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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의 기술’을 익혀라

김호 | 37호 (2009년 7월 Issue 2)
사례 1  오리온과 해태제과, 새로운 ‘노출’ 시도
일부 제과업체들에는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가 반발할 것을 우려해 과자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용량을 줄이는 관행이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소비자에게 제대로 공지하지 않고 용량을 ‘슬쩍’ 줄였다는 데 있다. 올해 6월 오리온과 해태제과는 이런 불투명한 관행을 깨고,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앞으로 용량을 줄일 때 그 사실을 더욱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두 회사가 약속한 것처럼 앞으로 투명한 ‘노출’을 할지, 용량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소비자와 투명한 대화를 이어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두 회사의 이러한 노출 시도가 위기관리 트렌드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례2 롯데제과의 빼빼로
반면 이러한 흐름을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한 기업들도 많다. 국내 1위 제과업체인 롯데제과는 올해 초 9개 제품의 용량을 슬쩍 줄였다 언론과 소비자 단체의 비판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대표적인 제품이 빼빼로다. 1983년 출시 당시 50g이던 빼빼로는, 포장 크기는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량은 수차례 줄여왔다. 올해 초에는 30g까지로 줄였다. 반면 가격은 250% 올랐다. 용량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가격을 475% 올린 셈이다.
 
올해에도 롯데제과는 용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언론과 소비자 단체가 이를 문제 삼자 환율 급등 등의 이유를 대며 항변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경쟁사인 오리온, 크라운제과, 해태제과는 가격이나 용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결국 롯데제과는 더욱 신뢰를 잃게 됐다.
 
사례3 디아지오의 윈저
5월 15일, 국내 1위 위스키 브랜드인 윈저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수입·판매사인 디아지오코리아가 망신을 당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회사 측 관계자가 “(새로운 윈저의) 가격은 이전과 같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중형 사이즈는 500mL에서 450mL로, 소형은 350mL에서 330mL로 슬쩍 줄인 게 탄로 났다. 결국 경사스러워야 할 신제품 발표 관련 기사는 ‘(디아지오코리아의) 꼼수’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나갔고, 회사의 신뢰는 실추됐다.
 
꼼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
롯데제과와 디아지오코리아가 신뢰를 잃고 망신을 당한 것도, 오리온과 해태제과가 새로운 ‘노출’ 정책을 시행하려는 것도 실은 같은 배경에서 나온 현상이다. 불투명한 ‘꼼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소비자를 어느 정도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힘들어졌다.
 
리더십의 대가 워렌 베니스, ‘감성지수(EQ)’로 유명한 대니얼 골먼, 그리고 경영학 교수인 제임스 오툴은 2008년 저서 <투명성의 시대(Transparency)>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투명해져가고 있는지, 이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다뤘다(이 중 일부 내용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2009년 6월호에 실렸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투명성’이 정직이나 공정성처럼 보기 좋은 구호나 비전이라기보다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커스터머 인사이트의 정해동 대표는 최근 <고객접촉점이 마케팅이다>라는 책에서 기업을 ‘투명한 어항 속 물고기’에 빗대어 표현했다. 어항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의 활동(예를 들어 과자의 용량을 슬쩍 줄이는 일)을 밖에서 훤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활동이) 벌거벗겨지고 있다. 투명성의 증가는 여러 요소와 관련이 있다. 소비자 보호주의의 강세, 블로그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급증, 조직에 대한 충성심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투명 사회에서는 기업의 위기관리 패러다임도 바뀌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나쁜 뉴스’를 숨기는 구조였지만, 이것이 점차 불가능해진 지금은 차라리 먼저 알리고 드러내는 게 더 나은 방법이 됐다. 이는 윤리적일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회사의 명성을 보호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득을 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사례4
 미시간대학병원
미국 미시간대학병원은 ‘노출의 기술’을 제대로 활용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뢰도 얻고 비용 또한 대폭 줄였다. 이 병원은 의료사고 대처에 있어 여타 병원과는 달리 ‘디스클로저(disclosure)’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의료사고가 일어나면 대개 담당 의사는 뒤로 빠지고 병원 측 변호사나 의료사고 관리팀이 나선다. 이 과정에서 해당 환자의 가족들은 사고 내용에 대해 담당 의사나 병원으로부터 투명한 설명을 듣기보다는 방어적 해명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미시간대학병원은 의료사고가 일어났을 때 즉시 환자 가족에게 유감의 뜻을 밝힌 뒤, 투명하고 신속하게 사고 원인을 조사할 것을 약속한다. 환자 가족에게 병원 근처에 숙소를 마련해주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은 물론, 조사 과정에서 환자 측 변호사나 의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하고, 모든 진료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조사 결과 병원의 실수가 밝혀질 경우에는 담당 의사가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환자 가족에게 사과하며, 나아가 보상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연간 의료사고 관련 소송은 262건에서 100건 미만으로 줄었다. 아울러 소송 한 건당 평균 비용이 4만8000달러에서 2만1000달러로, 평균 소송 기간은 20.7개월에서 9.5개월로 줄었다. 이 프로그램은 하버드, 스탠퍼드, 버지니아 등 주요 병원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노출의 기술, 어떻게 해야 할까?
이처럼 노출의 기술은 새로운 위기관리 패러다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기업은 지금부터 관심을 갖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잘못을 감추거나 공개를 늦추지 말고 빨리 공개하라. 위기가 발생하고 회사의 잘못이 있었다면, 공개를 늦추거나 감추기보다는 이를 어떻게 공개할 것인지 고민하라. <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 박사는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의 문제가 사람들의 신뢰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잘못은 상대방이 지적하기 전에 먼저 공개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투명성의 패러독스’란, 자신의 잘못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이 불리할 것 같지만 실은 더 이득이라는 뜻이다. 위기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잘못을 공개하는 행동은 누구에게나 불편하지만, 오히려 유리한 점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잊지 마라.
 
둘째,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속담을 과신하지 마라. 이는 특히 루머 관리에서 명심할 내용이다. GM이 최근 몇 년간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사례에서 참고할 만한 게 있다. 바로 GM의 루머 관리 채널인 ‘GM Facts and Fiction(http://gmfactsandfiction.com)’이다. 소비자들은 이 사이트에 주위에서 듣는 GM 관련 루머를 직접 적어 제출할 수 있다. 회사는 루머를 받아 그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고, 더불어 실제 사실과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다. 루머에 시달릴 때는 오히려 정면 돌파하는 게 바람직하다.
 
셋째, 평소에 꾸준히 노출하라. 최근 경영 전반에 대해 사회에 보고하는 기업들의 사례가 늘고 있다. ‘지속 가능성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산업재해, 소비자 불만, 온실가스 배출량, 폐수 방출량 등 나쁜 뉴스가 될 만한 것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 이러한 노출은 자연스럽게 위기를 예방한다. 즉 자신들의 취약점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대책을 생각하고 실행하게 된다.
 
새로운 투명성의 시대에 기업의 위기관리 대책인 ‘노출의 기술’은 약점을 드러내는 게 핵심이다. 지금까지 나쁜 뉴스를 관리하는 기업의 기술은 상당 부분 ‘은폐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사회와 경영 환경은 이제 노출의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 김호 김호 | - (현) 더랩에이치(THE LAB h) 대표
    - PR 컨설팅 회사에델만코리아 대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

    hoh.kim@thelab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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