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과정이 길수록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결코 짧은 면접이나 서류 심사로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의 인재 양성과 리더십 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 김기훈 육군 리더십센터 단장(준장)이 국내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에게 던진 충고다. 동료에게 나의 목숨을 맡겨야 하고, 외부에서 인재를 수혈해올 수도 없는 군대에서는 적합한 인재를 뽑아 훌륭한 리더로 길러내는 일이 그 어느 조직보다 중요하다. 김 단장은 “3개월을 같이 지내면 그 사람의 머릿속이 보이고, 1년이 지나면 영혼 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며 “비용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지원자의 속성을 낱낱이 파악하는 채용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대에서 원하는 인재의 요건은 무엇입니까?
“자질(be), 능력(know), 행동(do)의 3박자를 다 갖춘 사람입니다. 올바르고 유능하며 실천력이 뛰어난 사람이 바로 군대가 원하는 인재죠. 군대는 민간 기업과 달리 항상 동료와 생사고락까지 함께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라면 전쟁터에 나가 함께 싸울 수 있겠구나. 이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희생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군대가 원하는 최고의 인재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체력도 중요한 인재 평가 기준입니다. 강원도에 위치한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KCTC)의 훈련장에 가면, 일반 훈련과는 달리 전문적으로 북한군 역할을 해주는 부대가 있습니다. 실제 전쟁과 매우 흡사한 모의 전투를 벌이는데, 이때 모든 사람이 절실히 느끼는 게 체력 부족입니다. 전쟁터에 있기 때문에 다쳐도 치료해줄 사람이 없고, 식사도 용이하지 않으며, 어느 한쪽이 이기지 않으면 전투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체력이 부족한 인재는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과 조직 전체에 부담을 주죠. 인재 채용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덕목이 체력입니다. 여기에는 군대와 민간 조직의 차이가 없어요.”
군대의 인력 채용 시스템이 일반 조직의 채용 시스템과 다른 점은 뭔가요?
“장교를 선발할 때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군대나 일반 기업이나 채용에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단체 합숙 생활을 하기 때문에 좀더 엄격한 검증이 이뤄진다는 게 군대 채용의 장점입니다. 장교가 되려면 대학 4년, 학군단(ROTC) 2년, 3사관학교 2년을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죠.
군대의 채용 시스템과 비교하면 일반 기업의 채용 과정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류 전형, 면접, 기껏해야 하루 이틀 정도의 합숙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직에 잘 맞는 인재인지, 그 사람의 내면은 어떤지를 일일이 파악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물론 채용 과정이 길어지면 기업이 치러야 할 시간 및 비용 부담은 커지겠죠. 하지만 사람을 잘못 뽑아서 조직이 감당해야 할 위험보다는 채용 과정이 긴 편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이익 아니겠습니까.
저는 부하들에게 ‘3개월을 같이 지내면 그 사람의 머릿속이 보이고, 6개월을 지내면 마음속이 보이고, 1년이 지나면 영혼 속까지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군대처럼 몇 년씩 함께 합숙 생활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업들은 인재 채용 과정에서 지금보다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의 채용 방식이 독특한 점은 또 있습니다. 군대는 필요 인력을 한꺼번에 선발하지 않고 나눠서 선발합니다. 장교의 경우 임관 2, 3년차 가운데 승진 대상자의 50%를 뽑고 4, 5년차에서는 60%, 6년차에서는 30%를 선발합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 짧은 기간에만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을 뽑는 거죠. 이게 바로 채용 과정이 길수록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군인은 동료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에 평판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듯한데요.
“평판이 정말 중요한 조직이 바로 군대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25곳의 부대를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와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있는 데다 그 사람들도 계속 부대를 바꾸기 때문에, 저에 대한 평판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갑니다.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죠. 때문에 제가 어느 곳에 있는 부대를 가도, 저에 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의 냉철한 평가를 계속 받아야 하므로 스스로에 대한 관리가 그 어느 조직보다 필요합니다.
지금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을 언제, 어느 자리에서 다시 볼지 모릅니다. 설사 이 사람은 다시 볼 일이 없다 해도,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직장인들이 이직할 때도 제일 먼저 이전 직장에서의 평가가 어땠는지를 점검하잖아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박한 평가를 내린다면 무조건 그걸 억울해하거나 분해하지 말고, 이 사람이 왜 이런 평가를 내렸는지,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냉철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업무 능력이나 인성 면에서 자기 계발을 할 기회도 커진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