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종합

감성을 살짝 건드리는 6가지 손길

60호 (2010년 7월 Issue 1)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되는 2010년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 대표팀이 2002년의 ‘4강 신화’를 다시 이뤄주기를 기대하며 들떴었다. 당시 출전한 국가대표들 대표 팀에 뽑히지 못해 주목을 받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불운의 사나이’ 이동국 선수였다. 그는 한국이 낳은 최고 스트라이커라는 평을 들었지만 유난히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2년에는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지 못했고, 2006년엔 월드컵을 불과 수 주 앞두고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출전을 접어야 했다.
 
이동국 선수의 좌절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줬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KTF가 월드컵 광고에 이동국 선수의 상황을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KFT는 여러 가지의 광고 콘셉트를 놓고 고민했으나 천편일률적인 ‘필승’ 콘셉트가 아닌 ‘낙오자의 고통을 분담하고 다같이 일어서자’는 색다른 콘셉트의 광고를 기획했다. 광고의 배경 음악 또한 이런 내용이 가사로 담긴 ‘You raise me up’이었다. 반응은 상당했다. 축구를 잘 몰라도 이 광고를 보고 울먹이는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는 당시 KTF의 광고가 한국의 월드컵 마케팅 역사에 획을 남긴 광고이자, 감성 마케팅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광고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소비자라는 동물은 대부분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필자는 소비자가 하나의 ‘빙산’이라고 생각한다. 빙산의 형체에는 다양한 ‘각’이 있고, 수면 위에 보이는 부분은 그 많은 각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수면 아래에 있는 많은 ‘각’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내면을 빙산의 보이는 부분 위주로만 해석하려 든다면 소비자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많은 마케터들이 간과하는 소비자의 ‘일각’이 바로 감성이다.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소비자 반응의 계층(hierarchy)이 인지(cognition), 감성(affect), 행동(behavior)의 순서를 거친다고 평가해왔다. 상황에 따라 이 순서가 달라질 수 있으나, 소비자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감성임은 틀림이 없다. 또한 소비자가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진정성있는(authentic) 감정을 유지하지 못하면 해당 제품의 ‘안티(anti)소비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1
 
감성 마케팅의 기본 모형
최근 소비자의 체험을 중시하는 의견이 늘어나면서 소비자 행동에서 차지하는 감성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를 오래 전부터 강조한 사람이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모리스 홀브룩 교수와 엘리자베스 허시먼 교수다. 이들은 정보처리 위주의 소비자 반응 시스템과 체험 위주의 소비자 반응 시스템이 어떻게 다르고 이에 따른 마케팅 전략 시사점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2  이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두 사람의 모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은 자극(투입물)을 크게 두 갈래로 분류했다. 첫째는 환경 자극, 둘째는 소비자 개개인이 갖고 있는 지속적 또는 상황적 특징이다. 환경 자극의 종류로는 제품 그 자체, 자극의 특징, 콘텐츠 등이 있다. 즉 환경 자극에서는 제품의 속성과 편익(features and benefits)이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주어진 정보, 해당 제품의 속성과 편익을 철두철미하게 분석하고 해독해서 구매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정보처리 위주의 소비자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다.
반면 소비자 투입물의 종류는 자원 및 시간, 과업 정의, 관여도, 소비자 개개인 특징 등이 있다. 이 중 관여도를 보자. 관여도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해당 제품에 갖는 관심 및 중요성의 정도를 뜻한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살 때 높은 관심을 갖고 여러 자료를 검색해 비교한 뒤 구매를 결정한다면 이 제품을 고관여 상품으로 부를 수 있다. 자동차나 고가의 전자제품이 대표적 고관여 상품이다. 반면 별 생각 없이 습관적, 즉흥적으로 구매한다면 저관여 상품으로 부를 수 있다. 소비자는 저관여 상품을 접할 때 가격과 같은 논리적 이유로 구매를 결정할 때가 많지만, 고관여 상품을 구매할 때는 감성적 이유로 구매를 결정할 때가 많다. 그 제품에 대해 소비자 개개인이 느끼는 애착, 과거의 경험 등이 해당 제품의 속성 및 편익보다 구매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체험 위주의 소비자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다.

속성과 편익을 강조하는 마케팅, 즉 환경 자극에 관계된 마케팅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최고급 식당처럼 체험 자체가 제한적인 상품, 즉 체험 위주의 소비자 반응이 나타나는 제품들은 단순한 말이나 시각 또는 청각처럼 제한된 감각만으로는 제품 가치를 완전히 전달할 수 없다. 즉 소비자의 후각, 촉각 또는 미각 같은 다른 오감 반응을 유발하거나, 말 이상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만 제품 가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체험 위주의 소비자 반응이 나타나는 제품을 굳이 언어로 강조하려면 언어의 의미 자체보다 순서와 스타일을 달리 해야 소비자들의 체험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과거에는 제품 종류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마케팅이 속성과 편익만을 주로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엔 속성과 편익이 중요한 상품을 마케팅할 때도 감성처럼 소비자의 체험 반응을 유발하는 요소를 덧붙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아파트 마케팅이다. 과거 아파트 광고는 입주자의 주요 관심사인 학군과 상권을 강조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의 감성적 부분, 즉 소속감, 사회적 지위, 정체성, 세련미 등을 강조하는 광고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를 아파트의 구조나 조경과 같은 유형 인프라에만 반영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 이름과 같은 무형 인프라에도 반영하고 있다.
 
아파트 외에 자동차나 가구와 같은 내구재, 휴대폰을 비롯한 IT 제품, 맥주와 같은 비(非)내구재 상품에서도 감성적 요소가 제품 차별화의 중심(point of difference)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술 발달로 유형적 측면에선 제품별로 차이가 없거나, 설사 있다 해도 소비자들이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체험 소비 반응의 목적은 재미, 여흥, 환상, 각성과 같은 쾌락 욕구의 성취다. 이 쾌락은 개인 차는 있어도 모든 인간의 본능적 욕구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상황이 좋아질수록,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늘어날수록 쾌락 욕구의 성취가 중요해진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가 경기침체를 겪어도 명품 매출은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 성장 및 소비의 역사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짧기 때문에 사람들의 쾌락 소비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성과 우뇌 마케팅
과거에는 소비자에게 제품의 가격이나 기능을 강조하는 좌뇌 마케팅이 대세였다. 하지만 감성 마케팅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우뇌 마케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뇌 마케팅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미국의 대니얼 핑크는 우뇌 마케팅의 6가지 요소를 이렇게 정리했다.3

[그림4]눈에 띄는 토스터디자인 4
60_20_img

1.디자인(design): 제품의 실용적 효용에 제품의 미학적 장식까지 표현할 수 있는 능력
2.융합(symphony): 여러 역량과 속성 간의 조화를 이루는 능력
3.이야기(story):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일관된
배경 속에서 배치하고 전달 할 수 있는 능력
4.공감(empathy): 마케팅 대상과 상호간 가치를 정립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능력
5.흥(joy):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는 힘
6.의미(meaning): 마케팅 대상의 삶을 초월할 수 있는 의미의 발굴
 
핑크는 각각의 요소를 감성 마케팅과 접목한 예를 다음과 같이 든다. 디자인 측면에서 그가 주목하는 제품은 토스터다. 미국 사람들은 거의 매일 빵을 토스터에 구워 먹는다. 소비자가 이 토스터의 실용적 기능과 효용을 확인하는 시간은 하루에 채 15분도 안 된다. 하루의 나머지 1425분 동안 토스터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비자는 별로 없다. 토스터가 소비자들의 눈에 매우 잘 띄는 곳에 놓여져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핑크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토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얼마나 빵을 잘 굽느냐가 아니라 미학적 장식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가전업체들이 최근 냉장고를 비롯한 제품에 앙드레 김과 같은 유명 다자이너를 동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융합은 전체적인 문제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의미한다. 이를 ‘Seeing the Big Picture’라고 한다. 디지털 시대의 기업은 마케팅 활동에서 매우 다양한 매체들을 이용한다. 이 때 자사 제품이 소비자에게 큰 그림으로는 과연 어떻게 비춰지는지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제품 광고가 기업의 핵심 가치나 자사의 다른 제품 마케팅과 어긋나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살피면서 일관성과 상호 통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땅에서 볼 때보다 하늘에서 높이 나는 새(bird’s eye view)가 아래를 더 잘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야기 또한 감성 마케팅의 중요한 요소다. 이야기를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나 담화(narrative)라고 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사실(fact)만을 전달과는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인간의 풍부한 감정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핑크는 사실 전달과 이야기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사실 전달은 “왕과 여왕이 둘 다 죽었다”이다. 이를 “여왕이 죽었고 왕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따라 죽었다”로 바꾼 게 이야기다. 당연히 사실보다 이야기가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은 상상력과 감동을 일으킨다. 사실을 이런 식의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감성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이동국 선수의 광고 역시 이야기 전달의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타인의 기분을 내가 대신 느끼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디자인, 융합, 이야기와 같은 감성 마케팅의 요건은 공감과 결합할 때 그 효과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핑크는 특히 공감이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감성 마케팅에 유효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여성이 대체로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여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핑크는 흥의 반대는 업무가 아니고 우울함이라고 했다. 흥과 업무는 상충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보완 관계에 있으며, 많은 기업들이 이를 감성 마케팅에 이용해 효과를 봤다. 미국의 저가항공사 사우스웨스트는 ‘work and play’를 브랜드 콘셉트로 이용했다. 삼성전자도 애니콜 휴대폰 광고에서 ‘Talk, Play, Love’라는 슬로건을 이용한 바 있다. 흥은 특히 디지털 세대를 겨냥한 감성 마케팅에 유용하다. 디지털 세대에게 흥은 일종의 신규 규범(new normal)이다.
 
의미는 물질이 풍부한 시대에서 사람들이 제일 성취 하고 싶어 하는 감성이다. 즉 기본 욕구를 충족한 사람들은 이후 삶의 목적을 규명하려 든다. 인간은 꼭 물질적으로 풍족했을 때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와 사명감을 느꼈을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5  마케팅에 삶의 의미를 진정성있게(authentic) 녹인 마케팅이야말로 고차원적 감성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및 대의(cause)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저명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감정이 소비자의 종합적 반응을 효율화하고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게 만든다고 분석한 바 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기업들은 이성 마케팅에만 주력하는 듯 해 아쉬움을 남긴다. 감성 마케팅은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봐도 한국 기업에 매우 중요하다. 약간의 표현 및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문화권에 상관없이 비슷하다. 공유와 전파도 쉽다. 감정을 토대로 한 감성 마케팅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해외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기업이 감성 마케팅의 중요성을 체득하고, 이를 적절히 이용해 국내외 시장에서 선전하기를 기대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