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대한민국 국민은 똑같은 기적을 체험했다. 월드컵 전사들이 일궈낸 4강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 폴란드전을 치를 때만 해도 누가 그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강력한 우승 후보 이탈리아와 맞붙었을 때는 모두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8강을 넘어 4강에 이르면서 온 국민은 전율했다.
그 놀라운 기적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히딩크라는 명장의 뛰어난 전술과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 전 국민의 열화와 같은 에너지가 한데 어울러져 빚어낸 멋진 작품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같은 실력을 갖고 있는 팀이라 하더라도 한번 이겨본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해 여름 필자는 강호 이탈리아를 맞아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가는 피나는 접전 끝에 끝내 승리를 거머쥐는 우리 월드컵 전사들을 보며 무릎을 탁 쳤다. ‘아하! 이제 우리 월드컵 축구팀에게도 이기는 습관이 붙었구나!’
‘지는 습관’ 속에 머물지 마라
십수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조직과 팀을 진두지휘해 오면서 필자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성취와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큰 단초가 바로 이런 ‘이기는 습관’임을 절감해 왔다. 마케팅 수장으로, 유통 사령관으로, 기업의 경영자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지휘해오면서 일도 인생도 비즈니스도 습관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기는 습관과 이기는 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에서조차 끝장을 본다. 현재에 붙들려 있거나 자신의 꿈을 방목한 채 적당히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나왔다. 그 분들의 레퍼토리는 “그런 일을 왜 하려 하느냐?”,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렇게 해도 안 될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라는 조직에서 마케팅 수장으로 있었을 때나, 또 유통 사령관으로서 침체돼 있는 판매조직을 설득해야 했을 때나 많은 사람들이 그 같은 핑계와 습성에 젖어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때마다 필자는 그들을 설득하고 동행시키고 보여주고 같이 뛰어서 ‘성공’을 움켜쥐게 했다. 그 때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해결방법은 너무도 간단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해내려는 마음’, ‘할 수 있다는 마음’, ‘이기는 습관’을 심어준 것뿐이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든 그 해결 과정은 다 똑같았다. 인생의 향방은 아주 단순한 갈림길에서 갈라진다. 즉 어떤 카드를 선택하느냐는 것이다. 일단 그 카드를 뽑아들기만 하면 그 길을 향한 전략과 전술, 지독한 프로세스와 집요한 열정이 스스로 동반자가 되어 길을 밝혀준다.
화려한 구호부터 없애라
오늘날 시장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사상초유의 경쟁현장이다.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승자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막강한 재력이나 인적 파워를 갖춘 기업조차도 내일의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경쟁시장이다. 그러니 ‘어제처럼 사는 데 안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승자의 손을 들어주는 심판인 ‘고객’의 눈과 발은 너무나 빠르고 예리하다. 과거 전문가들의 고유영역이라 불렸던 곳까지도 이미 간파해내고 쭉정이들을 골라낸다. 부정적인 비유지만, ‘고객’이라는 ‘병원균’의 능력이 막강한 슈퍼파워를 소유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니 조직이 조금이라도 허술하고 방만하거나,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그 틈새는 금세 벌어져 상처가 생기고 곧 조직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필자는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주로 전략 마케팅 부서에서만 일해 왔다. 그러던 어느날 전국 5개 권역 가운데 한 지역의 유통을 책임지는 사령탑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 조직은 전국 최하위의 매출 실적과 고객 만족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누구 하나 꼴찌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꼴찌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만성적인 불감증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꼴찌해도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좀 가만히 두지 왜 이렇게 야단인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적당주의와 현실에 타협하는 ‘지는 습관’에 모두들 익숙해 있는 것 같았다. 지점장들은 현장으로 향해서 돌진하기 보다는 슬로건 밑에 숨어서 전혀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구호가 많으면 실행이 어려워지고 반대로 실행이 강하면 숫자가 강해지는 법인데도 말이다.
“금월 기네스 매출 120억 필달(必達)…” “유통망 구축 3점 완료” 등의 슬로건으로 지점장 자리가 가득 찼다.
지점의 120억 원 매출 목표가 현장의 김 대리에게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박 과장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인가. 지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각 지점은 구호에 불과한 현수막을 전부 걷어 내시오. 전산 시스템에 개인별 주차별 목표 달성 계획을 구체적으로 쪼개서 입력하고 이를 실천하시오.”
반대가 이만 저만 아니었다. 영업하는 조직에서 현수막과 슬로건이 없다면 무슨 파이팅이 되냐면서 웅성 거렸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구호나 슬로건을 없애야 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으나 지점장들은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리더가 전문성을 가지면 가질수록 일하는 체하는 분위기만 잡는 것과 실제 일을 실행해 가는 것과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성과가 좋지 않은 조직의 특징 중 하나는 톱 리더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공연한 구호나 슬로건으로 자신과 그 조직의 현상을 숨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