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가전업계의 영원한 맞수인 삼성전자와 소니가 7세대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생산을 위해 합작 회사 ‘S-LCD’를 설립하는 협력 관계를 맺었다. 이후 두 회사는 공동 투자를 지속했으며 2006년에는 8세대 LCD 패널까지 생산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삼성과 소니는 합작 공장에서 생산된 TFT-LCD를 장착한 LCD TV를 각각 미국 시장에 출시해서 한 치 양보 없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이는 기업 간에 경쟁을 하면서 협력을 도모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최근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기업들은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즉, 경쟁 기업과의 공생 공존을 도모하는 ‘윈-윈(win-win) 게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사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협력해 글로벌 자원을 적극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표)
미국 에모리대의 세트 교수와 조지메이슨대의 시소디아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현재 글로벌 경쟁 구도하에서는 업종별로 3대 또는 5대 기업만이 생존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점유율 상위 3대 기업이 세계 시장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30%는 특정 시장이나 제품군에 특화한 군소 전문 기업들이 갖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현재 각 업종에서 세계 시장점유율이 최소한 10% 이상 되는 메이저 기업들은 외형을 늘려 상위 3대 기업에 들기 위해 합종연횡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10% 미만인 마이너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틈새시장에 특화하는 전문 기업으로 변신하거나 메이저 기업들과 합병 또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게 좋다.
실제 항공 운송업계는 3개 동맹체, 즉 ‘스타얼라인스’ ‘스카이팀’ ‘윈월드’로 나뉘어 경쟁과 협력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항공사들은 좌석 공유, 마일리지 적립, 공동 마케팅 등 항공기 운항 전반에 대해 협력해 비행기를 신규 투입하지 않고도 노선을 확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GM과 포드 그리고 일본의 도요타가 3강 체제를 구축하고 그 밖의 자동차 회사들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합종연횡을 진행했다.
기업 간 협력은 부가가치 창출 활동, 즉 연구개발(R&D), 조달, 생산, 마케팅, 서비스 등에 걸쳐 장기적 계약을 통한 전략적 제휴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고, 삼성과 소니처럼 서로 자본을 투자해 합작 사업을 수행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이뤄지기도 한다. 장기 계약에 의거한 전략적 제휴는 서로 독립적인 주체들이 특정 분야에서만 협력한다는 점에서 각 개별 기업의 독자성이 유지되는 데 반해 M&A는 개별 기업의 독자성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물론 전략적 제휴에서는 제휴 목적이 달성된 후에는 협력 관계가 종결된다.
다른 기업과 협업해야 하는 이유
기업들이 협업을 추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특히 최근 글로벌 차원의 경쟁이 펼쳐지면서 협업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전략적 제휴 등 협력을 통해 경쟁 우위를 높일 수 있는 첫 번째 원천은 다른 기업과 자원과 비용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영 자원을 보유한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기업들은 보완적인 제품, 기술, 지식 및 노하우 등을 갖고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특히 신기술이나 신제품 개발 투자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제품 수명 주기도 단축되고 있다. 따라서 막대한 설비 투자나 R&D 비용을 마련하려면 이해관계가 맞는 기업들 간 협업이 필수적이다.
협업의 두 번째 원천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새로운 시장에서 신속하고도 공고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와 통신(네트워크), 방송, AV 기기 등 각종 미디어가 통합되는 멀티미디어 분야에서 미국, 일본, 유럽 기업들은 신시장 선점을 위해 전략적 제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즉 케이블 회사는 비디오 제작 업체와, 영화 스튜디오는 컴퓨터 메이커와, 전기 통신 업체는 소프트웨어 업체와 닥치는 대로 협력 관계를 맺고 관련 산업 및 제품의 기술과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컨버전스 사업에 진출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부족한 기술을 지닌 기업과 공동 R&D 등 협업을 모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글로벌 경쟁 우위의 세 번째 원천은 신속한 국제 표준 규격 확립에 있다. 최근 모바일 방송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면서 이 분야 세계 표준을 장악하기 위한 유럽, 한국 및 미국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예를 들면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DVB-H 기술을 모바일 TV의 세계 표준으로 확립하기 위해 인텔, 모토로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크라운 캐슬 인터내셔널 산하의 모데오 등 세계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과 ‘Mobile DTV Alliance’라는 제휴 그룹을 구성했다. 현재 유럽표준기구가 유럽 모바일 TV 표준으로 DVB-H를 지원하고 있어서 DVB-H로 단일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 퀄컴의 미디어플로(MediaFLO)와 한국의 지상파 DMB(T-DMB) 기술이 국제 표준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경합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