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어라

19호 (2008년 10월 Issue 2)

왕으로 모셔야 하는 고객에게 공짜로 일을 시킬 수 있을까. 그것도 소위 ‘노가다’ 급의 단순작업을 말이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단순업무가 있을 때 대행사나 ‘알바생’(아르바이트생)이 아닌 고객에게 이 일을 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A 사원은 ‘K 이미지’라는 사진 판매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A 사원이 맡은 일은 ‘성공’ ‘친구’ 등과 같이 사진을 설명하는 몇 개의 레이블을 다는 것인데, 매일매일 처리해야 하는 사진만도 수백 장에 달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A 사원은 지쳐가고 회사에 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일은 단조롭고 의미가 없었다. K 이미지의 B 사장 역시 입장이 난처하다. 명문 대학을 졸업한 A 사원과 같은 인재들이 하루 종일 단순 작업에 치이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 업무를 아르바이트생으로 대체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A 사원에게 지불되는 임금과 커리어를 생각해 봐도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똑같은 문제가 구글에서 발생했다. 구글은 좀 더 정확한 ‘이미지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미지에 레이블을 붙이기로 했다. 앞에서 말한 K 이미지사가 하고 있는 업무와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인 것은 작업해야 할 사진의 개수가 수백 배로 많다는 점과 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몇 명의 직원을 투입해야 이 작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구글은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을 도입해 이를 해결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게임, 즉 ‘구글 이미지 레이블러(Google Image Labeler, www.image.google.com/imagelabeler)’가 그것이다. 이 컴퓨터 게임은 인터넷을 통해 두 명의 게임 플레이어를 임의로 매치하고 1분 30초 동안 제공된 사진의 설명을 입력하게 한다. 두 사람이 동일한 단어를 입력하면 점수를 따는 방식으로, 랭킹 관리를 통해 고득점 플레이어의 리스트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런 단순한 룰의 게임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놀랍게도 2006년 7월 기준으로 7만 5000명의 플레이어가 참여했으며, 15억 개의 레이블이 입력됐다. 이를 통해 구글의 이미지 검색 서비스가 개선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과 놀이, 그 다른 세계
일’은 생산적이다. 전통적으로 일은 결과를 산출하는 행위를 뜻하며, 생계 유지나 의무와 같은 수식어를 동반하기 때문에 일을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일은 지루하고 짜증나지만 삶을 영위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로 인식되며, K 이미지의 A 사원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반면에 ‘놀이’는 그 자체로 존재해 온 행동양식이며 흥미와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이나 의무감을 갖지 않고도 즐겁게 수행된다. 그러나 놀이라는 행위의 결과가 생산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유희로서의 놀이는 놀이일 뿐 일과의 경계가 명확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놀이 자체가 일로 바뀌는 경우도 존재한다. 전문적인 가수나 댄서 및 운동선수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프로 게이머에 이르기까지 놀이를 직업으로, 즉 일로 치환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개인들에게도 놀이는 일이며 의무가 될 수 있다. 

멋진 신세계
<표1>의 ‘일과 놀이 매트릭스’에서 보듯진정 우리 의식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현상은 구글 이미지 레이블러가 달성한 ‘일이 놀이가 되는 경우’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K 이미지와 같이 ‘일’을 ‘일’로 파악할 경우 기업은 엄청난 재무적 부담을 지게 되고, 직원들 역시 매일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반복되는 지루한 업무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글은 ‘일’을 ‘놀이’로 대체했다. 적절한 메커니즘을 도입함으로써 참여자들은 ‘일’이 아닌 컴퓨터 게임, 즉 놀이를 즐기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구글은 엄청난 재무 비용을 절감하고 단 시간 내에 검색 품질을 개선할 수 있었다. 즉 사람들은 놀고, 기업은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얼마나 이상적인 신세계인가.
 
일을 놀이로 대체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새로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소위 웹2.0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자 및 사용자의 ‘참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소비자 참여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에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재미’라는 점이다. 이 순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신나게 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일’을 하고 있는 수많은 유저를 생각해 보라. 해외 콘텐츠를 번역하고, 자막을 달고, 지식을 추가하고, 평론을 하는 많은 사람이 그 끝도 없는 일을 맘껏 즐기고 있다. 세계인의 백과사전이 된 위키피디아도 그들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위키피디아 열성 사용자의 참여 동기도 바로 “재미가 있어서”였다.
 
일을 놀이로 만드는 순간 당신은 ‘재미’를 추구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당신을 위한 잠재 노동자로 돌변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미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폴드잇(FoldIt, www.fold.it)의 경우 단백질 분자 구조를 찾는 ‘일’을 모양 맞추기 게임으로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치료나 연구 목적의 단백질 구조 규명을 위한 작업이 일반적인 유저들에게 게임으로 플레이되면서 그 결과가 자연스레 연구 성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놀이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적절한 수단이 되어 왔고, 기술 발전과 더불어 놀이 영역은 점차 풍성해지고 있다. 이제 당신이 상상력을 발휘할 차례다. 어떤 놀이 요소를 도입해 고객에게 일을 공짜로 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보라. 전 세계의 숙련된 노동력이 당신을 위해 공짜 노동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쉽게 참여시키고 몰입하게 만들려면 이것을 기억하라. 참여 동기와 적절한 보상을 제공할 것, 이것은 바로 놀이를 통한 ‘재미’에서 파생한다는 사실을.
동아비즈니스리뷰 292호 Hyper-personalization 2020년 3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