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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네티즌이 보여주는 디지털 트렌드

이훈행 | 35호 (2009년 6월 Issue 2)
아시아는 이제 인터넷과 디지털 세계로 가는 ‘첫걸음’을 떼고 있다.

첫걸음’이라는 단어는 초고속 인터넷과 수많은 디지털 제품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한국과 호주, 싱가포르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의 인터넷 보급률은 아직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 아시아 전체의 인터넷 보급률은 겨우 15% 정도다. 유럽(48%)과 미국(74%)에 비하면 이제야 출발점에 서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아시아의 인터넷 보급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다. 2000년 1억 명에 불과했던 아시아의 네티즌은 2008년 6억 명(전 세계 네티즌은 15억 명)으로 늘어났다. 중국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네티즌의 숫자가 한 달에 200만 명씩 증가했다.

글로벌 소비자 조사 회사인 리서치인터내셔널(Research International)은 2008년 9
10월 인터넷 세상의 차세대 주역인 아시아 네티즌을 심층 조사했다. 조사에는 한국, 호주, 중국,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등 6개국 네티즌 6000명(국가별 1000명)이 참가했다. 리서치인터내셔널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특징적 트렌드 6가지를 밝혀냈다.

1단계의 분리(1 degree of separation)
오프라인 시대에도 세상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1967년 스탠리 밀그램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실험으로, 전혀 모르는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려면 평균 5.5명을 거치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서 ‘(5.5를 반올림한) 6단계의 분리(6 degree of separation)’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세상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더 좁아졌다. 더욱이 5.5명의 연결고리는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하고나 직접 접촉할 수 있다. 지구상의 네티즌이 15억 명이므로, 1명의 네티즌이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산술적으로 15억 명에 이른다. 리서치인터내셔널은 이를 ‘1단계의 분리’라고 이름 붙였다.
 
아시아 네티즌들 역시 온라인상에서의 ‘관계’를 열심히 추구하고 있다. 리서치인터내셔널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네티즌의 85%는 최소 1개 이상의 소셜 네트워킹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의 메신저 목록에는 평균 75명의 지인이 등록돼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온라인 네트워킹이 기존의 오프라인 관계를 단지 온라인으로 옮겨온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사 대상 네티즌 중 3분의 1은 전혀 모르는 타인과도 온라인상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네티즌들이 온라인에서 지인의 폭을 넓혀가는 트렌드를 보여준다.
 
한편 한국의 네티즌들은 1주일에 6시간을 소셜 네트워킹에 사용하며, 자신의 블로그 작성에 3.6시간, 타인의 블로그 방문에 4.6시간을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그림1)

<클릭하시면 상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슈머리즘(prosumerism)
인터넷 도입 초기, 네티즌들은 온라인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단순히 소비하는 소비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러나 웹 2.0 시대의 네티즌들은 정보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개방된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정보를 생산·재생산하고 공유하며 확대해 나가는 경향을 갖는다. 네티즌들은 이제 더 이상 조용한 소비자(consumer)가 아니라, 제품·서비스를 평가하고 개선을 요구하거나 직접 만드는 프로슈머(prosumer=producer 또는 professional+consumer)로 자신의 역할을 바꿔 나가고 있다.
 
프로슈머리즘의 트렌드는 특히 아시아 네티즌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아시아 네티즌 중 58%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활발한 소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리서치인터내셔널의 전문가들은 다른 대륙에서는 네티즌의 응집도나 프로슈머적인 성격이 아시아보다 상대적으로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강한 프로슈머리즘은 기업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기업과 정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지만, 프로슈머들은 그런 메시지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견해와 감정을 형성하고 함께 공유한다. 따라서 앞으로 기업의 브랜드 관리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며, 정부 당국자들은 정책 입안 이전부터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인터넷이 소비자의 의견을 드러내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리서치인터내셔널이 2008년 12월 실시한 온라인 소비자 조사(서울 및 4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13
54세 남녀 2200명 대상)에 따르면, 제품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 중 71%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견 표출의 주요 채널은 개인적 네트워크였다. 특히 제조사 홈페이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14%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그림2)
 
이 조사는 또한 95%의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온라인 소비자 의견을 참조하고 온라인상의 부정적 정보를 접한 소비자의 59%가 구매를 꺼리며 여성이 주 타깃인 제품의 불만이 온라인에 많이 나타나고 30대 주부들이 부정적 인터넷 여론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온라인 여론을 만들어내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은 2030대 화이트칼라와 대학생이며, 이들이 나타낸 의견들 중 공감이 가는 내용들을 중고생들이 퍼 날라 온라인 의견을 확산시킨다. 이렇게 확산된 온라인 의견이 궁극적으로 30대 주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매체만을 이용(only online)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의 전통 매체들은 오랫동안 우리의 주요 정보원 역할을 해왔다. 인터넷이 이런 전통 매체의 자리를 조금씩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이번 연구에서도 같은 맥락의 결과가 나왔다. 한국 네티즌들은 1주일 동안 평균 5시간 정도 신문을 읽지만, 온라인에서 뉴스를 읽는 시간은 그보다 긴 8시간이었다. 또 한국의 20대 이하 연령층의 라디오 청취율은 40대 이상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재미있는 것은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의 전통적인 매체를 거의 이용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온라인 매체만을 이용하는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조사에 참가한 아시아 네티즌 중 전통적인 매체를 이용하는 데 1주일에 5시간 이하만을 쓰는 경우가 무려 17%나 됐다. 이들은 오로지 인터넷만으로 TV나 신문, 잡지를 보는 등 거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으로 소비한다.
 
이런 경향은 전통 매체에 대한 통제와 감독이 강한 중국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그림3) 연령별로는 30대 이하가 온라인만으로 매체를 소비하는 경향이 더욱 강했다. 이는 앞으로 온라인 매체 소비가 더욱 늘어날 것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네티즌이 온라인 매체에서 소비하는 콘텐츠가 전통 매체에서 제작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콘텐츠 측면에서 전통 매체의 영향력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 전통 매체의 공급 타이밍을 놓친 소비자들은 그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주문형으로(on demand) 소비한다.
 
이는 기업이 광고, 홍보 등 마케팅 전략에 주문형 콘텐츠를 좀더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주문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에는 인터넷TV(IPTV)와 손수제작물(UCC) 등이 있다. 기업은 주문형 콘텐츠의 앞뒤 또는 중간에 광고를 삽입하는 형태나, 간접광고(PPL) 활용 등 새로운 전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멀티태스킹(the art of multi-tasking)
리서치인터내셔널은 이번 조사를 통해 아시아 네티즌들이 점차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조사에서 아시아 네티즌들은 디지털 매체 이용에 1주일에 평균 140시간을 쓴다고 응답했다. 이를 하루 기준으로 환산하면 무려 20시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면 말이 된다. TV를 보면서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고, 블로깅을 하고, 메신저를 하며, e메일을 읽고 쓰는 정도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멀티태스킹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이유는 컴퓨터 설치 장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네티즌의 40%는 거실에 PC가 있다고 응답했고, 27%는 TV를 보면서 동시에 웹 서핑을 즐긴다고 답했다. 이런 네티즌의 행태는 기업에 2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네티즌은 멀티태스킹을 하는 동안 각 매체에 높은 수준으로 집중하기 어렵다. 따라서 광고의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TV 광고를 보는 경우와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TV 광고를 보는 것은 집중도의 차이가 매우 크다. 다시 말해 기업은 멀티태스킹 시대의 TV 광고 효율성은 상당히 낮아지며, 같은 광고비를 들이더라도 예전만큼의 광고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매체별 광고비 믹스와 집행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업은 멀티태스킹을 하는 소비자들의 행태 변화에 맞춰 총체적인 관점에서 마케팅 활동에 접근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TV와 인터넷을 동시에 이용하다가 관심을 끄는 제품 광고가 TV에서 나오면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그 제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다, 더 나아가 그 제품이 정말 마음에 들면 바로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TV 광고와 함께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제공 활동을 강화하고, 주문까지 접수할 수 있는 총체적 마케팅 접근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독립적 구매자(independent shopper)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네티즌의 95%는 인터넷으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제품을 구매하기에 앞서 인터넷 프로슈머들의 도움을 얻어 제품·브랜드에 대한 지식과 간접경험을 얻으면서 더 똑똑해지고 더 영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웹 2.0 시대의 소비자들은 이렇게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기업 등 정상적인 채널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소비자로 변해가고 있다.(그림4) 

이런 소비자들은 매장을 방문하기 전에 어떤 브랜드를 구매할 것인지 이미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앞으로 영업 사원들의 역할은 그만큼 줄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기업이 전달하는 제품 정보를 이전보다 훨씬 덜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 독립적인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믿음을 주고, 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말해준다.
 
이동 인터넷 시대(on the go)
아시아 네티즌의 43%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모바일 인터넷에 접속한 경험이 있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인터넷 접속이 쉬운 휴대전화 단말기의 시판은 앞으로 이동 인터넷 트렌드를 크게 강화할 전망이다.
 
흥미롭게도 모바일 인터넷 이용은 유선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의 구축 정도와 반비례 관계에 있다. 한국이나 호주처럼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발달한 국가에서는 모바일 인터넷 이용률이 매우 낮다. 반면 중국이나 인도처럼 국토 면적이 넓고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모바일 인터넷 이용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네티즌들은 잘 발달된 인터넷 인프라와 좁은 영토, PC방 문화의 확산 덕분에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할 필요가 거의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이 얼마나 확산될 것인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이 예쁘고 재미있는 기능을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그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기 안의 기능들을 사용하다가 모바일 인터넷 이용에 맛을 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즉 없었던 니즈가 갑작스러운 우연에 의해 생기고 이것이 문화가 되는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은 인간 행동과 문화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더 나아가 경제 및 기업 활동의 패러다임 변화도 가져온다. 소비자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기업의 경영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변화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그 저변의 흐름과 맥락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표피적인 대응이 아닌, 제대로 된 대안을 찾아 시장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인터넷과 그로 인한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근원적인 변화를 살펴 전통 매체를 통한 광고와 홍보 전략을 어떻게 수정해 나가야 할지 유통에서의 판매 접점을 어떻게 변경할지 독립적이며 냉정한 프로슈머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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