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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피부가 약동한다

장윤규 | 36호 (2009년 7월 Issue 1)
1981
년 건축가 장 누벨은 혁신적인 ‘아랍 문화원’ 건축을 선보였다. 그는 건축의 구조와 외피(skin)를 기능적으로 결합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가 제안한 건물의 외피는 빛에 반응하는 조리개와 같은 수많은 기계 장치가 결합돼 반복적인 프랙탈(fractal·눈송이의 결정체처럼 부분이 전체적으로 계속 반복되는 형상) 패턴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혁신성은 현대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디지털 시대인 현재, 건축계에서 건물의 표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성형 수술과 화장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외모에 대한 관심, 즉 ‘외피에의 갈구’와 관련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건축 작업에 컴퓨터를 사용함으로써 비선형적이고 불규칙한 공간과 형태, 스킨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디지털화한 건축을 인간의 신체와 비교하면, 골격과 신진대사를 담당하는 내장의 비중을 축소하듯 건축의 구조와 공간을 제거하고, 표피의 비중을 최대화하는 작업과 같다. 결국 건축의 외피는 내부와 외부 공간의 경계에서 건물의 콘셉트를 보여주는, 현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았다.

건축의 표피를 잘 살린 대표적인 건축가로는 헤르초크와 드 뫼롱을 들 수 있다. 이들이 만든 건축물의 표피는 화장술이라고 지칭될 정도다. 특히 구조와 외피를 통합하는 새로운 시도는 재료의 특성까지 잘 살려 최근 건축의 큰 이슈인 ‘결합체’를 만들어낸다. ‘도미노스 포도주 공장’ 프로젝트에서는 철망으로 된 격자 틀 안에 막돌을 넣어 바람이 통하는 표피를 만들어냈다. 불규칙적으로 쌓은 돌 사이로 빛이 흩어져 특이한 공간을 창조한다. 도쿄의 ‘프라다’ 건물은 구조와 표피, 재료의 통합적 완결성을 더 잘 보여준다. 마름모꼴이 반복되는 구조는 전체 볼륨을 형성하는 유일한 수직 구조다. 각 층의 패션 매장을 관통하는 마름모꼴의 튜브 공간은 입체성을 살리는 틀이다. 마름모를 메우는 유리 창호도 흥미로움을 더한다. 볼록 렌즈와 같은 성형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연출하고, 표피의 입체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작업은 독일 뮌헨의 축구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와 베이징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의 특이한 표피로 발전한다. 특히 알리안츠 아레나에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ETFE라는 신소재를 사용해 미래의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구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또한 프랑스의 파펜홀츠 스포츠 센터에 몸에 문신을 한 듯한 회화적인 표피를 선보였다. 나뭇잎 모양을 확대한 이미지를 대리석과 유리 패널에 에칭 기법으로 프린팅했다. 

건축물의 표피는 공간을 규정하는 경계의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소통에도 집중한다. 즉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예술 활동이나 정보 등을 건물의 ‘미디어 월(media wall)’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시몬 지오스트라 파트너스의 ‘그린픽스-제로 에너지 미디어 월’은 특히 흥미롭다. 도시 환경 정보의 공유를 목적으로 예술가와 협동 작업해 완성한 이 스킨은 빌딩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행위와 이벤트를 정보로 바꿔 도시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룬다.
 
건축의 스킨과 공간이 결합되기도 한다. 필자가 속한 운생동건축가그룹에서 설계한 ‘예화랑’은 스킨과 풍경이라는 개념을 결합한 스킨 스케이프(skin scape)를 더욱 확장해 스킨 자체가 공간이 되도록 한다. 원래 하나의 표피일 뿐이었던 스킨을 여러 겹 판들의 주름으로 대체해 스킨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의 표피도 만들어진다. 건축가 에두아르 알베르가 제안한 프랑스 파리의 ‘쥐시외 대학 건축’은 10가지 종류의 구멍이 뚫린 금속 패널 외피를 입혀 다양한 표피를 구성한다. 이는 프랙탈 같은 반복 및 변화와 연결된다. 건축가 바코 라이빙거가 제안한 ‘서울 DMC 오피스 빌딩’은 프랙탈 유리로 표피를 구성한다. 3차원의 표피는 빛과 이미지를 굴절시켜 파사드(건축물의 주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를 분할하고 추상화한다.
 
건축의 표피는 내부 공간의 환경을 제어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이중 외피(double skin)’라 불리는 여러 겹으로 구성된 표피도 이러한 이유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스킨은 현재의 기술 발전과 더불어 급속한 성장 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며, 환경 친화적 스킨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벡터 아키텍츠가 중국 베이징 ‘친환경 기술전시관’에 적용한 푸른 잔디 패널이 대표적 사례다. 유기적 패턴도 표피로 바뀐다. 일본 건축가 하지메 마스부치는 ‘스튜디오 M’ 프로젝트에서 패턴이 이중적으로 겹쳐진 효과를 냈다. 디지털 건축의 요동치는 표피도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건축가 도미니크 제이콥이 만든 ‘파리 선창(Docks de Paris)’의 움직이는 동선 공간이 그 예다.
 
건축의 스킨은 벽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건축가 그룹 FOA가 선보인 ‘요코하마 터미널’은 건물의 지붕을 구성하는 풍경과 스킨을 교차하며 독특하게 결합한다. 이렇듯 현대 건축의 스킨은 여러 개의 코드를 통합한다. 지붕과 바닥과 벽의 구분이 없는, 혹은 지붕이자 바닥이자 벽이기도 한 표피를 구성한다. 건축의 표피에는 무한히 확장되는 자유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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