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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 접근법

‘새로운 우리’ 라는 집단 정체감 쌓아야

박수애 | 51호 (2010년 2월 Issue 2)

끊임없는 내부 혁신과 개발로 성장을 이루어왔던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도구로 기업 간 협업을 선택하고 있다. 협업을 앞둔 기업은 누구와 어떤 형태로 협업을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한다. 누구와 어떤 형태로 협업을 하든지 간에 협업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많이 사전 조사를 하고 계약서를 정교하게 쓴다고 해도 결국 성공적인 협업은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협동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조직을 다루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조직을 하나의 실체로 보고 그 속에서 움직이는 개인의 심리적인 역동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 실체는 결국 사람이며 사람을 움직여야만 조직이 움직인다. 이 글에서는 기업 간 협업을 각 조직에 속한 사람들 간 협동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성공적 협업을 위한 심리적 포인트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합병과 협업에서 집단 정체감 형성의 차이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되면 사람들은 집단 정체감(group identity)을 형성한다. 인종, 성, 국가, 회사, 지역, 세대 등 자신이 속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자신을 파악할 때 집단 정체감을 갖게 된다. ‘삼성맨’ ‘현대맨’ 등의 용어는 모두 특정 기업의 일원으로서 집단 정체감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집단 정체감이 형성되면 사람들은 그 정체감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기업들은 신입 사원이 자기 기업의 집단 정체감을 형성할 수 있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 정체감은 한 기업의 일원으로 공통된 가치관과 행동 양식, 판단의 기준을 내면화시켜 준다.
 
집단 정체감이 그 모습을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낼 때가 바로 기업 합병이다. 많은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통해 기업들은 성공적인 합병을 위해서는 합병된 기업 간 문화 차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문화란 내면화된 집단 정체감에 존재하는 가치나 사고, 행동의 원칙, 관습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문화 차이는 집단 정체감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합병된 하나의 기업으로 공통된 집단 정체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기존 조직의 집단 정체감이 그대로 유지될 때 합병은 실패로 끝난다. 만약 합병을 했는데도 복도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쳤을 때 상대방이 우리 회사 출신의 사람인지 혹은 합병된 상대 회사 출신의 사람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면, 혹은 승진자 중에서 우리 회사 사람은 몇 명이고 상대 회사 사람은 몇 명인지를 꼽는다면 합병에 들어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합병보다 다양한 형태의 기업 간 제휴를 통한 협업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합병보다 협업에 있어서 집단 정체감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합병은 양측 기업이 동등한 위치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주(主) 기업이 부(附) 기업을 흡수하는 형태로 합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주 기업에 속하는 구성원들의 집단 정체감은 그대로 유지되나, 흡수되는 부 기업의 구성원은 과거의 집단 정체감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감을 형성해야 한다. 따라서 합병에는 언제나 새로운 정체감을 무리 없이 형성해내야만 한다는 부담스런 과제가 뒤따른다. 반면 협업의 경우 관련 기업 구성원이 자신의 집단 정체감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다. 자신의 정체감을 유지한 채 다른 기업의 구성원과 협동을 하면 된다. 따라서 서로 다른 집단 정체감을 지닌 사람들 간의 협력을 촉진하는 과제만 남게 된다.
 
우리와 그들 간 갈등을 발생시키는
‘최소 집단 패러다임’
집단 정체감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협력을 촉진하는 과제는 쉽지 않다. 같은 개인이더라도, 두 사람의 개인이 서로 협력하는 것보다 각각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두 사람이 협력하는 것이 더 어렵다. 개인 간 협력보다 기업 간 협력이 훨씬 어려운 셈이다. 집단 정체감의 가장 놀라운 효과는 어떤 정체감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다. 그저 집단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가져오는 결과들이다. 내가 속한 집단이 구분되면 당연히 내가 속하지 않는 집단이 나타난다. 즉, 우리와 그들이 구분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은 경쟁을 촉발시킨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저명한 심리학자 헨리 타즈펠이 개발한 최소 집단 패러다임(minimal group paradigm)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최소 집단 패러다임이란 이해관계나 적대감,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이 전혀 없는 일시적인 집단을 만들어 단순히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는 것만으로 경쟁과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만든 실험 상황이다.
 
이 실험은 동전 던지기로 집단을 구분한 뒤 자신과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과 다른 집단에 속하는 사람에게 일정 액수의 돈을 나누어주도록 하였을 때 어떤 분배 전략을 사용하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표>처럼 7가지 옵션을 두고 이 실험을 했다고 치자. 연구 결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 유리하게 결정하는 ‘내집단 편향(in-group bias)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났다. 우리 집단과 상대 집단이 동일하게 분배하는 상황(옵션④ 우리 집단 15, 상대 집단 15)이나 보상의 합이 최대가 되도록 분배하는 상황(옵션⑤ 우리 집단 20, 상대 집단 50)보다 상대 집단과 상관없이 우리 집단의 이득이 최대가 되도록 하는 상황(옵션⑦ 우리 집단 32, 상대 집단 33)과 우리 집단이 보상을 더 많이 받으면서 상대 집단과 차이가 극대화되도록 하는 상황(옵션① 우리 집단 8, 상대 집단 1)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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