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성과연봉제 등 사측의 새로운 인사제도 도입에 반발해 두 달간 파업을 벌여온 SC제일은행 노조가 회사로 복귀하겠다고 19일 밝혔다. 노조는 임금 등 경제적 이유로 일단 영업 현장에 돌아오지만 앞으로도 태업과 파업 등으로 경영진에 맞설 것으로 보인다.
SC제일은행 경영진은 임직원 개개인의 성과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하는 개별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그 이유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가 여러 다른 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도를 한국에도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직원 개개인의 생산성을 높여 조직 전체의 성과를 키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노조는 공동체적 조직 문화가 특징인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제도라며 반발했다. 한국의 다른 은행들도 도입하지 않은 제도를 굳이 먼저 도입할 필요가 있냐는 입장이다. 개별 성과연봉제가 결국 후선발령제도와 결합하면 구조조정 수단으로 쓰일 것이란 우려도 있다.
사실 직원 개개인의 직무 성과를 연봉 책정과 승진 등의 기준으로 삼는 성과주의 인사제도는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테일러리즘(Taylorism)이라 불리는 직무성과주의는 소품종 대량 생산에 적합한 제도로 초우량 다국적 기업의 필수 요건처럼 여겨져 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과 같은 주요 대기업은 물론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업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별 성과에 따라 연봉과 승진에 차등을 두는 기업들이 많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앞다퉈 ‘선진 인사·조직 제도’를 벤치마킹한 결과다. 해외든 국내든 현황만 놓고 보면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스탠더드’라고 부를 만도 하다.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장점은 조직 운영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개인의 직무와 달성 목표를 사전에 정의하고 정해진 기간 내 달성도를 평가해 보상과 승진에 차등을 두기 때문이다. 자연히 우수한 직원에게는 동기부여를 하면서 ‘솔저링(soldiering·군대에서 눈치보고 적당히 하기)’과 같은 근무 태만과 그에 따른 무임승차를 막는 효과를 낸다.
문제는 과연 ‘성과’를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해야 할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자고 나면 신기술이 등장하고 고객 요구가 급변하며 산업 간, 직무 간 융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개인의 직무를 중요도별로 정의해 놓아도 1년도 못 가 그 우선순위가 바뀌는 일이 허다하다. 성과주의가 지나치게 단기성과 중심으로 흐르면서 직원의 창의성 발현과 장기적 혁신을 저해한다는 시각도 있다. 지나치게 엄격한 상대평가가 팀원 간, 팀 간 협업을 가로막는 사례는 어느 조직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성과주의 인사제도가 더 이상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반론이 힘을 얻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테일러리즘과 다국적 기업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부터 지나친 성과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기업이라도 달성 전략과 인사·조직 제도는 다르게 가져갈 수 있다. 라이언에어와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저가항공사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두 항공사는 조직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저가’라는 혁신적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해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그런데 이를 달성하는 방법은 달랐다. 비노조 경영을 하는 유럽의 라이언에어는 철저한 성과 중심의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직원의 생산성을 높이고 우수한 직원을 영입하는 선순환 효과를 냈다. 반면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정규직 중심의 연공급 제도를 운영하면서 조직원 간의 임금 격차를 줄였다. 이는 직원의 충성도를 높이고 협업을 활성화해 결과적으로 이직률은 낮추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냈다.
전략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주주·경영진이 설정한 비전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려면 조직원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직원들이 자신의 비전과 회사의 비전을 일치시킬 수 없다면 비전 실현을 위한 전략은 그 동력을 잃게 마련이다. SC제일은행의 경영진과 노조원들이 인사제도에 대한 공방을 잠시 중단하고 먼저 미래 비전과 그 달성 전략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를 갖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비전은 하나여야 한다. 하지만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인사·조직 제도의 정답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한인재 경영교육팀장 epici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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