 말한다. “누구한테나 좋은 고객은 진짜 고객이 아닙니다. 어떤 회사가 뭘 발행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면 수십 개의 금융기관이 제안서를 들고 그 회사를 찾아갑니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잘 대해주는 고객은 결국 물량을 안 주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까칠하게 대하는 고객일수록 그 고객을 한번 감동시키면 두고두고 팬이 되더군요.”
 
고객 주변을 공략하라
대우자동차 박노진 상무는 고객보다 고객의 주변 사람을 적극 공략하라고 조언했다. “한 사장님은 ‘대우차는 죽어도 안 탄다. 절대 찾아오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 차를 운전하는 기사에게 접근했죠. 사실 차를 실제 운전하는 사람은 기사입니다.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하나 줄 때도 제 나름의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가게에 미리 1000원을 더 주고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맞추면 방금 냉동고에서 꺼낸 듯 꽁꽁 얼어붙은 제품을 줍니다. 그 아이스크림을 딱 물면 이가 시려서 먹지 못할 정도로요. 그런 식으로 기사들을 공략했더니 ‘저 사람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와도 뭐가 달라’ 이러면서 입소문이 나더군요. 상당한 효과를 봤습니다.”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사람과 구매 결정을 하는 사람, 구매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영업의 달인들은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신경쓴다. 삼성생명 김혜영 팀장은 고객을 만날 때 꼭 고객의 부하 직원에게 줄 소소한 선물을 챙긴다. “고객 한 사람만 챙기면 소용이 없어요. 제 고객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제 고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부하 직원에게 선물을 주면 고객이 더 좋아해요. 나도 잘 못 챙겨주는 내 아랫사람을 어떻게 당신이 챙겨주느냐면서요.” 한 자동차 영업사원은 많은 경우 차량 구매 결정을 남편이 아닌 부인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객 부인들에게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고객을 감동시켜라
동아제약 의약정보팀 양태준 대리는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고 감동을 주려 한다. “한겨울에 어떤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수도관이 다 얼어터져서 환자들에게 따뜻한 물을 공급할 수 없었습니다. 배관공이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당장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군대 시절에 보일러병으로 근무했거든요. 토치로 얼어붙은 수도관을 녹이다가 제 양복이 다 타버렸지만 수도관은 잘 녹았고 병원장님은 제 팬이 됐죠.”
 
BMW 판매왕 구승회 과장은 진심은 최고의 신뢰를 준다고 말한다. “저는 고객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어떤 구두를 신었는지, 골프용품은 무엇을 사용하는지, 사무실이 어떻게 돼있는지 꼼꼼히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이 진짜로 필요한 선물을 해줍니다. 한번은 중소기업 사장님이 공장 화재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이분이 새로 사무실을 냈는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PDP TV가 없어졌더군요. 그래서 TV를 사드렸더니 정말 고마워하셨습니다. 또 자녀가 모두 해외에 나가 있어 혼자 살던 고객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보호자로 저를 지목했어요. 2주 넘게 매일 병원에 다니면서 이분을 간호해드렸습니다. 진심으로 고객을 위해 노력한 것이죠.”
 
네트워크의 중심이 돼라
박노진 상무가 처음 판 자동차는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새한자동차가 만든 ‘제미니’. 당시 숫기 없는 초짜 영업사원이던 박 상무는 직접 고객에게 명함을 돌릴 배짱도 없어 신문 속 전단지에 자동차 팸플릿과 명함을 몰래 끼워넣었다. 우연히 이를 본 고객이 먼저 박 상무를 찾았다. 그렇게 맺은 인연은 지금껏 이어져 이제 그 고객의 아들, 손자는 물론 사돈까지 모두 박 상무의 고객이 됐다.
 
많은 영업사원이 학연이나 지연을 발판으로 삼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학연과 지연은 제 자신이 만든 인맥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인맥에 제가 끼여드는 것이죠. 하지만 영업으로 만난 인맥은 100% 제가 개척한 인맥이니 이만한 자산이 없습니다. 고객 명단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납니다. ‘이 많은 사람을 아는데 내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못 하겠냐. 난 무얼 해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까요.”
박노진 상무는 기존 고객의 소개로 만나는 고객보다 직접 발굴해서 만나는 고객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IMF 외환위기 때 이런 원칙이 통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경제가 잘 풀리든 안 풀리든 수요는 어디든 존재합니다. 외환 위기 당시 한 대기업에서 많은 고객을 확보한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 회사가 어려워지자 그 동료의 실적이 곧바로 추락하더군요. 저는 외환위기 때도 신규 개인 고객을 개척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채소 장사가 잘된다고 하면 곧바로 가락시장으로 찾아갔고 어물장사가 잘된다고 하면 노량진시장으로 가서 명함을 돌렸습니다. 단골에만 안주하면 이내 밑천이 바닥납니다.”
 
BMW 구승회 과장도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관리하는 고객이 600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70여 명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저를 연결고리로 해서 만들어진 모임이 형성된 것이죠. 저는 거의 대부분 이런 분들의 소개로 차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팀워크를 강화해라
우리투자증권 김주형 차장은 동료와의 의리가 고객과의 의리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파생상품은 계약 자체가 워낙 복잡한데다 주식, 채권, 외환 등 모든 금융상품이 엮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혼자서 할 수가 없습니다. 동료와의 팀워크가 절대적이죠. 파생상품을 세일즈하는 사람이 구조도 함께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백오피스와의 관계도 매우 좋아야 합니다.”
 
영업의 달인들은 후배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삼성생명 예영숙 팀장이 고객을 만나는 것 다음으로 신경 쓰는 일은 후배 컨설턴트들을 위한 교육이다. 그녀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여러 사내 교육에 출강해 후배들을 격려한다. “제가 거둔 성공의 열매를 후배와 함께 나누려는 것은 저를 뛰어넘는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FC라는 직업의 위상을 높이려면 저보다 더 능력 있는 후배, 더 높은 실적을 올리는 후배가 나와야 합니다.”
[DBR TIP] 영업 달인에 대한 오해
 
영업 달인들은 무조건 적극적이고 힘있는 인상과 말투를 지녔다?
박노진 대우차판매㈜ 상무는 단신이다. 인상이나 말투가 힘에 넘치거나 적극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삼성생명 김혜영 팀장은 말이 어눌하다. 하지만 이런 어눌함은 뺀질뺀질하다는 영업 사원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준다.
 
무조건 고객을 자주 방문해야 한다?
영업 달인들은 ‘고객관리는 양보다 질’이라고 입을 모은다. 동아제약 판매왕 양태준 대리는 “수많은 방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번 만났을 때 얼마나 빠르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삼성생명 김혜영 팀장은 하루에 불과 2∼3명의 고객만 만난다. “계약 건수가 지나치게 많으면 고객 관리에 소홀해져요. 저를 믿고 가입하셨는데 제대로 관리도 못 한다면 계약을 미루는 게 낫죠.”
 
처음 만났을 때 상세한 제품 설명을 늘어놓는다?
영업 달인들은 고객에게 구매를 강요하지 않는다. 사지 않는데도 계속 받기가 미안할 정도로 부담 없는 선물과 좋은 정보를 아낌없이 준다.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기브 앤 기브’다. 대우차 박노진 상무는 “강압적으로 제품을 판매하려고 하면 구매는 이뤄지지만 고객과의 관계가 원활치 못합니다. 당장은 제품을 판매하지 않더라도 좋아요. 지금 구매하지 않은 고객이 5년 후 차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영업은 한국에서 3D 직종이다?
아직도 영업이 3D 직종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서류나 만지는 직업이 아니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고정관념이다. 성과주의 기업문화가 확산되면서 영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노력한 만큼 보상 수준도 높아지는 추세다. 또 기업 내에서 영업 마케팅 부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고위 임원이나 CEO로 진출하는 사례도 많다.
  • 하정민 하정민 | 동아일보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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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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