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the Maestro: 최희암 전 연세대 농구부 감독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문경(건국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최희암 전 연세대 농구부 감독은 선수 시절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 명문대에 스카우트되지 못하자 입학시험을 보고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실업팀인 현대조선에 입단했지만 스타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1983년 농구에서는 잠시 떨어져서 현대건설에 입사해 일반직 직원으로 3년 이상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6년 모교인 연세대 농구부에 다시 합류한다. 최 감독이 이끄는 연세대 농구부는 1997년 남자프로농구팀이 창설되기 전까지 실업팀과 대학팀이 함께 참여한 국내 최대 규모의 농구대회인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으로는 유일하게 2번이나 우승했다. 연세대 농구부를 최정상에 올려놓은 최희암 감독은 1990년대 스타 농구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등 스타 선수들을 휘어잡은 최희암의 리더십은 크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직장에서는 장부에서 단돈 1원도 틀리면 안 된다. 그만큼 빡빡하다. 그런데 대학 농구팀 감독은 시간이 많다. 한량이다. 직장생활에서 했던 노력의 절반 정도만 해도 됐다. 열심히 하다 보니 경험이 쌓였고 성과도 생겼다. 성과를 내다 보니 확신이 생겼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주어진 환경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뭔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최 감독을 서울 광화문의 한 전통찻집에서 만났다.
사기를 북돋는 방법으로 흔히 당근과 채찍이 사용된다. 어떻게 가려서 활용해야 하나.
자신이 ‘스타’라고 착각하는 선수들, 흔히 말하는 ‘에이스’들은 잘못했을 때 크게 야단을 쳐야 한다. 나도 선수생활을 해봐서 잘 안다. ‘잘한다, 잘한다’고 치켜세우면 선수들이 기고만장해지기 쉽다. 조직의 분위기도 깨뜨리려고 한다. 숙소 이탈, 음주 등 일반적인 규칙과 내규조차 무시한다. 그런데 이들이 경기에서 너무 잘하니까 꾸짖기도 어렵다. 나는 일관성을 가지고 선수들에게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했고 이를 어긴 선수들은 아무리 농구를 잘해도 야단쳤다. 그런데 능력이 있는 선수들은 ‘끼’가 있다. 감독이 선수의 끼를 너무 죽이면 선수들이 속으로 뒤틀려서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때도 있다. 서장훈 선수는 야단을 치면 반발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일단 야단을 친 뒤 이후에 그 이유를 상세하게 알려줬다.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게 중요하다. 이상민 선수는 야단을 치든 안치든 알아서 했다. 다루기가 편했다. 중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은 자신감을 주려고 대체로 격려했다.
감독에게는 끼 있는 선수와 말 잘 듣는 선수 중 누가 더 필요한가.
둘 다 있어야 한다. 경기에서는 내내 못 뛰더라도 팀에는 중요한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매우 열심히 연습한다. 열심히 하면 보상을 받아야 한다. 농구선수에게 보상은 경기에서 뛰는 것인데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력이 부족해서 보상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대학 농구팀에서 이런 선수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들이 끼 있는 선수들에게 뭔가 모범을 보여줄 수 있다. 이 선수들은 자신의 능력보다 120%나 노력한다. 감독은 잘하는 선수들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이 선수들보다 훨씬 좋은데 왜 노력은 50%밖에 안 하나. 저 친구들은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는 120%의 노력을 하지 않나. 저 선수들처럼 네가 120%의 노력을 하면 너는 150%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경기에서는 잘 뛰지 못하지만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까지 순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선수들이 고참일 수도 있고 저학년일 수도 있다. 후보나 벤치선수들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기에 뛸 선수 5명을 선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능력이 뛰어나면 포지션이 달라도 배치하나.
경기에서는 공격과 수비를 떠나서 팀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선발로 나가야 한다. 선수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센터의 실력이 부족할 때는 아예 센터를 경기에 투입하지 않고 가드만 5명을 내보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실제 포지션이 센터가 아닌 선수를 센터에 배치한 적이 있다. 김택훈 SQ월드 농구팀 감독은 고교시절 가드였다. 이상민 선수가 연세대를 졸업하고 서장훈 선수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연세대 농구부에는 마땅한 센터가 없었다. 물론 포지션이 센터인 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실력이 다소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김택훈 선수의 포지션이 가드인데도 불구하고 센터에 배치했다. 김택훈 선수는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반 골, 1점 넣었다. 그가 태업한 게 아니라 가드 능력은 출중한데 센터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고려대에 15점 차이로 졌다. 하지만 김택훈 선수가 이후에는 센터 포지션에서 상당한 역할까지 해줬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가드를 센터에 배치하면 기존 센터 선수들이 반발한다.
실력이 부족해도 포지션이 센터라는 이유만으로 경기에 출전시키면 실력이 출중한 가드들은 ‘내가 저 선수보다 실력이 훨씬 좋은데 왜 경기에서 뛰지 못하냐’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다. 센터의 아버지가 감독에게 소주를 많이 사줘서 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면 가드를 센터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감독은 선수들이 불만이 생기지 않게 조율해야 한다. 우리는 ‘사기를 친다’고 표현하는데 선수들이 경기에 뛰는 시간을 조절해서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센터를 투입해야 하는데, 가드인 네가 실력이 더 좋으니 일단 먼저 뛰어라’고 말하고 이후에 센터를 원래 포지션이 센터인 선수로 교체할 수 있다. 물이 반쯤 채워진 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반이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 나는 5분밖에 안 뛰게 하지?’라고 아쉬워하는 선수도 있지만 ‘오늘 5분이나 뛰었다!’고 생각하는 선수도 있다. 선수들이 ‘5분씩이나 뛰게 해줬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감독에게는 중요하다.
농구 선수는 공격과 수비를 모두 해야 한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더 잘하는 선수도 있다.
기업에서는 영업과 생산 담당자가 분리돼 있지만 농구는 5명이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해야 한다. 특정 선수가 공격만 하고 나머지는 수비를 책임지는 구조는 아니다. 그래서 공격을 잘하는 선수도 수비를 대비해서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공격력이 탁월해도 리바운드를 위해서 감독이 공격을 좀 줄이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수를 모두 잘해내는 선수는 드물다. 골을 잘 넣는 선수들은 대체로 리바운드, 수비에 약하다. 수비에 과도하게 신경 쓰다 보면 공격마저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때도 있다. 감독이 선수의 능력을 고려해서 선수들의 공격과 수비의 비중을 적절하게 조정하고 팀의 득점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고교 농구팀에서 막 올라온 문경은 선수는 실업팀인 삼성과의 연습 경기에서 슛을 쏘지 않고 주저했다. 실업 선수들이 수비를 하니 신입생인 문경은 선수가 슛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게다가 수비마저 뚫려서 선배들에게 많이 혼났다. 슛을 던져도 골대에 들어가지 않고 튕겨 나와서 상대팀이 리바운드를 잡고 속공을 할 때도 잦았다. 선배들에게 엄청 깨졌다. 문경은 선수는 수비에 대한 부담감으로 슛을 제대로 쏘지 못한 것이다. 문경은 선수는 수비에 매달리면 안 된다. 그는 득점력이 높은 공격형 선수다. 골을 넣어야 팀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감독이 문경은 선수에게 ‘공격만 하라’고 할 수도 없다. 모든 선수는 골을 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묘한 방법으로 문경은 선수에게 수비를 덜해도 되도록 면죄부를 부여했다. 하루 날을 잡아서 모든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문경은 선수를 심하게 야단쳤다. ‘누가 너한테 수비하라고 했냐. 슛을 쏴야지 왜 못 쏘는 것이냐’고 다그쳤다. 이렇게 해서 선배들도 ‘문경은은 슛을 안 쏘면 감독한테 혼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문경은 선수에게 수비에 집착하지 않게 면죄부를 부여해서 문경은 선수의 득점력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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