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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in China: 샤오미의 생태계 장악 전략

밖에서 찾아 안에서 키운다
제조사 넘어 투자사로 스타트업 육성

김도웅 | 341호 (2022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샤오미는 단순히 가성비로 승부하는 IT 제조사가 아니라 성공한 액셀러레이터이자 CVC(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 즉 투자 회사이기도 하다. 샤오미는 2016년 경쟁사들의 출현과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성장이 정체되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샤오미식 생태계 장악 전략’을 수립했다. 유망한 초기 스타트업들을 발굴해 투자한 뒤 해당 기업을 샤오미의 밸류체인에 태워 자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대박이 나도록 키워냈다. 샤오미의 구매력과 소셜마케팅 역량 등을 총동원하고 글로벌 유통망과 애프터서비스망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투자 수익을 거둔 것이다. 스타트업을 회사 안에서 키워 밖으로 내보내는 Inside-out 전략과 달리 밖에서 찾은 뒤 안에서 키우는 이 같은 Outside-in 전략은 이제 샤오미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샤오미를 단순히 ‘가성비’ 뛰어난 IT 제조사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샤오미가 이미 성공한 투자 회사기도 하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듯하다. 실제로 이 회사는 기업 가치 1조 원에서 10조 원을 넘어서는 유니콘과 데카콘 기업들을 10여 개나 보유하고 차세대 후보군을 무려 300여 개나 들고 있는 대단한 액셀러레이터이자 CVC(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이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샤오미가 이제는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나아가 대박 기업으로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샤오미가 어떻게 투자의 명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단초는 회사의 사업 전략이 진화해 온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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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뒤늦게 휴대폰 사업에 뛰어든 신생 기업 샤오미는 설립 첫해 30억 원의 매출로 시작해 5년 만에 11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기까지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약 5년이 지날 무렵, 갑자기 성장이 멈춘다. ‘미(米)’ 팬이라는 거대 팬덤을 등에 업은 채 노골적인 애플 따라 하기로 매년 성공 신화를 써왔던 회사에 갑자기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혁신의 속도가 유별난 IT 업계 특성상 무엇보다 경쟁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샤오미의 팬덤보다 더 강력한 ‘찐 팬’으로 무장한 신생 스마트폰 업체 ‘원플러스’의 등장은 소비자들의 입소문과 커뮤니티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샤오미의 소셜마케팅을 뒤흔들어 놓았다. 아울러 전통적인 오프라인 사업만 영위하던 ‘화웨이’ 역시 샤오미를 본떠 아예 온라인으로만 휴대폰 사업을 하는 브랜드 ‘아너’를 출시하면서 경쟁사들의 대응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두 번째 이유는 샤오미도 사업 확장을 하면서 사면초가를 맞이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처음엔 휴대폰 하나에만 집중하던 회사가 TV, 공기청정기 등 다양한 상품군으로 전선을 연일 확장함에 따라 예전만큼의 전략적 민첩성이 나오지 않게 됐다. 또한 온라인 직영 몰에서의 직접 판매만 고집하던 샤오미가 오프라인 채널 판매를 개시하자 사업 구조적으로 차별화가 더욱 어려워지고 비효율이 늘어났다. 2016년에 이르러서는 샤오미가 곧 망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할 만큼 상황은 최악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벼랑 끝 상황에서 샤오미 창업자 레이 쥔 회장이 비장의 돌파구로 내세운 것이 바로 ‘샤오미식 생태계 장악 전략’이다. 이 전략은 레이 쥔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준 계기이자 회사가 ‘제2의 창업’을 선포하고 성장 동력의 불씨를 되살리는 전환점이 됐다.

샤오미의 생태계 장악 전략은 겉으로만 보면 크라우드 펀딩 사업과 흡사하다. 샤오미가 휴대폰 사업의 소셜 비즈니스 성공 방정식을 사물인터넷(IoT)과 라이프스타일(Lifestyle) 분야에 맞게 접목시킨 사업 모델이 샤오미식 크라우드 펀딩이다. 휴대폰 사업에서는 고객 등급을 8단계로 나눠 등급별로 차별 대우하고 한정 물량의 신제품을 사전에 살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면 IoT/라이프스타일 사업에서는 공동 구매 방식으로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만 상품을 살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식이다. 한국에도 ‘와디즈’ ‘킥스타터’ ‘텀블벅’ 등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사업자들이 다양한 제3자의 제품, 서비스를 소싱해서 사업하고 있지만 샤오미는 자신들의 온라인 직영 몰 안에서 ‘샤오미 크라우드 펀딩(중국어로 众筹 )’이란 이름의 서브 메뉴를 두고 이 펀딩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양말, 칫솔, 매트리스, 배게 커버 등 안 파는 게 없는 샤오미에서 제품군의 99%는 이제 샤오미의 파트너사로부터 소싱되고 있다. 그러나 크라우드 펀딩 섹션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사실 새로운 제품이라기보다는 기존부터 팔던 제품들을 공동 구매 조건으로 싸게 팔거나 일정 기간 한정 물량을 반짝 할인하는 판촉 수단에 불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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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 펀딩 사업만 보면 이게 뭐 대단한 생태계 장악 전략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면을 살펴보면 무서운 꿍꿍이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샤오미는 이미 휴대폰, TV 등 일부 제품군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을 제3자로부터 소싱해 판매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대기업들과 다를 바 없다. 특히 돈이 안 되는 한계 사업일수록 브랜드만 대기업 로고를 붙이고 협력 회사가 생산은 물론 제품 개발, 디자인까지 전부 다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결정적 차이는 기존 대기업들의 방식은 협력 회사에 외주 하청을 주는 데 불과하다면 샤오미의 방식은 유망한 기업을 발굴해서 샤오미의 밸류체인에 태운 뒤 자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대박이 나도록 키워내는 구조라는 데 있다. 이렇게 해서 협력 회사가 크게 성공하면 해당 회사의 초기 투자자로서 이미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샤오미의 기업 가치가 덩달아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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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어떤 스타트업이 자동 물걸레 청소기를 개발해서 샤오미를 찾아왔다고 치자. 그리고 해당 제품의 상용화에 대해 샤오미 내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샤오미는 엄청난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이용해 관련 원부자재, 부품 등을 무지막지하게 싸게 조달해 주고, 샤오미와 연결된 공장들을 수배해 빛의 속도로 싸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샤오미가 직접 컨트롤하는 온라인 자사 몰과 소셜마케팅 채널을 통해 해당 제품의 수요를 만들어 전광석화로 제품을 팔아 치운다. 이렇게 샤오미와 협력하는 기업들은 한국을 포함, 수많은 국가에 이미 침투해 있는 샤오미의 유통 파트너들을 활용할 수도 있고 나아가 샤오미의 명성을 등에 업고 온라인 직구를 통해 꿈도 꾸지 못했던 글로벌 판매의 벽을 뚫을 수도 있다. 스타트업이 힘들어하는 애프터서비스망도 샤오미가 대행해 주는 것까지 감안하면 한가락 한다는 스타트업이 죄다 샤오미의 문지방이 닳도록 몰려가는 것도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샤오미는 이런 방식으로 유망 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흡수하면서 혁신 사이클을 수십 배 내지 수백 배까지 가속화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다 파는 회사로 커가고 있다. “샤오미의 보배, 레이 쥔 회장 빼고 다 팝니다.” 회사 측이 스스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소리를 할 지경이다.

이렇게 2020년 말 기준 샤오미는 글로벌 매출 43조 원을 기록하며 휴대폰을 넘어 IoT 기기 부문 글로벌 1위 기업에 등극했다. 샤오미 생태계에서 나오는 상당수의 제품에는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에 연결되는 IoT가 기본 탑재돼 있다. 자연히 모든 데이터는 샤오미 클라우드 서버에 모이게 되며 2021년 말 기준 4억 대 이상의 기기들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이 클라우드상에서 맞물려 있다. 샤오미 애플리케이션은 사실상 이 모든 IoT 기기를 통제하는 만능 리모콘 구실을 하며 이렇게 결합된 샤오미 생태계는 철옹성처럼 견고하다. 이렇듯 샤오미는 스스로의 통제하에 생태계를 확장하면서 누구도 쉽사리 침범할 수 없는 생태계의 주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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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미가 크라우드 펀딩을 운영하는 프로세스 또한 굉장히 빠르다. 회사가 주로 표준화된 의사결정을 채택하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스피드와 적자생존에 집중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번 소싱한 제품이 다 대박을 낼 수는 없고 한두 번 팔다 사라지는 제품이 부지기수라는 전제로 지나치게 엄격한 필터를 적용하기보다는 시장 판단에 맡겨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으라는 식이다. 상대적으로 중후장대 프리미엄 제품을 팔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과는 달리 샤오미는 어차피 가성비로 무장한 저가의 IT 소물들을 팔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략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샤오미식 벤처 투자가 이렇게 성공적인 까닭은 한국 대기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Outside-in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지주사가 창투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CVC 설립 요건과 운영 규제가 완화되면서 다양한 펀드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CVC 대부분은 사내에서 기업을 인큐베이팅한 뒤 외부로 독립시키는 Inside-Out 방식을 채택한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의 우산 아래 어찌어찌 걸음마를 뗀 기업들이 갑자기 추운 시베리아 벌판에 던져져 혼자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경영진은 물론 핵심 인재로 인정받는 직원들도 신사업 구상에는 참여해도 이걸 들고 나가서 직접 사업화를 하거나 키우지는 않는다. 그전에 발을 빼곤 한다. 심지어 일부 기업에선 은근슬쩍 저성과자를 이런 사내 벤처 프로그램 등에 태워 구조 조정 수단으로 써먹기도 한다. 이에 반해 샤오미는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을 외부에서 직접 선발한 뒤 샤오미의 밸류체인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도록 외주 협력사가 돼 준다.

이처럼 샤오미의 Outside-in 전략은 유망 스타트업을 밖에서 찾은 뒤 안에서 키우는, 그래서 자신의 팔다리에 붙여 나가는 방식이다. 신사업 확장을 위해 스타트업을 안에서 키워서 밖으로 내보내는 ‘Inside-out’ 방식이 아니라 정반대로 한다는 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다. 속칭 직장인의 꽃이라 할 대기업 월급쟁이 DNA와 사업가 DNA는 아예 다르다는 걸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던 샤오미가 모를 리 없다. 샤오미가 성장 전략으로 애초에 될 성 부른 스타트업을 밖에서 선별한 뒤 이들을 대기업의 밸류체인에 태워 성장을 가속화하는 ‘Outside-in’ 방식을 채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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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샤오미의 벤처 투자가 한국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잘된 이유 중 하나는 참여 임직원에 대한 인센티브를 잘 설계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만에서 HTC 가상현실 사업부 부사장 재직 시, Vive-X라는 가상현실 특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기획해 전 세계 4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2년간 직접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 또한 전 세계 3대 음향 및 게임기기 OEM/ODM 제조사인 중국의 고어텍그룹에서 위메이크라는 글로벌 스타트업 대상 액셀러레이팅사를 중국, 한국, 일본, 미국에 설립해 운영한 바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기업들의 투자 방식과 성공 노하우를 들여다보면서 중국의 샤오미나 하이얼이 투자 대상 기업과 관련된 프로젝트 참여 임직원들에게 지분 투자를 적극적으로 허용하며 스톡옵션 등 강력한 동기부여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특징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답은 뻔하다. 회사에 성과가 난다 한들 나한테 떨어지는 몫이 없는데 굳이 기를 쓰고 위험 부담까지 감수하면서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땀나게 뛰어다닐 직원이 얼마나 될까. 내 사업처럼 성공시키려고 죽자 사자 자발적으로 매달릴 직원은 과연 존재할까. 해당 부문의 담당 임원조차 월급쟁이인 것은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이 없다고 투덜대는 리더들이 많지만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처럼 일하냐’고 외식 사업가 백종원 씨가 일찍이 방송에서 반문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샤오미를 비롯한 중화권 기업들이 스타트업 투자에 기여하는 임직원들에게 당당하게 돈이나 성과 보상으로 지분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왕서방’들은 파이를 나눌수록 오히려 파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벤처 투자는 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이를 감수할 유인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람을 독려하고 움직이는지, 샤오미의 통찰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가성비와 속도전으로 이제는 단일 기업이 아닌 샤오미 ‘군단’을 이루며 제품을 쏟아내는 대륙의 인해전술 앞에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돌아볼 때다.


김도웅 이언이노랩 대표 andykim@eongroup.co.kr
김도웅(Andy Kim) 이언이노랩 대표는 화웨이, 알리바바, 샤오미, BOE, TSMC, HTC 등 중화권 기업을 직접 컨설팅하고 해당 기업의 경영진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저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발간했다. 하버드경영대학원 MBA를 거처 IBM 미국/중국 컨설팅 부문 전무, 대만 HTC 본사 부사장(가상현실사업, CIO, 디지털 혁신 담당),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과 무선사업부그룹장을 거쳤다. 디지털 혁신 컨설팅과 임원 육성, 스타트업 투자와 M&A에 특화된 이언이노랩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 김도웅 | - 네모파트너스 마케팅 부문 대표
    - (전) P&G마케팅/ Monitor Company 마케팅전략 컨설팅 담당
    - (전) HP Asia Pacific Stratey Director, 삼성전자 Global Content Service 기획그룹장, 유한킴벌리 전략기획본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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