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present’에는 ‘나타내다’ ‘전달하다’라는 뜻도 있다. 우리는 선물을 전할 때 상대에게 무엇을 나타내고 싶어 할까. 혹시 상대를 위한다는 마음보다 체면이나 권위를 보여 주려 하진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4년 전 기업은행 경인지역본부장으로 있던 시절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건물의 1층이 지점이었는데 ‘10억 원짜리 매니큐어’ 일화로 유명한 직원이 있었다. 평소 고객들에게 싹싹하기로 소문난 ○○지점 김 모 계장을 그날 찾아 온 고객은 칠순이 훨씬 넘은 할머니. 여느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는 수수한 옷차림이었는데, 김 계장의 눈에 띈 것은 할머니의 손톱에 칠해져 있는 빨간색 매니큐어였다. 지점 근처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한 할머니는 살갑게 대해 주는 김 계장이 손녀딸처럼 마냥 사랑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약도까지 그려가며 주변 편의시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까지 해주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날 저녁 할머니의 첫 거래 기념으로 김 계장이 준비한 선물은 1000원짜리 매니큐어 3개. 다음날 은행 창구를 다시 찾은 할머니에게 김 계장은 깜찍한 선물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단다. “할머니, 어제 퇴근하다가 할머니 생각이 나서요. 요즘 유행하는 색깔이래요. 이것도 발라 보시고, 요것도 칠해 보세요.” 그 다음날 그 고객은 다른 은행에 넣어둔 예금 10억 원을 김 계장에게 선물(?)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 가운데 선물은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이다. 상대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며, 나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 바로 선물이다. 그러나 선물을 잘못할 경우 들인 정성에 비해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Present(선물)’를 제대로 ‘present(전달)’ 할 수 있는 방법, 선물이 흉물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선물은 가격보다 관심과 정성에 비례한다
김 계장 사례에서 매니큐어 3개가 10억 원을 유치한 일등공신은 아니다. 김 계장의 선물에는 단돈 1000원으로 살 수 없는 특별한 ‘관심’과 ‘정성’이 있다. 우리가 선물을 정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할 1순위가 바로 ‘관심’과 ‘정성’이다. 보통 우리는 선물을 정할 때 가격과 실용성 등을 가장 먼저 따지거나 가격대에 맞춰 선물을 고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객의 성향이나 수준 등은 아예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비용 압박 때문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김 계장의 사례에서 보듯 무엇보다 선물은 관심과 정성의 표현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작은 것이라도 자주, 수시로, 여러 번 선물을 건네다 보면 고객과의 관계가 자연스러워진다. 선물은 곧 ‘I like you’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선물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라
외환위기 당시 필자는 분당지점장을 맡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렵던 그 시절에 필자는 의기소침해 있는 고객들을 위해 사랑의 묘약인 ‘비아그라’를 준비했다. 낯 뜨거운 선물이라 할 수도 있지만 당시 실의에 빠진 고객들에게 에너지와 활력을 주고 싶었다. 비아그라 절반씩을 청심환 캡슐에 담아 보기 좋게 포장한 뒤 이런 메시지도 덧붙였다. ‘당신의 힘찬 앞날을 위해 2분의 1을 준비했습니다. 나머지 2분의 1은 저희 기업은행에 힘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선물은 주로 기혼여성 고객들에게 전해졌다. 때에 따라서는 남성용을 여성, 여성용을 남성에게 전할 때 효과가 크다. 선물을 건네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가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아그라 선물을 받은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누구도 그 선물이 선정적이라 탓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간절했던 선물은 골프공도 고급 지갑도 아닌 바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응원은 고객을 춤추게 한다
응원의 선물을 보낸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한다. 2004년 자금난으로 폐업 위기에 몰린 경기도 화성에 있는 A사. 이 회사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1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는 영예를 누리는 등 지역 경제의 일등공신이었다. 전남 벌교 출신 사장은 고향 후배들과 함께 맨주먹으로 회사를 일으킨 불굴의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회사가 점점 기울더니 결국 조업 중단 사태까지 맞게 됐다. 큰형님 같은 이 회사 사장이 몸져눕자 근로자들의 사기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떨어졌다.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땐 몇몇 직원들만이 스산한 공장을 배회할 뿐 예전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고생들 많으시죠?” 생뚱맞게 들어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들을 향해 “자, 이리 와 한잔씩 합시다”하며 가져간 소주와 안줏거리를 풀어 놓았다.
소주라는 말에 귀가 번뜩 뜨인 듯 하나둘 눈빛이 빛나더니 어느새 조촐하게 차려진 테이블 주위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 잎새주네?” “그려? 우리 고향 소준디?” 내가 그들에게 내민 것은 그냥 소주가 아니라 그들의 푸근한 고향이었다. 고향을 떠나오며 다짐한 그 첫 마음처럼 지금의 위기가 그들을 집어삼키려 해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나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그날 밤 우린 다시 희망을 이야기했다. 회사를 나간 후배들을 다시 부르고 일어설 것을 다짐했다. 그날 그들과 함께 목청껏 부른 ‘아빠의 청춘’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고객과 소주 한 잔 나눌 기회가 생기면 그 상대의 고향 소주 브랜드를 반드시 알아두자. 당신과 고객의 거리가 훨씬 빨리 좁혀짐을 느낄 수 있다. A사는 그 이후 재기에 성공해 제2의 수출탑 영예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