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기업들은 일정한 가격 범위 내에서 경쟁을 벌여왔다. 시장에서 용인되는 가격 범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예전에는 볼 수 없던 극단적인 가격 전략(아주 비싸거나, 아예 공짜거나, 아니면 정해진 가격이 없는)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300만 원짜리 핸드백이나 500만 원짜리 자전거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짜 휴대전화나 무가지가 넘쳐난다.
이처럼 가격 정책이 극단화되는 배경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시장 양극화에 대한 대응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시장 내 경쟁 격화에 따른 고육지책일 수도 있고, 고객관계관리(CRM) 기술 발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복잡해진 시장 환경 속에서 제품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전략적 의도에 있을 것이다. 최근 활용되고 있는 극단적인 가격 정책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고 가격을 지향하라(Race to the Top)
전통적으로 마케팅 담당자들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대를 조사하고, 이 가격대의 상층부에 자사 제품을 포지셔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시장의 암묵적인 가격 구조에 순응해왔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장 가격의 상한을 공격적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명품 가격 정책과 플래그십 가격 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명품 가격 정책(prestige pricing):자사 브랜드를 탁월한 품질이나 사회적 지위의 표상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급 제품의 가격을 크게 올려버리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명품 패션 소품이나 고급 오디오 등을 넘어 아파트와 자전거, 화장품, 문구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콜나고(Colnago)의 ‘페라리 6주년 모델’ 자전거는 국내에서 1700만 원에 팔리고, 파버 카스텔(Faber Castell)의 그라폰 만년필의 한정판 가격은 무려300만 원(보통 제품은 50만 원대)을 넘어간다.
명품 가격 정책은 시장 상황과 기업의 역량이 잘 부합해야 성공할 수 있다. 패션 소품처럼 신분 표출적 소비가 일어나는 시장의 기업이라면,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 같이 모방 불가능한 브랜드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일반 재화 시장에서도 감성 품질이 중요하고 가격이 품질의 신호(signaling)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명품 가격 정책이 가능하다. 단 해당 제품이나 브랜드가 앞서 언급한 콜나고나 파버 카스텔처럼 품질과 스타일, 감성 가치, 스토리 텔링 측면에서 독특한 강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플래그십 가격 정책(flagship pricing):넓은 제품 라인업을 갖춘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고가격 정책이다. 여기서 플래그십 제품이란 기업이 브랜드력 제고를 위해 만든 최고급 ‘대표선수’ 제품을 말한다.
플래그십 제품의 가격을 매우 높게 설정하면, 해당 제품 자체는 판매 부진으로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플래그십 전략을 시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전략적 이득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무엇보다 자사의 전반적인 브랜드 포지셔닝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시판한 ‘에쿠스 프레스티지’ 승용차의 가격은 무려 1억520만 원이다. 현대차는 그 동안 수입차에 비해 낮게 인식됐던 자사의 브랜드 지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에서 신형 에쿠스 가격을 설정했다.
둘째, 플래그십 제품에 높은 가격을 매기면 중저가 제품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다. 올해 국내에서는 LG 옴니아와 삼성 아르마니폰 등이 나오면서 100만 원대 휴대전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은 40∼50만 원대 휴대전화를 상대적으로 싸게 느끼게 됐고, 60∼70만 원대 제품에도 눈길을 보내게 됐다. 대표 제품 하나의 가격을 높게 잡으면, 향후 중저가 신제품의 가격 범위가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최저 가격, 심지어 공짜로도 (Race to the Bottom)
반대로 시장 수요를 촉진시키기 위해 판매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경우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다. 기업은 이 전략을 실행하기 전에 가격 인하로 단위 마진이 줄어들어도 수요가 크게 증가해 총 마진이 늘어날 수 있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공짜경제 가격 정책(freeconomics pricing):공짜경제란 제품의 가격을 크게 낮추거나 아예 소비자에게 공짜로 줘서 사용자 기반을 크게 늘리고, 보완재나 후원자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동통신사가 공짜 휴대전화를 제공하는 이유는 모바일 인터넷 등 서비스에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짜 영화표는 팝콘과 음료수, 영화관 내 광고, 식당, 게임장 임대료 등 추가 수익을 바라보고 뿌려진다. 실제로 CJ CGV 극장의 2008년 비(非) 상영 수익은 전체 매출의 34%(1227억 원)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