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한국 기업은 정서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접근 방식에 기반한 고객관리 전략으로 성장해왔다. 이런 전략은 고객과의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있어 독보적인 효과를 발휘했으나 지나치게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고 높은 비용 구조를 가지는 한계 또한 드러냈다. 데이터 기반의 고객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 학계가 최초로 고안한 ‘고객제표’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경영이 K고객관리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K문화 전성기라 불릴 수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의 음반이 빌보드 차트 정상권을 차지하고, 영화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상을 석권했으며, 넷플릭스(Netflix)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등 한국 문화 콘텐츠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거리에서 블랙핑크 로제의 노래 APT가 흘러나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국어 발음으로 ‘아파트’라고 따라 부르는 모습은 일상이 됐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미국 시골의 작은 주유소에서 듣고 느꼈던 감동이 이제는 흔한 풍경이 됐다.
K팝, K무비, K드라마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K-entertainment)의 성공은 코스트코, 트레이더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국식 음식(K-food)을 넘어 이제는 한국식 경영관리(K-management)로까지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이 한국의 경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과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다트머스 경영대학,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ESADE 경영대학 등이 한국을 찾았다. 특히 ESADE 경영대학은 3년 연속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과 비즈니스 애널리틱스에 관한 여러 강의를 듣고 토론 및 그룹 발표, 기업 투어 및 한국 문화 체험 등의 활동들을 했다. 이들이 주목한 한국식 경영관리의 강점은 무엇일까? 고객관리 측면에서 한국식 고객관리의 특징과 한계를 살펴보고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고객 가치 넘어 고객관리의 중요성기업은 고객에게 물건(제조업)을 판매하거나 서비스(서비스업)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한다. 따라서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고객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만큼 충분한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종종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다. 피자 배달은 나에게 ‘맛’과 ‘시간’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제공한다. 요리를 잘 못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요리할 경우 배달 피자와 같은 식감과 풍미를 내기 어렵다. 설령 요리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재료 준비와 조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따뜻한 피자를 30분 만에 받을 수 있는 배달 서비스는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 이처럼 기업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충족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이제는 고객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맛’과 ‘시간’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는 피자 배달업체는 무수히 많다. 그렇다면 고객은 이들 중에서 어떤 업체를 선택할까? 예상 배송 시간이 가장 빠른 업체, 평균 평점이 가장 높은 업체, 고객 리뷰 수가 가장 많은 업체 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객은 종종 이런 객관적인 기준을 넘어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업체를 더 자주 이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매번 이용하는 업체에 고객인 나는 ‘진짜 고객’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가끔 이용하는 다른 업체 입장에서는 잠시 (다른 업체로부터) ‘빌려온 고객’에 불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업에 고객 간의 특성은 모두 동일하지 않다. 기업이 고객의 특성을 이해하고 구분해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충성도를 높이는 고객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객관리의 중요성은 서비스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 전통적인 제조업은 고객과의 접점이 거의 없었다. 제조업체는 제품을 생산해 유통업체에 공급하고, 고객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마트나 매장 등 유통업체에서 이뤄졌다. 고객에 대한 정보는 유통업체가 독점적으로 보유했으며, 제조업체는 유통업체의 주문량에 의존해 생산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제조업체들도 고객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은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예컨대 과거 마케팅과 디자인에 집중하고 판매는 도매 유통채널(백화점, 멀티 브랜드 리테일러 등)에 의존했던 나이키는 이런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
몇 년 전부터 나이키는 직영 채널 강화 전략을 통해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2019년, 필자는 미국 오리건주 비버튼에 위치한 나이키 본사를 방문해 매니저들과 논의한 경험이 있다. 당시 자포스(Zappos.com)의 온라인 플랫폼을 연구하며 나이키의 자사 플랫폼이 오프라인 고객 경험과 유사한 온라인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런 노력은 2021년 나이키가 발표한 디지털 전환 전략, ‘Consumer Direct Acceleration(CDA)’으로 구체화됐다. 이 전략을 통해 나이키는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플랫폼과 서비스를 강화했고 Nike.com과 Nike 앱을 중심으로 고객 경험을 대폭 개선했다. 2023년 기준, 나이키 전체 매출 중 약 40%가 이러한 직영 채널에서 발생했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듯했다.
그런데 최근 2025년 1분기 실적에서 나이키는 매출과 순이익이 각각 10%와 28% 감소했고 특히 디지털 부문 매출이 20% 하락했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 구매가 급증했던 소비자들이 최근 오프라인 채널로 회귀하는 행동 변화가 생겼다.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이런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채 디지털 채널을 강화하면서 오프라인 채널과 시너지를 내는 옴니채널 리테일링(Omnichannel Retailing) 전략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나이키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데이터 기반의 고객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고객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고객관리가 중요한 것은 나이키 같은 B2C 기업뿐만 아니라 B2B 기업들에도 마찬가지다.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은 고객관리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한때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이었던 퀄컴은 스냅드래곤 칩셋 제조를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겼으나 제조 공정에서 수율 문제와 공정 안정성 부족이 발생하면서 주요 물량을 TSMC로 전환했다. 다른 중요한 고객사인 엔비디아와 애플 역시 TSMC로 파운드리 공급처를 변경했다. TSMC는 고객사와의 긴밀한 협력, 명확한 로드맵 제공, 체계적인 고객관리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며 고객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체계적인 고객(사) 관리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B2B 기업에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켜준다.
한국식 고객관리의 본질과 성공 비결한국식 고객관리는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반영한 독특한 접근 방식을 지니고 있다.
1. 정(情) 문화에 기반을 둔 관계 중심적 접근“우리가 남이가?”
영화 친구에서 나온 이 유명한 대사는 한국식 관계 중심적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집단주의와 상부상조 문화를 중시하며 이는 고객관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객을 단순히 소비자가 아닌 가족과도 같은 존재로 대하며 더욱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고객에게 따뜻한 배려와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작은 불만도 빠르게 해결하며,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관계를 돈독히 한다.
대부분 한국 기업은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고객들에게 선물이나 감사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VIP에게는 설날에 전통 한과 세트를 보내거나 추석에는 손편지를 동봉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곤 한다. 이런 고객관리 전략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할인 쿠폰과 함께 축하 e메일을 보내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개인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자동차 판매원은 고객의 자녀 졸업식이나 결혼식 같은 가족 행사를 축하하며 선물을 보내거나 직접 참석하기도 한다. 보험 설계사는 고객의 자녀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가족의 중요한 일들을 챙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관계 중심적 접근은 한국의 정(情) 문화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2. 서비스 강조한국에서는 특히 ‘서비스’를 강조하는 문화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중국 음식점에서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면 군만두 정도는 서비스로 제공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서비스 중심 문화는 음식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의 서비스 문화는 강력한 현장 방문 서비스로도 이어진다. 고객과의 접점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현장에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예를 들어 가전제품 회사가 고객의 집을 방문해 제품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미국 기업도 설치가 까다로운 가전제품에 대해 배송 및 설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상당한 비용이 발생해 가끔은 본 제품보다 서비스 비용이 더 비싼 경우도 생긴다. 반면 한국에서는 서비스에 대해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적절한 비용을 책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속적인 사후관리(AS) 또한 한국식 고객관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단순히 한 번의 판매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사후관리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이를 재구매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는 제품 수리를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며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동형 AS 차량을 운영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소비자들이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 폰 중에서 고민할 때 이런 사후관리 서비스가 삼성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마지막으로 한국은 서비스의 속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고객 응대에서 빠른 문제 해결과 즉각적인 반응을 중시하며 이를 위해 24시간 고객센터 운영이나 신속한 AS를 제공한다.
이처럼 정(情) 문화와 상호 존중, 관계 중심적 특성을 반영한 한국식 고객관리 전략은 고객과의 장기적인 신뢰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K고객관리의 한계한국식 고객관리의 관계 중심적이고 정서적 유대감을 강조하는 특성은 강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한계점을 보이기도 한다.
1. 개인기에 의존하는 고객관리지나치게 관계(정,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의존하는 고객관리는 개별 직원의 역량(개인기)에 따라 그 효율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고객과의 관계를 중시하다 보면 직원이 고객의 비합리적인 요구나 감정적 대립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이는 직원에게 과도한 감정적 부담을 지워 업무 만족도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예컨대 고객이 사적인 관계를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직원이 업무 외적인 개인적 노력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직원의 감정 소모가 심화되면서 이직률이 증가할 수 있고, 특히 뛰어난 직원 역량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구조에서 해당 직원이 퇴사할 경우 조직의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될 위험이 있다.
품질관리의 선구자인 조셉 주란 박사는 “실패의 85%는 직원이 아닌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결함 때문이다. 경영진의 역할은 프로세스를 바꾸는 것이지 직원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평균적인 역량을 가진 직원이더라도 일관되고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구조와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의존한 관리 체계는 특정 직원에게 과도한 부담이 쏠리지 않도록 하면서 조직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
2. 고비용 서비스한국 특유의 고객관리 전략은 대체로 높은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찾아가는 서비스’, 무료 또는 저렴한 사후관리 서비스, 신속한 응대를 기반으로 하는 빠른 서비스 등은 모두 상당한 비용을 수반한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도 인건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과거처럼 저렴한 비용으로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서비스 품질 격차 모형(SERVQUAL)의 갭 이론(Gap Theory)에 따르면 고객의 만족도는 고객이 기대한 서비스와 실제로 경험한 서비스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과거에 ‘무료 혹은 저렴한’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기던 고객들에게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고객 불만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간단한 서비스는 고객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DIY(Do It Yourself)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간단한 제품 설치나 문제 해결 가이드를 고객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고객 경험에 불편함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효과적인 DIY 서비스를 위해서는 고객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매뉴얼, 동영상 가이드 또는 사용자 친화적인 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기업은 기존의 고비용 구조에서 벗어나 고객의 기대와 기업의 비용 효율성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고객 만족도를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다.
K고객관리의 미래:데이터와 고객제표로 혁신앞서 살펴봤듯이 K고객관리는 관계 중심적 접근과 정서적 유대감을 강조하며 고객과의 신뢰를 쌓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높은 비용 구조, 서비스의 지속가능성 부족, 특정 직원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이러한 특징과 한계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1. 체계적인 데이터 기반 고객관리 시스템 구축개인의 역량에 의존하지 않는 체계적인 고객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이런 시스템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 하며 이를 통해 고객 경험(CX, Customer Experience)을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서비스 프로세스를 표준화 및 자동화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선언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실제 경영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기업은 ‘비즈니스 애널리틱스(Business Analytics)’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의사결정과 경영 전략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유통 기업 타깃의 데이터 분석 사례는 비즈니스 애널리틱스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한 미성년자 부모가 타깃에서 딸에게 유아용품 카탈로그를 보낸 것을 보고 항의를 한 적이 있다. 부모는 “우리 딸이 임신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광고를 보내느냐”고 화를 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임신한 딸이 아직 부모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 일화는 타깃의 데이터 분석이 부모보다 먼저 딸의 임신 사실을 알아챘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타깃은 고객의 구매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라이프 이벤트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한 예로 임산부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특정 시점에 자주 구매하는 제품(예: 무향 로션, 엽산 영양제, 대형 가방 등)의 빈도와 시기를 통해 ‘임산부 점수’를 계산했다. 이를 바탕으로 임산부 고객에게 유아용품 카탈로그를 발송하는 개인화된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타깃은 단순히 유아용품만을 포함하는 대신 일반 상품을 함께 포함시켜 고객이 데이터 분석 기반의 타기팅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배려하는 섬세함도 보여줬다. 이런 타깃의 전략은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데이터 기반 개인화 전략은 아마존이나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타깃의 사례는 과거 제한적인 데이터를 활용하면서도 효율적인 전략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중소기업이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접근 방식이다.
2. 고객 중심 경영의 새로운 도구: 고객제표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항상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데이터 기반 고객관리 시스템의 도입도 마찬가지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필요성을 기업 구성원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고객제표(Customer Statements)는 기존에 사용되던 재무제표를 보완하며 기업의 성과를 고객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재무제표는 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아왔지만 고객 중심 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대에 그 한계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재무제표는 기업의 경영 결과를 요약적으로 제공하지만 성과를 이루는 과정이나 질적 요소를 평가하지 못하고 평균화된 정보를 제공해 개별 성과 요인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더불어 고객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아 경영 전략과 재무 성과 간의 인과관계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객 중심적 접근이 부족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고객제표는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의 경영 성과를 평가하고 고객 중심 경영 전략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이다. 재무제표와 유사한 구조를 채택해 경영자와 이해관계자가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고객제표는 고객상태표, 고객손익계산서, 고객흐름표, 고객변동표 등 크게 4가지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다. 고객상태표는 기업이 보유한 고객을 자본 고객과 부채 고객으로 구분해 평가한다. 자본 고객(식별 가능한 고객; identified customer)은 충성도가 높은 핵심 고객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반면 부채 고객(식별 불가능한 고객; unidentified customer)은 타사로 이탈 가능성이 높은 임시 고객으로 고객 이탈률을 낮추기 위한 전략적 관리 대상이다. 앞서 언급했던 ‘진짜 고객’이 자본 고객, ‘빌려온 고객’을 부채 고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는 고객을 단순히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의 가치와 기여도를 차별화해 관리하는 데 기초를 제공한다. 고객손익계산서는 자본 고객과 부채 고객을 기준으로 매출과 비용 구조를 구분해 분석한다. 이를 통해 고객 그룹별 공헌이익률과 영업이익률을 산출하며 고객 식별화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객흐름표는 고객의 유입과 유출을 영업 방식 및 채널별로 평가하고 고객 흐름의 안정성과 자발적 유입 비중을 높이는 전략적 필요성을 시사한다. 고객변동표는 고객 그룹 간 이동과 변동을 추적하며 신규 고객 확보와 기존 고객 유지, 충성도 강화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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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제표는 기업이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영 성과를 더욱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재무제표가 제공하지 못하는 고객 중심적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고객 중심 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한다. 고객제표는 고객 충성도를 강화하고 고객 이탈을 예방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기존 재무제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은 고객 중심 경영 문화를 형성하고 경영 전략의 실효성을 높여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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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고객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K고객관리는 한국 특유의 정서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접근 방식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고객관리 전략이다. 이 전략은 고객과의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있어 독보적인 효과를 발휘해왔다. 그러나 지나치게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고 높은 비용 구조를 가지는 한계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특유의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 K고객관리는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야 하며 그 핵심은 데이터 기반의 고객관리 시스템 구축에 있다.
데이터 기반 고객관리 시스템은 개인의 역량 의존도를 줄이고 고객과의 관계를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기에 의존하던 고객관리를 시스템에 내재화하고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 행동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면 나이키 사례에서 나타난 진통 과정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고객제표라는 혁신적 도구의 도입이 그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다. 고객제표는 재무제표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고객 중심 경영 패러다임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적 도구로 설계됐다. 이 도구는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기업의 성과를 정밀하게 평가하고 고객 중심 경영 전략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모든 고객이 동일하지 않다는 기본 철학을 바탕으로 고객을 구분해 각 고객 그룹이 기업 성과에 기여하는 부분을 수치화하고 이를 통해 각 그룹에 맞는 전략을 보완 및 강화할 수 있다. 시스템이 안정화되면 더 적은 비용으로도 기존 K고객관리의 장점인 관계 중심적 접근을 더욱 강화한 개인화 전략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재무제표가 기업 경영의 중심 도구로 자리 잡아왔다면 앞으로의 100년은 K고객관리를 대표하는 고객제표가 그 자리를 차지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기업은 고객제표를 도입함으로써 단순히 성과 측정 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경영 철학 전반에 걸쳐 고객 중심적 사고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고객 이탈을 예방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국에서 시작된 이 혁신적 접근법이 전 세계 기업 경영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고객 중심 경영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