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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문화심리학적으로 살펴본 세계관의 필요성과 활용

나 이외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
불편함•역동성•보편성 잘 활용해야

이장주 | 334호 (2021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세계관을 갖고 사는 것은 세계관이 즐거워서가 아니다. 세계관은 행동 방향과 의미를 제시하는 나침반으로서 엉뚱하거나 위험한 곳에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같은 이유로 아이가 자라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는 과정, 인류가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은 세계관을 필요로 하며 코로나19와 같이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는 새로운 세계관들이 범람한다. 인간은 밈의 형태로 세계관을 공유하며 밈을 통해 유전자와 같이 자신의 행적을 남긴다. 세계관을 활용할 때는 참여자들에게 성취감을 줘야 하며 새로운 악당들을 지속적으로 등장시키는 등 역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세계관의 주요 소재가 사랑, 정의, 가족 등 전통적인 개념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마블 유니버스, 포켓몬 세계관 등 문화 콘텐츠를 넘어 빙그레우스, 요기요 나라, 서브웨이 카도군같이 대중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내세우고 있다. 세계관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이렇듯 뜨거운 세계관 열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들이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 떠오른 MZ세대 누리꾼들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세계관을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식이다.

이때의 세계관은 주로 ‘유니버스(universe)’란 개념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계관의 또 다른 개념인 ‘관점(worldview)’ 역시 현재의 세계관 열풍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문화심리학적 관점으로 볼 때 더욱 그렇다. 여러 브랜드에서 자신들의 세계관을 내놓는 것은 탄탄한 스토리라인 자체를 자랑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우리의 브랜드를 이런 방식으로 봐 달라’는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같이 세상과 사물을 보는 관점(worldview)이라는 구도에 배경, 인물, 이야기 등 다양한 요인이 어우러져 생동감 있는 ‘유니버스(universe)’로 체감되기도 한다.

개인과 사회의 관점에서도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세계관은 그 나름대로의 용도가 존재한다. 컴퓨팅과 네트워크를 위시한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사건으로 새로운 삶의 조건들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해졌다. 이 같은 세계관의 쓰임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오랜 과거부터 사람들은 이전 세대의 사람들과 다른 세상의 조건으로 인한 불안함,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연함을 달래줄 배경으로서 세계관이 필요했고, 이런 세계관은 새로운 행동을 촉발하는 근거이자 당위성을 제공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세계관의 형성 역사를 살펴볼 때 그렇다. 세계관은 왜 필요할까. 그리고 세계관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문화심리학적으로 살펴보자.

인류의 놀라운 발명품, 세계관

아이는 엄마가 자기와 다른 사람이란 것을 인식하면서 자기개념(self-concept)을 형성한다. 이런 현상은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란 자아 관념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사는 세계 이외의 다른 세계가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없다면 세계관이 나타날 틈이 없다.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이는 다름 아니라 18∼19세기에 걸쳐 활동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다.1 이 시기 유럽은 신대륙과 아시아 대륙 등 이방 세계와 교류가 활발해지며 새로운 정체성이 요구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2

즉, 세계관은 원래부터 존재해서 인류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발명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다른 세계를 만났을 때 그것과 대비된 자신의 세계를 설명할 어떤 관념이 필요했고 그게 곧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자신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그 세계 속에서 어떤 행동이 가치가 있는지, 앞으로 어떤 행동들이 이어져야 하는지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3 이런 기능을 통해 세계관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회적 실체가 되는 것이다.

초기의 세계관은 신화와 종교의 형태로 나타났다. 초기 신화와 종교의 주된 주제는 ‘사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였다. 어떻게 시작했는가는 어떻게 끝나야 하는가와 밀접히 연관된다. 짧고 불안한 삶을 영위하던 초기 인류에게 질서 있는 세계관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지위를 정해주는 안정감과 삶의 리듬감을 갖는 데 중요한 기능을 했다. 따라서 해와 달, 동물들이 존재하는 이유, 파도와 바람이 치는 이유,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이유 등 수없이 경험하는 많은 자연현상이 세계관의 소재로 자리 잡았다.

이런 세계관은 초지일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 사람이 왜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지, 그리고 신성한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어찌 보면 초기 인류는 자연 재난만큼 동물들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으리라. 초라하기만 한 인간의 지식과 기술은 이런 합리화된 세계관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갔다. 세계관으로 무장한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놀라운 일들을 벌여나간다. 어찌 보면 세계관은 자신을 설정하기 위한 인간관의 배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당연히 기술의 진보와 함께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이 등장하고 과거의 것들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은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의 출현을 반겼다. 혁신 혹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어른이 되기까지 필요한 세계관

인간 개인의 생애 발달에 있어서도 세계관은 꼭 필요하다. 인간의 아이는 무기력한 존재다. 무기력한 존재가 채 십수 년 만에 강력한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이 수없이 많다. 그중 하나가 세계관이다. 인간이 생애 최초로 학습하는 것 중 하나는 생후 6개월 무렵 엄마가 보이지 않더라도 집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대상영속성(object permanence)’이라고 부른다. 특정 대상이 감각으로 느낄 수 없더라도 계속 존재함을 안다는 것이다. 즉 아이의 머릿속에 엄마와 세상에 대한 어렴풋한 얼개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보이지 않더라도 안심할 수 있게 된다.

그때쯤 세상에 대한 최초의 분별이 나타난다. 낯가림이다. 낯선 사람과 우리 식구를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낯선 사람 중 특히 남자 어른에 대해서는 ‘유년기 이방인 공포증(Childhood xenophobia)’이라 불리는 심한 공포 반응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세계를 우리와 그들로 나누어 보는 타고난 경향이 최초로 표현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4

이 무렵 아이는 선악을 구별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달시킨다는 사실도 근래 발견됐다. 2007년 미국 예일대 햄린(Hamlin) 교수팀은 생후 첫돌도 안 된 아기들도 남을 돕는 착한 존재와 나쁜 존재를 구별해낸다는 사실을 네이처에 발표한 적이 있다. 5 연구팀은 태어난 지 6개월과 10개월 된 아기들에게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 등이 나오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세모가 언덕으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동안 동그라미가 나타나 돕는 반면 네모는 동그라미를 아래로 밀어 방해하는 내용이다. 이 영상을 보여준 뒤 아기들에게 동그라미, 네모 도형 중 하나를 고르게 했더니 87.5%가 세모를 도와준 동그라미를 골랐다. 혹시 아기들이 세모를 원래 선호할지도 모르기에 세모, 네모, 동그라미의 역할을 뒤바꾸고 색깔도 달리해서 실험한 결과도 동일했다. 말도 못하고, 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서툰 아기들도 누구와 친구가 돼야 할지를 아는 사회적 판단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놀라운 연구로 평가된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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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라서 몸을 움직일 때쯤 되면 세상의 질서를 배우게 된다. 대표적인 과업이 배변 훈련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 있으며 이런 세상의 규칙을 따를 때 고통도 있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보람을 얻게 된다. 칭찬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따라야 할 상식이란 이름의 세계관을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4살 안팎쯤 아이는 앞으로 자기가 어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많은 학습과 준비를 한다. 세상에 나갔을 때 어찌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을 반복한다. 소꿉놀이와 같은 또래들 놀이와 어른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대체로 주제는 대동소이하다. 훌륭한 어른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신의와 도덕을 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상을 받아 부자가 되고 남부럽지 않은 배우자를 얻게 된다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세상이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믿음은 혼란하고 혼탁한 세상을 버티게 해준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정확한 원인을 알기 어렵다면 그럴듯한 원인이라도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정 설명이 안 되면 전생에 죄를 지었다든지, 그도 아니면 그 전날 꾼 꿈을 탓하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떠올리고 나서야 마무리가 된다. ‘내가 하도 잘났다 보니 이런 해코지를 다 당하네’와 같은 방식의 ‘자기합리화’가 대표적이다. 어릴 적부터 세상을 설명하고 그 설명 방식에 따라서 자란 사람들에게 세계관은 없으면 사고 시스템을 구동할 수 없는 OS 같은 것이다.

사춘기는 부모 세대와 다른 세계관이 꽃 피는 시기고, 그 배경에는 뜻밖에도 산업혁명이 존재한다. 사춘기들이 만들어 낸, 기성세대와는 다른 세계관은 개인의 삶에 규범으로 자리 잡는 차원을 넘어 세상을 새로운 길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산업혁명은 먹고 사는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공장제 산업은 기존의 농업 생산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자식들은 부모의 삶의 양식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부모가 독립했던 시기를 지나도 자녀들은 독립하지 못하게 된다. 취업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은 어른으로서 지위를 연기시킨다. 스스로 다 컸다고 믿는데 세상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감시받는 형국이 지속된다. 이런 방식으로 부모의 세계관과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데 흔히 사춘기 반항이라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10대 중반만 돼도 여자아이의 경우 결혼을 준비하고 남자아이는 가정을 책임지거나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원시사회에서는 사춘기 반항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6 반항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 전근대 사회에서 10대 중반은 스스로를 어른으로 범주화하고 주위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굳이 어른들과 자신을 구별할 필요가 생기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시기에는 10대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지낼 일도 드물었다. 질풍노도라는 관념은커녕 ‘10대’라는 개념도 없었다.

산업혁명 이후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며 부모의 세계관에서 살기 어려운 10대들은 스스로의 세계관을 만들고 또래들과 공유하거나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들 10대는 부모나 교사와 차별화된 문화를 창조하는 방식으로 이전 세대와 구별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하다. 이렇게 발생한 문화는 이전 세대보다 발전적이지 않을 때도 많기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핵심은 기성세대와 차별화된 행동과 사고 체계를 또래들로부터 수용하고 새로운 언어와 형식을 창조하는 것에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부모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자녀가 답습했기에 사춘기 반항이 없지만 대신 사회적 진보도 없었다. 반대로 산업혁명 이후 제도 교육은 격렬한 사춘기 반항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전의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세계관들이 넘쳐나며 혁신의 속도도 함께 급증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이 세상을 ‘빨리 감기’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7 이전에 없던 비대면 사회와 미디어 혁신이 생활 속에 빠르고 깊이 들어왔다. 코로나19가 물러가더라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정도로 깊숙이 말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혁명의 속도와 폭을 능가한다. 지금 세계관이 폭발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현상이고 세상의 진보를 위해 환영할 일일지도 모른다. 10대 이전의 아이를 둔 부모만 빼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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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세계관의 변증법적 작용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적힌 문구다. 기술은 사람을 좀 더 능동적이고 유능하게 만들었고, 이런 사람은 다시 세계관을 바꾸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지속하며 발전해왔다. 기술의 발전 역시 세계관을 이해하고 현재 사회를 세계관을 통해 이해하기 위한 열쇠 중 하나다.

문자가 바꾼 세계관들을 조금만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글과 숫자는 농업혁명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라고 한다. 농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이전 수렵채집 사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워졌고 동시에 인구도 폭증했다. 사회의 진보에 따라 정보도 보통 사람의 머리로 처리할 수 없는 수준까지 넘쳐나게 되자 보조 기억장치가 필요해졌다. 그것이 숫자와 문자였다. 필연적으로 풍요로운 것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새롭게 발생하기도 했다. 사회가 풍족해져서 지상낙원이 된 것이 아니라 빈부와 권력의 격차로 오히려 양극화가 발생했다. 8 이전에 없던 권력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글자와 숫자를 아는 사람들은 권력의 상층부를 차지했다. 하층부에서도 이전과 다른 권력이 생겨났다. 바로 가부장제다. 농업에서 생산력을 좌우하는 요인은 사람과 동물의 힘이다.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근력이 더 중요한 요인이고, 딸보다는 아들의 역할이 더 컸다. 사회적 권력의 근간이 되는 숫자와 문자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변화를 정당화시킬 세계관이 필요했고, 이때 전 세계 규모의 종교가 탄생하게 된다. 한결같이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남자인 까닭이며 종교의 위세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상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 기반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 변화가 더 근본적인 이유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던 근대 존재론과 인식론은 르네상스 혁명과 분리되기 어렵다. 사실 여기서 혁명은 글자와 숫자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문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렇다. 보통 사람들도 이제 글자를 접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그 핵심에는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 기술이 있다. 과거 성경은 양피지에 손으로 베껴 쓴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중세시대에 성경 한 권을 만드는 데는 대략 200마리 분량의 양피지와 수십 자루의 펜이 필요했고, 필경사의 작업은 1년 반 정도가 소요됐다고 한다. 성경 제작에 필요한 비용은 당시 집값의 20%에 달할 정도로 고가였다고 한다. 요즘 서울 집값으로 따져도 수억 원에 이르는 초고가품이었던 것이다.

대량 인쇄로 성경이 저렴해진 상태로 보급되다 보니 성경을 독점하던 성직자들의 권위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직접 성경을 읽어 보니 성경을 읽어주며 면죄부를 팔던 성직자의 행동이 성경의 말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것이 종교혁명이 발생한 결정적 계기다. 참고로 독재국가일수록 문맹률이 높다고 한다. 글을 알고 사용한다는 것이 자신이 스스로의 세계에 주체가 되는 데 중요한 기술인 것이다. 대중화된 글자는 지식의 유통과 확산을 가져왔다. 대중들의 사고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면서 과학에 획기적인 발전이 일어나게 됐고 현상이 아니라 현상 이면에 있는 법칙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산업혁명 역시 이런 축적된 지식 기반에서 탄생했다. 산업혁명은 기계의 힘으로 물건을 만드는 획기적인 생산방식의 변화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이 쏟아져 나오게 됐다. 재료도 시장도 비좁은 국내 시장만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생겼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 범위가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 확장되며 운송 수단의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산업혁명을 가속화한 기차의 발명은 중앙집권적 근대국가의 기반이 됐을 뿐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줬다. 참고로 근대 여행업은 1841년 기차 패키지여행을 주도한 토머스 쿡(Thomas Cook)이 만든 여행사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 자동차의 시대가 열린다. 미국을 중심으로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마이카(my car)’ 시대가 개막했다. 세상의 속도와 범위는 자동차의 성능과 비례해 더 빨라지고 넓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넓은 지역을 이동하다 보니 자동차 연료를 공급하는 주유소라는 새로운 업종이 필요해졌다. 자동차만 연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도 밥을 먹어야 하니 휴게음식점들이 새롭게 생겨난다. 이에 맥도널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호황을 맞게 된다. 또 월마트와 같은 창고형 매장이 생기면서 대량 물품 구매가 가능해졌고 자동차로 장을 보는 새로운 트렌드도 나타났다.

단지 기술이 빠르게 바뀐 것 뿐아니라 세계관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노인의 지혜가 숭상되던 세계관에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지식이 더 각광받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통의 영국보다 신생국 미국이 더 매력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계 덕분에 풍족해진 사회는 사람들의 심리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는 개인주의다. 풍족한 것 가운데 선택을 하니 사람마다 개성이 강조된다. 유행에 따르기는 하지만 똑같은 옷은 피하고 싶은 심리가 생겨났다.

또 다른 하나는 남녀평등이란 사고다.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기술을 다루는 데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 이런 변화는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운동으로 이어진다. 페미니즘은 산업화란 기술적 진보가 만들어 낸 새로운 사회 현상인 것이다. 기술과 서비스는 개인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굳이 가족을 꾸려 함께 살 필요도 없었으며 함께 살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의 기초 단위로 여겨지던 가족에 대한 엄청난 세계관의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정보혁명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했다.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지식 2배 곡선(Knowledge Doubling Curve)’에 따르면 19세기까지 인류의 지식 총량이 2배 증가하는 데 100년이 소요됐다.9 그의 방식으로 추정하면 1990년대부터는 25년, 2018년에는 1년이 걸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3년이 더 지난 2021년 말, 지식이 2배가 되는 곡선은 며칠 아니 몇 시간으로 단축됐을 가능성이 높다. 새롭게 폭발하는 지식을 담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존의 세계관이 엄청나게 팽창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담을 수 있는 세계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거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콘텐츠 열풍은 후자의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듯하다. 점점 기술과 지식의 증폭은 세계관의 분화를 촉진할 것이 자명하다. 기술의 발달을 통해 여러 사람이 하나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다가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관, 그리고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세계관을 넘나들며 사는 현재에 이르렀다.

삶의 증거를 남기는 밈

비유전적 문화 요소 또는 문화의 전달 단위인 밈(meme)은 세계관의 전파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에게는 스스로 만든 환경, 즉 문화적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런 문화를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취급했다. 후세에 전달되고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는 공통점뿐 아니라 유전자 못지않은 빠른 전파 속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을 반영해 그는 유전자 진(gene)에 대비되며 전파되는 문화 요소에 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0

밈은 단순히 관념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도 같은 밈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밈 풀(pool)’ 내에서 퍼져나가고 사람들의 뇌에서 뇌로 건너다니며 영향을 미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은 전 세계 수천만 명 이상 사람의 신경계 속에 하나의 구조로 존재하며 이런 믿음은 사람의 목숨이 위협받는 국가 간의 분쟁이나 전쟁으로까지 번질 때 공포라는 현상으로 사회적 실체가 된다. 긍정적인 현상의 예로 소크라테스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베토벤의 작품들은 그들의 사후에도 밈으로 지금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밈은 1차적으로 보면 생물학적 생존 가치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공유한 이들의 세력을 얻어 생명력을 이어간다. 그렇기에 옛 위인들의 밈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진화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고전이라 부르며 그 가치를 숭고히 여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이 ‘유전자’와 ‘밈’ 두 가지라는 점이다. 비대면 사회와 1인 가족의 확산과 같이 유전자의 전달이 수월하지 않은 작금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할 때 현대 이후에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밈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욕망은 현재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문화 콘텐츠뿐 아니라 온라인 곳곳에서 일어나는 그들만의 세계관 실천이 왜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됐고, 세계관 경쟁에 왜 투자가 몰리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물려줄 후손이 없을 때 밈에 투자함으로써 생물학적 한계를 문화적 영속성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유전자를 닮은 밈의 활동으로 하나의 세계관에 열광하기보다는 다양한 세계관에 참여하는 현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뮤지션, 온라인상에서 새롭게 유행하는 다양한 밈에 동참하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번식 활동과 매우 닮아 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가능한 많은 세계관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수많은 세계관의 경쟁은 인간의 문화적 잠재력을 보존하고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러 플랫폼과 서비스가 세계관 경쟁에 나서는 것은 비즈니스를 넘어 인류의 근본적 욕망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고, 또한 이 지점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흔히 ‘부캐’라고 불리는 활동들이 딱 좋은 사례가 될 듯하다.

또한 서로 유전적 유사성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 간에 밈을 공유하는 것은 세계를 좀 더 이타적이고 협력적으로 만들어준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캐릭터 옷을 입은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도 반갑다. 내가 열광하는 밴드의 공연에 온 사람이 도움을 구하면 대가 없이도 기꺼이 도와줄 용의가 있다. 이런 현상은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친족들 간에 서로를 돕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밈의 경우 그 범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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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의 활용을 위한 문화심리학적 제안

세계관은 세상을 인식하기 위한 관념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행동 방향과 의미를 주는 삶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나침반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즐거워서가 절대로 아니다. 나침반은 엉뚱한 곳 혹은 위험한 곳에 갈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함이 근원적인 기능이다.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즐거워서가 아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세계관이 작동하는 핵심 동력이다. 이 같은 세계관의 속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첫째, 어떤 세계관이 넓고 깊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편리하거나 안락하면 안 된다. 편리한 종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신 금식 기도와 같은 헌신과 고통스런 수행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성취감을 느끼며 자신의 삶에 의미를 깨닫고 무언가 쓸모 있는 행동이나 기여를 했다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세계관은 꽉 차 있어서도 안 되고 꽉 차 있을 필요도 없다. 여백이 있어야 한다. 모든 필요를 편하게 충족해주기보다는 세계관의 참여자가 기여할 수 있는 미완의 공간이나 과업이 필요하다. 세계관 비즈니스들은 이런 여백을 상품이나 서비스로 제공한다. 마치 마블의 세계관에서 타노스에게 건틀릿만 제공하고 여기에 끼울 인피니트 스톤을 타노스가 직접 찾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콘서트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한 밤샘 줄서기나 명품을 쟁취하기 위한 백화점 ‘오픈 런’ 행렬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다른 세계관과 구분되는 집단적인 체험은 세계관의 사회적 실체를 더 뚜렷하게 부각시켜줄 뿐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수많은 증인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혼자서 하는 체험과 집단의 체험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 축구 경기를 집에서 혼자 시청하는 것과 경기장에서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보는 것은 비교 불가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은 감정과 의미를 배가시키는 증폭기가 된다. 그 경험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참여하는 방식으로 대상에 대한 충성도는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 충성도의 수준에 어울리는 상징물은 나의 헌신이 헛되지 않음을 확인시켜준다. 그 상징물은 포토카드 형식의 티켓이 될 수도, 한정판 굿즈가 될 수도 있다. 현장에서 함께 어울린 사진도 충성도 높은 동료들과 함께했다는 증거다.

둘째, 세계관은 생명체만큼 역동적이어야 한다. 세계관 내의 악당은 대체로 영웅들이 흑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악당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고 때로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마블의 빌런 타노스는 인구 증가가 우주 파멸을 이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주를 구원하기 위해 인구의 절반을 줄이는 신성한 역할을 자임한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타노스는 빌런이 아니라 영웅일지도 모르지만 일생을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도 없는 악당인 것이다. 이런 구조는 거의 모든 현실과 가공의 세계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설공주도 나이가 들면 계모의 역할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백설공주가 왕비가 된 이유로는 미모 이외에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미모는 시간에 취약하다. 점점 흘러가는 시간 동안 나이 든 백설공주는 자신의 미모를 모니터링하며 왕비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경쟁자들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오이디푸스 역시 다시 그 아들에게 살해당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만일 하나의 영웅이 영원한 영웅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 세계관은 씨앗 없는 세계관이 된다. 재미가 없어지는 동시에 굳이 참여해 헌신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챔피언보다 도전자를 응원하는 이유나 익숙한 세계관이 지겨워져 새로운 것을 찾게 되는 심리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결국 영웅과 악당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등 역동성이 지속될 때 그 세계관의 수명은 길어진다. 멋진 악당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나오는가는 그 세계관이 건강하다는 의미와 통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셋째, 세계관이 향하는 가치들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보편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랑, 정의, 가족, 행복 같은 가치들은 보편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세계관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사람들에게 세계관이 필요한 이유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한 배경이라는 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빠르게 달리는 차에서 차창을 보면 멀미가 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멀미가 나면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하늘이나 먼 산과 같이 덜 변하는 안정적인 곳 말이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들은 언제나 환영을 받는다. 완성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단, 그 세계관을 구성하는 재료들은 현실의 것들이어야 한다. 새로운 현실로 구성된 오래된 가치는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친숙한 세계관 구성의 클리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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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리워하는 또 다른 것 중 하나는 과거다. 특히 나이가 들고 왜소함을 느낄수록 젊음과 활기가 넘치던 시절이 더욱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대체로 이때 접한 세계관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또 다른 새로운 가치로 다가온다. 예컨대 요즘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가 2021년 9월 말에 출시된 ‘디아블로 2:레저렉션(Resurrection)’이다. 이 게임은 출시된 지 20년이 넘은 게임을 스토리와 플레이 방식은 그대로 둔 채 그래픽, 사운드 등을 새로운 통신과 컴퓨팅 환경에 맞게 바꾸었다. 부활이나 소생을 뜻하는 ‘레저렉션’이란 부제를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오래된 게임을 하기 위해 서버에 접속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몇 시간씩 대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용자들은 주로 과거 디아블로2를 즐겼던 40∼50대들로 추정된다. 디아블로가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픈 욕망이 과거의 세계관을 부활시킨 핵심 요인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17년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발견하게 된다. 게임 내용은 그대로인데 그래픽 사양을 최신 사양으로 높인 스타크래프트는 중년 아재들을 다시 PC방으로 불러들였고 그 옛날 인기 연예인을 능가하던 프로게이머들 역시 다양한 미디어에 얼굴을 보였다. 2019년에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클래식’이 그 뒤를 이었다. 누가 불편하게 옛날 게임을 하겠는가라는 의구심을 비웃듯 유저들이 몰려들어 수천 명이 대기열에 줄을 설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게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옛날 영화 ‘타짜’가 유튜브에서 강제로 소환된 것이나 트로트 열풍은 지금은 사라진 아련한 ‘리즈’ 시절을 그리워하는 ‘탑골 청년’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옛날의 문화를 신세대들이 ‘힙’한 문화코드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 속 전통 놀이가 로블록스라는 게임 속에서,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모두가 하는 게임 소재로 재현되는 방식이다. 이런 순환은 유사한 주제를 새로운 소재를 통해 구현하는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MZ세대가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공감대를 얻으며 함께 살 수 있는 근거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결국 새로운 세대에게 꼰대가 되지 않고 세련되게 접근하는 방식은 매력적인 세계관을 통해서다. 물건이든, 서비스든, 아니면 가치든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심리학박사 zzazan01@daum.net
필자는 중앙대에서 문화사회심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명지대와 중앙대 비전임교수를 거쳐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 『게임 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출간했으며 기술과 사회, 그리고 심리학이란 키워드를 연결하는 연구와 강연을 지속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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