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국은 저마다의 발전 경로를 거치면서 경제적 성과의 명암이 갈렸다. 이와 더불어 국가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위험’들을 키워왔다. 예를 들어 한국은 국가 주도의 수출전략을 통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정치적 민주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가경제가 몇몇 재벌에 의존해야 하는 위험도 수반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세계 여러 나라가 키워온 고유한 위험들은 ‘세계화’와 더불어 섞이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복합위험’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화는 경제와 문화뿐 아니라 위험까지 통합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위기는 이러한 복합위험 사회의 여러 징후 가운데 하나다.
금융자본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
오늘날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보이는 외국인에게 자본시장이 개방된 것은 불과 1992년의 일이다. 그 전까지 한국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비율은 약 3%에 불과했다. 시장이 개방되자 외국인 투자가 빠르게 유입돼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직전에는 한국 자본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율이 40%에 육박했다. 한국이 안고 있는 고유한 위험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미식 자본주의의 위험이 더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한국에 들어온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과 이를 떠받치는 담론도 함께 유입됐다. 글로벌 스탠더드, 기업지배구조, 정실자본주의, 사외이사, 투자은행, 펀드, 주주중심주의 같은 단어들은 그 전의 한국 사회에서 대중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이 위기를 맞이한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와 있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국가가 불필요하게 경제에 개입했고 그러다 보니 힘 있는 자에게 줄을 서야 보상을 받는 정실자본주의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시대적 관행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일정 부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문제가 많은 한국이 어떻게 지난 30년 동안 경제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무시됐다. 당시 위기 상황에서는 한국적 발전 경로에 수반되는 위험만이 일방적으로 강조됐다. 한국 모델의 장점 또는 영미식 모델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입된 영미식 모델의 위험들은 한국이 원래 안고 있던 고유의 위험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복합위험을 만들어 냈다.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 사회에 함께 유입된 자본주의 모델과 그 담론의 내용은 무엇인가.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성
과거 테일러리즘이나 포디즘 시대에는 일단 ‘생산을 위한 조직’을 전제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반면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가장 최근 형태인 금융자본주의는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며, 생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축적하기 위해 신용을 만들어낸다는 특징을 지닌다. 오늘날 미국에서 기업은 최우선적으로 금융 투자의 대상일 뿐이다. 미국의 젊은 자본가들에게 기업은 높은 차익만 가져다주면 언제든 매각할 수 있는 대상이다.
파생금융상품 등장으로 금융시장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졌다. 선진국 경제의 금융화가 진전되면서 ‘신용’은 더 이상 생산을 목적으로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니다. 이윤을 창출하고 축적하기 위해 끌어다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금융자본주의는 나름대로의 위험을 안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제활동의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할 생산이 등한시된다. 소득이 실물 분야보다 금융 분야에서 더 많이 창출되므로 실물 분야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이로 인해 실질임금의 정체 또는 하락과 소득양극화를 부채질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이후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격차가 하루가 다르게 벌어져 최근에는 둘 사이에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어졌다. 한마디로 열심히 일해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가상의 상품 거래를 통해 부풀려진 금융 위기가 주기적으로 현재화할 때 유일한 해법은 금융소득으로부터 혜택을 본 적이 거의 없는 대다수 납세자들의 세금을 쓰다는 문제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