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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 디자인 유토피아 꿈꾼다

이용규 | 23호 (2008년 12월 Issue 2)
공공의 공간은 인간의 필요와 욕망에 부응하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창조적인 도시 공간은 삶의 활력을 높여주고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문화와 예술이 자리 잡고 있다. 미적인 공간 질서와 쾌적한 생태 환경을 확보하고, 공간의 의미와 상징성을 형성하는 공간 디자인 활동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통이 살아있는 예술적 감성 공간
시대의 변화로 다양한 영역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관계성과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공공의 공간은 한층 더 의미 있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공공의 광장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만남과 체험, 창의성과 소통이 살아 숨 쉬며 예술적 감성 공간을 창출하는 공감각적 집결지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러한 공공의 공간은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서 더 나아가 도시 정체성을 표현할 뿐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시민 소통의 장이나 마케팅 요소로 활용된다.

수조 원의 경제적 효과 내는 밀레니엄 파크
미국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는 도시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해 성공을 거둔 공공 공간의 대표적인 사례다. 아트와 디자인, 하이테크와 스토리가 어우러져 시민들의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경험을 이끌어 내면서 새로운 공공 공간을 만들어냈다. 시카고는 이를 통해 도시 브랜드 마케팅에 성공했으며, 도시 발전에도 큰 성과를 거뒀다. 밀레니엄 파크는 연중 다양한 문화 행사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강력한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밀레니엄 파크의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동안 수조 원에 이르는 직간접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밀레니엄 파크에 들어선 ‘크라운 파운틴’은 스페인의 조각가 호메 플렌사가 만든 것으로, 두 개의 탑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각 탑의 전면에는 발광다이오드(LED)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13분마다 한 번 스크린 속 화면이 바뀐다. 화면에는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인종의 시카고 시민 1000명의 얼굴이 클로즈업돼 비춰진다. 스크린 속의 사람들은 입술을 모은 표정을 하고 있으며, 입에서는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나와 아래 연못에 떨어지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디자인, 공학, 마케팅 분야의 협동으로 이뤄진 통합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시카고 빈’이라고 불리는 밀레니엄 파크의 ‘클라우드 게이트’는 콩처럼 생긴 110t 무게의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품이다. 영국의 예술가 애니시 카푸어가 디자인한 것으로, 외벽이 모두 거울처럼 돼 있어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주변 환경과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이 다르게 비친다. 관람자들은 이러한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며 일상에서는 겪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한다. 두 작품 모두 첨단 소재와 디자인을 접목해 공적 공간을 예술적 감성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새로운 의미 부여로 소통 이끌어 내는 예술 공간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게이트 옆 도심 한복판에는 2711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무릎 높이부터 4.7m 높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바로 피터 아이젠먼이 설계한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다. 이름이나 날짜 등 어느 것도 기록돼 있지 않은 이 콘크리트 기둥은 사면으로 모두 진입이 가능해 지름길로도 활용되는 등 도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기둥 사이의 폭은 사람 1명이 지나갈 정도로 좁아 사람들이 이곳을 불안함과 엄숙함을 느끼고, 희생당한 유대인과 인간에 대한 의미를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감상자가 장소와 주변의 환경을 경험하고, 작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장소의 의미를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영국 런던의 템스강 남쪽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은 화력발전소가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스위스의 건축가 자크 헤르조크와 피에르 드 뫼롱은 미술 전시는커녕 내부로 들어가기도 힘든 건물에 예술적 요소를 결합해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높여 주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꿨다. 20년 동안 용도 폐기된 흉물스러운 공간이 개조돼 세계적인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건물은 낡음과 새로움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적·문화적 요소가 더해졌을 때 도시 경쟁력과 이미지가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간 중심의 문화 공간
예술을 통한 창의적 공간은 도시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높이며, 우리의 삶을 바꾼다. 인간 중심의 공공 공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 감성, 창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공공 디자인은 민관이 함께 삶의 질적 가치와 도시 전체의 가치 창출을 이끌어내는 인간 중심의 창조 산업인 것이다. 공공의 공간은 문화와 예술이 꿈꾸는 디자인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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