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Innovation - 호주 다윈

척박한 아웃백에서 화려한 백조로 변신한 호주의 다윈

60호 (2010년 7월 Issue 1)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관광객이 몰리고 부동산 값이 오르는 ‘특별한’ 지역이 있다. 호주의 여섯 개 행정구역 중 하나인 노던 테리토리의 주도(主都)인 다윈이다.
 
이 도시의 이름은 ‘진화론’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생물학자인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에서 따왔다. 찰스 다윈도 탔던 영국 탐사선 ‘비글호’의 선장이 1839년 호주 대륙 부근을 항해하다가 항구를 발견하고, 찰스 다윈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다윈항(Port Darwin)’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1911년 다윈으로 개명됐다.
 
다윈은 우리에겐 아직 낯설지만, 세계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2009년에만 78만2000여 명이 노던 테리토리 지역을 방문한 것으로 집계돼 호주 내에서 유일하게 관광객이 전년 대비 4.3%(2만여 명) 증가했다. 이중 해외 관광객은 전년 대비 2.6% 증가한 33만6000여 명으로 조사됐다. 경기 불황으로 2009년 전 세계의 관광객이 6.1% 줄어든 것과 비교한다면 이는 엄청난 성공이다. 특히 다윈은 관광객이 전년보다 7% 늘었다. 2009년 호주 부동산 시장에서 값이 가장 크게 오른 지역도 17.9%의 상승률을 보인 다윈이다. 다윈의 고급 주택가인 패니배이는 39.4%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원시의 땅 다윈이 어떻게 호주대륙의 관문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아시아와 호주를 잇는 교통의 요지
다윈은 호주 대륙의 북쪽 끝에 위치한 도시여서 ‘톱 엔드(Top end)’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와 호주를 이어주는 ‘호주의 관문(gateway)’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호주가 과거 백인만을 받아들이는 백호주의를 고집했을 때만 해도 남동부에 위치한 시드니, 멜버른, 캔버라가 호주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호주가 백호주의를 포기하고 아시아로부터 이민을 적극 받아들이자 북쪽 첨병도시인 다윈의 가치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와의 교역도 급속히 늘어 허브 도시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윈의 도약에는 항만, 공항, 도로 등 교통 인프라에 대한 호주 정부의 선제적인 투자 노력이 숨어 있었다. 노던 테리토리 정부가 1986년 800만 달러를 투자한 이후 꾸준하게 인프라 투자가 진행됐다. 2003년에는 60억 달러를 더 투자해 15년 장기계획도 마련했다. 다윈은 아시아와 유럽으로 선박을 통해 물자를 운송하기에 최적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바다의 수심이 낮아 제 구실을 못해왔다. 호주 정부는 2008년 바다 아래 지반을 깎아내는 대공사를 마치고 다윈에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항구를 건설했다.
 
다윈에는 동남아시아 주요국으로 이어지는 국제공항이 있다. 호주 각 도시는 물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발리, 베트남행 직항 항공기가 다윈에 취항한다. 동남아시아 국가와 연결되는 항공편은 시드니행보다 많게는 50%까지 저렴하다. 다윈에서 시작되는 스튜어트 고속도로는 호주 대륙을 종단해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아우구스타 항구까지 이어진다. 아시아에서 선박을 통해 들어온 물품이 다윈 항에 내려진 뒤 고속도로를 타고 호주 남동부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호주 북부의 관문인 다윈 항의 전경. 다윈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관광객이 늘고 부동산 값이 오르는 등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버려진 땅을 관광 자원화
호주 북부는 큰 도시들이 위치한 동남부 해안의 맑고 쾌청한 날씨와는 달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조건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도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이 흔히 아웃백(Outback)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지 않는 끝도 없이 광활한 사막이나 들판과 덤불 지대다. 척박한 토양과 기후로 호주 북부는 한때 버려진 땅으로 치부됐다.
 
과거에는 불리했던 약점이 오늘날에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호주 대륙의 원시적인 야생을 그대로 보전할 수 있었다. 호주 대륙의 아웃백이 그대로 보전된 북부지역에서 훼손되지 않은 광활한 야생의 자연을 느끼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아웃백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관광지가 바로 카카두 국립공원이다. 카카두 국립공원은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됐는데, 문화부문(cultural)과 자연부문(natural)에 모두 등재된 몇 안 되는 세계유산 중 하나다. 여행가이드지인 론리 플래닛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호주에서 꼭 가봐야 할 곳’ 1위, 콴타스항공사가 평가한 호주 문화유적 관광 부문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지역에는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이 출연했던 2008년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의 촬영지도 있다. 카카두 국립공원과 리치필드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허브 도시가 바로 다윈이다. 호주 내의 다른 도시에서 동남아시아로 나가기 위해 다윈에서 환승을 하는 관광객도 많다.
 
다윈은 이 같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관광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를 중심으로 해양관광의 거점이 될 마리나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줄지어 들어선 컨벤션 센터와 호화 호텔, 세계 각국 레스토랑은 다윈의 랜드마크가 됐다. 관광은 이제 다윈의 가장 큰 산업이자 고용창출원이다.
 
크루즈 관광도 잠재 가치가 큰 관광자원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08년에는 다윈에 크루즈 선착장이 문을 열었다. 호주 관광청이 2010년 한 해 약 40척의 대형 크루즈가 다윈 항구에 정박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하니, 이들이 도시에서 지출하게 될 관광비용만 해도 최소 100억 원이 훨씬 넘을 것이다.
 
아시아와 백인 문화의 조화
과거 호주의 이민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제발 백인들만 오세요(White only, please)’였다. 이른바 백호주의다. 호주로 이민 오는 영국인들은 정부의 경제적인 원조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일단 백인이기만 하면 빈손으로 호주로 이민을 오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모든 재산을 가지고 호주로 이민을 오는 아시아계인들이 더 나은 이민자라는 것을 깨닫고 반기기 시작했다.
 
다윈은 호주 내에서 아시아와 가장 인접한 도시여서 아시아인들이 이민을 오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싱가포르까지 비행기 삯은 시드니까지 비행기 값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실제로 2006년 다윈에 거주하는 인구의 20.6%가 이민자였으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 출신이 13.2%나 되었다. 특히 인근 국가인 필리핀과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이민자의 수는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다윈은 60개국 이상에서 온 70개 이상의 민족이 공존할 정도로 다문화지역이다. 영어 이외에도 그리스어, 이탈리어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광둥어를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동티모르 대통령이 다윈 로열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오는가 하면 베트남 쌀국수 가게 앞에는 끊이지 않고 백인들이 줄을 선다. 찌는 듯한 날씨에도 히잡을 두른 이슬람 여자와 비키니를 외출복처럼 입고 다니는 서양 여자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다윈이다.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인 다윈 페스티벌 기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길거리에서 전통음식을 팔곤 하는데, 국적이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어울려 음식과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호주의 다른 대도시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원주민과 현대인이 공존하는 문화
다윈의 다문화주의는 ‘멜팅 팟(melting pot)’이라기보다는 ‘샐러드 볼(salad bowl)’에 가깝다. 멜팅 팟이 이주민들의 문화를 무시하고 현지화 되기를 강조하여 문화 용광로 속에서 하나의 문화적 특색만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샐러드 볼은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유지하며 협력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다문화사회를 의미한다. 마치 샐러드 볼 안의 재료들이 각자 고유의 맛은 살리면서 서로 어우러져 또 다른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샐러드 볼과 같은 다윈의 다문화주의는 세계 각국의 문화는 물론 원시와 현대가 공존하는 다윈만의 독특한 문화도 만들어냈다. 호주의 다른 지역에 있다가 다윈을 방문하면 신기한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원주민들처럼 맨발로 다니는 호주 현지인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윈 도시 내에서 원주민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주민은 노던 테리토리에서 5만 년 이상을 살아 왔으며, 이들의 문화는 다윈 곳곳에서 발견된다. 카카두 국립공원과 마주하고 있는 원주민의 땅 아넘랜드에는 5만여 년 동안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원주민이 소비자와 생산과 판매의 접점에서 마주한다는 점이 특히 이색적이다. 길거리에서 전통 악기인 디저리두를 연주하면서 판매하거나 애보리지널 아트(Aboriginal art)를 직접 그려 전시·판매하는 원주민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도시, 다윈
과거 호주가 백호주의를 고집했을 때 다윈은 북부의 소외받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백호주의를 포기하고 아시아로 문을 열자 다윈은 북부의 관문 도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윈이 지리적 이점에만 안주했다면 아시아인과 상품이 왕성하게 드나드는 도시로 부각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윈은 환경 변화에 발맞춰 항만, 고속도로, 공항 같은 교통 인프라를 적극 구축했고, 기존 호주인들이 아시아인, 원주민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인프라와 문화를 배경으로 배후에 있는 멋진 아웃백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다윈은 세계화 시대, 다원화 시대에 더욱 경쟁력 있는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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