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총합
전혀 예측 못했는데 갑자기 발생해서 걷잡을 수 없이 전개, 확산되는 ‘코코넛위기’에 대한 관심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표되는 코코넛위기는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극도의 환경 불확실성과 일단 발생하면 그 환경에 속한 대다수의 조직과 행위자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교란될 정도로 위험하다는 환경 불안정성이 그 특징이다. 그렇다면 코코넛위기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왜 지금 코코넛위기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는 것일까? 실제로 코코넛위기의 가능성이 그전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진 것일까? 무엇보다 코코넛위기는 예측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일까?
코코넛위기 원인의 조직이론적 해석들
코코넛위기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코코넛위기의 핵심 특성인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거시 조직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불확실성은 조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미래 환경의 변화에 대한 예측가능성 정도를 말한다. 불안정성이란 조직의 일상적 운영과정을 교란하고 생존과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환경 변화의 빈도와 강도를 뜻한다. 조직이론은 이런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문제에 가장 먼저 주목한 학문 분야다. 조직이론가들은 1950년대에 이미 조직과 환경 간 적합성이 조직의 성과를 결정한다는 상황적합성이론(Contingency Theory)을 통해 환경불확실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조직이론을 풍미했던 수천 개의 상황적합성이론 연구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가 바로 환경 불확실성, 불안정성, 역동성 등이었으며 조직이 이런 환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환경과 조직 간 적합성 여부에 따라 성과가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에머리(F. Emery) 교수와 트리스트(E. Trist) 교수는 미래 변화 방향을 예측할 수 없고 조직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빈번히 발생하는 환경을 ‘소용돌이 치는(turbulent)’ 환경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환경이 바로 코코넛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환경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할까?
상황적합성이론은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제시해왔다. 퍼로 교수는 예외(exception)의 빈도와 분석가능성(analyzability)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원인을 진단한다. 즉 항상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건이나 문제 이외에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그런 예외적인 문제의 원인과 메커니즘의 분석가능성이 낮을수록 환경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또 에머리 교수와 트리스트 교수는 환경의 복잡성과 상호연결성이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초래해 소용돌이치는 환경을 형성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복잡성이란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수와 이질성을 말하는데 어떤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소들이 다양하고 서로 성격이 다를수록 환경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머리 교수와 트리스트 교수는 이 환경 요소들이 서로 연결돼 있는 정도가 높아질수록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환경 구성요소들 간 연결성이 높을수록 어떤 한 가지 요소에서 발생한 변화가 다른 환경 구성요소들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마치(J. G. March) 교수의 ‘쓰레기통이론(garbage can theory)’도 환경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설명에 유용하다. 그의 이론은 서로 관계없는 별도의 요소들이 우연히 동시에 발생하며 서로 상호작용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엉뚱한 결과를 낳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은 마치 쓰레기통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양한 쓰레기들을 버리기 때문에 어떤 쓰레기 믹스가 나오느냐는 결과는 언제 쓰레기통을 비우느냐는 타이밍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에 제시된 이런 마치 교수의 독특한 이론은 1990년대에 물리학 등에서 제시된 복잡계이론의 핵심 통찰력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그는 이런 우연과 무작위적 상호작용이 ‘조직화된 혼돈상태(Organized Anarch)’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완충버퍼의 부재가 ‘당연한 참사’를 부른다
그러나 조직이론은 물론 모든 분야의 이론들을 통틀어 코코넛위기의 원인을 가장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예측하고 설명한 것은 조직이론의 거장 퍼로(C. Perrow) 교수가 1980년대 초에 제시한 ‘당연한 참사(normal accident)’ 이론이다. 코코넛위기의 대표적 예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위기라고 불리던 미국의 부동산가격 폭락에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필자가 예전 DBR에 기고했던 글에서 자세히 분석했던 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수많은 경제행위자들과 금융상품들이 극도로 복잡하지만 동시에 조금의 중복이나 완충버퍼도 없이 효율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발생한 사건이다. 미국 서민들이 은행 대출을 위해 담보로 잡았던 집값이 폭락하자 서로 연결돼 있던 금융상품들이 걷잡을 수 없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되면서 발생한 전형적인 ‘당연한 참사’였다. 챌린저호 참사나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참사,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 등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한 퍼로 교수의 ‘당연한 참사’ 이론은 수많은 요소들이 완충버퍼 없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 효율적이면서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작은 우연한 사건도 전체 시스템의 붕괴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엔지니어적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발생 가능한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해 합리적으로 설계하기만 하면 완충버퍼는 없어도 되는, 일종의 비효율성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들은 시스템 디자인 과정에서 완충버퍼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시스템 구성 요소들 간에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사소한 충돌만 발생해도 효율적 복잡성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붕괴라는 대참사로 연결된다는 것이 퍼로 교수의 ‘당연한 참사’ 이론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직이론은 코코넛위기를 발생시키는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원천을 다양한 요인들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조직이론가들의 이론들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잡성, 연결성, 그리고 완충버퍼 부재이다. 일단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수가 많고 또 이들이 서로 이질적 성격을 가지는 복잡성이 코코넛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거의 대부분의 조직이론들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서로 별개로 분리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연결성이다. 환경 구성요소들이 서로 연결돼 상호작용하는 경우 어떤 한 요소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도 전체 환경으로 급격하게 확산되므로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완충버퍼가 없는 효율적 시스템 디자인은 이런 문제가 중간에서 차단되지 않고 전체 시스템의 붕괴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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