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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가치에 기초해 가격 책정하라

안상훈 | 30호 (2009년 4월 Issue 1)
회사의 경영 성과 개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신속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가격이다. 특히 가격이 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그 어떤 변수보다 심대하다. <그림1>은 경영의 핵심 변수별 이익 영향도를 분석한 결과다.
 
이 도표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격을 10% 인상할 경우 이익은 2배 증가한다. 둘째, 가격을 5% 할인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익 손실분을 만회하려면 판매량을 12.5% 늘리거나 고정비를 16.7% 절감해야 한다. 가격 결정의 미세한 변화가 시장점유율 확대나 원가 절감을 위해 기울인 피나는 노력들을 일거에 날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처럼 중요한 가격 의사결정을 지나치게 안이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종합 식품회사인 A사는 변화하는 고객의 식생활 패턴을 고려해 쌀을 활용한 신제품을 개발했다. 문제는 까다로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상당히 비싼 생산원가가 불가피했다. 기존 제품보다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A사는 관행대로 해당 원가에 요구 마진을 붙인 가격을 책정하고 제품을 출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예상과 달리 고객들은 신제품의 특장점에 큰 호응을 보이지 않았고, 가격이 불필요하게 비싸다는 인식만 가졌다. 매출은 투자비를 회수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미약했다.
 
대형 건설사인 B사의 사례는 정반대다. B사는 특정 신도시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강력한 브랜드의 경쟁사들이 이미 주요 택지를 선점해 난관에 처했다. 이에 B사는 경쟁사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도심 외곽의 특수 택지를 선택했다. 창의적 발상과 기법으로 용적률상 추가 인센티브를 확보하고, 친환경 개념의 새로운 아파트를 개발했다.
 
문제는 분양가 책정이었다. B사는 택지의 취약점과 브랜드의 경쟁력을 감안해 개발 원가에 적정 마진을 붙이되, 인근 경쟁 아파트보다는 파격적으로 낮은 분양가를 책정했다. 결과는 대단했다. 각종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전무후무한 청약율을 기록, 순식간에 분양을 끝낸 것이다. 하지만 대성공을 거두었음에도 B사 내부에서는 비판이 나왔다. 분양가를 너무 싸게 책정하는 바람에 상당한 잠재 이익을 놓쳐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이 2가지 사례는 해당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기업들이 수시로 반복하는 실수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오랜 경험, 원가 및 경쟁사 가격에 기초해 가격을 책정한다. 이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 손실 가능성 또한 상당하다. A사처럼 경쟁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관행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면 해당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한다. 설사 경쟁력을 확보한 B사라 해도 잠재 이익을 훼손할 우려에 처한다.

때문에 적정 가격을 도출해 기업의 경영 성과를 극대화하는 ‘가격 최적화(price optimization)’가 필요하다. 가격 최적화의 기본 개념과 접근 방식을 살펴보자.

첫째, 가격 최적화의 핵심은 고객 가치에 기초해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구매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두말할 나위 없이 고객이다. 고객이 특정 제품에 대해 인지하는 가치가 책정 가격보다 높은 경우에만 구매가 이뤄진다. 즉 특정 제품의 원가가 얼마인지, 경쟁 제품의 가격이 얼마인지는 고객의 구매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①유사 제품의 가격 차이 도요타의 코롤라와 제너럴모터스(GM)의 지오 프리즘은 기술적으로 동일한 차종이다. 원가 요소나 상품 경쟁력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코롤라는 북미 시장에서 지오 프리즘보다 18%나 높은 가격에 팔리는데도 2.5배 이상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②동질 제품의 가격 차이 최근 출시되고 있는 다양한 해양 심층수 제품 중 3개 브랜드는 동일 회사가 동일 해역에서 동일 설비로 취수 처리한 원수를 병입한 제품이다. 같은 제품이 3개의 다른 회사에 의해 3개의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0.5L짜리 제품의 가격은 각각 1220원, 1400원, 1500원이다. 무려 23%의 가격 차이가 존재한다.
 
③동일 제품의 가격 차이 330ml 용량의 코카콜라 캔은 신문 가판점, 자판기, 대형 마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판매되고 있다. 제품 및 브랜드까지 똑같은 제품임에도 유통 채널별 판매 가격차는 최대 3.4배다.
 
결론적으로, 구매는 제품의 고유한 값어치가 아니라 고객이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기업은 고객이 인지하는 효용(utility)과 지불 의향(willingness-to-pay)에 기초해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유의할 점은 지불 의향의 측정 대상을 적합 고객(right customer)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제품 및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고객을 넘어 비적합 고객까지 지불 의향 측정 대상에 포함하면 가격 책정에 심한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운송업체인 C사는 특정 노선에 대한 고객의 지불 의향을 측정한 결과, 해당 노선을 상시적으로 이용하는 고객군과 그렇지 않은 고객군 사이에 2배의 가격 민감도 차이가 있음을 알아냈다. 일상적으로 해왔던 것처럼 모든 고객의 지불 의향을 감안해 가격을 책정했다면 어땠을까. 상시 이용 고객의 높은 지불 의향을 수용하지 못해 잠재 이익을 포기하는 한편, 비이용 고객의 수요를 이끌어내지도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았을 것이다.

둘째, 가격 최적화를 위해서는 가격과 판매량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가격 반응 함수(price response function)를 규명해야 한다. 

해당 업종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마케터 혹은 영업사원들은 특정 제품의 적정 가격에 대해 예민한 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감에만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리면 다양한 위험이 뒤따를 수 있다. <그림2>는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가격 반응 함수의 형태다. 혁신 제품을 출시했을 때, 가격 탄력성에 변곡점이 존재하는 경우, 가격 문턱(price threshold)이 존재할 때 특히 담당자의 감이 실제 가격 반응 함수와 큰 차이를 보였다.
 
통신 사업자인 D사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 상품에 대한 마케팅 담당자의 기대 가격과 고객의 실질적 지불 의향 간에 2배 가까운 차이가 있음을 파악했다. 또 다른 통신 사업자 E사는 특정 상품의 요금 인하율이 30% 수준을 넘으면 할인에 따른 고객의 구매 의향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계적 반도체 회사인 F사는 특정 반도체의 가격을 2% 내렸을 때 수요가 58% 폭등하는 가격 문턱이 존재함을 알아냈다.
 
이 모든 현상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고객의 구매 행태와 여력이 급변하고, 다양한 혁신 제품과 효율적 대체재들이 속속 등장해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는 시장이라면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기업은 감이나 관행에 의지한 가격 결정에서 벗어나 계량적 방식으로 가격 반응 함수를 도출해야 한다.
 
가격 반응 함수를 도출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4가지다. 이 방법은 모두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여러 방법을 적절히 합하면 가격 반응 함수의 신뢰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①실제 시장 데이터 분석 과거 판매량과 가격 간의 상관관계를 회귀 분석 등으로 분석.
 
②산업 전문가 예측 다수 산업 전문가들의 전망치를 통계 분석해 시장의 가격 반응 예측.
 
③전문 고객 조사 컨조인트(conjoint) 분석처럼 고도화된 조사 방식으로 고객의 다차원적 지불 의향 분석. 컨조인트 분석은 소비자들이 특정 제품 브랜드, 기능, 가격 중 어떤 부문에 가장 관심을 갖는지를 알아내는 분석 기법.
 
④가격 실험 한정된 조건 혹은 지역 내에서 가격 변화 실험을 실시함으로써 가격 반응 확인.
 

셋째, 가격 반응 함수에 기초한 원가, 매출, 이익 시뮬레이션을 통해 해당 시점의 최적 가격(optimal price)을 도출해야 한다.

<
그림3>처럼 일단 가격-판매량 함수(가격 반응 함수)를 확보할 수 있다면, 가격 변화에 따른 매출(가격×판매량) 및 이익(매출-원가) 변화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특히 불황기에는 영업 현금 흐름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림에 표시된 이익 극대화 가격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기업이 원가 경쟁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가격 인하를 통한 경쟁사 고객 끌어오기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가 2000년대 초 경기 침체기에 항공 요금을 내리고 이를 적극 홍보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늘린 것이 좋은 예다.
 

사실 이런 시도는 현재에도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다. 2005년에 도입한 프리미엄 원두커피 라바짜를 ‘맥카페’라는 저가 브랜드로 재탄생시킨 맥도널드는 커피 매출이 전년 동기비 6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브랜드를 가렸을 때 고객이 자사 커피와 스타벅스 같은 고급 커피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을 재치 있게 홍보한 블라인드 테스트 광고도 좋았다. 이 광고는 가격 인하의 효과를 한층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황기에 가격을 무조건 내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저가형 필수 소비재나 고가 명품은 불황기에 가격을 올려도 별다른 매출 손실 없이 이익을 늘릴 수 있다. 산업재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 극심한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던 인도의 철강회사 타타스틸은 현물 시장(spot market)을 목표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브랜드화했다. 그리고 고객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해당 제품 가격을 비브랜드 제품보다 15%가량 높게 책정했다. 동시에 고객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적극 전개했다. 2, 3년 후 관련 매출은 80% 늘었다.
 
특정 제품의 가격을 제품의 가치 속성에 따라 차별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항공기 좌석처럼 여러 사양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면, 단순하게 같은 가격을 매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2가지다. 첫째, 제공 사양에 대한 고객 가치와 소요 원가를 정확히 측정해 가격을 정교하게 차별화해야 한다. 정교한 가격 차별화가 없을 때는 오히려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 또 가격 차별화를 우회적 가격 인하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에는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주요 기능을 없앤 동일 브랜드 제품을 낮은 가격에 내놓을 경우, 오리지널 브랜드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불황기 고객들은 ‘가격에 합당한 가치(value for money)’에 몹시 민감하다. 이때 기업은 제공 가치를 변화시키거나 가격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품 가치 변화에는 많은 위험이 따르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결국 가격을 전략적으로 최적화하는 것이 불황기 기업의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자사 제품 및 서비스의 가격을 과거 어떠한 방식으로 책정했는지, 책정한 가격이 과연 현 시점에서 적정한지, 계획 중인 가격 인상 및 인하 조치는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 검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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