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경제 위기로 비용 절감이 불가피하거나 생존 자체에 매달려야 할 때 인력을 감축한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제난이 잠잠해진 후 몇 달만 지나면 인력 채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기업들이 많다.
2001년 9·11 사태 이후를 보자. 당시 세계 경제 전망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에 돌입했고, 엔론이 쌓아 올린 유리의 성은 무너져 내렸다. 다른 기업에서도 엔론과 비슷한 회계 부정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사스(SARS)의 공포는 아시아를 강타했다.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까지 발발했다. 세계 경제는 침체에 빠졌고,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가장 경쟁력 있는 인재들만을 회사에 남겨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조직을 정비하고 자사의 인력 상황 점검을 마친 명민한 기업들은 인재 유치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이 기업들은 남들보다 앞서 미래에 대비한 인재 충원에 나섰다. 2003년 6월에 이르자 치열한 인재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후 기업들은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08년까지 인재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의 조사에 따르면, 불황이 끝나지 않은 지금도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은 특히 신흥 시장에서 인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즉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 임원진을 대체할 젊고 유능한 관리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이 글에서 인재 고용과 기업의 장기 실적 간의 관계를 조사했다. 우리의 조사 및 다른 권위 있는 조사 내용들을 바탕으로 최고위급 관리자를 고용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조사 소개 참조). 우리가 아는 한, 이 글은 인재 채용에 관한 일련의 실무 지식을 모두 기술한 최초의 글이다.
이 글에는 인력 채용의 전 과정이 7단계로 나눠져 있다. 바로 △신규 채용 수요 예측 △업무의 세부 내역 파악 △채용 후보 풀 구성 △후보자 평가 △계약 체결 △신규 채용자의 기업 내 융화 △채용 과정의 상세한 검토 및 평가다.
우리의 조사는 상위 3등급에 해당하는 인재 즉 최고위급 경영자, 그의 직속 하위 경영자, 직속 하위 경영자의 직속 하위 관리자 채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최고 X 집단’이라 일컫는다. 이때 X는 기업 내 지도층 풀을 구성하는 고위 경영자의 수를 뜻한다. 이 풀의 규모는 다양하다. 중소기업에서는 20∼50명, 대규모 다국적 기업에서는 최대 1000명에 이른다. 우리의 조사는 내부 채용이 아니라 주로 외부 채용 인재에 관해 다루고 있다.
물론 현재 인력 감축이라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방침을 고려해야 하는 경영자에게는 인재 채용 문제가 시급히 고려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미래에 어떠한 상황이 펼쳐지건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인재를 채용하고 보유하는 법을 배운 기업만이 향후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인재 채용 현실은 ‘낙제점’
대부분의 기업들은 상황이 절박해진 다음에야 인재 고용에 나선다. 때문에 그들은 제대로 된 인재 채용을 하지 못한다.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50명 및 다수의 경영자 채용 컨설턴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는 인재 채용이 놀랄 만큼 모호한 과정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파악했다. 응답자들은 주관적인 선호도나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조직의 전통에 크게 의존하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조사에 응한 경영자들은 바람직한 신규 채용 인재상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내부 인재를 채용할 것인가, 외부 인사를 영입할 것인가, 채용 과정에 누가 참여해야 하는가, 어떠한 평가 툴이 가장 적합한가, 성공적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보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의견을 털어놓았다.
경영자 채용 컨설턴트의 43%는 고객 회사들이 인재 채용의 최우선 조건으로 ‘관련 업무 경력’을 꼽았다고 답했다. 반면 다른 24%는 ‘팀 내에서 협업할 수 있는 능력’에 비슷한 비중을 뒀다고 답했다. 하지만 ‘채용 후보가 새로운 일을 습득할 준비가 돼 있는가’를 중점 고려했다는 답변은 11%에 불과했다. 이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및 경제 환경은 ‘과거조차 예측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하다. 때문에 이처럼 채용 후보자의 적응력을 간과하는 일은 실로 불합리하다.
채용 후보 평가 방법도 다양했다. 심지어 같은 기업 내에서조차 이러한 양상이 나타났다. 32%의 기업에서는 고위직 채용 후보들이 1∼5단계의 면접을 거쳤다. 반면 12%의 기업에서는 고위직 채용 후보들이 무려 21번 이상의 면접을 거쳤다.
놀라운 일은 채용된 최고 X 관리자의 절반만이 그 회사의 최고위급 경영자와 면접했다는 점이다. 절반 정도의 기업들은 채용 담당자의 직관에 따라 ‘어떤 업무를 맡겨도 잘해낼 것’으로 보이는 후보자를 뽑았다. 기업들은 채용 결정 시 주로 면접을 중시했다. 반면 상세한 인물 조회나 평판 조회에는 상대적으로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조사 결과는 기업들의 인재 채용에 어떤 기준이나 일관성도 없음을 잘 보여준다.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의 인재 채용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를 감안하면 유능한 신규 채용자의 3분의 1이 ‘입사 후 3년 이내에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우리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사실은 대다수 CEO들이 자사의 인재 채용 현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부 경영자들은 은퇴를 앞둔 관리자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인재 채용이 시급한 자사의 인력 상황도 파악하지 못했다. 인력 부족 문제가 닥쳐오리라는 점을 알고 있는 경영자들도 이에 적절히 대비하지는 못했다.
조사 결과로 다음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업들은 훌륭한 인재 채용이 자사의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재 채용의 7가지 절차 중 하나라도 훌륭히 해내는 기업은 얼마 없었다. 인재 채용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기업은 사우스웨스트 항공, 맥킨지, 인튜이트, TCS 등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했다. 고위급 인재를 채용할 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도, 인재 채용 각각의 단계에서 탁월한 처리를 보여주는 기업도 없었다.
기업은 이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인재 채용을 깜짝 행사로 여기면 안 된다. 엄중하고 전략적이며 객관적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최고의 인재 채용 방법을 구축해야 한다. 즉 현재의 채용 방식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기업들은 관리자 교육을 통해 효과적인 인재 채용 방안을 마련하고, HR 관리자들이 이에 대한 적절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부터 인재를 채용할 때 생기는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