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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살리는 '리콜'의 지혜

김호 | 47호 (2009년 12월 Issue 2)
2009년 10월 29일 삼성전자가 지펠 냉장고 21만 대를 자발적으로 리콜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백색 가전 부문에서 최대 규모다. 이번 리콜의 시발점은 10월 10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지펠 냉장고 폭발 사건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6년형 지펠 냉장고가 폭발하면서 냉장고 문이 날아가 다용도실의 미닫이 유리문과 창문을 깼고, 폭발에 놀란 주민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제품을 수거해 조사했다. 이어 냉장고 내부 서리 제거용 히터의 연결 단자에서 누전에 의한 발열이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물론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 리콜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제품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리콜을 피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리콜을 대하는 기업의 태도와 의사결정에 따라 리콜이 기업 브랜드를 시장에서 퇴출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업 위기관리의 역사에서 리콜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지난 30여 년간 일어난 대표적 사례들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례 1
1982년 일어난 타이레놀 리콜 사태는 가장 고전적인 사례다. 당시 타이레놀은 미국의 성인용 진통제 시장의 35%를 차지한 브랜드였다. 갑자기 미국 시카고에서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 중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카고 선타임스> 기자의 전화를 받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존슨앤드존슨은 즉각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최고 임원진 7명으로 대응 팀을 구성했다. 이들은 특별한 위기관리 대응 프로세스를 갖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회사의 철학이 담긴 신조(Our Credo)를 토대로 대응에 나섰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회사의 신조는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의사, 간호사, 환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기타 모든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제일 먼저 책임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명시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사건은 한 범죄자가 의도적으로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 독극물을 넣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생산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고, 존슨앤드존슨도 피해자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오로지 소비자에게 생길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과감한 리콜을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정부, 언론 등과 협조 체계를 구축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존슨앤드존슨은 이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를 겪었고, 독극물 투여가 어렵도록 삼중 안전 포장으로 제품을 혁신했다. 타이레놀은 오늘날에도 진통제의 톱 브랜드로 남아 있다.
 

 
사례 2
탄산수 브랜드인 페리에는 1990년에 세계적인 리콜 사태를 겪었다. 페리에 생수에서 벤젠이 발견됐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페리에는 리콜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벤젠 함유를 알고서도 리콜을 결정하는 데 사흘이나 걸렸으며, 초기에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페리에 미국 본부는 벤젠 오염이 북미 지역에만 한정됐다고 발표했고, 페리에 영국 본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프랑스 본부는 페리에의 미국 공장에서 병에 생수를 넣는 과정에서 세척액이 실수로 들어갔으며, 프랑스에 있는 수원지는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수원지 정수 필터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페리에는 신뢰를 잃고 큰 타격을 받았다. 생수 시장에서 경쟁자인 에비앙과 산펠레그리노에 밀렸고, 시장점유율도 떨어졌다. 결국 페리에는 네슬레에 인수됐다.
 
사례 3
1993년 6월 14일 펩시콜라의 CEO 크레이그 웨더업은 미국 워싱턴 주에서 놀라운 보고를 받았다. 펩시콜라 캔 속에서 주사기가 발견된 것이었다. 그는 그날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청장과 만나 생산 과정에서 주사기가 콜라 캔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했고, 위기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 체제를 만들었다. CEO 직속 위기관리 팀을 구성하고, 15일 회사의 입장을 정리한 ‘토킹 포인트(talking point)’를 개발했다. 16일에는 CBS, NBC, ABC, PBS, CNN 등 주요 방송 채널에 출연해 펩시콜라의 안전한 생산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소비자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이날 한 편의점의 카메라에 펩시콜라에 주사기를 넣는 범인의 모습이 포착됐고, 17일 이 모습이 전국에 공개됐다. FDA 청장은 펩시사(社)는 아무 잘못이 없으며, 이물질을 투입한 사람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범인이 체포됐고, 웨더업이 보고를 받은 날로부터 5일째 되는 날 위기 종결을 선언했다. 크레이그 스미스, 로버트 토머스, 존 치 등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한 논문에서 “펩시가 성급한 리콜을 하기 전에 철저한 조사와 정부 부처와의 협조로 위기를 극복했다”며 훌륭한 사례로 언급했다. 리콜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례 4
1994년 미국의 수학자인 토머스 나이슬리는 인텔 펜티엄 칩의 연산 오류를 발견하고 인텔 측에 문의했다. 하지만 일주일 가까이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는 결국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자 인텔은 최악의 수를 뒀다. 소비자들이 인텔 칩의 오류를 증명하면 교환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여론에 떠밀린 이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교환 정책(no-questions-asked returns policy)’을 실행하게 됐다. 훗날 CEO인 앤드루 그로브는 자신들이 분석적인 엔지니어의 마인드에 사로잡혀 소비자들의 마음을 잘못 읽었다고 밝혔다.
 
사례 5
1999년 6월 당시 코카콜라의 CEO였던 더글러스 아이베스터는 유럽 방문 중 벨기에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벨기에의 초등학생 30여 명이 점심시간에 코카콜라를 마신 뒤 복통과 위경련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미국 본사로 복귀했다. 하지만 벨기에에서는 콜라의 원료에, 프랑스에서는 용기 운반 받침에 묻어 있던 세척제가 캔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밝혀지면서 벨기에와 프랑스는 물론,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서도 리콜을 하게 됐다. 코카콜라는 초기 대응이 느렸을 뿐 아니라 벨기에 보건부 장관의 면담 요청을 거절하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1999년 말 코카콜라는 수익이 30% 이상 하락했고, 결국 더글러스 아이베스터는 해고됐다.


글로벌 기업들의 리콜에서 얻는 교훈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들의 리콜 사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 성공적인 리콜 사례들에서는 예외 없이 제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초기 단계부터 빠르고 투명하며 여러 번에 걸친 언론, 소비자 등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됐다. 2004년 LG전자가 전기밥솥을 리콜한 과정을 보자. 초기에는 ‘조용하게’ 리콜을 하다가 문제가 커지자, 5만 원의 보상금을 내걸고 적극적으로 광고한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1980, 90년대에 벌어진 사건이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한 만큼 더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최근 국내에서도 트위터를 활용해 위기관리를 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듯이 기업들은 리콜 사태에 대응할 때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제품상의 문제로 리콜을 고려하는 과정부터 정부 관련 부처나 제3의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이러한 협조 의지를 공중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 LG전자는 2008년 1월 노트북 배터리 폭발 사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초기부터 한국전기연구원에 원인 규명을 의뢰했다. 자사가 직접 사고 원인을 규명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셋째, 기업들은 사건 발생 초기에 위기 문제를 정의하는 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문제를 기업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나 공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펠 냉장고 폭발 사건이 터졌다면, 이 위기를 ‘자사의 냉장고가 한 가정에서 폭발하여 올해 매출액 달성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함’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 이를 ‘냉장고 폭발 사건으로 같은 브랜드의 냉장고를 보유한 소비자들이 깊은 우려를 하고 있음’이라는 식으로 정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넷째, 초기의 작은 문제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유사 사례가 여러 차례 일어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사하고 조치해야 한다. CNN에서 운영하는 시민 저널리즘 사이트인 아이리포트(ireport)에 따르면, 2008년 7월 남아프리카 소비자의 가정에서 삼성전자 냉장고가 폭발했었다. 삼성전자가 더 일찍 냉장고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는 없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콜 방식도 혁신해야
삼성전자가 사건 발생 20일 만에 자발적 리콜을 결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거 글로벌 기업의 리콜 사례에 비춰보면 몇 가지 아쉬움도 남는다. 첫째, 폭발 사고 후 궁금하고 불안했을 소비자들에게 20일 동안 보다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리콜을 할 때는 신속하게 자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좋다. 삼성전자도 트위터나 블로그, 홈페이지 등을 잘 활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셋째, 10월 30일자 일간지에 보낸 리콜 광고에 “삼성전자 양문형 냉장고를 사랑해주시는 고객 여러분”이라는 표현은 있어도 “그동안 불안하거나 궁금했을 고객 여러분”에 대한 사과의 표현은 없었다. 
앞으로도 제품의 혁신 과정에서 기업들은 리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 사례, 현재의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검토하고 리콜 방식과 기업의 태도에서 혁신할 점이 없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위기는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정립해놓고 비상시에 현명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 드뭅니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겪은 위기관리 사례를 공유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김 대표의 e메일로 보내주십시오. 좋은 사례를 골라 본 글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필자는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마켓대에서 PR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구 중이다. 글로벌 PR 컨설팅사인 에델만 한국 대표를 거쳐 현재 오길비헬스 파트너와 더랩에이치 대표로 있으면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에게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하는 코칭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 김호 김호 | - (현) 더랩에이치(THE LAB h) 대표
    - PR 컨설팅 회사에델만코리아 대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

    hoh.kim@thelab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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