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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의 리더십

말 잘듣는 '손발'은 많은데 '똑똑한 머리는'...

고준 | 70호 (2010년 12월 Issue 1)
 
 
 
요즘 삼성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실행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실행력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던 삼성이 아닌가? 최근 만난 다수의 삼성그룹 임원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다. 삼성만이 아니다.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표기업의 임원 중에서도 실행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급성장했다. 한국 기업의 핵심역량으로 강한 실행력을 꼽는 이도 적지 않다. 추진력만큼은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한국 대기업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국 기업의 실행력이 퇴보하기 시작한 걸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실행에 대한 오해가 깨지고 있다. 한국기업의 강한 추진력은 엄격히 얘기하면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지 본래 목적했던 결과를 달성했느냐라는 실행의 본질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기업이 좋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빨리, 성실하게 실천했더라도 투입된 자원 대비 결과가 미미하다면 이를 성공적인 실행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실천이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본래 목표했던 결과, 또는 그 이상을 창출했다면 이를 성공적 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기업들은 실천에는 강하나, 실행에는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글로벌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전략 수립과 실행의 엄청난 차이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맘만 먹으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기업 전략 전문가의 자문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행은 온전히 기업의 몫일 수밖에 없다. 셋째, 한국 기업들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략적 목표와 사업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복잡한 시장 환경 속에서 세계 최고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한 차원 더 높은 실행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행의 성공 요소는 무엇인가?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그룹들이 내놓은 실행력 강화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실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리더십을 공통적으로 꼽고 있다. 같은 조직과 전략하에서도 최고경영자(CEO) 등 조직의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창출하는 결과가 판이할 수 있다는 경험적 가설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기업에 있어 리더십 이슈야말로 중요한 전략적 과제의 실행을 앞두고 가장 우선적으로 선결돼야 하는 핵심사안이다.
 
성공적인 실행을 위한 리더십 공식
이곤젠더는 지금까지 전 세계 약 15만 명의 리더들을 직접 대면, 평가하면서 제록스의 앤 멀케이, 닛산의 카를로스 곤, 할리데이비슨의 반 빌즈와 같은 수많은 실행 전문가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창업, 성장, 변화 및 회생 등 다양한 전략과제의 실행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리더십은 적어도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성공적인 실행을 이끌어내는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장기적이고 치밀한 전략적 식견(Strategic perspective)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 최대 잠재치를 달성하기 위한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난관을 뚫고 목표를 달성하는 강한 결과 지향성(Result-orientation)을 보였다. 또한 이들은 누구보다도 개인의 역량이 뛰어났지만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다 높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과 조직참여(Collaboration & Influencing)를 이끌어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것이다.
 
 
 
1.전략적 식견 (Strategic Perspective)
이곤젠더의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앤 멀케이와 카를로스 곤 등은 매우 높은 전략적 식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회사뿐 아니라 산업의 구조적 변화까지 고려한 장기적 전략을 수립했고, 시시각각 일어나는 단기적 해결 방안들조차도 회사의 장기적 비전에 어긋나지 않도록 고려하는 전략의 고수였다. 취임 초기 앤 멀케이가 현장의 소리에 집중한 것은 단지 조직에 감동을 주려고 한 것만은 아니었다. 회사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시간이 부족했던 그녀가 단시간 내에 시장 정보와 통찰력을 얻기 위해 생각해낸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수단이었다. 앤 멀케이는 본인의 현장 경험 및 현장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얻어진 정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회사의 명확한 중장기 사업 방향을 제시했고 이와 함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단기 실행 방안들을 조직에 제시함으로써 전사적 공감대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형성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리더들의 전략적 식견은 어떠한가? 여전히 단기적 시각에 치우쳐 있는 듯하다. 강한 추진력이라는 우리기업만의 독특한 명성이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중심의 기업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최근 국내 대기업들 간에 외부 인재 확보라는 과제가 화두다. 이에 따라 각 계열사들은 앞다투어 헤드헌터를 불러들이거나 채용 전담 직원을 지정하는 등 실행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를 주관하는 임원과 실무자 모두 이러한 인재 확보를 통해 회사가 얻고자 하는 궁극적이고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 이력서 상에 나타나는 표면적 조건만 까다롭게 따진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수한 인재일수록 기업이 자신을 고용함에 따라 목표하는 장기적인 목표와 전략에 주안점을 둔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재 확보에 대한 논의 초기단계부터 자사 전략에 대해 매우 세세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많은 경우 실적을 올리기 위해 채용 자체가 목표가 되고,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보다 차선을 선택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외부 인재 채용이라는 목표의 단기적 실천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조직의 전략에 맞춘 실행에는 실패한 셈이다.
 
단기 성과주의는 실행의 만기일을 중시하는 문화를 낳는다. 일부 기업에서는 목표 기간안에 일을 끝내기 위한 역산이 실행 계획 도출의 근간이 되는 식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벌어진다. 우리 기업에 영입된 많은 외국인 임원들이 이러한 한국 기업의 독특한 실행문화가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반면, 최근 국내 한 대기업이 대체 에너지 신규 사업 진출을 위해 해외 전문인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한국기업의 실행의 한계를 극복한 매우 전략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활용 방안 등이 사업의 장기 비전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5개년 실행 전략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전략 실행을 위해 영입해야 할 인재의 유형과 규모를 1년 단위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몇 개월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성공리에 영입했다. 이는 해당 산업 진출을 노리던 국내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2년 넘도록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였다.
2. 결과 지향성(Result-Orientation)
실행에 뛰어난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욕심이 많다. 그들은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는 일반인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로 비춰졌기 때문에 실행 초기, 이들은 모두 심한 비난과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략 과제의 실행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했다. 그리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목표를 차근차근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직의 신뢰를 얻어가는 성공 공식을 보여줬다. 또한 성공적인 실행 리더들은 돌발 상황에서도 매우 능숙한 대응을 보여준다. 발생된 위기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해하며 이에 기반한 즉시적이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이러한 모든 노력도 본래의 장기적 전략 및 목표에 준해 이뤄진다.
 
가령 앤 멀케이와 카를로스 곤 등도 실행 상의 위험요소를 예측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직접 사업장을 방문,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현장과 본사와의 거리를 단축시켜 실행 과정에서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위험요소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들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지(Down to earth)에 기반한 실행형(Hands-on) 리더로 발전했던 것이다.
 
우리기업의 리더들 또한 실행에 대한 욕심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기업의 리더들이 실행 현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원인은 보고 중심의 기업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보고 중심의 업무 체계에서 리더들은 실행초기부터 정보의 부족에 노출되고, 이로 인해 현실감각이 무뎌져 실무진에게 더욱 많은 보고를 요구하게 된다. 문제는 실무자들은 실무자 대로 실행 자체보다는 보고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쓰게 되고, 그 속에서 실행 자체에 대한 조직적 집중력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보고서만으로 업무 진행과정과 현재 상황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기업의 수많은 경영진 회의에 참석했을 때 보고서 외의 내용에 대한 질문에 자신있게 답변한 임원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결국 조급해진 리더들은 그들 또한 ‘보고’를 해야하기에 당장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이때 본래 업무의 목표나 추가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3. 협력과 조직 참여 (Collaboration & Influencing)
인사 전략을 수립할 때 듣는 말이 “한 사람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One man can do many things)”라는 격언이다. 문제는 이를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One man can do everything)”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모든 일을 한 사람이 다 잘 할 수 없다. 설령 멀티 플레이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잠재 가치와 조직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잠재 가치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 조직을 독려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카를로스 곤은 콧대 높은 닛산자동차 내의 일본인 직원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성실한 생활과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을 일관되게 보여줬다. 이 때문에 그는 ‘세븐일레븐’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위기의식을 고취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게 나의 일이고, 리더의 역할이다. 조직 내부에 위기감을 심고 행동에 나서게 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해 모든 조직원들이 스스로 노력하게 만드는 게 바로 리더다”고 말했다. “그가 천성적으로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면 그가 형식과 절차보다는 결과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인이라는 점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한국의 리더들은 이러한 협력과 조직 참여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의 사례만큼 깊이 고민하지는 않아왔던 것 같다. 사실 우리 기업은 공채라는 채용 구조로 인한 선후배의 명확한 구분과 상명하복에 익숙한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여전히 남아있는 평생기업이라는 통념은 내가 회사를 어떻게 평가하기보다 회사가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우리 기업의 리더들에게 사실 조직에 대한 동기부여와 자발적 참여를 위한 노력은 체감하기 어려운 성공 요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매우 다르다. 일례로 국내 시중은행에서 한때 유행하다시피 했던 영업력 강화 프로그램을 보자. 대부분의 은행이 이러한 영업력 강화 프로그램을 실행했고, 전 지점에 대한 교육까지 마쳤다. 하지만 이후 나타난 영업실적은 지점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 유사 조건의 지점 간 비교 분석 등을 통해 밝혀진 가장 큰 원인은 지점 직원들의 교육에 임하는 자세였다. 영업 실적이 현격히 향상된 지점에서는 공통적으로 해당 교육이 은행의 장기적 전략과 어떻게 부합하는지, 장기적으로는 본인들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이뤄졌고,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시 해당 지점에 파견됐던 교육훈련자(trainer)들은 이를 프로그램 초기부터 충분히 설명했고, 은행장, 부행장 등의 고위 임원이 올 때마다 그들을 통해 지점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교육의 전략적, 장기적 가치를 상기시켰다.
 
이와 함께 지점 직원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서고(은행의 창고 같은 곳으로 서고 정리는 말단 직원들의 전담업무임) 정리를 도와주면서 직원들이 교육에 열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결국 지점 직원들은 트레이너들에 대한 신뢰 속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가진 현실적인 필요성을 인식하고 교육에 임했던 것이다. 이 결과 현장 업무에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 내용을 꾸준히 실행하면서 혁신적인 실적 향상을 창출했다.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당시 트레이너들은 프로그램 실행의 리더로서 동료들의 협력과 참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던 것이다
 


실행의 리더십이 가장 빛날 때는 조직이 위험에 직면했을 때다. 잔뜩 움츠러든 조직원들을 일으켜 세워 새로운 비전과 전략에 맞는 변화를 실행에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1996년 르노자동차의 이사회는 결단을 내렸다. 이사회 내에서는 장기 침체에 빠진 르노자동차의 사업 체계를 정비하고 기업의 지속 성장을 이끌려면 구시대적 르노 방식이 아니라 신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리더를 외부에서 영입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시 이사회 의장이었던 슈바이처 회장은 신속하고 혁신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강한 실행 의지를 표명했다. 당시 43세라는 젊은 나이의 카를로스 곤이 프랑스 제일의 르노자동차 서열 2위의 수석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취임 후 1년 내에 대대적 비용 감축과 조직 체계 혁신이라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실행했고, 가시적 결과를 이끌어내 이사회의 기대에 부응했다. 실행 과정에서 인원 감축 등 단기적 미봉책에만 의지하지 않고 조달(procurement) 체계 정비, 제조과정 혁신 등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방법을 적용했다는 점도 고무적이었다. 르노 자동차는 1996년까지 이어졌던 고질적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 흑자로 돌아섰고, 카를로슨 곤의 취임 2년째인 1998년에는 유럽 자동차 업체 중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냈다.
 
그의 성공 공식은 닛산자동차에서 다시 확인됐다. 1990년대 말 자동차 업계의 경쟁이심화하면서 닛산자동차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시장점유율과 늘어나는 적자 및 부채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자본 제휴 파트너였던 르노는 닛산자동차에 소방수를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과거 행태를 답습하며,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던 닛산의 오만한 조직 문화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변화 혁신 지휘관 (Change Management Officer)으로 카를로스 곤을 선택했다. 당시 일본 재계는 일본의 대표기업인 닛산자동차가 외국인 CEO를 선택한 사실을 국치라고 표현했고 닛산자동차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비난과 거센 저항 속에서도 카를로스 곤은 기적과 같이 닛산자동차를 살려냈다. 1999년 주당 330엔에 불과하던 닛산의 주가는 일본 및 세계 경제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2005년 1월 1162엔으로 세 배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당시 GM의 주가는 60달러에서 26달러로, 포드는 33달러에서 9달러로 떨어졌고, 도요타 또한 주당 2700엔에서 3900엔으로 상승세가 꺾인 때였다.
 
생존의 위기 앞에서 제록스의 이사회도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회사를 회생시켰다.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을 대표하며 승승장구하던 제록스는 1990년대 말에 들어서자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며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2000년 회계부정 스캔들로 파산위기에까지 내몰렸다. 제록스 이사회는 자체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하고, 매각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사회는 어느 누구도 무너져가는 제록스 CEO를 맡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심사숙고 끝에 복사기 판매원 출신의 앤 멀케이라는 여성 임원을 CEO로 선임했다. ‘철(鐵)의 여인’으로 불리며 200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CEO이자 여성리더로 떠오른 그녀는 선임 당시만 해도 25년간 제록스에서 근무하면서 가정을 위해 몇 번이나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던 평범한 여직원에 불과했다. 그녀가 CEO 취임 초기 제록스의 회생을 약속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에게 혹독한 비난과 조소를 보냈다. 그러나 파산에 몰린 제록스가 선택한 CEO 앤 멀케이는 전략적이고 단호한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취임 후 2년 만에 제록스를 다시 세계 시장에 우뚝 세웠다.
 
앤 멀케이는 일방적으로 조직을 지휘하기보다 소통의 장을 열고 직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다소 독선적인 성향의 카를로스 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조직 내에 팽배한 파산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기 위해 CEO 재임 초기 3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미국 내 전 지역을 다니며 직원들과 만나 대화를 하고 독려했다. 거의 매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전 세계 제록스 직원들과 영업 전략을 논의하자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제록스의 재기는 파산의 위험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회사의 회생을 위해 노력한 CEO 앤 멀케이와 그녀를 보며 희망과 신뢰, 회생에 대한 확신을 얻은 직원들의 실행력에서 비롯됐다.
 
이곤젠더가 직접 만나고 평가한 앤 멀케이는 단순히 감성적인 리더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전략가였고,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필요할 때는 극단적인 의사결정 또한 마다하지 않는 치밀하고 욕심 많은 CEO였다.
르노자동차의 이사회가 선택한 카를로스 곤도 타고난 변화 지향성과 지치지 않는 열정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당시 카를로스 곤을 르노자동차에 추천했던 이곤젠더는 자칫 불도저 같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그가 사실은 매우 뛰어난 전략가이며 현실적인 목표와 치밀한 실행 계획 하에 과제를 이끌어가는 합리적인 리더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강인하고 독선적인 이미지를 가진 그가 사실은 협력을 이끌어내고 조직에 영향력을 미치는 측면(collaboration & influencing)에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실행을 위한 제언
한 기업의 실행 역량은 그 기업이 가진 리더십 역량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실행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 또한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자사 리더들의 실행 리더쉽에 대한 육성 및 강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역량 강화의 실행에서 우리 기업들만이 가진 독특한 조직 구조와 문화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이뤄질 수 있다면 이는 더욱 더 효과적이고 실효성 높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많은 기업들에 요구되는 실행 목표는 경쟁사가 노력 여부에 따라 금방 흉내내거나 아니면 따라 잡을 수도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닌, 산업 내 표준(Industry standard)을 재정의 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높은 수준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실행의 리더십 역량 목표 또한 당연히 이에 준하는 높은 수준이 돼야 할 것이다.
 
리더 개인의 실행 리더십 강화”
성공적인 실행에 앞서 리더는 어떠한 과제든지 이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한 방향성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특히 당면 과제 등 단기적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회사의 (일반적으로 5개년 또는 3개년 정도) 중장기 사업 전략 및 달성 목표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현재 실행하고자 하는 세부 과제들을 이에 비추어 연계시키려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만약 중장기 전략 자체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발견된다면 이 또한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목표가 선정되면 실행 계획 수립은 1.목표 달성에 요구되는 세부 과제 정의 2.세부 과제별 소요 기간 및 소요 자원 파악, 이에 기반한 3.총괄 실행 계획(master plan) 수립 과정으로 이뤄져야 한다. 기간 단축 등에 대한 섣부른 욕심으로 이 과정을 역으로 진행하는 반복적인 실수는 지양해야 한다.
 
 
실행 목표 수립은 항상 최대 잠재가치(full potential)에 기준을 둬야 한다. 다만, 실행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다양한 위험요소 및 변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터무니없는 목표를 제시한 리더에 대한 조직의 신뢰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리더들은 실행에 따른 위기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로 성공적인 실행의 리더들은 “똑똑한 리더는 70% 이상의 실행 변수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리더가 자신의 조직과 업의 본질 등에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있다면 더욱 효과적인 예측 및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한 회사에서 경력이 20∼ 30년씩 된 경력자들이 많은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의 리더들보다 훨씬 큰 이점을 가질 수도 있다. 위기 예측과 함께 지속적인 실행 과정 분석 및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이는 돌발 변수에 대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 기업의 치밀한 보고체계가 이러한 측면에서 활용돼야 할 듯하다. 정리와 요약, 적시성에서 탁월한 우리 기업 실무진의 보고서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 리더들은 전략적 방향성 및 목표 달성의 필요성 등에 대한 조직적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실행은 결국 기업의 몫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결국 실무진이 실행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실행력을 확보하려면 실무진의 참여와 사기진작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 기업의 리더들은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사내 홍보팀 또는 실무부서에 지시만 내리고 가끔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리더 스스로가 진심으로 조직적 공감대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민하고 시간과 자원을 적극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해외의 어느 리더는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무대위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는 광대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춤은 매우 우스꽝스러웠고 그가 하는 말들도 손가락이 오그라들 정도로 뻔한 말들이었는데도 진심이 느껴진다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 기업의 리더들에게 이러한 서양식 쇼맨십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카를로스 곤이 얻게 된 ‘세븐일레븐’이라는 닉네임과 앤 멀케이가 얻은 ‘철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은 어떤가. 방법은 여러가지다.
 
실행에 강한 한국의 조직 문화”
기업의 실행 경쟁력의 영속성 확보를 위해서는 리더 개인의 역량 강화와 함께 조직적 차원에서 또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역량 강화의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우선 조직 내 똑똑한 생각의 리더(thought leader)가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도 자사의 조직, 사업 및 산업을 모두 이해하는 전략의 고수들을 조직 내에 키워야 한다. 이는 단기 컨설팅 프로젝트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외부로부터 전략의 고수를 영입해 일정 기간 자사의 인재로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두산그룹, 효성그룹, 현대캐피탈 등은 이미 이러한 ‘생각의 리더’ 육성을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실무 분야별 전문가 육성은 어떠한 전략 과제든 실제 실행의 핵심은 이들이라는 사실에서 조직의 실행 역량 강화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외국 HR 전문가들은 공채 제도를 통해 한 나라의 최고의 인재들을 독점 채용, 운용하는 우리 대기업들이 실무 전문가 육성에는 가장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 대기업은 공채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얻고 있고, 이들 인재는 대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공채 제도를 통해 얻는 혜택이 크고 실질적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조금만 더 세분화 및 맞춤화하고 실무부서의 역할과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사부서의 행정적 지원하에 실무 부서가 후보자의 이력 검토와 면접을 주관한다면 직무 특성에 맞는 자질을 갖춘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 후보자도 본인이 원하는 직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에 성취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 또한 조직 내 직무/직위에 따른 전략적 인사정책도 필요하다.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경쟁사보다 월등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핵심 분야가 있게 마련이고, 이 경우 서열 중심 인사제도로는 이 같은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반드시 성과주의가 도입돼야 하는 직무/직위를 구분, 보다 유연한 인사 운용체계를 확대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해외 선도 회사들은 직무에 따라 차별화되고 세분화된 인사 운용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인사 임원 중 전략가 출신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현상도 이와 관련이 깊다.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 및 상호 간 협업체계의 증진을 위해서는 리더 개인의 노력 외에도 조직적 차원에서의 동기부여 제도가 필요하다. 노력과 성과에 대해 조직은 이를 분명히 인정해주고 이에 합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조직 내 협업을 독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견 또는 이해 상충 등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가 더 긴요할 수 있다. 우리 기업 문화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부서 간 이해 상충 및 견해 차이 등을 덮어두고 넘어간다면 향후 보다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이는 실행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직적 역량을 훼손하는 요인이다. 우리 기업도 부서 간 이견 및 분쟁을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조율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제도적 노력이 한국 기업 특유의 인간적 동료애와 결합하면 조직 내의 공감대 강화라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필자는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화학공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베인 앤 컴퍼니 컨설턴트를 거쳐 현재 이곤젠더인터내셔널 서울사무소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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