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유능한 냉혈한'보다 '마음 따듯한 바보'가 뜨는 이유

신동엽 | 56호 (2010년 5월 Issue 1)

기업이나 공공행정기관, 대학, 병원, 군대와 같은 조직은 ‘큰 기계’에 가까울까, ‘작은 사회’에 가까울까? 다른 말로 이 질문을 표현해보자면, 조직의 본질은 과업, 즉 일들의 조합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조합일까? 최고경영자(CEO)가 조직에 대해 갖고 있는 세계관인 ‘조직관’은 그 조직의 전략과 구조, 문화, 그리고 결과적으로 성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조직을 설계하고 경영하는 방식을 선택할 때 CEO의 조직관이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마음 따듯한 바보와 유능한 냉혈한
다음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보면 귀하가 조직을 두 가지 대표적 이미지 중 어느 쪽에 더 가깝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업무 능력은 출중하나 독선적이며 인정사정없고 인간성이 엉망인 사람이 있다. 반대로 능력은 좀 떨어지나 훌륭한 감수성과 따뜻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있다. 당신이 고용주라면 둘 중 어떤 사람을 선택하겠는가? ‘마음 따듯한 바보와 유능한 냉혈한 사이의 선택(nice fool vs. competent jerk)’이라는 딜레마 상황에서 의사결정은 경영자나 조직마다 달라진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과거 가족주의 문화를 강조하며 ‘마음 따듯한 바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 이후 서구식 연봉제적 성과주의와 능력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유능한 냉혈한’이 훨씬 더 대우받는 풍토가 확연하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들은 뜻밖에 서구 사회에서도 ‘마음 따듯한 바보’가 상대적으로 조직 성과에 훨씬 더 큰 기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이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동의 목적을 추구한다는 조직 고유의 특성 때문에 사회적 측면이 기계적 측면 이상으로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각자 서로 고립되어 자기가 맡은 일만 수행한다고 해서 전체 조직 성과가 반드시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21세기 창조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애플, 구글, 시스코, 사우스웨스트, IDEO, 3M 등을 보자. 이들 기업은 공동체 정신, 개방적인 인간관계, 재미와 놀이 문화, 감수성과 공감대, 열정과 비전, 핵심 가치 공유 등을 기업 경쟁력의 핵심 원천으로 강조한다. 심지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UC 버클리대의 조지 애커로프와 예일대의 거장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 교수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저서에서 “경제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전통적 경제학에서 비합리적이라고 간주됐던 사회 심리적 요소들을 이해하는 게 필수”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초에는 과업 수행 효율성의 극대화,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공학적 설계, 성과급 중심의 동기부여 등이 조직의 핵심 운영 원리로 이해됐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동안 기업 경영과 경제 정책에서 소외되어 온 조직의 사회적 측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기계론적 조직관의 헤게모니
현대 기업 조직은 20세기 초 미국의 프레드릭 테일러와 헨리 포드 등이 전파한 ‘과학적 경영(Scientific Manage-ment)’ 운동과 대량생산 시스템이 급속하게 확산되며 정립된 관료제적 산업 조직이 그 원형이다. 현대 조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조직을 거대한 기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기업은 망치나 톱과 같은 공구나 컴퓨터, 공장에 설치된 기계 설비 등과 연속선상에 있는 거대하고 복잡한 ‘과업 수행 기계’라는 것이다.
 
과업의 효율적 수행이 조직의 전부라는 기계론적 조직관을 바탕으로 등장한 현대 기업 조직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생산성과 효율성 증대를 가져왔다. 이는 조직뿐 아니라 전체 사회를 합리화(rationalization)시키는 중추가 되었다. 즉 ‘현대(modern)’ 사회의 도래는 기계론적 조직의 탄생과 확산으로 가능해졌다. 정치경제사학자인 칼 폴라니는 이를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변혁(The Great Transformation)’이라고 불렀다. 하버드대 경영사학자인 알프레드 챈들러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에 의한 ‘시장자본주의(market capitalism)’에서 조직과 경영자들의 ‘보이는 손(visible hands)’에 의한 ‘경영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로의 전환이 현대 사회의 문을 열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극단적인 기계론적 조직관은 다양한 사람들의 조합으로서의 조직이라는 사회적 측면을 철저하게 억압하고 배제했다. 현대 기업 조직의 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테일러와 포드는 원래 엔지니어 출신으로 마치 기계를 설계하듯이 조직을 설계했다. 이들은 조직을 구성하는 인간들 사이의 사회관계나 감정처럼 기계에는 없는 요소들은 모두 비합리적으로 보고 철저하게 배격했다. 조직 전체의 과업을 기계 부품처럼 세분화해 단순 반복 작업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다시 컨베이어 벨트 등을 통해 연결시켰다.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방법도 기계 사용 설명 매뉴얼처럼 구체적으로 미리 규정된 규칙과 절차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시켰다.
 
현대 기업 조직의 선구자들이 꿈꾸었던 이상적 기업은 경영에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완벽하게 공학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 같은 조직이었다. 기복이 심하고 통제가 어려운 인간관계나 감정 등 사회적 요소들은 조직의 효율적 작동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요소들을 모두 배제한 이런 기계론적 조직관은 찰리 채플린의 걸작 ‘모던 타임즈’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조직의 풍자 장면을 통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됐다. 나사를 조이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을 하루 종일 반복하는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조립 라인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만 인식됐고, 또한 그렇게 관리됐다. 이런 현상은 1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강하게 남아 있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종업원들과 관련해 가장 자주 언급하는 단어는 ‘인건비’다. 인건비는 기계 부품비처럼 비용 절감 대상의 일종이며, 조직에서 사람은 기계의 일부라고 보는 기계론적 조직관이 반영된 것이다.
사회적 조직관의 반격
기계론적 조직관에 심각한 한계가 있다는 비판은 이미 1920년대 말에 제기되었다. 1910년대에 테일러와 포드가 주도한 ‘과학적 경영’ 운동과 대량생산 체제가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소득은 단기간에 급상승했다. 하지만 회사와 경영진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 1920년대에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초래했다. 이때 컨설팅의 시조격인 하버드대의 엘톤 메이요 등을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학파(Human Relations)들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들은 노사 간의 상호 존중과 인정, 직무 만족과 사기, 동료 간 인간관계, 의사소통 등과 같은 인간관계적 요소가 기계적 요소들보다 조직 성과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론적 관점에서 기계론적 조직관에 체계적 비판을 정면으로 제기한 사람은 초기 제도 이론(Old Institutional Theory)을 만든 조직 이론의 거장 필립 셀즈닉 교수였다. 셀즈닉은 1940년대에 사회적 요소를 무시하고 과업 수행과 관련된 기계적 요소에만 초점을 맞추어 조직을 설계, 경영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셀즈닉이 단순한 기계론적 조직관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 이유는 조직을 구성하는 인간들의 특성 때문이었다. 테일러나 포드는 조직이 완전히 과업 수행을 위한 기계로만 작동하길 원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람들이 조직에 일하러 올 때 자신의 개인적 가치관이나 감정, 이해 관계, 다른 사람과의 사회 관계 등 조직 과업의 기계적 수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모든 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와야 한다. 그러나 육체와 정신이 항상 공존하는 존재인 인간은 이런 분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에 올 때도 여전히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을 지니고 온다. 이런 요소들이 기계적 과업 수행과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면서 조직을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경영자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셀즈닉은 조직이 과업 수행을 위한 기계인 ‘도구(tool)’로서 만들어지기는 하나, 사용자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말을 듣지 않는 도구(recalcitrant tool)’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조직을 과업 수행 기계로만 보는 단순한 조직관을 가진 경영자들은 원인도 모르는 채 성과 창출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셀즈닉은 조직의 본질이 경영자나 설계자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생명체와 같은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적 측면과 기계적 측면이 서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공동 진화할 수 있도록 통합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조직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유사한 주장은 19501960년대에 인본주의 경영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에 의해서도 제시됐다. 19701980년대에는 리처드 해크만이 일 자체에 대한 진정성 있는 흥미와 애정, 몰입에 기반한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중심으로 직무 구조의 근본적 재설계를 제시했고, 이는 실제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조직들에서 조직의 설계와 경영에 적용되기도 하였다.
 
21세기 창조 경제와 기계론적 조직관의 쇠락
그러나 사회적 조직관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게 된 결정적 계기는 창조적 혁신이 조직 생존과 경쟁력의 필수 요건인 21세기 창조 경제라는 독특한 시대적 환경 때문이다. 조직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한 기존 관점들은 인간과 조직을 과업 수행을 위한 기계로만 이해하는 것은 심각한 한계가 있으므로 반드시 사람들 사이의 사회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사회로서의 조직에 대한 관심은 이것이 21세기 글로벌 창조 경제에서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의 가장 중요한 경쟁 우위의 원천이라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
 
20세기에는 기존 강점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방어, 유지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초경쟁 환경(hyper competition), 신경제(new economy), 지식 경제(knowledge economy), 또는 창조 경제(creative economy)라고 불리는 21세기는 끊임없이 새로운 강점과 가치를 남보다 먼저 창출해내는 창조적 항구 혁신이 필요한 시대다. 그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던 새로운 가치들을 끊임없이 공격적으로 만들어내는 애플, 구글 등 창조적 기업들이 21세기를 주도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런데 21세기 환경에서 생존과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창조적 혁신은 기계론적 조직관을 통해서는 창출이 불가능하다. 기계론적 조직관에 기반한 조직은 구성원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미리 정해진 방법과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수행하도록 강요한다. 반면 창조적 혁신은 주어진 일을 지시받은 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해야 창출 가능하다. 이런 창조적 혁신 시도는 결코 기계로 대체될 수 없다. 반드시 창조적 사고를 하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계론적 조직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즉 조직을 살아 있는 인간들의 공동체인 사회로 보는 사회적 조직관이 21세기 창조 경제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21세기 창조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들은 사회적 조직관에 기반한 새로운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애플, 구글, 시스코, IDEO, 3M, 사우스웨스트 등의 리딩 기업들은 회사 공간을 마치 놀이터나 카페처럼 만들어놓는다. 조직 내 구성원들 간 사회 공동체를 창출함으로써, 구성원들 간 활발한 소통과 토론을 통해 창조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직무 구조도 과거 기계론적 조직관에서는 하루 8시간이라는 근무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숨쉴 틈 없이 치밀하게 과업 수행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치밀하게 감시 감독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런 기업들조차 2:8 혹은 15:85 법칙 등과 같이 근무 시간 중 일정 부분은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미래에 대해 꿈꾸고 상상하는 데 사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직무 설계도 과거 구성원들을 일종의 기계 부품으로 보고 지루한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도록 만들었던 것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 도전적이고 흥미진진한 일을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수행하도록 재설계해,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사회적 조직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공포에 의한 경영’의 한계와 개방적 창조 공동체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도 연봉제와 같은 성과주의에서 일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 흥미 등 감성적 요소를 중심으로 한 내재적 동기부여(intrinsic motivation)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조직 모델도 종업원 간의 내부 경쟁을 강요했던 전형적인 20세기 방식에서 벗어나 구성원들 간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치를 창출하는 ‘개방적 혁신 공동체(open innovation community)’라는 사회적 모델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포드와 테일러에 의해 제시된 대량생산 조직들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었듯이 기계론적 조직의 단순 반복 작업은 구성원들의 심리적 소외와 동기부여 저하를 초래하게 된다. 동기부여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론적 조직은 더 많은 감시와 통제, 그리고 징계 수단들을 추가적으로 마련하게 된다. 이는 결국 소설 <1984>에 나오는 것 같이 처벌이나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 자기 의지대로 시도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는 ‘공포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Fear)’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러나 창조적 혁신은 절대 타율적 통제와 처벌에 대한 공포에 기반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이는 학계의 정설일 뿐 아니라 상식이다. 따라서 창조적 항구 혁신에 강한 기업들은 조직 내부를 생존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 경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일과 조직에 대해 애정과 공감대를 공유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개방적으로 아이디어와 지식을 공유하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조직을 변화시킨다.
 
머리나 정보, 지식만 모으는 단순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활동에만 의존해서는 창조적 혁신에 성공하기 어렵다.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지식과 역량뿐 아니라 관심과 열정, 그리고 정서적 공감대까지 하나로 모으는 ‘하트스토밍(Heartstorming)’이 필요하다. 조직을 사회적 공동체로 인식할 때만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 글로벌 리딩 기업들과 학계에서는 21세기형 창조적 혁신을 시장 경쟁을 통해 창출되는 경쟁적 혁신이 아니라 창조 공동체에서의 협력과 공유를 통해 창출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으로 보고 있다.
 
전통적 조직관에 따르면 개인에게 주어지는 과업은 경제적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보상 획득에 필요한 최소의 노력만 기울이는 ‘피상적 행동(Surface Action)’을 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혁신적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 진정한 창조적 혁신을 위해서는 반드시 일 그 자체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갖고 창조적 혁신에 자발적으로 깊숙이 몰입하고 노력하는 ‘심층적 행동(Deep Action)’이 필요하다. 이런 심층적 행동은 조직을 과업 수행 기계로 보는 전통적 조직관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조직을 각자 다른 가치관과 관심사, 그리고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이 모인 사회 공동체라고 보는 사회적 조직관에서만 나올 수 있다.
 
21세기 한국 CEO들의 조직관
이제 다시 이 글의 맨 앞에서 제시했던 ‘마음 따듯한 바보와 유능한 냉혈한 사이의 선택’ 딜레마로 돌아가보자. 마음 따듯한 바보가 유능한 냉혈한보다 조직 성과에 더 크게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은 바로 조직의 사회적 측면 때문이다. 조직의 모든 과업은 각 구성원이 서로 고립돼 혼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 없이 다른 구성원들과의 상호 작용 관계 속에서 수행된다. 이런 조직의 사회적 측면 때문에 어떤 구성원의 태도와 행동은 당연히 다른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천재적 구성원이 아무리 뛰어난 개인적 역량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성과나 협력 작업의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 전체 조직의 성과는 저하된다. 예를 들면, 창조적 혁신은 서로 다른 다양한 지식과 역량, 가치관, 관점들을 자발적이고 개방적으로 공유할 때 창출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우수해도 인간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구성원이 있으면 이런 개방적 공유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한국 기업들은 서구 성과주의의 영향으로 경쟁을 통해 자기가 맡은 과업의 단기 성과 창출에만 전념하도록 만드는 극단적인 기계론적 조직관을 급속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또 대부분의 CEO들이 이런 방향으로의 변화가 경영의 합리화와 현대화라고 믿고 있다. 한마디로 이는 시대착오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급하게 수혈된 단기 성과주의와 내부 경쟁 중심의 조직 경영은 우리 기업들에서 공동체적 인간 관계를 붕괴시켰다. 더 나아가 조직 내 인간 관계를 철저하게 계산적인 계약 관계나 경쟁 관계로 전락시켰다. 이런 기계론적 조직관은 10여 년 전까지는, 그리고 대량생산의 논리가 지배하였던 20세기 100년간은 유효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조직관은 유효 기간이 끝나고 급속하게 폐기되고 있는 낡은 관점이다.
 
과업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수행이라는 기계적 측면은 모든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조직에는 기계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 측면, 감성적 측면, 인지적 측면, 문화적 측면 등 무수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런 다양한 조직관들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서로 모순적이고 충돌하는 듯이 보인다. 따라서 대부분의 CEO들은 이 중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특정한 한 가지 조직관을 선택하여 마치 그것이 조직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듯이 착각하고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조직관은 반드시 심각한 경영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유능한 CEO는 서로 다른 다양한 조직관들을 개방적으로 수용하여 이를 창조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창조 경제에서 시대착오적인 20세기형 기계론적 조직관을 맹신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 심지어 단기 성과주의에 치우친 기계론적 조직관의 원류이던 미국 기업들도 21세기 창조 경제 시대를 맞아 최근 그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 공동체적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창조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이 개방적 공동체 문화를 경영의 핵심 화두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CEO들의 조직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