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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사회학

한국인 명품 소비 1위, 왜?
출산율·MZ·부동산에서 힌트를

김수경 | 363호 (2023년 0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명품 열풍을 이해하기 위해선 욕망과 경제력에 관한 한국 사회의 변천사를 이해해야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 사회의 경제력은 크게 높아졌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며 사람들이 해외 명품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주머니가 넉넉해지고 소비의 기회가 넓어지자 그간 억눌렸던 소비에 대한 열망이 폭발한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 경제가 어려운 때를 맞아 소비가 금기시되기도 했지만 이후 경제 회복 과정에서 소비가 장려됐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명품 시장은 회복됐다. 최근 2030세대가 중심이 되는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저출산과 미혼 또는 비혼 등으로 본인을 위한 소비가 늘어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현재를 더욱 즐기자는 기조 역시 명품 소비를 더욱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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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건대 아이가 몇 해 전 서울 시내 한 사립초등학교에 덜컥 당첨됐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재력이었다. ‘워킹맘의 빈자리를 더 잘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립초를 선택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아이도 나도 괜히 기가 죽을까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입학식에 나타난 대부분의 어머니들 손에는 1000만 원쯤 한다는 에르메스 백과 샤넬 백이 들려 있었다. 명품은 본래 구별되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적어도 그 공간에서 제일 구별되는 것은 명품 백을 들지 않은 나인 듯 보였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유별나다. 올해 초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인은 지난해 명품에 1인당 평균 325달러(약 40만 원)를 썼다. 미국은 280달러, 중국은 55달러라고 하니 G2를 이긴 셈이다. 총액으로 따지면 2022년 한국인은 무려 168억 달러(20조 원)어치 명품을 구매했고 이는 2021년에 비해 24%나 증가한 수치다. 프라다는 2022년 중국 매출이 7% 이상 줄었지만 한국에서의 매출 호조로 손실을 대부분 만회했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감염병도 이겨냈다. 시장 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명품 매출(125억420만 달러)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125억1730만 달러)에 비해 거의 줄지 않았다. 같은 기간 전 세계 명품 매출이 19%나 감소한 것에 비하면 미동도 없는 셈이다. 몽클레르(Moncler)의 경우 2022년 한국 매출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카르티에(Cartier), 피아제(Piaget) 등을 소유한 리슈몽(Richemont)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매출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한 거의 유일한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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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은 3대 명품으로 알려진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의 최근 한국 매출을 나타낸다. 먼저 루이뷔통은 2021년 한국에서 1조468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40% 급증한 수치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7864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2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2021년 샤넬은 1조2238억 원(전년 대비 32% 증가), 에르메스는 5275억 원(26% 증가)의 매출을 올렸다. 3사의 매출을 다 합치면 무려 3조2193억 원이나 된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왜 한국인은 유독 명품을 사랑할까. 과시욕이 강해서? 허영이 심해서? 명품 사랑을 단순히 국민성에 기대어 설명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한국인의 유전자에 유달리 허영의 기운이 강하게 흐를 리도 만무하다. 더구나 명품을 단순히 사치로 매도하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명품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가 아니다. 즉, 명품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 한 사회에선 명품이지만 다른 사회에선 명품이 아닐 수도 있다. 결국 명품 소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이해해야 한다.

명품의 시작은 유럽의 왕실이었다. 에르메스는 본래 유럽 왕실에 마차 용구와 장식을 공급하는 마구상으로 출발했고(그래서 지금도 에르메스의 로고는 말, 마차, 마부로 구성돼 있다) 쇼메는 나폴레옹 황제의 결혼 예물을 만들어 유명해졌다. 19세기 중반 파리에 상점을 연 명품 브랜드들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외제니(Euge′nie de Montijo) 황후의 후원을 등에 업고 성장했다. 마치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르네상스 미술이 꽃피운 것처럼 말이다. 외제니 황후는 하루 세 번씩 옷을 갈아입을 만큼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을 만큼 사치가 심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롤모델이었다고 하니 그녀의 사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외제니 황후에게 필요한 트렁크를 제작하다 눈에 띄어 성장한 브랜드가 바로 루이뷔통이다.

그렇다면 200년 전 외제니 황후가 쓰던 루이뷔통 가방이 어쩌다 오늘날 한국에서 3초에 한 번씩 눈에 띌 만큼 흔하다는 ‘3초백’이 된 것일까? (3초백은 루이뷔통 모노그램 스피디백의 별명이기도 하다) 한국 명품 시장의 성장은 세계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높은 관세 장벽을 통해 해외 물품의 수입을 엄격히 제한했다. 명품은커녕 해외 물건 자체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미제 땅콩버터조차 구하기 어렵던 시절이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사정은 달라졌다. 의류 및 신발의 수입에 대한 관세가 대폭 완화되고 해외 브랜드들이 대거 한국에 진출했다. 1984년 루이뷔통이 처음으로 롯데면세점에 들어왔고, 1991년에는 한국 지사인 루이뷔통코리아가 출범했다.

억눌렸던 욕망이 봉인 해제되면서 마치 명품을 몰랐던 지난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명품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1990년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이 개장한 것은 명품 소비의 분수령이 됐다. 갤러리아 명품관에 각종 해외 명품 브랜드 입점을 시작으로 압구정동 주변엔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차례로 들어섰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강남 부유층의 쇼핑 아지트가 됐고, 해외 명품을 즐기고 고급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오렌지족’의 성지로 떠올랐다. 시인 유하는 압구정동을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한국의 명품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킨 또 하나의 촉매제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였다. 지금은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순수한 여행 목적의 출국에는 여권이 아예 발급되지 않았다. 출장, 유학, 취업 등 특별한 목적이 있는 사람만 출국이 가능했다. 그러나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적으로 자유화되면서 바로 그해 출국자 수가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시기 한국인들은 파리, 밀라노 등 패션 산업의 메카를 직접 방문하고 명품의 세계에 눈을 떴다.

그러나 무엇보다 명품이 잘 팔리려면 소비자의 구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급격히 증가한 호황기였다. (그림 2) 198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870달러에 불과했으나 1994년 1만 달러를 돌파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까지 1인당 국민총소득의 증가율은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도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전년 대비 28%나 증가했다. 다시 말해,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의 명품 열풍은 욕망과 경제력의 협업이 이뤄낸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1997년 말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는 순식간에 명품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는 국가를 다시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개인이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국가의 채무를 대신 갚아주겠다며 집에 있던 금붙이를 모조리 국가에 헌납까지 했다. 개인의 소비 행위는 철저히 ‘애국’의 관점에서 판단됐고 당연히 과소비는 죄악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경기 부양과 소비 진작을 위해 카드 발행을 남발하면서 명품 시장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0년 1000만 장이던 카드 발급 수는 2002년에 무려 1억 장을 넘어섰다. 신용카드 사용액은 1998년 63조 원에서 2002년에는 622조 원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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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문구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한 카드회사의 광고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지금은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지만 절약과 검소, 절제와 겸양을 미덕으로 여기던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상을 생각하면 노골적으로 “부자가 되라”는 외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부자가 되라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건 ‘이제 마음껏 욕망하고 마음껏 소비해도 괜찮다’고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건네는 인사말이었다.

무분별한 카드 발행은 곧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해내며 이른바 카드 대란으로 이어졌다. 2000년 말 80만 명이던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는 2002년 말 149만 명까지 증가했다. IMF 금융위기와 카드 대란을 겪으며 명품 소비의 대중화를 견인하던 중산층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결과적으론 상류층의 구매력이 더욱 증대했다. 명품 시장이 잠시 조정 국면을 겪었지만 다시금 활성화될 수 있었던 건 누군가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비정한 속성을 학습하게 함으로써 욕망에 더욱 솔직해지게 만들었다. ‘존재’를 지켜주는 것은 결국 ‘돈’이라는 걸 뼈저리게 학습한 가혹한 시절이었다.

이쯤 되면 한국인이 명품에 열광하게 된 것이 단지 허영으로 설명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허영은 인류 보편의 감정이자 욕구이다. 한 사회의 명품 수요와 공급의 폭발을 허영에 기대어 설명한다면 왜 다른 사회와는 구별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명품에 대한 일반론적 설명은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말하는 ‘과시적 소비’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말 급속한 산업화로 신흥 부호들이 등장하던 시기, 과시적 소비는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상위 계급의 징표로 작용했다. 이들에겐 물건값이 터무니없이 비쌀수록 계급을 드러내기에는 더 좋았다. 스스로를 서민들과 구별하고픈 상류층의 욕구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구별 짓기(distinction)’ 개념을 통해서도 잘 설명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화적 취향은 자율적 의지에 따른 개인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계급 간 위상이 반영된 구조적 산물이다. 축구보다 골프를, 소주보다 와인을, 대중음악보다 클래식 음악을 선호하는 것은 자신을 상류층에 위치시키고 서민들과 구별하고픈 욕망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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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적 소비 또는 구별 짓기의 욕망은 인간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어떤 사회에서는 이것을 도덕적으로 허영이라 낙인찍고, 어떤 사회에서는 성공의 징표로 정당화할 뿐이다. 한국은 오랜 세월 동안 전자에 해당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적 맥락이 반영돼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명품 소비가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지점 중 하나로 과소비에 대한 과도한 윤리적 비판을 꼽는다. 라다 차다(Radha Chadha), 폴 허즈번드(Paul Husband)는 검소함과 절제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한국의 신유학사상이 명품 소비를 죄악시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1 한국의 소비문화를 연구한 UC버클리대의 로라 넬슨(Laura C. Nelson) 교수 역시 1990년대 한국 정부가 추진한 근검절약 운동 및 과소비 추방 운동에 주목하면서 한국에서는 소비가 애국심을 테스트하는 일종의 시험대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2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의 명품 소비와 비교하면 그 차이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중국의 명품 소비는 ‘미엔즈(面子)’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말로 ‘체면’에 해당하는 ‘미엔즈’는 가문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는 성공을 과시하고 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일종의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또한 ‘관시(关系)’ 문화는 중국에서 명품 시장의 확대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었다. ‘인맥 쌓기’를 의미하는 ‘관시’는 중국에서 모든 비즈니스가 돌아가는 원리이다. 이때 명품 선물은 ‘관시’를 구축하기 위한 주된 수단으로 작동한다. 중국의 초기 명품 시장이 남성 용품에 의존했던 것은 ‘관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주로 정부 관료나 사업가였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의 경우에는 명품 유행의 맥락이 다르다.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가 일찍이 『국화와 칼』에서 분석한 것처럼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는 ‘나’보다 ‘우리’가 중요한 사회적 맥락을 조성함으로써 명품이 유행하기 쉬운 문화적 토양을 제공한다. 일본인들은 과시하기 위한 목적보다 남들에게 동조하기 위해 명품을 소비한다. 예를 들어, 일본 여성들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루이뷔통 스피디백을 나만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집단’에서 ‘개인’이 이탈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독신가구가 증가하고 특히 부모와 함께 사는 ‘기생독신’(parasite single)이 증가하면서 생활비를 모두 부모에게 의존하고 본인이 번 돈은 온통 명품에 소비하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도 명품 열풍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명품 소비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처럼 명품이 한 사회에서 열풍을 일으키기까지는 그 사회 특유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명품 열풍은 어떠한 사회적 현실을 담고 있을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인구구조의 변화다. 한국은 현재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81명이다. 즉, 여성 1명이 평생에 걸쳐 낳는 아이의 수가 1명이 채 되지 않는다(현재 인구 수준이 유지되려면 여성 1명이 평생에 걸쳐 평균 2.1명의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본인을 위한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2014년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은 40개 국가의 사례를 검토한 결과 합계 출산율이 인구대체율(=2.1명)보다 낮을 경우 1인당 소비력이 증가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3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자녀 양육을 위한 지출이나 저축을 줄이는 대신 본인을 위한 소비를 증대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에 더해 청년층의 미혼 또는 비혼 비율이 증가하는 것도 명품 소비에 영향을 끼친다. 부양할 가족이 없다는 것은 본인을 위한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부모 집에 얹혀사는 독신이라면 본인만을 위한 가처분 소득은 더욱 늘어난다. 최근 한국의 명품 열풍을 이끄는 것이 MZ세대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현대백화점의 전체 명품 매출 가운데 20~30대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48.7%나 됐다. 명품은 더 이상 경제적 안정을 획득한 이후에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초년생이 월급을 탈탈 털어 구매하는 아이템이 됐다. 가족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부동산값 폭등도 관련이 있다. 20대에 결혼해 아이 낳고 돈 모아 집 사는 것이 지금까지 보통 사람들의 인생 경로였다면 이제 청년들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수억 내지 수십억 원이나 하는 집을 구매하는 것은 평생 불가능한 꿈이 됐고,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투자가 무의미해졌다. ‘티끌 모아 티끌’일 뿐인 인생이라면 지금을 즐기는 편이 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MZ세대의 명품 소비는 어쩌면 미래에 대한 비관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명품 소비는 여전히 과시욕 충족의 기능이 있다. 다만, 명품을 단지 사치나 허영의 문제로 귀결시키면 국가마다 나타나는 명품 소비의 서로 다른 트렌드를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타인과 구별되고픈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지나치게 윤리적으로 단죄하는 것은 개인의 소비 행위에 대한 지나친 간섭일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의도적으로 명품의 유행을 좀 더 구조적 관점에서 조망한 측면이 없지 않다. 명품을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그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로가 달랐다면 명품 소비의 양상은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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