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조찬 모임에서 모 컨설팅 회사 임원의 강연을 들었다. 강의 주제는 ‘로마 제국의 경영법’이었다. 공기업은 물론 사기업에도 상당한 시사점을 주는 내용이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로마는 기원 전 753년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에 의해 설립됐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용병 오도아케르에,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각각 멸망할 때까지 약 2200년 동안 명맥을 이어간 대제국이다.
2200년 동안 로마가 지배한 영토는 북서 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와 게르만(지금의 독일), 이탈리아 반도, 발칸 반도, 지중해 연안의 중동 지역 등지이다. 상당히 광활한 영역을 지배한 셈이다.
한국은 어떨까.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한 왕조는 신라다. 신라의 역사는 통일신라까지 포함해도 천 년이다. 그 1000년 동안 신라가 가장 넓게 지배한 영역이 대동강 이남 지역이다. 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발해는 왕조의 지속 기간이 불과 250년을 넘지 못했다.
개방성, 로마제국의 원동력
그렇다면 로마는 어떻게 그 광활한 영토를 그 오랜 기간 지배했을까. 이날 강연자는 위대한 로마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으로 개방성을 들었다.
로마가 정복한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기원을 이룬 나라이자 수많은 유명한 철학자·사상가·예술가를 배출한 민족이다. 비록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불과 얼마 뒤 로마의 모든 교육 시스템은 그리스 식으로 바뀐다.
갈리아와 게르만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거칠고 힘이 센 민족이었다. 로마가 이들 또한 정복했지만 곧 로마의 모든 군권은 갈리아와 게르만족이 장악한다. 상술이 뛰어난 카르타고인, 기술력이 뛰어난 에트루리아인 역시 로마에 정복당한 뒤 각각 로마의 상권과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좌지우지했다.
로마는 정복자였지만 로마 제국 안에서는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로마에 정복당한 민족들은 잃은 나라를 그리워하고 자신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바로 로마 시민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로마는 지탱할 수 없다’는 강한 주인의식을 가졌다.
이 강연자가 지적한 개방성의 위력을 강력한 경영 혁신과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공기업이 진지하게 음미해 볼 만하다. 공기업은 경영을 통해 국민과 기업에 혜택을 주면서도 이러한 투자의 대가나 비용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위 ‘외부 효과’가 큰 조직이다. 경영 성과와 기대 효과의 정확한 측정, 조직원들의 성과 평가 또한 쉽지 않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조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일도 어렵다.
게다가 최고경영자(CEO)와 이사진의 임기가 제한적이어서 혁신의 지속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때문에 효과적인 경영 혁신을 이루려면 소수 임원이 혁신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조직원들이 혁신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혁신의 주체를 자임하는 상향식(bottom-up) 혁신이어야 한다.
차등 성과평가가 관건
공기업 직원들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이 바로 개방적 구조조정이다. 일단 경직적인 연공 서열 위주의 계급 구조 대신 성과 평가와 연계한 차등 성과급 제도부터 확대 운영해야 한다. 또 대(大) 팀제 도입, 의사결정 단계 축소, 팀장 권한 강화를 통한 실질적인 팀제 운영을 추진하면서 팀장에게 팀원 선발, 팀 내 업무 분담, 팀 단위 예산배정 집행권 등을 광범위하게 부여해야 한다. 팀 및 팀원 성과평가 결과를 팀장의 차등성과급 결정에 반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개방적 구조조정전략을 잘 구사하는 기업이 SK그룹이다. SK그룹은 탄력적인 상시 구조조정을 위해 주요 계열사의 조직을 4개 사내 독립 기업제로 개편하고 임원 직급을 완전히 없앴다. 독립 기업 별로 성과 관리와 인력 배치, 심지어 필요할 때는 구조조정 권한까지 준다. 대신 각 독립 기업 대표에 대해서는 철저히 성과를 평가하고 그 책임도 묻는다.
또 직급과 승진에 얽매여 조직 문화가 경직되고, 임원 수는 많은 데 비해 정작 실무자의 수는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원 인사 관리를 직책 중심으로 전환했다. 부장·상무·전무 등의 직위를 없애고 관할하는 조직 범위와 권한, 기여도 등을 기준으로 보수 체계와 처우도 개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