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김영걸 KAIST 교수 인터뷰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지현(중앙대 신문방송학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김영걸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기업과 정부기관 등에 지식경영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는 시스템과 IT에 의존하기보다는 자발적인 학습조직 활동을 통해 문서화할 수 없는 지식까지 활발히 교류되는 재미공동체(CoF·Community of Fun)를 만들 것을 주창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지식경영학회 추계학술대회의 기조연설도 ‘지식경영의 진화: 통 경영에서 펀 경영으로’라는 주제였다. 서울 홍릉 KAIST 캠퍼스를 찾아 한국 지식경영의 현주소는 어디인지, 펀 경영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왜 필요한지, 어떤 성공 사례들이 있는지 들어봤다.
지식경영이 한국에 들어온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식경영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크게 이슈가 됐던 개념이다. 당시 한국은 IMF 구제금융과 경제위기로 인해 기업들이 크게 당한 직후였다. 그래서 ‘이제는 주먹구구식 경영으로는 안 된다. 지식으로 경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잘 먹혔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신지식인’이란 용어를 쓰면서 옛날 지식은 필요 없고 신지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언론부터 대통령까지 지식경영에 대한 궁합이 잘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그전까지는 기업에서 각종 지식이 전수,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컸다. 지식이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이 되지 않고 개인이 회사를 나가거나 부서가 바뀌면 지식도 같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비유를 하자면 지식경영 이전의 한국 기업은 초등학교만 계속 다니는 학생과도 같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올라가야 하는데 지식을 쌓으면 없어지고 쌓으면 없어지고 관리가 안 되니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았다. 물건 만들고 파는 데만 관심이 있었지 거기에 필요한 지식을 관리하는 생각은 별로 못했다. 그래서 외환위기 즈음 조직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반성론이 일었고 그 해결책으로 지식경영이 도입됐다.
학계에서는 KAIST가 지식경영의 보급에 앞장섰다. KAIST는 IT에 강점이 있는 학교라 경영학과 IT를 연계하는 지식경영에 이론적 뒷받침을 해줄 수 있었다. 또 1996년에 경영대학원을 개교하고 학교의 이름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던 때라서 지식경영이라는 흐름을 한번 이끌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식경영연구센터를 만들어 내가 초대 연구센터장을 맡았다. 해외에서 최신 지식경영 이론을 가져와 소개하기도 하고 국내 실정에 맞는 기업 연구를 진행했다. 언론사와 함께 기업 최고경영자와 중간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만들었는데 그중에는 지금까지 15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것도 있다. 또 고려대에서 기술혁신의 대가로 알려졌던 고 김인수 교수님을 모시고 지식경영학회를 설립했다. 이렇게 학회, 연구센터, 실무자/최고경영자 교육프로그램의 세 축이 한국 지식경영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세 축이 확립되자 그 다음부터 기업계로 지식경영 패러다임이 빠르게 확산됐다. 대기업들은 앞 다퉈 ‘지식경영팀’을 신설했다.
초기의 지식경영은 통 경영이었다. ‘통을 만들어 그 안에다 흩어진 지식을 넣자’는 식이었다. 조직원들이 각자가 갖고 있는 영업 노하우, 고객 정보 등의 지식과 경험을 혼자서 수첩 속에만 간직하지 말고, 회사 안에 커다란 통, 즉 IT 시스템을 만들어 여기에 담아서 다 함께 공유하자는 의미다. 크게 봐서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통 경영은 어떤 문제가 있나?
의도는 좋다. 그러나 실제로 도입해 보면 재미가 없어 활성화되는 데 한계가 있다. 지식을 통에 담는 일을 조직원에게 강요하니까 잘되지 않는다. 조직원은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적시에 꺼내 써서 효과를 봤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지식을 넣는 단계부터 회사에서 강요를 하니 시스템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시스템 도입 초기부터 김이 샌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지식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는 조직에서는 여러 가지 인센티브 제도를 쓴다. 지식을 통에 넣는 직원들에게 각종 포인트를 주는 제도도 도입하고 또 부서 간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공유하는가에 대한 경쟁도 시킨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통에 해당하는 주요 IT 인프라는 만들어져도 지식경영이 뜨거워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식을 통에 넣는 절차가 자발적이지 않고 강요적인 회사가 많다. 그러다 보니 통에 좋은 지식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지저분한 게 다 들어간다.
포스코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근무시간 중이고 당사자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사람 이름으로 시스템에 ‘지식’ 건수가 계속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알아봤더니 집에 있는 가족들한테 시킨 거였다. 또 어떤 IT 회사에서는 한 직원이 지식 리포트 같은 것을 계속 올리는데 올라가는 속도가 도저히 사람의 손으로는 할 수 없는 정도였다. 알고 봤더니 IT 전문가인 이 직원이 괜찮은 리포트들을 인터넷에서 긁어서 올려버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돌리고 있던 거였다.
또 다른 회사에서는 지식경영 시스템에 리포트 한 건 올릴 때마다 2점을 준다고 하니 직원들이 하나의 리포트를 세 개로 쪼개서 올려서 6점을 받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시스템에, 양에 중점을 두는 지식경영 시스템을 만들면 실제로 현장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진다.
이러다 보니 등록지식의 품질관리가 잘 안 된다. 정보의 양은 많은데 질이 형편없다 보니 사람들이 안 쓴다. 약으로 치면 진통제처럼 꼭 필요한 약은 없고 비타민처럼 먹으나 안 먹으나 별 차이 없는 약들만 가득한 거다. 인터넷에서 긁어 온 독후감 같은 건 10만 건, 20만 건 있어 봐야 정작 중요한 정보를 찾기만 힘들어진다. 그러니 사용률은 더욱 떨어진다.
두 번째 문제는 보안과 활용 간의 갈등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식의 공유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지식의 보안 유지도 강조하고 있다. 보안은 양날의 검과 같다. 지식을 공유하면서 너무 보안 장치를 세게 걸면 읽기가 어려워서 활용이 안 된다.
내가 진단하고 자문했던 한 대기업의 예를 들겠다. 연구원만 2000명이 넘는 큰 회사다. 가서 봤더니 이 기업의 사내 연구소에 1급 보안을 걸어놓은 기술보고서가 약 7000건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문서들이고 핵심 자산이다. 그런데 1급 보안이 걸린 기술보고서를 읽으려면 우선 자기 부서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그 부서장이 임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해당 임원은 문서를 만든 부서의 임원에게 승인을 요청하고, 그쪽 임원이 승낙해도 담당 부서장의 승인까지 거쳐서 보고서를 볼 수 있게 해놓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생산단지 중앙에 위치한 도서관에 가서 문서를 대여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연구원만 2000명, 직원을 다 합치면 몇 만 명이 되는 기업인데 7000건의 1급 보고서를 보는 사람이 한달에 15명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왔다. 거의 아무도 안 보는 거다. 도서관에는 가장 핵심이 되는 1급이라고 쌓아놨는데 보는 사람이 없다니 뭔가 잘못된 거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둘 중 하나다. 1급 보고서들의 내용이 허접하거나, 내용은 1급이 맞는데 보안을 너무 세게 해 놓으니까 다들 알아서 다른 방법으로 보고 있거나. 물론 답은 두 번째다. 가만히 살펴봤더니 연구원들은 기술보고서를 만들 때 대부분 보고서 한 부는 연구소에 제출하고 한 부는 자기가 보관용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만든 1급 보고서를 보고 싶다고 하면 굳이 복잡한 결재 절차 걸치지 않고 ‘어느 부서 누가 한 거다’라는 정보를 가지고 직접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보는 거였다. 까다로운 보안 절차가 소용이 없다. 쓰기만 어렵게 만들어 놓은 거다. 보안이 되기는커녕 활용도만 줄였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지식경영의 개념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영 시스템이 업무와 따로 노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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