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개선방안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세월호 참사를 두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 모두가 이 사고에 책임을 피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루틴’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을 가능케 한 효율성, 성장, 그리고 속도 일변도의 루틴이 각종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고, 발생한 사고들에 대처하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역량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따라서 더 안전한 대한민국, 그리고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효율성과 성과에 목표가 맞춰진 루틴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단기적 효율성이 감소하고 규제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진정 다시 이런 끔찍한 희생을 막고자 한다면, 과감하게 그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 선택과 결단 역시 우리의 몫이다. |
1994년 성수대교 붕괴 후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
2014년 대한민국은 20년 전인 1994년의 대한민국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을까?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시간 동안 분명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1994년 말 당시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974달러, 글로벌 기업 12개의 총매출액은 2630억 달러, 순이익은 70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4년(2013년 말)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6520달러, 글로벌 기업 12개의 총매출액은 4020억 달러, 순이익은 230억 달러다. 말 그대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이었다. 하지만 20여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필자도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이었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아무런 외부 충격이나 자연재해의 영향 없이 멀쩡한 교량과 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원인은 다르지만 많은 비극적인 사고들이 이어졌다.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등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대형사고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2014년 4월, 또다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많은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고통이 잊혀질 만하면 너무나 비극적인 사고들이 일어난다. 특히 이번 참사는 명목상으로만 안전수칙을 만들고 전혀 지킬 의지조차 없었던 선사 ‘청해진해운’의 부도덕성, 승객의 안전과 구조는 생각조차 않고 자신들만 빠져 나온 ‘직업윤리와 소명의식’은 물론 ‘인륜’마저 저버린 선장과 승무원의 행태가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이에 대한 고발과 분석은 이미 수차례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으며 현재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도 진행 중이다. 이 글에서는 ‘안전’과 ‘생명’, ‘인간에 대한 기본 도리’를 저버린 선사와 선장 등의 행태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이번 참사의 근인이 아닌 원인(遠因)을 살펴보는 동시에 더 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성장 신화의 원동력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
앞서 언급한 사고들을 항상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다. 바로 ‘인재(人災)’라는 단어다. ‘인재’라는 단어는 그 사건이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고 예방할 수 있었거나, 혹은 적절한 대처가 있었더라면 그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도대체 왜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대형 인재가 끊이지 않는 것인가?
캐나다 맥길대의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 교수는 “조직들은 의도를 가지건, 혹은 그렇지 않건 간에 모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하는 초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여타의 다양한 조직들과 개인들은 경제적 효율성의 증대, 양적인 성장, 고속성장을 위한 시간 단축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해 왔다. 즉,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의 초고속성장은 우리가 지난 50여 년간 성장, 효율성, 속도라는 세 가지의 큰 목표를 향해 전략을 수립하고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모든 국가적, 조직적, 그리고 개인적인 가치관, 행동방식, 의사결정방식들을 이러한 목표들에 맞춰 왔던 덕분에 이뤄졌다는 얘기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우수하고 효과적인 전략일수록 서로 상충하지 않고, 서로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화하는 일련의 활동(activity), 혹은 역량들로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고 설명한다. 포터의 정의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은 성장, 효율성, 속도를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전략 혹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조직들과 개인들의 모든 활동들과 역량들이 성장과 효율성, 그리고 속도를 추구하기 위해 개별적으로도 효과적으로 구성돼 있다는 걸 의미한다. 또 이들이 종합적이고 긴밀하게 조합돼 있음을 시사한다. 조직이론 학자들은 조직과 개인의 숙달된 의사결정 및 행동방식을 루틴(routine)이라고 칭한다. 조직이론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 사회의 조직들과 개인들은 효율성, 성장, 속도를 추구하는 루틴을 50여 년 동안 습득하고 개선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보유한 효율성과 성장에 대한 루틴은 너무나도 우수해서 많은 후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이 이러한 루틴을 배우기 위해서 민·관계의 인력과 조직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을 가능케 한 효율성, 성장, 속도 일변도의 루틴이 각종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고 발생한 사고들에 대처하는 대한민국의 능력을 저해하는 중요한 장애물로 작용했다. 슬픈 아이러니다.사고 예방이나 사고 발생 후 신속한 대처를 위해서는 개인들이 단순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리처드 넬슨(Richard Nelson)과 시드니 윈터(Sidney Winter) 교수는 “특정한 상황에 대비한 루틴이 없는 개인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엉성하게라도 대처할 수 있으나, 루틴이 없는 조직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조직은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구체적인 유형마다 사전에 발생을 예방하고, 발생한 경우에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루틴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해상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선박 운용업체는 어떤 경우에도 선장과 조타수는 조타실을 지키고, 모든 선원들은 엄격한 교대 규칙을 준수하고, 만약 배가 침몰 위기를 맞은 상황에는 신속하게 구명정을 내리고, 구명조끼를 승객들에게 배포하고, 당황하는 승객들을 진정시켜서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숙달된 루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 감독 기관들은 선박들이 화물의 적재 기준을 정확하게 준수하는지를 확인하고, 구명 용구는 항상 사용할 수 있게 관리가 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 구조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숙련된 루틴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들은 이러한 효과적인 사고 예방과 대피를 위한 루틴을 보유하고 있지 못할까? 혹자는 감독 기관(정부) 및 기업들이 적절한 매뉴얼, 혹은 규정이나 절차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수의 정부 감독 기관들과 기업들은 이러한 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규정이나 절차를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상당 부분 명문화해두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서화된 규정과 절차들이 실제로는 엄격하게 준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맹점에 대해서 존 마이어(John Meyer)와 브라이언 로완(Brian Rowan) 교수는 많은 조직들이 엄격한 절차와 규정들을 제대로 구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들 조직이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절차나 규정들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단지 형식적인(ceremony) 역할만을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마이어와 로완은 “조직들이 실제로는 준수되지 않는 절차나 규정들을 구비하는 이유는 이러한 형식적인 측면들이 그 조직들에게 사회적인 정당성(legitimacy)을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형식에 그치는 절차와 규정의 문제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중앙정부, 해경, 청해진해운의 경우 해상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매뉴얼과 절차들을 일정 수준 구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규정들은 단지 이들 조직의 외적인 모양새를 그럴듯하게 꾸며주는 형식적인 요소에 그쳤다.이러한 규정과 안전수칙들이 형식에 그치지 않고, 조직의 실질적인 역량으로서 제대로 작동하고 발휘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이들을 ‘루틴화’해야 한다. 그러나 루틴의 반복적인 가동을 위해서는 조직의 자원이 지속적으로 소모돼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면, 대피 훈련을 시행하는 동안에는 평상시에 수행하는 과업(예: 여객 및 화물수송)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그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효율성(예: 시간소모)이 떨어질 것이다. 또한 엄격한 규칙을 항상 준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조직 구성원들의 제한된 심리적인 자원(attentional resource)이 소모되기 때문에 조직 구성원들의 피로도가 증가할 것이다. 또한 그만큼의 심리적 자원을 평상시의 과업 수행에 사용할 수 없으므로 조직의 효율성 증대와 성장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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