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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교육

지식보다 상상력! 교실보다 감상실이 중요하다

유영만 | 99호 (2012년 2월 Issue 2)



궁금한 상상? 즐거운 창의, 놀라운 창조!: 상상 양(
), 창의 군(), 창조 군()의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 결혼식
 
파란만장한 ‘상상 양’과 주도면밀한 ‘창의 군’, 그리고 매혹적인 ‘창조 군’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가는 일처다부제 러브스토리, 기가 막히고 동공이 화들짝 열리는 상상의 세계, 아찔한 충격과 짜릿한 전율이 온 몸에 흐르는 창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상상 양과 창의 군, 그리고 창조 군의 삼각관계는 현실에서는 엄연한 불륜이지만 상상초월의 상상나라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한 상상의 무법천지이자 창조의 신세계다.
 
상상은 생각너머의 생각을 가능케 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구상하는 과정이다. 공상(空想)이든 망상(妄想)이든, 환상(幻想)이든 몽상(夢想)이든 일단 상상으로 가는 특급 열차를 타야 한다. 상상초월의 아이디어를 잉태하기 위해서는 창의 군의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다. 상상 양이 무엇인가 상상해주면 창의 군은 어떠한 난관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의욕,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열망을 보여준다. 창의 군은 상상 양이 상상한 결과를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상상을 현실로 구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데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 상상 양은 창의 군에게 창의적 아이디어의 원천을, 창의 군은 상상 양에게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다.
 
하지만 창의 군이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한다고 해도 모두 현실로 구현되지는 않는다. 창의적 아이디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시기상조일 수도 있고 다양한 제약조건이나 문화적 풍토로 인해 아이디어 수준으로 끝날 수도 있다. 상상낙원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상상 양은 또 다른 난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자신의 상상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상상 양은 창의 군의 도움과 더불어 창조 군의 도움이 필요하다. 창조 군의 도움 없이는 창의 군과 함께 잉태시킨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초월의 아이디어를 창의 군에게 전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잉태시키고 궁극적으로 창의적인 자손이 창조되기 위해서는 창조 군의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두 남자를 양쪽에 거느리고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들으면서 입장하는 상상초월의 결혼식을 상상해보자. 매력적인 상상 양이 매혹적인 두 남자 창의 군과 창조 군을 오고가면서, 아니 상상 양이 열정적인 창의 군의 힘을 빌려 칼날 같은 이성적 판단력과 불같은 감성적 상상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창조 군에게 자신의 상상의지를 전달하는 여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상상 양이 상상한 결과를 창의군이 색다른 창의적 아이디어로 부화시키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결국 창조 군에 의해 현실로 구현되는 것이다. 창조는 창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현실로 구현될 결과다. 창의는 상상에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추가해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잉태한 것이다. 이렇게 상상-창의-창조는 본래부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상상력의 기반 없이 바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교육을 하거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는 기반 없이 바로 뭔가를 창조하려는 무모한 노력을 반복해오지는 않았을까. 지금까지의 창조성 계발 교육은 상상력의 텃밭을 가꾸기도 전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심으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창의력의 씨앗이 자라기도 전에 전대미문의 창조적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기존 창조성 계발 교육은 상상력의 텃밭을 가꾼다고 해도 그것이 창의력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검증해 창조성의 열매로 연결하는 노력도 간과해 왔다.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창조성 계발 교육은 창조성 계발에 대한 잘못된 전제와 가정을 근간으로 이뤄진 사상누각의 교육이었다. 창조성이 발아될 수 있는 체험적 기반이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삶과 유리된 창의적이지 못한 창조성 계발 교육이었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창조성 계발 교육은 상상력, 창의력, 창조성을 따로 가르치고 배우는 따로국밥식 교육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창조성 계발 교육은 상상을 창의나 창조로 연결하는 다리, ‘상창교(想創橋, ImCreative Bridge, ImCreative=Imaginative+Creative)’를 건설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별도의 체험적 기반과 교육적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문제는 상상력으로 발아된 새로운 생각의 씨앗이 창의적인 프로세스로 연계돼 마침내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창작품으로 연결되는 가교를 건설하는 일이다.
 
상창교(想創橋)는 ‘상창교(想創敎)’, 즉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르치는 교육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선인들의 지혜와 전통을 담고 있는 경전이 필요하다. 상창교(想創敎)는 바로 그런 경전을 토대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종교(宗敎)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창조성은 종교적 신념화를 시킬 정도로 일상적 삶에서 실천을 통해 체득해야 할 능력이다. 교육은 이런 체득 과정을 도와주는 매개체이자 촉매제일 뿐이다.
 
창조성의 세 가지 차원: 개인, 영역, 현장의 삼박자가 삼매경의 창조성을 불러온다!
 
흔히들 창의적 활동이나 그로 인해 만들어진 우수한 결과물들은 특정 인물의 타고난 지적 우수성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 1 는 ‘창의적’이라고 불릴 만한 아이디어나 업적은 단순히 한 개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업적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상승작용의 결과이자 체계의 상호작용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인간의 창의성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구성요소, 즉 영역, 현장, 개인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고 개인뿐만 아니라 현장과 영역이 인간의 창의적 사고와 활동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간과될 경우 창조성은 의도대로 발현되지 않는다.
 
첫 번째 구성요소는 일련의 상징적 규칙과 절차로 이뤄진 ‘영역(domain)’이다. 영역은 상징에 의해 전달되는 지식의 체계다. 예를 들어 수학은 하나의 영역이며 좀 더 세분화한다면 수학의 한 부분인 대수나 정수 이론도 각각 하나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영역이란 우리가 보통 문명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공동체나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상징적 지식체계를 뜻한다. 인간의 거의 모든 창의적 활동은 기존의 지식체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선행돼야만 가능하다. 이런 지식이 바탕이 돼 기존의 것을 개선하고 발전시킬 때 창의성은 의미를 부여받는다. 창조성은 결국 기존 상징체계가 지니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징체계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인정받는다.
 
창의성의 두 번째 구성요소는 영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활동 ‘현장(field)’이다. 현장은 주로 특정 영역에 오랫동안 종사했거나 그 영역에서 권위자로 인정받는 숙련된 전문가들과 이들을 후원하는 단체 및 정부기관으로 구성된다. 이들이 현장에서 하는 일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그 영역 속에 포함시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창의성이 현장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는 없다. 수많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창의적 인물들과 아이디어들이 동시대의 현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소외돼 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이 생산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대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문화는 보수적이고, 또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만약 생산되는 새로움을 모두 수용한다면 문화는 곧 혼란에 빠져들고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현장은 이렇듯 기존 문화를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여과장치의 역할을 수행한다.
 
창의성을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는 ‘개인’이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주체이자 출발점이 바로 개인이다. 창의성은 어떤 사람이 음악, 공학, 사업, 수학과 같은 주어진 영역의 상징을 사용해서 새로운 사고나 새로운 양식을 발전시키면 적절한 현장이 그러한 새로움을 선택해서 관련 영역에 포함시킬 때 가능해진다. 다음 세대는 그 새로움을 기존 영역의 일부로 만나게 될 것이며 만일 그들이 창의적이라면 다시 그 영역을 좀 더 변화시킬 것이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창의성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창조성 계발 교육의 기본 방향과 전략: 창조성은 개인, 관계, 문화의 합작품

창조성을 육성하고 계발하기 위해 기업은 교육 측면에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기업에서 운영되고 있는 창조성 계발 교육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유형은 곧 창조성 계발을 위한 3대 교육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①개인의 창조성을 육성하는 교육: 이연연상을 활용하는 지식편집
첫째, 개인의 창조성을 육성하는 교육이다. 개인 중심의 창조성 교육은 창의적이거나 창조성이 뛰어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성격적 특성이나 자질, 역량 면에서 다르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개인 중심의 창조성 교육은 주로 창조적인 사람의 특성을 분석해 차별화된 역량을 도출하고 창의적인 사람을 모방하도록 만드는 교육이다. 주로 이런 부류의 교육은 개인의 창조적 특성, 즉 독창성 계발에 중점을 두면서 창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창의력 기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브레인스토밍 기법이나 피시본(Fish Bone) 기법, 마인드맵을 활용하거나 분리, 제거, 결합, 대체, 보완 등의 방법 등을 활용해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육성한다.
 
그런데 창의력의 핵심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이미 알고 있거나 경험한 내용 중에서 두 가지 이상을 연상 또는 결합시키는 이연연상(二連聯想·bisociation)과 이종결합(異種結合)을 통해서 이뤄진다. 문제는 이연연상 또는 이종결합을 할 재료라 할 수 있는 직간접적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창조성 계발을 위한 기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때 발생한다. 창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노력이라기보다 유와 유를 엮어 제3의 유를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두 가지 이상을 엮어서 남다른 방식으로 결합시킬 재료가 없는 사람에게 창의력 향상을 위한 기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이 이연연상과 이종결합에 의해 이뤄진다면 결국 창조성 계발 교육의 핵심도 남다른 방식으로 연상해서 낯선 방식으로 조합하는 데 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가 활용하는, 익숙한 이미지의 낯선 중첩을 통해 색다른 주목을 끌어내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은 이미지를 이연연상해서 이종결합한 대표적인 산물이다. 앞으로의 지식은 메시지뿐만 아니라 오디오, 비디오, 이미지를 포함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통용되는 개념과 메시지에 오디오, 비디오, 이미지를 자유롭게 조합할 때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지식을 편집해낼 수 있다. 모든 지식은 편집된 지식이다. 편집하지 않으면 편집당한다. 누군가가 다른 목적으로 만든 지식을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재목적화(repurposing)한 다음 재목적화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오디오, 비디오, 이미지, 메시지를 남다른 방식으로 재조합(remix)하는 지식편집(knowledge mash-up) 능력 육성이야말로 창조성 계발 교육의 핵심 테마다.
 
<악당의 명언>이라는 책에 보면 아이디어를 ‘남의 것 대부분에 내 것 약간’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아이디어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남다른 방식으로 편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미 존재하는 한자 체(), 인(), 지()를 엮어서 ‘체인지(體認知)’라는 개념을 창조하면 놀랍게도 변화를 의미하는‘ Change’와 발음이 똑같다. 결국 나를 포함해 세상을 변화(change)시키는 지식은 몸()을 움직여 고통체험을 하게 되면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의 결과 탄생되는 지식()이다.
 
②관계중심의 창조성 계발 교육: 이종결합을 촉진하는 소통과 공감 개인의 독창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창조성 계발 교육이 가지는 문제점은 독창성(獨創性)이 협창성(協創性)의 결과로 생긴다는 점을 간과할 때 나타난다. 한 개인의 성격은 진공관과 같이 현실과 무관한 상태에서 배타적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인성(人性)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과의 지속적인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성(關係性)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창조성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역학적 관계 속에서 계발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개인 중심의 독창성 계발 교육은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두 번째 창조성 계발 교육이 바로 관계중심의 창조성 계발 교육이다. 창조성은 개인의 독창성이 아닌 사회적 ‘관계’의 문제다. 한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끈을 바꿔주지 않는 상태에서 창의적인 개인이 갖춰야 할 자세와 태도, 자질과 역량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경우 결과적으로 개인의 독창성은 사장될 수 있다.
 
관계중심의 창조성 계발 교육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개인으로 하여금 창의적 생각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주느냐에 달려 있다. 낯선 마주침이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딴생각과 딴짓을 해야 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나 사물, 환경과 낯선 마주침을 통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조성하는 데 관계중심 창조성 계발 교육의 핵심이 놓여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공의 벽과 담을 넘어 다른 분야와의 원활한 소통과 공감대 조성이 필요하다.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혁신과 창조는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접경지역에서 다양한 관점이 교류하면서 발생했다(Johansson, 2004) 2 . 노벨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한 미국의 래드 랩(Rad-Lab·Radiation Laboratory)의 성공비결은 분야가 다른 과학자들이 수행한 협동연구였다(홍성욱, 2008) 3 . 래드 랩 사례는 전문성의 깊이 추구로 만들어진 높은 벽과 깊은 경계를 넘나들면서 다른 사람의 이견(異見)을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가운데 소통하려는 노력이 위대한 창조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창의성에는 한 개인의 외로운 노력으로 발휘되는 독창성이 전제된다. 하지만 결국 한 시대의 흐름을 꺾는 전대미문의 창조는 독창(獨創)이 독재(獨裁)로 흐르지 않도록 서로 나누고 협력하는 협창성에서 발현된다. 나와 다른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쌍방 간 지식의 융합과 경험의 통합을 통해서 제3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잉태시킬 수 있는 중요한 촉진제이자 원동력이다. 아이디어는 이미 있는 기존 지식과 경험을 색다른 방식으로 조합하거나 의외의 방식으로 결합하는 가운데 나온다. 색다른 아이디어는 색다른 조합이나 결합에서 나온다면 색다른 조합과 결합의 재료가 필요하다. 내가 모든 분야를 경험하거나 모든 분야에 능통할 수 없기 때문에 나와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과 끊임없이 소통할 필요가 있다.
 
③조직문화 중심의 창조성 계발 교육: 옥황상제가 보낸 5명의 과학자 한 개인이 맺어가는 사회적 관계는 그 개인이 어떤 조직 문화적 토양에서 성장하느냐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창조성 계발 교육의 마지막 차원은 조직문화 중심의 창조성 계발 교육이다. 조직문화 중심의 창조성 계발 교육은 조직문화, 제도, 시스템 등 조직의 토양과 환경을 창조성 계발이 촉진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조직 구성원의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구성원의 창의력이 발산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촉진하는 문화, 제도, 시스템 등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옥황상제가 한국의 과학을 부흥시키기 위해 파견한 5명의 과학자 이야기를 통해 예증(例證)해보고 싶다.
 
옥확상제는 먼저 퀴리 부인을 보냈다. 퀴리 부인은 대학 졸업 후 취직을 시도하다가 얼굴도 평범하고, 키도 작고, 몸매도 안 되니 선이나 보라고 해서 아직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옥황상제는 이번엔 탁월한 발명가 에디슨을 파견했다. 그런데 에디슨은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는 이유로 특허 신청을 해도 대기업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옥황상제는 그래도 꿈을 버리지 않고 이번에는 천재 아인슈타인을 보냈다. 아이슈타인은 수학만 엄청 잘하고 다른 과목에서는 거의 낙제점을 면치 못해서 결국 대학 문턱에도 못 가고 무위도식하는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네 번째로 한국에 파견된 과학자는 갈릴레오였다. 갈릴레오는 주변의 수많은 핍박과 온갖 횡포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우리나라의 과학 현실에 대한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연구비 지원이 끊겨서 한강변에서 공공근로로 여생을 보냈다. 옥황상제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천재물리학자 뉴턴을 파견했다. 뉴턴은 자신의 비상한 머리를 믿고 대학원까지 가서 학위 논문을 제출했는데 지도교수는 물론이고 논문심사 교수들이 뉴턴의 논문 아이디어를 이해하지 못해 졸업도 못하고 철원 최전방으로 끌려가는 비운의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옥황상제가 보낸 5명의 과학자는 결국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엄청난 아이디어와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암울한 여생을 보내야 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개인이 똑똑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이를 수용하고 지원하며 촉진하는 조직이나 문화와 시스템,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창조성은 ‘교실’에서 길러지지 않고 ‘감상실(感想實)’에서 자란다!
 
창조성은 단순히 교육만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교육은 창조성이 계발될 수 있는 촉발점을 제공할 뿐이며 창조성이 계발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이해를 촉구할 뿐이다. 창조성은 ‘교실’에서 육성되지 않고 ‘감상실(感想實)’에서 계발된다. 감상실은 창조성이 계발되는 단계이자 노력을 의미하는 감수성, 상상력, 실험정신을 의미한다. 창조성 계발 교육은 결국 감상실을 마련하는 교육이다.
 
하나의 지식이 창조되기까지는 다양한 사색과 사유의 과정을 거쳐 숱한 시행착오의 실험을 거친다. 심금을 울리는 지식은 우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정서적 능력, 즉 감수성(
感受性)에서 시작된다. 감수성은 기존의 것에 대한 거룩한 불만족이자 참을 수 없는 불편함과 끊이지 않는 불안감을 포착하는 정서적 마음이자 에너지다. 감수성은 예를 들면 글을 모르는 국민을 긍휼히 여기는 세종대왕의 마음이다. 만약 세종대왕이 글을 모르는 국민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한글은 창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감수성은 타인이 겪고 있는 아픔과 슬픔, 고민과 고뇌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감수성은 타인이 겪고 있는 불편함, 불만족스러움, 불안감에 공감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격려해주는 마음이다.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고객이 느끼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불편함, 불만족스러움, 불안감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감수성으로 포착된 현실적 문제의식과 타인의 아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다 보면 야심적인 문제가 발견된다. 문제가 야심적이어야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강하게 발동된다. 야심적인 문제를 발견하는 순간 그 문제가 해결됐을 때의 모습을 불확실하지만 행복하게 상상하게 된다. 상상력은 감수성을 기반으로 발휘돼야 공상(空想)이나 환상(幻想), 망상(妄想)이나 몽상(夢想)에 머무르지 않는다. 상상력은 감수성으로 포착된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일종의 정신 에너지다. 상상은 기존 지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존 지식이 상상력 발휘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과정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그래서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상상력은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역발상을 시도하고 세상을 남다르게 바라보는 가운데 싹이 자라고 꽃이 피는 생각 너머의 생각이다.
 
감수성과 상상력의 단계를 통과한 아이디어는 마지막 관문, 즉 실험 단계를 통과해야 아이디어로서의 가치가 살아난다. 누구나 상상을 하지만 상상한 것을 반드시 현실로 구현시키지는 않는다. 상상한 것을 반드시 구현시키기 위해서는 불굴의 의지와 발견적 열정이 필요하다. 미지의 세계에 있는 상상을 현실 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상이 꿈꾸었던 세계를 발견하겠다는 야망과 영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남다른 도전과 색다른 시행착오를 통해 다양한 시도와 도전, 시험과 탐험, 때로는 모험을 감행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물줄기를 찾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시추(試錐)가 필요하듯이 상상력을 통해 구상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실험(實驗), 색다른 탐험(探險), 과감한 모험(冒險)의 여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남다른 도전과 시행착오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면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현실 무대에서 검증하는 과정을 통과해야 창의적 아이디어는 혁신적인 성과로 연결된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 010000@hanyang.ac.kr
 
필자는 한양대에서 교육공학으로 학사·석사를 마친 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교육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삼성인력개발원을 거쳐 현재 한양대 사범대학 교육공학과 교수 겸 교수학습개발연구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며 창의, 가르침의 본질, 공감과 소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곡선이 이긴다> <용기> 등 65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했다.
  • 유영만 | - (현) 한양대 사범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 (현) 한양대 교수학습개발연구센터장
    - 삼성경제 연구소, 삼성인력개발원 경영혁신,지식경영 교육담당
    -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학습체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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