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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에서 배우는 개방적 구조조정의 지혜

김수욱 | 26호 (2009년 2월 Issue 1)
얼마 전 어느 조찬 모임에서 모 컨설팅 회사 임원의 강연을 들었다. 강의 주제는 ‘로마 제국의 경영법’이었다. 공기업은 물론 사기업에도 상당한 시사점을 주는 내용이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로마는 기원 전 753년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에 의해 설립됐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용병 오도아케르에,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각각 멸망할 때까지 약 2200년 동안 명맥을 이어간 대제국이다.
 
2200년 동안 로마가 지배한 영토는 북서 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와 게르만(지금의 독일), 이탈리아 반도, 발칸 반도, 지중해 연안의 중동 지역 등지이다. 상당히 광활한 영역을 지배한 셈이다.
 
한국은 어떨까.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한 왕조는 신라다. 신라의 역사는 통일신라까지 포함해도 천 년이다. 그 1000년 동안 신라가 가장 넓게 지배한 영역이 대동강 이남 지역이다. 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발해는 왕조의 지속 기간이 불과 250년을 넘지 못했다.
 
개방성, 로마제국의 원동력
그렇다면 로마는 어떻게 그 광활한 영토를 그 오랜 기간 지배했을까. 이날 강연자는 위대한 로마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으로 개방성을 들었다.
 
로마가 정복한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기원을 이룬 나라이자 수많은 유명한 철학자·사상가·예술가를 배출한 민족이다. 비록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불과 얼마 뒤 로마의 모든 교육 시스템은 그리스 식으로 바뀐다.
 
갈리아와 게르만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거칠고 힘이 센 민족이었다. 로마가 이들 또한 정복했지만 곧 로마의 모든 군권은 갈리아와 게르만족이 장악한다. 상술이 뛰어난 카르타고인, 기술력이 뛰어난 에트루리아인 역시 로마에 정복당한 뒤 각각 로마의 상권과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좌지우지했다.
 
로마는 정복자였지만 로마 제국 안에서는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로마에 정복당한 민족들은 잃은 나라를 그리워하고 자신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바로 로마 시민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로마는 지탱할 수 없다’는 강한 주인의식을 가졌다.
 
이 강연자가 지적한 개방성의 위력을 강력한 경영 혁신과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공기업이 진지하게 음미해 볼 만하다. 공기업은 경영을 통해 국민과 기업에 혜택을 주면서도 이러한 투자의 대가나 비용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위 ‘외부 효과’가 큰 조직이다. 경영 성과와 기대 효과의 정확한 측정, 조직원들의 성과 평가 또한 쉽지 않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조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일도 어렵다.
 
게다가 최고경영자(CEO)와 이사진의 임기가 제한적이어서 혁신의 지속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때문에 효과적인 경영 혁신을 이루려면 소수 임원이 혁신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조직원들이 혁신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혁신의 주체를 자임하는 상향식(bottom-up) 혁신이어야 한다.
 
차등 성과평가가 관건
공기업 직원들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이 바로 개방적 구조조정이다. 일단 경직적인 연공 서열 위주의 계급 구조 대신 성과 평가와 연계한 차등 성과급 제도부터 확대 운영해야 한다. 또 대(大) 팀제 도입, 의사결정 단계 축소, 팀장 권한 강화를 통한 실질적인 팀제 운영을 추진하면서 팀장에게 팀원 선발, 팀 내 업무 분담, 팀 단위 예산배정 집행권 등을 광범위하게 부여해야 한다. 팀 및 팀원 성과평가 결과를 팀장의 차등성과급 결정에 반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개방적 구조조정전략을 잘 구사하는 기업이 SK그룹이다. SK그룹은 탄력적인 상시 구조조정을 위해 주요 계열사의 조직을 4개 사내 독립 기업제로 개편하고 임원 직급을 완전히 없앴다. 독립 기업 별로 성과 관리와 인력 배치, 심지어 필요할 때는 구조조정 권한까지 준다. 대신 각 독립 기업 대표에 대해서는 철저히 성과를 평가하고 그 책임도 묻는다.
 
또 직급과 승진에 얽매여 조직 문화가 경직되고, 임원 수는 많은 데 비해 정작 실무자의 수는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원 인사 관리를 직책 중심으로 전환했다. 부장·상무·전무 등의 직위를 없애고 관할하는 조직 범위와 권한, 기여도 등을 기준으로 보수 체계와 처우도 개편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중되면서 인력 감축에 의한 구조조정을 논하는 사람이 많다. 공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영 혁신을 이루려면 인원 감축보다 이 같은 개방적 구조조정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혹자는 개방적 구조조정을 비판하기도 한다. 조직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역동적인 조직 구조를 구축하면 조직의 위계질서를 약화시켜 경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위기 때 일사불란한 통제와 조정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성과 중심의 조직 체계 구축은 조직원들의 과열 경쟁과 반발을 불러 더 많은 비용 투입과 방만한 조직 운영이라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개방적 구조조정의 5대 선결과제
이 우려가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개방적 구조조정 방안을 시행하기 이전에는 다음의 몇 가지 선결 과제가 필요하다.
 
첫째, 인력 위주의 경영 체제를 지양하고 철저한 시스템 경영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소수의 핵심 인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체제가 아니라 언제, 누가, 어느 자리에 들어오거나 나가더라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유기적 경영 시스템을 구축 해야 한다.
 
특히 일사불란한 통제와 조정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서는 기업의 전체 경영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스템을 통해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는 영역과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해 줄 변화관리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객관적이고 공정한 성과평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거의 모든 공기업이 실질적인 경쟁 체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연공서열제에 익숙한 공기업 조직원이 받을 충격과 성과 중심 체제 구축에 따른 지나친 경쟁을 완화하려면 과제별 목표치와 지표별 업적 평가 반영 비율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제시하는 과학적 분석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뀐 평가체계에 대한 구성원들의 반발을 억제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조직 문화 변경으로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커질 수 있으므로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충전을 도와주는 직장 내 문화 프로그램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의 용접기계 생산업체인 링컨 일렉트릭은 개인별 생산량에 근거한 계량적 평가 기준에 따라 급여를 지급한다. 정기 급여보다 많은 연말 성과급 역시 개인별 평가에 따라 분배한다. 이 회사는 철저한 성과 중심 보상 체계를 운영하면서도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한다. 성과 중심 체계가 가져올 수 있는 과열 경쟁을 완화하고 직원들의 충성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셋째, 핵심 인력을 풍부하게 보유하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지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우수한 외부 인력을 끌어오라는 뜻이 아니다. 조직 내에서 기업의 비전과 전략을 오랫동안 숙지해 온 인력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다.
 
철저한 인재관리로 소문난 삼성그룹에서는 삼성전자 맨, 삼성생명 맨, 삼성중공업 맨이 없다. 어느 회사에 근무하건 ‘삼성 맨’일 뿐이다. 삼성에서는 한 회사에서 그룹 내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을 부서 이동 정도로 여긴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철저한 공통 교육을 통해 그룹의 인재 상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고, 그룹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들을 최적의 자리에 배치하도록 조정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운송 기업인 UPS 역시 직원들이 기업 내 다양한 업무에 순환적으로 종사하도록 하는 ‘크로스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인력 활용의 유연성을 높일 뿐 아니라 이들이 임원에 올랐을 때 기업 전체의 업무 흐름을 꿰뚫어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느 교수가 한 말이다. “최고의 경영은 방치 경영이다. 알아서 하게 내버려둬야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조직원 스스로 위기 의식을 갖고 열심히 뛰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역사와 개방적 구조조정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이 이야기에 저절로 고개를 끄떡이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생산전략, 경영정보(MIS), 공급사슬관리(SCM), 서비스운영관리가 주 연구 분야다.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 부교수 및 한국 SCM학회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편집자주 ‘공룡’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과감한 변화와 쇄신의 바람을 불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울대 김수욱 교수가 공기업 체질개선을 위한 ‘공기업 혁신 프로젝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가 공기업 관계자뿐 아니라 민간 기업, 정부 관계자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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