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女有別! 性호르몬이 쇼핑 키워드

32호 (2009년 5월 Issue 1)

2005년 미국의 신경과학자 폴 자크 교수(클레어먼트대 대학원)는 ‘옥시토신의 분비가 늘어나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말도 쉽게 믿는다’는 사실을 밝혀내 저명 과학저널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않은 채 컴퓨터 통신으로 ‘신뢰 게임(trust game)’을 하는 실험을 했는데,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실험이 시작되면, 피실험자들은 참여의 대가로 10달러씩 받고 커다란 전산실 내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게임은 두 사람씩 짝지어 진행되는데, 규칙은 간단하다. 한 사람이 파트너를 신뢰한다는 표시로 현금을 주면, 상대방은 그 금액의 3배를 받게 된다.
 
예컨대 서로 전혀 모르는 A와 B가 게임에 참여했다고 하자. A는 자신의 참가비 중 일부 혹은 전부를 B에게 줄 수 있다. 자신의 돈을 상대방에게 주면(일종의 투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규칙에 따라 상대방 B는 그 금액의 3배를 받게 된다. 결국 A가 주는 정도가 늘어나면 B의 이득도 덩달아 커진다. 다음에는 반대로 B가 A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입장이 된다. 물론 같은 방식으로 신뢰를 표현해야 한다. 자신에게 다시 얼마라도 돌려줄 것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없다면 상대에게 돈을 주지 않을 것이다. 신뢰 게임은 이처럼 서로 모르는 두 사람 간의 ‘신뢰’를 측정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다.
 
이렇듯 상대에 대한 상호 신뢰를 측정한 다음 혈액을 채취해봤다. 상대에게서 받은 신뢰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됐고, 더 많은 돈을 되돌려줬다. 심지어 주사기로 옥시토신을 주입하면 신뢰가 크게 늘어나고,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관장하는 편도체(amygdal)의 활동을 줄이는 효과까지 보였다.
 
자크 교수는 옥시토신이 안정감과 유대감 및 상대방에 대한 신뢰 등을 높인다고 지적하며, 서로 믿고 의지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옥시토신은 임신이나 출산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성호르몬이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보다 홈쇼핑 방송에 솔깃해 물건을 사는 횟수가 더 많으며, 임신이나 출산 직후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
 
그런데 이 연구 결과는 매우 위험한 함의까지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도서 전집이나 자동차를 팔아야 하는 외판원(혹은 영원사원)이라면,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동네에서 어떻게 영업 활동을 해야 할까? 자크 교수의 논문을 읽어봤다면 ‘이 아파트 단지에서 출산한 지 3년을 넘지 않았거나 임신한 전업주부가 살고 있는 집’을 골라 물건을 팔 것이다. 그러면 안주인이 내 말을 듣고 물건을 사줄 가능성이 5배 이상 높아진다(이제 영업도 경영학보다 신경과학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뿐이랴! 아예 옥시토신을 갖고 다니면서 뿌리면 어떨까? 아무 집이나 벨을 누른 후 주인이 나오면 코에다가 ‘액체 옥시토신’을 칙 뿌리고 영업을 하면, 심지어 남성들에게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마치 영화 ‘맨 인 블랙’에 등장한 기억을 지우는 ‘번쩍 장치’처럼 말이다). 아니면 ‘액체 옥시토신’을 백화점 매장에 화장실 방향제처럼 주기적으로 뿌려지도록 설치하면, 소비자들이 점원들 말을 쉽게 믿고 물건을 살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이런 황당한 소설 같은 가정을 실제로 적용한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른바 ‘anti-shyness(부끄럼 방지제)’라는 이름으로 ‘코에 뿌리는 액체 옥시토신’을 실제로 팔고 있다. 사회성을 높이고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를 줄여주는 옥시토신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이 액체 옥시토신은 중매회사에서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은 노총각, 노처녀들에게 종종 사용한다). 지금까지는 개인적 차원에서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하고 있지만, 앞으로 쇼핑을 촉진하기 위해 옥시토신을 사용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이런 행동을 규제할 법률도 아직 없을 것이다).
 
좀 무시무시한 사례까지 언급하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성호르몬을 지배하는 자가 취향과 구매 스타일이 다른 남녀에게 물건을 팔 수 있을 것이다. 옥시토신 외에도 여성성을 만드는 에스트로겐이나 남성성을 표상하는 테스토스테론의 특징을 잘 파악하면, 그들의 구매 스타일에 맞게 물건을 팔 수 있다.
 
예를 들면 여성이 남성보다 ‘선물’을 5배 정도 더 많이 구입한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말과 관련된 스포츠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성이다. 또 정리 정돈이나 주거 관련 제품의 소비자들도 대부분 여성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특별한 마케팅 전략을 마련한 회사는 생각보다 적다(기껏해야 여성지에 광고를 하는 정도다). 이런 제품들에 대해 여성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 행동 패턴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젊은 여성들은 최초로 구입한 자동차에 이름을 붙이는데, 그것은 자동차를 ‘차가운 기술의 산물’이 아닌 믿고 의지하고 싶은 파트너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남성은 자동차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 반해, 여성은 친구로 생각한다. 아마도 옥시토신과 테스토스테론의 작용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광고를 할 때 이런 점을 활용하면 남녀에 맞는 마케팅을 할 수 있다.
 
2008년 2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발칙한 실험 결과가 학계에 발표돼 화제가 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라이언 호웰 교수가 소비 패턴과 행복감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만을 위해 무엇을 살 때보다 가족이나 친구와 외식을 하거나 공연을 보는 등 즐거움을 나눌 때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의 경험을 나누는 데 돈을 쓴다면, 자신을 위해 쓸 때보다 더 행복을 느낀다는 얘기다. 바소프레신(자식을 지키고 둥지를 방어하려는 활동과 관계 깊은 호르몬) 분비가 강한 남성들이나,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대체로 옥시토신 분비가 활발한) 여성들이 이런 특징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에모리대 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는 최근 ‘도파민 중독’ 현상이 쇼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파민은 쾌락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로 새로움을 추구할 때 다량 분비되는데, 이것이 일부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작용하면 쇼핑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도파민은 원래 행복감과 관련이 깊은데, 이러한 행복 시스템이 오작동하면 쇼핑으로 보상받으려 한다는 뜻이다.
 
남녀의 쇼핑 패턴을 설명할 때 ‘호르몬’이 원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호르몬의 특징과 남녀 차이를 잘 이해한다면, 남녀가 각각 선호하는 제품들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따로 짤 수 있다. ‘고객 만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있는 회사라면, 그들이 만족시켜야 할 고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제대로 만족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1호 Data Privacy in Marketing 2021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