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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Trend in Japan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재봉틀, 비결은?

정희선 | 371호 (2023년 0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때는 잘나가던 제품이 사라지는 경우는 흔하게 발견된다. 재봉틀 시장 역시 축소 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 침체기에도 히트 상품을 내놓는 기업은 성장기에 히트 상품을 내놓는 기업보다 더 많은 전략적 시사점을 전한다. 일본의 재봉틀 회사인 ‘악스 야마자키’가 바로 그런 사례다. 이 회사의 수장은 고객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으면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해묵은 고정관념을 깨고, 제품을 사지 않는 각종 불만과 변명거리를 제거하고, 뾰족하게 타깃을 선정해 적중률을 높였다. 그리고 고객이 필요 없다고 느끼는 제품, 굳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 제품을 사게 만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때는 잘나가던 제품이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경제 성장이 한창이던 1960~1970년대 일본에는 집마다 재봉틀이 한 대씩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봉틀이 있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자연스럽게 ‘재봉틀 만드는 회사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실제로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재봉틀 시장은 축소 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히트 상품을 연발하는 재봉틀 회사가 있다. 오사카에 위치한 재봉틀 제조사 ‘악스 야마자키(AXE YAMAZAKI)’다. 이 회사의 스토리를 보면 수요가 침체된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상품 개발의 힌트를 엿볼 수 있다.


팔리지 않는 재봉틀

일본 국내 가정용 재봉틀의 생산량은 1995년부터 2019년까지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현재 연간 약 50만 대에 그치고 있다. 악스 야마자키는 1946년 설립된 종업원 18명의 재봉틀 제조 업체다. 1990년대까지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매출을 늘려왔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OEM 주문 업체가 문을 닫는 등 재봉틀 시장 자체가 하향세를 보이자 악스 야마자키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창업주의 아들이자 현재 대표이사인 야마자키는 다른 기업에 취직해서 일하다가 아버지의 부탁으로 2005년 악스 야마자키에 합류했다. 야마자키 대표가 입사할 당시 회사가 ‘벼랑 끝에 서 있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경영 실적은 악화된 상황이었다.

야마자키 대표는 OEM 방식으로는 생존이 불투명하다고 판단, OEM 생산을 관두고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신규 고객을 개척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요가 위축되는 분위기에서 공격적인 제품 개발은 쉽지 않았고, 악스 야마자키 역시 기존 재봉틀의 기능을 조금 바꾸거나 추가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쳤다. 당연히 제품 차별화에 실패했고, 어떻게든 싸게 팔아보겠다며 가격 경쟁을 시작했다.

야마자키 대표는 닛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를 포함한 전 직원이 영업 일선에 뛰어들었기에 매출이 조금 반등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익률은 떨어지고, 이대로 가다가는 회사가 가난해질 것이 뻔히 보였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직접 영업을 발로 뛰다 보니 재봉틀 수요 자체가 사라지는데 소비자가 작은 메이커 브랜드를 일부러 찾을 리 없다는 게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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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에 대한 해묵은 고정관념을 깨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주변의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재봉틀 사용에 관한 감상을 직접 듣기도 하고 재봉틀을 사용하지 않는 고객들까지 모아 재봉틀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야마자키 대표가 깨달은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재봉틀은 다루기 어렵다’고 느낀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처음 재봉틀을 사용한 순간, 즉 기계 조작이 너무 어려워 서툴렀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야마자키 대표는 이렇게 어린 시절 기억에 각인되는 이미지를 바꿔야만 ‘재봉틀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없어지고 어른이 돼도 재봉틀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유년의 경험을 바꾸자는 데서 착안한 제품 아이디어가 바로 ‘어린이용 재봉틀’이다. 회사는 곧바로 종래의 재봉틀에 기능을 조금 더하는 방식의 제품 개발을 전부 그만두고 어린이용 재봉틀을 개발하기로 했다. 형태와 기능 등 모든 것이 백지상태인 채 오로지 ‘아이도 사용하기 쉬운 재봉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 하나로 신제품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일단은 기존의 재봉틀 기능을 단순화해 어린이용 재봉틀이란 이름을 붙인 뒤 판매를 개시했다. 하지만 기존 재봉틀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만든 어린이용 재봉틀은 여전히 사용하기 쉽지 않았다. 시장 반응과 매출 역시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상품 개발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천을 열로 압착시키면 어떨까?’ ‘지퍼를 달아보면 어떨까?’ 등등 조작을 더 쉽게 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을 시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용하기 어렵거나 본래의 재봉틀이 가진 기능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시행착오가 이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꿰매기 쉬운 털실을 사용하면 어떨까?’란 새로운 제안이 나왔다. 털실을 재봉틀에 걸고 스위치만 켜면 천을 꿰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를 위해 5개의 특수 바늘을 활용해 털실로 천과 천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하고 어린이들이 리본, 주머니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바늘은 보호대로 에워싸 어린이가 손가락을 다칠 위험을 없앴으며 제품 디자인에도 변화를 줘서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야마자키 대표는 시제품을 만든 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초등학생 아이들을 모아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서로 재봉틀을 차지하겠다고 울면서 싸우는 광경이 연출됐다. 야마자키 대표는 싸움을 말리면서도 이 재봉틀은 팔릴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에 회사는 2015년, 어린이용 재봉틀에 ‘털실 미싱 허그(毛糸ミシンHugハグ)’란 상품명을 붙여 7980엔(약 8만 원)에 판매를 시작했다. 자사의 온라인 사이트나 가전 양판점, 완구 매장 등을 중심으로 유통을 개시했고 2달 만에 2만 대 이상을 팔았다.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히트 상품이 나온 것이다. 회사에는 발주나 재고를 문의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직원들은 대응에 분주해졌다. 연간 1만 대를 팔면 히트 상품 대열에 끼워주는 재봉틀 업계에서 이례적으로 어린이용 털실 재봉틀은 누적 13만 대를 판매하며 명실상부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고 싶지만…’
소비자의 변명 거리를 없애다

상품 개발의 첫 번째 단계는 고객이 안고 있는 과제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야마자키 대표는 고객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말할 때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정이나 어투를 관찰하면 고객이 어느 정도로 그 과제를 심각하게 느끼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소비자 니즈를 조사하는 방법으로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설문 조사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소비자 개개인의 뉘앙스를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세세한 감정까지도 읽고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면 대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야마자키 대표는 어린이용 재봉틀이 히트 상품 반열에 오른 뒤에도 재봉틀 이용자뿐 아니라 비이용자를 포함한 다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히트 상품의 단초를 제공했다. 어린이용 재봉틀 체험장에서 아이가 휴지 케이스를 즐겁게 만드는 모습을 보며 옆에 있던 엄마가 무심코 “나도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아이의 엄마들에게 일반 재봉틀을 사용하면 되지 않냐고 묻자 “재봉틀은 어렵고, 번거롭고, 집에 두는 것도 인테리어에 방해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전에도 재봉틀을 사용하지 않는 부모들로부터 재봉틀을 사용하고 싶지만 이를 주저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야마자키 대표는 이렇게 ‘사용하고 싶지만’ 이후에 열거하는 각종 변명 거리를 없애야 부모도 아이에게 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본인의 재봉틀을 구입할 것이라 생각해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이렇게 탄생한 상품이 ‘육아에 딱 좋은 재봉틀 (子育てにちょうどいいミシン)’이다.

먼저,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급자를 위한 기능은 과감히 없애고 설정과 조작을 간소화했다. 그리고 재봉틀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읽으면 동영상으로 사용법을 가르쳐줘 초보자도 따라 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번거롭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품을 가볍고 작게 만들어 수납장에 넣었다 꺼내는 게 수월하도록 했다. 일반적인 재봉틀의 무게가 4㎏에 달하는데 이를 2.1㎏로 절반가량 덜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테리어에 방해가 된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랙을 기본으로 시크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여 거실에 놓아도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부모들이 재봉틀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거론하던 문제들을 해결한 신제품은 2020년 3월 발매 후 1년간 5만 대가 팔렸다.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도 10만 대가 넘는다. 디자인 또한 우수성을 인정받아 일본디자인진흥회가 주최하는 굿디자인을 포함해 세 군데에서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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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하게 타깃해 적중률을 높이다


이렇게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타깃을 뾰족하게 좁히면서 타깃이 느끼는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간 결과 회사의 제품은 연이어 히트를 쳤다. 어린이와 부모에 이은 다음 타깃은 고령자였다. 2021년 출시한 ‘손자 손녀를 위한 나만의 재봉틀(孫につくる、わたしにやさしいミシン)’이 바로 고령자 타깃 제품이다. 고령 여성의 경우 아이들의 부모 세대 여성들과도 또 달랐다. 대다수는 옷을 만들어 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재봉틀 사용에 어려움이나 번거로움을 호소하지는 않았지만 시력 저하나 기력 감소 같은 신체적 이유로 인해 재봉틀 사용을 그만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야마자키 대표는 이번에도 고령자 시설을 방문해 대면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고령자가 느끼는 불편을 해소해 나갔다. 가령, 이들이 몸을 굽히고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재봉틀의 본체를 움직여 바늘구멍을 쉽게 찾고 실을 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아울러 사용 속도를 일반 재봉틀의 절반까지 줄이고, 손잡이나 버튼을 크게 만들어 작은 힘으로도 조작할 수 있게 만드는 등 다양한 장치를 넣었다.

고령자에 이은 타깃 고객군은 남성이었다. 중년 남성 중에는 가죽으로 지갑이나 키홀더 등을 만드는 가죽 크래프트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들을 위한 제품은 시중에 없었다. 회사는 이들을 위해 재봉틀의 바늘을 개량해 일반 재봉틀보다 2배 이상의 힘을 내고 가죽이나 데님 등 두꺼운 원단도 재봉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제품은 남성 취향을 겨냥해 중후한 느낌의 앤틱한 디자인으로 레트로한 느낌을 냈다. 2023년 2월 제품 출시 이후 예약이 쇄도해 수령까지 수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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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는 법

사양산업이라 불리는 재봉틀 산업에서 팔리는 제품을 계속해서 만든 악스 야마자키의 놀라운 적중률은 사양산업에 속한 제조사, 경기 침체의 시기에 신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특히 고객이 처음에 필요 없다고 느낀 제품, 굳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 제품도 얼마든지 구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첫째, 악스 야마자키는 타깃 고객을 뾰족하게 설정했다. 소비자들의 니즈는 점점 다양해지고 세분화되고 있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제품도 흔해진 요즘 같은 시대에 고객군을 좁고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에 회사는 시장을 넓혀 대중에게 어필하기보다는 범위가 좁더라도 확실한 매출을 거둘 수 있는 고객군을 설정해 이들이 원하는 제품을 출시했다.

둘째, 한정된 고객의 니즈를 이해하기 위해 고객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가급적 현장에서 들었다. 이는 고객이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 깊숙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악스 야마자키는 소비자들의 사소한 의견까지 반영해 제품을 변형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타깃 고객에게 맞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마지막으로, 악스 야마자키는 ‘사회성, 독자성, 경제성’이란 세 기준에 입각해 제품화 여부를 결정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회성’이었다. 회사가 정의한 ‘사회성’이란 ‘고객의 과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제품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을, ‘독자성’이란 ‘기업이 가진 독자적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경제성’이란 ‘최종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을 뜻한다. 많은 기업이 사회성보다는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두곤 한다. 하지만 고객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들지 못하면 고유의 기술을 활용해 물건을 만들어봤자 구매로 연결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이익도 얻을 수 없다.

야마자키 대표는 반드시 사회성을 먼저 만족시키고, 그다음 독자성과 경제성을 순차적으로 만족시켜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테레비도쿄(TV Tokyo)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재봉틀이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며 “이를 위해 타깃을 뾰족하게 좁히고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축소되는 시장에서는 새로운 고객층을 개척하거나 새로운 사용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악스 야마자키가 ‘일본의 모든 가정이 재봉틀을 한 대씩 가진 시대를 여는’ 비전을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고 있듯이 고객의 소리에 집중한다면 기존에 없던 제품, 기존에 필요를 못 느끼던 제품을 사게 만드는 마법 같은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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