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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마음

페어플레이를 잊은 한국인의 마음 다시, ‘우리’의 ‘한마음’으로 돌아가자

이기동 | 153호 (2014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맹자는마음에서 잘못돼 정책이 어그러지고, 정책이 잘못돼 일이 망가진다고 말했다. 우리가 세월호 같은 끔찍한 참사를 다시 겪게 된 것 역시 우리의마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 근본 원인을 찾아내 고치려 하지 않았다. 자꾸만 끔찍한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다. 개인들이 서로 경쟁하면서도 법과 질서의 테두리에서페어플레이를 펼치는 서구, 항상적인 재난의 위기를 대비하는 이웃나라 일본인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위기 대처에 언제나 약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결코 잠재력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라는한마음의식. 누구보다 강한 헌신성. 지난 100여 년간 잊고 있던 우리 마음의 힘을 다시 깨워야 할 때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수학여행단을 태운 배가 가라앉았다. 지금 우리들은 슬픔의 도가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런 일은 한두 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안전 불감증. 대형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인재(人災)가 계속되는 것일까? 이번에도 당국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한 갖가지 조치를 취할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는 사고발생 때마다 있었다. 그런데도 사고는 계속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번에 추진하는 재발 방지조치는 실효성이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마냥 슬퍼하고 있을 때만은 아니다.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바로잡지 않으면 제2, 3의 슬픈 일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원인은 무엇인가: ()과 인()

모든 사고에는 원인이 있다. 원인에는 직접적인 원인이 있고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찾아내기 쉽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찾기가 어렵다. 과거 대형 사고가 일어났을 때마다 우리들이 조치했던 방식은 그다지 다를 게 없었다.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사고가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 원인은 언제나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았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담당자들의 안전 불감증이고, 다음으로 거론되는 것은 관리감독기관의 소홀, 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구조 체계의 미비 등이었다. 그러고는 이내 미국, 일본 등을 위시한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 본다. 외국의 경우는 우리와 정반대다. 담당자들의 위기의식이 철저해 위기대처를 잘하고, 관련 기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으며,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엄하고, 조난 구조 체계도 완비돼 있다. 대중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발표하는 이런 비교를 통해서 우리들은 늘 자괴감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외국의 경우와 같이 따라 가야 한다고 결론 내고 마무리 짓는다.

 

과거에 취한 조치가 옳은 것이었다면 더 이상 인재(人災)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조처를 잘했더라도 대형 사고는 자꾸 터진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과거 우리가 놓친 것이 있다. 사고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지 않았고 근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가 잠복해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터져 나온다. 이를 방지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근본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는 것뿐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연()이라 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인()이라 한다. 과일나무에 달려 있는 과일에 벌레가 먹어 피해를 입었다면 그 원인에도 직접적인 원인인 연()과 근본적인 원인인 인()이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벌레 때문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과수원을 남에게 빌려주면 몇 년 되지 않아서 과수원이 망가진다고 한다. 과수원을 빌린 사람들은 빠른 수익을 내기 위해 퇴비 대신 효과가 빠른 비료를 쓴다. 벌레가 침범하면 농약을 살포해 바로 퇴치한다. 그렇게 하면 단기간에 많은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 뿌리가 망가지면 아무리 비료를 주고, 아무리 농약을 뿌려도 과일을 생산할 수 없다. 그런데도 뿌리를 가꾸는 데 소홀한 까닭은 짧은 기간에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일나무를 가꾸는 경우에는 뿌리를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뿌리를 가꾸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황이 다르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도 직접적인 원인이 있고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연유한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마음에서 잘못돼 정책이 어그러지고, 정책이 잘못돼 일이 망가진다.1

 

 

모든 사건의 근본 원인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이 이를 돌아보지 않고 직접적인 원인만을 찾아 해결하는 데 문제가 있다. 마음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 뿌리가 망가지면 잎과 줄기와 과일이 다 망가지듯이 마음이 망가지면 사람들의 일들이 다 어그러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마음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마음은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설사 안다 하더라도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책임을 져야 하는 리더들에게는 임기라는 것이 있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고 각부 장관들은 그보다 더 짧다. 각 기업의 연수원장들도 임기가 있다. 그 짧은 임기 동안에는 마음의 문제를 다룰 수도 없고 다룬다 하더라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짧은 임기 동안에 효과를 내지 못하면 바로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근본 원인을 해결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세종대왕 같은 성인이 나와도 5년만 왕위에 있어야 했다면 위대한 정치를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글의 제작도 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욕심을 채우는 법만 익힌 사람들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용서할 수 없다. 선박회사의 관계자들과 실소유주까지도 철저히 조사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번 생각할 여지는 있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금 오랫동안 욕심 채우기에 급급해 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돈의 노예처럼 돼 버렸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고 한다. 욕심에 눈이 멀면 냉철한 판단이 마비된다. 욕심에 눈이 멀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세월호 침몰의 근본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욕심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욕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교육을 시키지도 않았고 받지도 않았다. 우리들이 실시하는 교육 내용은 서구에서 들어온 것이다. 서구인들의 인간관은 우리들의 인간관과 다르다. 서구인들의 인간관은 개인주의에서 출발한다. 서구인들의 개인주의는 르네상스 운동 이래로 형성된 것이다. 개인주의는 사람을 각각 독립된 개체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이다. 너와 나를 별개의 존재로 본다면 너와 나는 완전한 남남이 된다. 남남이기 때문에 경쟁을 해야 하고 투쟁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경쟁심이고, 욕심이다. 이러한 인간관에서는 욕심을 없애야 한다는 발상이 나오지 않는다. 욕심을 없애면 마음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고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욕심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욕심을 채우는 데 제일 빠른 방법은 돈을 버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이 각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는 문제가 있다. 욕심을 무절제하게 채우려고 하면 남과 충돌하게 된다. 충돌하면 파괴되고 파괴되면 모두가 상처를 입는다. 상처를 입으면 온전하게 살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법학이다.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경영학과 법학에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가 안정되면 경영학 쪽으로 더 몰리고, 사회가 혼란해지면 법학 쪽으로 더 몰린다. 경영학과 법학은 자본주의를 끌고 가는 두 축이다. 법질서가 확립된 사회에서 법을 지키며 욕심을 마음껏 채우는 것이 자본주의에서의 삶의 방법인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것은 페어이고 욕심을 지키는 것이 플레이다. 자본주의에서의 삶은 바로 페어플레이다.

 

우리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줄곧 서구식 교육을 받았지만 법질서를 지키는 것보다 욕심 채우는 것을 주로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의 학생들은 교육을 받을수록 욕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는 2013년 청소년 1172명을 상대로청소년 정직지수를 조사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10억 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으냐?”는 물음에 초등학생 16%, 중학생 33%, 고등학생 47%괜찮다고 답했다. 2012년에는 같은 물음에 초등학생 12%, 중학생 28%, 고등학생 44%괜찮다고 각각 응답했다.

 

 

 

타인이나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정의에 대한 의식도 낮았다. 초등학생 19%, 중학생 27%, 고등학생 36%이웃과 관계없이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응답했다. 청소년들은 처벌받을 가능성이 큰 잘못에는 매우 정직한 행동을 할 것으로 답했으나 타인이 못 보거나 자신의 처벌 가능성이 낮은 잘못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험 보면서 커닝한다는 항목에 대해 초등학생 96%, 중학생 93%, 고등학생 92%그러면 안 된다고 답한 반면친구의 숙제를 베껴서 낸다에는 초등학생 30%, 중학생 69%, 고등학생 78%괜찮다고 답했다.

 

센터는 설문조사 결과로 정직지수도 산출했다. 정직지수는부정적 질문에 대해아니오라고 답한 수의 백분율이다. 청소년 정직지수는 평균 74점으로 집계됐다. 초등학생 84, 중학생 72, 고등학생 68점 등 학년이 올라갈수록 낮아졌다.

 

위의 조사결과는 학생들의 욕심이 배울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면 욕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어른들을 믿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과의 비교

 - 이웃나라 일본은 왜 위기대처에 강한가?

우리의 교육이 잘못되고 있는 이유는 서구인들의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무분별하게 도입한 데 기인한다. 교육은 마음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들의 마음은 서구인들의 마음과 다르다. 이를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인들의 방식이 우리들에게 정착할 수 없다. 동양에서 서구인들의 문화를 가장 잘 수입하고 가장 잘 정착시킨 사람들은 일본인들이다. 일본인들은 옛날부터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그러한 성향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의 자연환경에서 기인한다. 일본인들의 위기관리 능력은 오히려 서구인들을 앞선다. 우리들은 일본인의 비양심적인 행위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일본의 예를 들어 우리와 비교한다. 그 결과는 언제나 똑같다. 일본인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우리도 그들처럼 하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런 다짐은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일본인과 한국인은 마음자세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토는 매우 불안하고 위험하다. 그들은 늘 자연재해에 노출돼 있다. 수시로 지진이 일어나 땅을 흔들기도 하고 엎어버리기도 한다. 매년 수십 개의 태풍이 찾아와 산천을 초토화시킨다. 습도가 높아 땀을 약간만 흘려도 감기에 걸린다. 이불을 말리지 않으면 축축해서 덮고 잘 수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은 옛날부터 위기에 대처하는 훈련이 돼 있다. 집에 들어갈 때는 나올 때 빨리 신을 수 있도록 신발을 가지런하게 벗어 놓는다. 현관에는 마른 양식을 넣어 둔 배낭이 놓여 있다. 일본인들은 집에 있으면서도 긴장을 한다. 갑자기 집이 흔들리면 바로 신을 신고 배낭을 메고 달려 나간다. 그들은 피신할 수 있는 장소를 미리 조사해 놓고 있다. 그들은 태풍이 오기 전에 만반의 대비를 한다. 일본에 상륙하는 태풍은 한국에 상륙하는 태풍과 다르다. 자동차를 날려버릴 정도로 무서운 태풍이다. 수없이 찾아오는 태풍에 대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일본인들은 맑은 날 태양이 나오면 베란다에 이불을 널어 말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축축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이불을 널어 놓고 외출을 할 때도 긴장을 한다. 갑자기 구름이 끼어 비로 바뀌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구름 상태를 살피다가 비가 올 듯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 이불을 걷어 들인다. 약간 추위를 느끼면 바로 감기에 걸리기 때문에 여분의 옷을 가지고 다니면서 추위를 느끼는 순간 바로 꺼내서 입어야 한다. 땀이 난 상태에서 방치하면 감기에 걸리기 때문에 바로 목욕을 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들은 위험에 대비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일본인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훈련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것이기도 하다.

 

법을 지키는 것은 페어이고 욕심을 지키는 것이 플레이이다. 자본주의에서의 삶은 바로 페어플레이다. 우리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줄곧 서구식 교육을 받았지만 법질서를 지키는 것보다 욕심 채우는 것을 주로 배웠다.

 

일본인들의 위기의식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대밭에서 자라고 있는 대나무들은 지상에서는 각각 독립된 개체로 자라고 있지만 지하에서는 하나의 뿌리로 연결돼 있다. 지진이 와서 대나무의 밑둥치가 잘리기도 하고 벌레가 날아와 잎과 가지를 파먹기도 한다면 그 대나무는 지진으로부터 밑둥치를 보호하느라 정신이 없고, 벌레로부터 잎과 줄기를 지키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런 대나무는 지하의 한 뿌리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런 대나무들은 지상의 대나무들이 모두 남남인 줄 알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개인주의가 발달하는 것은 이와 같다. 지상의 대나무를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지하의 한 뿌리는 사람의 마음 중에서 다 함께 가지고 있는 한마음에 해당한다. 일본인에게는 한마음이라는 개념이 없다. 한마음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사람은 모두 남남이 된다. 사람이 남남끼리 마주하고 있으면 불안하다. 남은 나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갑자기 나에게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일본의 무사들은 칼을 찰 때도 칼날이 위로 향하도록 찬다. 칼날이 위로 향해 있는 칼의 손잡이를 밑에서부터 잡으면 칼을 뽑으면서 바로 상대를 벨 수 있다. 이처럼 일본에서 사는 것은 긴장되고 힘들다. 살아남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다. 일본인들의 새해 인사는축하합니다. 당신이 작년 한 해 동안 안 죽고 살아남았음을 축하한다는 뜻이다.

 

불안한 사람들끼리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철저하게 법과 규칙을 지키도록 훈련받는 것이다. 그들은 법을 지키는 로봇이 될 정도로 훈련을 받는다. 그 결과 그들은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도 한 줄로 서서 질서 있게 걸어간다. 그렇게 훈련받은 일본인들을 한국인들은 따라갈 수 없다.

 

한국인 특유의마음자세활용법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안전지대다. 지진도 없고 무서운 태풍도 좀처럼 상륙하지 않는다. 땀을 흘려도 말라버리면 그만이다. 나갈 때 신을 수 있도록 신을 가지런하게 벗어 놓지 않아도 걱정이 없다. 배낭에 마른 음식을 넣어서 보관할 필요도 없다. 칼을 찬 무사들도 칼날이 위로 향하게 할 만큼 위급한 일이 없다.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때도 긴장할 필요가 없다.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아도 삶에 지장을 받지는 않는다. 이불을 베란다에 널지 않아도 자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시장에 가다가 구름이 이상하다고 해서 돌아올 일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인들은 천하태평이다.

 

한국인들의 태평한 마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지상의 대나무들은 지하에서 하나의 뿌리로 연결돼 있다. 지진 때문에 밑둥치가 잘릴 위험도 없고, 벌레 때문에 잎과 가지가 먹힐 일도 없다면 대나무는 여유롭다. 여유로운 대나무는 지하의 한 뿌리를 알아 낼 수 있다. 그런 대나무들은 지상의 대나무들이 모두 남이 아닌 줄을 안다. 한국인들에게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하에서 모두에게 연결돼 있는 한 뿌리는 사람들에게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는 한마음과 같은 것이다. 한국인들은 한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한마음을 기준으로 보면 사람은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 한국인들은우리가 남인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유난히우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우리 집’ ‘우리 아버지등의 말에는 너와 내가 남남이 아니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다른 사람을 남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불안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한국인들에게는 위기의식이 거의 없다. 한국인들은 겁이 없다. 전쟁 중인 이슬람국가에도 전도하기 위해 들어가는 한국인들이 있다.

 

이처럼 불안감이 없는 한국인들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법과 규칙을 지키기 위한 훈련을 철저히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일본인들을 따라갈 수 없다. 서구인들을 따라갈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선박 침몰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거론되는 이야기가 있다. 버큰헤드호의 정신이다. 1852년 영국 해군의 수송선 버큰헤드호가 사병들과 그의 가족들을 싣고 항해하다가 케이프타운 근처에서 좌초했다. 시드니 세튼 선장은 구조선 세 척에다가 부녀자만 타게 하고 수병들은 모두 갑판위에서 부동자세를 취한 채 배와 함께 침몰했다. 우리 해상에서 일어난 여객선 침몰사건에서는 이와 다른 모습이었다. 언론들은 우리들에게 버큰헤드호의 정신이 없음을 지적했고 우리들은 또 자괴감에 빠져야 했다. 이런 식의 지적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국인들이 그런 희생정신을 발휘한 것은 인품이 거룩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규칙과 법을 지키도록 철저히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그처럼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지도 않고 훈련을 받지도 않는다. 따라서 한국인들에게 영국인들처럼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늘 대형 사고가 터져야 하고, 늘 혼란해야만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들도 열심히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훈련만으로는 한국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마음을 챙기는 일이다. 한국인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통적인 정서는=라는 등식이다. 여기에서 두 부류의 사람이 나타난다. ‘=이기 때문에 너에게 무게가 실리는 사람도 있고 나에게 무게가 실리는 사람도 있다. 너에게 무게가 실리는 사람은 너를 위해 내가 헌신하고, 너를 위해 내가 희생한다. 그런 사람은 하늘의 얼굴을 한 천사다. 반면에 나에게 무게가 실리는 사람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너를 희생시키는, 자기밖에 모르는 비인간적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한국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천사 같은 사람과 짐승 같은 사람으로 양분된다. 한국인들은 중간 정도의 사람이 드물다. 한국인의 이런 형태를 모래시계형이라 부를 수 있다. 모래시계는 가운데가 잘록하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에는 모래가 많이 들어 있지만 가운데에는 없다. 윗부분에 속하는 훌륭한 한국인은 남을 위해 헌신한다. 한국인들이 그려내는 사랑 이야기는 외국인들과 다르다. 외국인들은 사랑을 주로 소유의 개념으로 그린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그려내는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 때면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을 택한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실명을 하자 자기의 눈을 주기 위해 교통사고를 가장해 죽기까지 한다. 이처럼 헌신적인 사랑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2001년 일본 도쿄에 있는 신오오쿠보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선로로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고 뛰어든 일본인 한 명과 신원을 알 수 없는 아시아계 청년 한 명이 열차에 치어 세 명 모두 숨졌다는 텔레비전 보도가 있었다. ‘아사아계 청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호사카유지 씨는 바로그 청년은 분명 한국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오래 살고 있었으므로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먼저 구하려는 한국인만의 아름다운 특성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청년은 다음날 한국인 이수현 씨로 밝혀졌다.2

 

오늘날 한국의 리더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서구인들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므로 성공하지 못한다. 법을 강화하고 훈련과 교육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한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희생정신은 이번의 사고에서도 많이 보였다. 학생들을 살려내고 대신 자신이 숨진 체육교사도 있었고, 친구들에게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자기는 다시 다른 친구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학생도 있었다.

 

이런 희생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의 사람들도 많다. 자기만 살자고 승객을 놓아두고 탈출해버린 파렴치한 선장과 승무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추한 한국인이다. 모래시계의 아랫 부분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 것을 챙기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들이다.

 

추한 한국인이 많아지면 한국은 추해진다. 사회에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화합하지 못한다.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되고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업신여긴다. 그러다가 분열이 극에 달하면 멸망에 이른다. 오늘날 한국의 리더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서구인들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므로 성공하지 못한다. 법을 강화하고 훈련과 교육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한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 호사카 유지, 답게, 2002, 64p

 

모래시계를 뒤집어라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일찍이 우리의 조상들은 그런 노력을 했다. 마늘과 쑥을 먹으며 동굴에 들어가 한마음을 회복했다. 한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곰에게 아무리 쑥을 먹여도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은 진짜 곰이 아니다. 한마음을 잊어버려 짐승처럼 돼버린 사람을 말한다. 곰처럼 돼버린 사람이 한마음을 회복해 참된 사람이 돼야 하는 숙제를 우리는 오래전부터 해왔다. 짐승 같은 사람이 동굴에 들어가서 사람이 돼서 나오는 것이 바로 모래시계를 뒤집어놓는 것이다. 삼국시대 때와 고려시대 때 우리는 불교를 통해 동굴의 효과를 발휘했고 조선시대 때는 유학을 통해 동굴의 효과를 만들었다. 그 효과가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일부 남아 있다. 한국에는 아직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들은 사람 되기 위한 숙제를 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나마 남아 있는 따뜻한 마음이 거의 다 식어간다. 모래시계의 윗부분에 있던 모래가 거의 고갈돼 간다. 모래시계를 빨리 뒤집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들은 과거 100여 년간 모래시계 뒤집는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 집 아이가 친구와 싸우다가 얻어맞고 들어왔을 때 우리들은친구와 놀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용서하고 함께 놀아라고 가르쳤는데 이웃집에서는너는 손이 없냐? 머저리 같은 자식. 빨리 집에서 나가. 이놈아!’라고 꾸짖는다면 함께 노는 아이들 중에서 다치는 것은 언제나 우리 아이다. 우리 집 아이는 늘 당하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자각을 한다. ‘우리 아버지 교육이 나빴다. 이웃 아버지 교육을 따라가자.’ 그 이후 우리 집 아이는 우리 집의 교육방식을 버리고 이웃집의 교육방식을 따라가게 된다.

 

100여 년간의 우리의 자각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해왔던 것은 다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육도 잘못됐고, 정치도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버리고 서구의 것을 따랐다. 서구의 것을 따랐지만 서구인들처럼 규칙과 법을 지키는 철저함은 따를 수 없었다.

 

마음의 시대가 온다. 다시 한국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영원히 서구를 좇아가면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역사는 순환을 한다. 역사는 마음을 더 중시하는 시대와 몸을 더 중시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순환한다. 지금은 몸을 더 중시하는 시대다. 오늘날은 몸 챙기는 데 탁월한 능력자들이 선두에 선다. 서구인들과 일본인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강력한 힘으로 전 지구를 유린했다.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대륙을 차지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약탈했다. 그들의 박물관에는 약탈 문화재로 그득하다. 그런 그들이 계속 앞서가기만 한다면 불공평하다. 몸을 주로 챙기는 시대도 끝날 날이 온다. 몸을 주로 챙기는 시대의 말기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어붙는다. 미국에 금융위기가 불어닥치고 유럽의 경제가 흔들리는 근본 원인은 그들의 마음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이제 유럽 중심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몸을 주로 챙기는 시대가 끝나면 마음을 주로 챙기는 시대가 온다. 마음을 주로 챙기는 시대에는 마음 챙기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선두에 선다. 한국인이 그런 사람들이다. 오늘날 한류문화가 붐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은 역사가 마음을 더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마음을 중시하는 시대가 온다고 해서 한국인이 무조건 선두에 서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챙기는 처절한 노력을 할 때만 가능한 얘기다. 마음에는 본심과 욕심이 있다. 마음을 챙기는 것은 본심을 챙기는 것이다. 본심은 한마음이고 하늘마음이다.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하늘마음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도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도둑이듯이, 하늘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늘 같은 사람이다. 옛날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 같은 사람들이었다. 중국의 <후한서>라는 책에는 우리나라를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 불렀다. ‘군자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런 나라가 천국이다. 천국은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이다. 한국은 이제 천국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역> 건괘(乾卦)에는군자가 하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종일 애쓰고 저녁 때까지 속 태워야 한다고 했다.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하면 그 기회를 놓치고 만다. 지금이 한국인으로서는 천국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이를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는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이번에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우리들은 크나큰 슬픔에 빠져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잊히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 우리들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끔찍한 사건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이 끔찍한 희생이 그냥 잊히고 마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우리 모두 크게 반성해야 한다. 모두가 반성해 하늘을 날아오르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희생자들에게 덜 미안할 것이고, 희생자 가족들에게도 약간의 위로가 될 것이다.

 

이기동성균관대 대학원장(유학동양학부 교수) kdyi0208@naver.com

이기동 교수는 일본 쓰쿠바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만 국립정치대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수학했다. 20여 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7년 사서삼경을 최초로 완역하는 등 유학(儒學)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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