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으로 인도 2위 이동통신 그룹 바르티 엔터프라이즈를 키워낸 수닐 바르티 미탈 회장이 직접 밝힌 자신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는 권한 위임이었다.(DBR 53호 109쪽 참조)
미탈 회장의 말대로 권한 위임은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 중 하나다. 경영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동기부여 수준이 높아지면 업무 몰입도가 향상되고 직원들의 창의성과 혁신 역량이 높아진다. 따라서 권한 위임을 위해 회사의 규정을 고치고 결재권을 조정하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권한 위임의 수준은 낮다. 기업 구성원들의 업무 몰입도나 직장 생활 만족도도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권한 위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리더가 늘어나고 있고, 권한의 하부 위임을 촉진하는 기업의 규정이나 제도 개선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권한 위임과 관련한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저명 경영학 학술지인 (Vol.53, No.1, 107∼128)에 발표됐다. 아메리카대 연구팀이 중국 대기업 간부와 종업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리더가 권한을 위임했을 때 실제로 권한이 이양됐다는 직원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졌고 이는 직원들의 창의적인 업무 수행 및 내재적 동기부여 수준을 향상시켰다. 결국 권한 위임을 더 많이 할수록 종업원의 창의성이 향상됐다.
특히 이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권한 위임 수준에 영향을 주는 4가지 요소다. 권한 위임 수준이 높아지려면 의미, 능력, 자율권, 영향력 측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의미란 해당 업무가 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와 관련돼 있다. 능력은 해당 업무를 수행할 만한 자질이나 역량을 갖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자율권은 실제 업무에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뜻한다. 영향력은 자신의 결정 사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다시 말해, 권한 위임을 제대로 하려면 직원들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을 수행할 만한 역량을 스스로 갖췄다고 인식하면서 △자발적인 의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결재 권한을 조정하거나, 몇몇 제도를 바꿨다고 해서 권한 이양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재권을 하부로 위임했다 해도 사사건건 보고를 해야 한다면 실질적인 권한 위임은 요원하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권한 위임의 수준은 결재 건수가 아니라 e메일 보고 건수로 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수닐 바르티 미탈 회장의 말도 이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회사가 문을 닫아버릴 정도’로 권한을 위임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을, 충분한 역량을 가진 직원에게,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줬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일은 당신에게 맡긴다’는 말 하나로 권한 위임이 끝나는 게 아니다. 리더는 직원들에게 정말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맡겼다는 점을 제대로 설득해야 한다. 진정으로 직원을 믿고 업무를 맡긴다는 진정성도 보여줘야 한다. 직원들의 업무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권한 위임은 제도나 프로세스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