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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경영

명품업체가 가구시장에 뛰어든 까닭은?

심정희 | 61호 (2010년 7월 Issue 2)
매년 밀라노에서 열리는 국제 가구 박람회(I Saloni)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테리어 행사로 꼽힌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가구 브랜드나 디자인 회사는 물론이고 소규모로 사업을 운영하는 신진 가구 디자이너들도 대거 참가해 가구와 인테리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다. 갈수록 여기에 참여하는 명품업체들의 수가 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브랜드가 바로 보테가 베네타다. 이 이탈리아 브랜드는 최고급 가죽을 이용해 장인 정신을 담아 만들어낸 위빙(꼬임) 가방으로 최고의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보테가 베네타는 가죽을 고르는 눈과 세공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브랜드 정체성에 맞춰 몇 년 전부터 가죽으로 만든 인테리어 제품과 가구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급기야 올해에는 ‘2010년 우리 브랜드의 가장 큰 행사는 가구 박람회’라고 공언할 만큼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 규모를 늘렸다.
 
 
국제 가구 박람회 첫날 밀라노의 한 멀티 숍에서는 ‘패션계의 예술가’라 불리는 벨기에 출신의 유명 여성 디자이너 마르틴 마르지엘라도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마르지엘라의 가게 안은 ‘트롬푀이유’라 불리는 눈속임 기법을 활용한 카펫과 인테리어 소품들로 가득했다. 일반 인테리어 업체에서 내놓는 제품에 비해 실용성은 떨어지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전위적인 디자인’이라는 마르틴 마르지엘라의 콘셉트는 새롭고 재치 있는 리빙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정확히 부합했다.
 
이번 가구 박람회를 아주 오래 전부터 야심차게 준비해왔다는 사실 외에도 보테가 베네타와 마르틴 마르지엘라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보테가 베네타와 마르틴 마르지엘라는 브랜드 명과 로고를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소비자에게 고가품을 소유하는 뿌듯함을 맛보게 하는 여타의 브랜드와 달리 로고와 브랜드 이름을 철저히 숨김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체화한다. 보테가 베네타는 ‘When your initials are enough’를 캐치 프레이즈로 내세우는 업체답게 제품 어디에도 로고를 표시하지 않는다. 마르틴 마르지엘라 또한 로고 대신 아무런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흰색 상표를 옷에 달아 자신의 상품임을 표시한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표면적으로는 두 브랜드 모두 ‘이름값’이 아닌 제품 그 자체로만 평가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둘째, 두 브랜드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동원해 자신들이 트렌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소비자에게 주지시킨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는 브랜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에 영합하지 않는 고고한 브랜드, 그리하여 제품을 한 번 사면 유행과 관계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브랜드, 그러니 좀 비싸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브랜드라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두 브랜드가 가구 업계에 진출했다는 점은 기존 브랜드 콘셉트 및 정체성과 정확히 부합하는 동시에 브랜드의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아무런 로고가 새겨지지 않은 보테가 베네타의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 눈속임 기법을 활용한 마르틴 마르지엘라의 카펫은 그들이 만드는 옷, 가방의 성격과 정확히 부합한다. 더욱이 두 브랜드를 지켜보는 소비자로 하여금 ‘이 명품업체는 패션에만 목을 매지 않고, 삶의 전반을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꾸미고 향유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브랜드’라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기존 패션 관련 제품 외에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 판매로 매출원을 다양화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목적은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다른 업체와의 차별화를 가능케 하는 데 있다.
 
명품업체가 다른 분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브랜드가 무리한 영역 확장으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거나 기존 제품 판매에 악영향을 미치는 오류를 범한다. 이미 명품 이미지를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시킨 업체라면 얼마간의 매출 증대를 노리다 큰 것을 잃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즉 브랜드 확장의 최우선 조건은 매출원 다양화가 아니라 기존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강화해줄 수 있느냐다. 기존 브랜드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해줄 수 있을 때만 브랜드 확장을 결정해야 한다. 보테가 베네타와 마르지엘라는 이 간단하지만 어려운 교훈을 제대로 실천했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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