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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카펠리 와튼스쿨 교수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건 기업의 책임이다"

조진서 | 147호 (2014년 2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최수정(고려대 경영학과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얼마 전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정태영 사장이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두 회사가 국내외 아티스트들을 불러 성공적으로 개최해온슈퍼콘서트에 대한 말이었다. “어떤 해외 가수가 한국 공연을 하기로 하고 현대카드에 연락. 한국 초연, 너무 확실한 아티스트. 이전 같으면 당연히 슈퍼콘서트로 진행했다. 그러나 이제 슈퍼콘서트에도 영혼이 깃들어야 할 때라 패스. 아직은 젊고 앨범도 몇 장 없는지라 울림이 작을 것 같아서.”

 

여느 때처럼 정 대표의 글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그중엔 이런 말도 있었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은 슈퍼콘서트 출연자도 경력자로 뽑는군. 이러나저러나 신입이는 갈 데가 없다.”

 

물론 글쓴이는 정 대표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었다. 기업들이 신입사원보다 경력사원 고용을 선호해 대학생들의 취업 문턱이 점점 높아지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요즘은 대학 졸업반 학생들을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4학년 학생들은 졸업 후 기업, 특히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이나 화려한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학점, 토익점수, 자격증, 인턴경력, 자원봉사 등스펙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다. 하지만 번듯한 기업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주요 기업들의 입사 경쟁률은 수백 대 1에 달한다. 명문대 졸업생을 기업이 모셔가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젊은이들은 취업란에 시달리는데 이상하게도 기업은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2013년 말 기업 인사담당자 499명을 대상으로 인재 채용의 어려움에 대해 물었다. 가장 많은 응답자(48.3%)적합한 인재가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공계 인재를 찾는 기업들은 기업 현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인력을 찾기 힘들다고 불평한다. 연봉만큼의 기여를 할 수 있는 신입사원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한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등 외국에서도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입사 지원자가 갖고 있는 기술 간에 존재하는 이른바기술격차(skills gap)’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자리가 나면 경력사원 채용을 선호하고 경력이 없는 신입 지원자는 아주 낮은 급여를 주거나 아예 급여가 없는 인턴직으로만 고용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맨파워그룹(ManpowerGroup) 2012 1300개 이상의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49%의 채용 담당자들이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1  위에 언급한 한국 기업 설문과 비슷한 수치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이자 와튼 인적자원센터 소장인 피터 카펠리(Peter Cappelli) 교수는 이런 기술격차의 문제는 구직자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기업의 과욕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부품사회(Why Good People Can’t Get Jobs)>라는 책을 통해 기업들의 채용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기업계를 비난하는 경제학자나 정치학자, 사회학자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경영학자, 특히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꼽히는 와튼스쿨의 HR 전문가가 기업을 비난하고 나섰다는 점은 특이할 만하다. 카펠리 교수는 신입사원 채용을 꺼리고 원하는 포지션에 딱 맞는 경력과 기술을 가진 경력자를 선호하는 기업 HR 담당자들의 습성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기업 자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실을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카펠리 교수는 부시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 전국직장교육증진센터(National Center on Educational Quality of the Workforce)의 이사를 지냈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게 기업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이아몬드가 비싸긴 하지만 없어서 못 사지는 않는다. 돈만 충분히 쓸 생각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이아몬드를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쓸 인재가 없는 게 아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고용주가 시장 가격을 지급할 능력 또는 의지가 부족한 것뿐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몸값이 비싸다곤 하지만 그만한 몸값을 지불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필요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고용시장에서 기업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다. 구직자들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업무라도 서로 다른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고용주가 충분히 둘러보면 비교적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할 의향이 있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은 임금으로 더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다.

 

고용주들이 사람을 찾는 데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지원자가 많아졌고, 지원자를 찾는 일이 그만큼 예전보다 쉬워졌고, 비용도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지원자가 너무 많고 그들의 자질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하지 않고 완벽한 자격을 갖춘 지원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거나 더 싼 값에 일해 줄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 데이트할 수 있는 상대가 많아지면 오히려 더 꼼꼼히 따져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채용에 대한기업 책임론에 수긍하지 못할 것 같다. 만나본 기업인이나 와튼의 경영학자 중에서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는가.

 

동료 경영학자 중에서는 그런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또 내가 만난 고용주(기업인)들도 그들이 원하는 인재를 고용시장에서 왜 찾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 많이 당황하고 좌절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의 본질은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구직자들이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기업이라는 것이다. 교육과 훈련에 대한 투자 없이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다른 기업으로부터 인재를 빼오려는 식으로 접근하는 기업은 앞으로는 힘들 것이다.

 

구직자들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에 대해서, 즉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실무에서는 별 쓸모가 없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실제로 자질을 갖춘 이공계 인력이 부족하다는 속설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없다. 맨파워그룹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지원자의 지식 부족보다 경험 부족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즉 이전에 그 일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암묵적 지식, 경험의 부족을 문제 삼았다. 현대의 기업들은 별도의 교육을 받지 않고도, 또는 업무 적응 기간을 거치지 않고도 회사에 입사해서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하고 싶어 한다. 그런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그렇게 해서는 같은 직종에 종사했던 사람만을 뽑을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채용의 문이 좁아져 업무 현장이 위축될 것이다.

 

기업들은 구직자에게 전문기술을 요구하지만 정작 직접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데는 인색하다.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용이 든다고 해서 직원을 교육시키지 않고 채용도 늦어진다면 거기서 오는 손실은 더욱 크다. 딱 맞는 자격을 갖춘 직원을 뽑기 위해 3개월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3개월 전에 자질이 있는 사람을 뽑아 교육시키는 편이 훨씬 낫다.

 

연봉 9만 달러짜리 관리직 자리가 있다고 하자. 여기에 사람을 채용하면 부대비용까지 포함해 연간 12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이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둘 경우 그에 따른 기회비용 손실은 평균 약 다섯 배 정도가 된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이 쓰고 있는 HR과 회계 시스템에서는 사람을 뽑아서 들어가는 비용은 쉽게 눈에 보이지만 사람을 뽑지 않고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둬서 생기는 기회비용과 손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 기회비용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기회비용을 계산할 수 있는 HR용 계산 툴들은 온라인상에도 구할 수 있다. 내가 만약 기업의 HR 담당자라면 이런 도구들을 가지고 구인기간이 길어지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을 측정해서 CFO를 설득할 것이다. 모든 조건이 딱 맞는 지원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자질이 있는 지원자를 빨리 뽑아서 고용과 훈련에 투자하는 게 더 이득이다.

 

근본적으로 과학기술과 경영기법의 발달로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근무시간 단축이나 잡셰어링(job-sharing)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회의 생산성이 증가한다고 해서 무조건 일자리 수가 감소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생산성은 계속 증가해 왔지만 일자리 역시 꾸준히 늘어났다. 생산성 증가는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경제가 더욱 빠르게 성장하도록 해준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이다.

 

한국 기업들은 인력 관리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경험과 지식을 갖춘 엔지니어들이 연차가 올라가면서 관리직으로승진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행이 과연 바람직한가?

 

미국 기업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다가 엔지니어들이 관리(managing)하는 일에는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게 되면서 엔지니어를 관리직으로 보내는 일이 줄어들었다. 엔지니어들이 관리직으로 옮기는 이유는 본인들이 원해서라기보다는 금전적인 보상이나 사회적 지위라는 측면에서 기술직보다 관리직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높임으로써 오랫동안 전문가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동기부여해줘야 한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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