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이후 많은 명품업체들은 플래그십 스토어(가두점)를 통한 세력 확장 및 이미지 통합에 공을 들여왔다.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은 고객이 브랜드를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장소인 만큼 브랜드 경영진들은 렌조 피아노(에르메스), 헤르초크 & 드 뫼롱(프라다)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를 고용해 건물을 짓고, 최대한 고급스럽고 화려한 자재들로 그 안을 채워 넣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이런 플래그십 스토어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지닌 가게들이 가장 ‘힙’한 패션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팝업 스토어다. 팝업 스토어는 온라인 상에서 사용자가 어느 웹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이벤트나 특별한 공지사항 등을 알리기 위해 조그맣게 떴다가 사라지는 ‘팝업(Pop-up)’ 창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진다는 이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해당 브랜드가 존속하는 한 10년이건 100년이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킬 듯한 플래그십 스토어와 달리 팝업 스토어는 1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하다 사라진다. 외관이나 인테리어 역시 전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다. 철거 직전의 건물이나 오랫동안 임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적한 지역의 건물을 임대해 최소한의 인테리어 공사만을 거친 뒤 고객을 맞기 때문에 매우 거칠고 초라한 느낌을 준다.
패션계에 팝업 스토어의 유행을 몰고 온 브랜드는 일본의 꼼 데 가르송이다. 전위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브랜드로 알려져 있는 꼼 데 가르송은 2004년 패션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베를린을 기점으로 헬싱키, 베이루트, 홍콩에 ‘게릴라 스토어’를 열었다. 뉴욕과 파리가 아닌 패션계의 외곽 도시에 문을 연 이 게릴라 스토어들은 잠깐 동안 비어 있는 건물을 임대하거나 철거 직전의 건물 등을 싼 값에 빌려 거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지 않은 채 운영됐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깬 신선한 발상이라는 이유에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나이키, 프라다, 샤넬 등 다앙한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팝업 스토어의 개념을 잇따라 도입하면서 이제 팝업 스토어는 패션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패션 브랜드의 입장에서 볼 때 팝업 스토어가 가진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일반 매장과 달리 대규모의 공사 비용과 임대료가 필요치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특이하게도 이런 팝업 스토어는 고유의 한시성과 독특한 콘셉트 덕에 굳이 ‘목’이 좋은 자리가 필요 없다. 해당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가진 고객이나 트렌드세터라면 물어서라도 그 가게를 찾을 테니 말이다.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돈을 쓸 필요도 없다. 독특하고 젊은 분위기만 발산할 수 있다면 허름한 내외관이 오히려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다른 매력도 있다. 팝업 스토어는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다.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와 아이덴티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꼼 데 가르송이나 나이키 같은 브랜드들은 팝업 스토어를 통해 젊고, 실험성이 강하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브랜드,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확립했다. 샤넬이나 프라다 같은 명품업체들은 팝업 스토어를 몇몇 이벤트에 활용함으로써 자신들이 파리 방돔 광장이나 밀라노 비아 델라 스피가에만 머무르는 고루하고 답답한 브랜드가 아님을 만천하에 증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