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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1세대 사법 리스크 ‘카카오’

재벌의 ‘사익 추구’ 사례와 성격 달라
내부 개혁 위한 진정성이 위기 돌파구

이창민,정리=김윤진 | 407호 (2024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는 과거 재벌들의 사법 리스크와 원인도, 해법도 다르다. 기존 재벌의 사법 리스크가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를 위해 계열사 자원이 동원된 ‘중앙집중형’이라면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는 지배주주의 지배권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여러 계열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지방분권형’이다. 또한 김범수 위원장의 구속 이후에는 과거 총수 구속 때와 달리 그룹 모든 계열사의 주가가 하락했다. 이는 시장이 창업자 1세대인 김 위원장 역할을 크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인 동시에 카카오의 거버넌스 개선을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카카오가 위기를 타개하려면 결국 1세대 김 위원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내부 개혁을 위한 진정성을 외부에 보여주고 ‘고인 물’의 저항을 뚫기 위해 직접 총대를 메야 한다. 또한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감사위원 전원 분리 선임 제도와 집중투표제, 임원의 자격 요건, 임원 보수 주주 심의제도 등을 정관에 도입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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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으로 구속기소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2024년 10월 31일 법원의 보석 허가를 받고 석방됐다. 그가 구속된 지 약 3개월 만의 일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 매수 가격보다 높게 조작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카카오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김 위원장이 시세조종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고 이를 승인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과거 재벌 총수의 배임 및 횡령 등에 대한 사법 처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주요 이슈는 “총수에 대한 사법 처리가 기업 경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였다. 한국 사법부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태도를 비판하면서 총수의 사익 추구 범죄에 대해 엄단해야 한다는 논리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에 맞서 재계에서는 “총수를 감옥에 보내면 그룹이 힘들어지고 경제가 힘들어진다”는 대항 논리를 전개했다. 그러나 현재 카카오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이전의 재벌 사례와는 달라 보인다.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해법도 달라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는 기존 재벌과 다르다

사법 리스크란 일반적으로 기업, 개인 또는 조직이 법적 분쟁, 규제 위반, 소송 또는 사법적 조치로 인해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한다. 카카오는 2023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사법 리스크에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2023년 2월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 혐의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됐으며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도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또한 카카오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가맹택시 매출 과대 계상 혐의,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바람픽쳐스 인수 관련 시세조종 의혹, 카카오 가상화폐(클레이튼)와 관련한 횡령 및 배임 의혹 등 다양한 사법 리스크에 휩싸였다.

여기에서 일단 카카오의 여러 사법 리스크는 기존 재벌의 사법 리스크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짚어봐야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재벌의 사법 리스크는 총수의 지배권 유지 및 승계와 연관된 사익 추구가 문제가 된 경우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의 시세조종 혐의는 본인의 카카오그룹 지배권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 김 위원장이 카카오 지배권을 자식들에게 승계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가 받는 시세조종 혐의는 카카오가 내부 계열사가 아닌 외부 회사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과정에서 경쟁자인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 주식 공개매수를 방해하려고 시장을 교란했다는 내용이다. 또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계열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법 리스크들은 김 위원장과 직접적 관련도 없다. 즉 기존 재벌의 사법 리스크는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를 위해 계열사의 자원이 동원된 ‘중앙집중형’이었다면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는 지배주주의 지배권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여러 계열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지방분권형’이라고 볼 수 있다.


카카오는 망하면 골프 때문이다

기존 재벌의 사법 리스크 사례에서는 총수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총수가 사과를 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때로는 사재를 출연하는 식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카카오의 대응은 조금 달랐다. 카카오는 2023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자 김 위원장이 직접 경영쇄신위원회 위원장과 CA협의체 공동 의장을 맡으면서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해 외부 감시 기구인 ‘준법과 신뢰위원회’를 설치했다. 또한 김 위원장과 약 30년 인연이 있다는 김정호 사회공헌재단 브라이언임팩트재단 이사장을 구원 투수로 영입하고 CA협의체 경영지원총괄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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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등판한 김 총괄은 “카카오는 망한다면 골프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밝히면서 카카오의 문제는 왜곡된 카카오의 기업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문제의 핵심이 총수의 사익 추구가 아니라 카카오 전 임직원의 왜곡된 문화와 비윤리적 행동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는 가히 틀린 분석은 아닌 듯 보인다.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1 기업 문화는 윤리적 선택(준법, 단기 주의), 혁신(창의성, 위험 감수), 가치 창출(생산성, 투자) 등 다양한 의사결정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좋지 않은 기업 문화는 임직원이 비윤리적이거나 심지어 불법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을 높인다. 기업 문화가 준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보고의 진실성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골프’가 담긴 논란의 발언 이후 카카오 내부의 다양한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김 총괄은 골프 회원권, 평가 및 보상제도, 법인카드, 데이터센터 건립 업체 선정 등 각종 문제를 지적했다. 이를 계기로 카카오에 대한 여러 비판과 해결책이 나왔고 그 와중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총수의 구속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이례적이었다

2024년 7월 23일 창업자 김 위원장이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된 날, 카카오 계열사의 주가는 이례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국내 대표 성장주로 꼽히는 ㈜카카오 주가는 전일 대비 2200원(5.36%) 내린 3만8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카카오그룹의 다른 계열사 주가도 일제히 하락했다. 카카오뱅크 주가는 전일 대비 3.79% 내린 2만300원, 카카오페이 주가는 7.81% 내린 2만4800원에 마감했다. 카카오게임즈 주가도 5.38% 하락했다. 한국에서 총수가 구속된 사례는 과거에도 제법 있었지만 주식시장의 일반적인 반응은 이렇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비슷한 경우 계열사의 절반은 주가가 떨어졌지만 나머지 절반은 주가가 오르곤 했다.2 즉 카카오그룹처럼 모든 상장 계열사의 주가가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는지 해석하는 것이 카카오의 향후 과제를 도출하는 흥미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총수가 구속됐을 경우 주가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리더십 공백 가설(leadership vacuum hypothesis)’에 기반한다. 총수의 구속으로 인해 경영에 생길 리더십 공백을 시장이 우려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는 한 가지 가정이 따른다. 재벌 총수가 개별 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미래전략실과 같은 조직을 통해 기업 집단 차원의 장단기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가정이다. 즉 총수가 단순히 개별 계열사의 경영을 책임지는 것을 넘어 전체 기업 집단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주요 전략을 결정하는 리더로서 역할을 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총수의 구속은 특정 계열사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재벌 그룹 전체의 의사결정 공백이나 지연을 초래할 수 있어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규율 가설(discipline hypothesis)’에 기반한 해석도 있을 수 있다. 엄정한 사법 처리가 해당 기업의 주가를 올린다는 가설인데 이런 가설은 주로 미국 등에서 잘 맞아떨어진다. 규율 가설에 따르면 재벌 그룹 총수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은 기업 가치를 위협하는 사적 이익 추구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적인 규율 메커니즘의 역할을 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총수의 구속은 주주 가치를 침해하는 사익 추구 행위를 제재하고 나아가 그룹 전반의 지배구조 개선을 촉진함으로써 해당 그룹과 계열사의 기업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호재다. 기업 가치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계열사의 주가가 오르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총수가 구속되는 경우 이론적, 실증적으로 해당 그룹 상장 계열사의 주가가 오를 가능성도 있고 내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카카오의 경우 모든 계열사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김 위원장의 구속에 따른 카카오 리더십 공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향후 카카오그룹 전반에 걸친 거버넌스 개선에 대해 시장의 기대가 크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시장은 카카오그룹에서 김 위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듯하다. 이것은 김 위원장이 창업자 1세대여서 그럴 수도 있고 아직 카카오가 시스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성장 단계의 그룹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이미 3~4세대로 넘어온, 역사가 오래된 국내 대기업 집단에선 총수가 구속되더라도 모든 계열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시장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된다.3

또 하나 향후 카카오그룹 전반의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크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시장은 일반적으로 과거의 경험에 근거해 기대를 형성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거 카카오의 ‘어떤 행태’가 기업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부정적 기대를 형성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장은 창업자 1세대 김범수의 역할을 원한다

시장은 창업자 1세대인 김 위원장에게 어떤 역할을 원하는 걸까? 일반적인 창업자 1세대의 특징을4 살펴보면 시장이 창업자 1세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창업자는 보통 회사 내에서 지분이 높고 실질 권력이 강하다. 전문경영인을 압도하는 권력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창업자는 자신들의 주요 업무가 의사결정, 관리, 감독이라고 여긴다. 누군가에게 위임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선다. 이건 단순히 ‘창업자 1세대들이 그렇구나’ 하고 호기심을 채우는 차원의 분석이 아니다. 성공한 창업자 1세대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22개 신흥국 국가의 상위 100대 기업 800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이런 결과를 가리킨다. 일종의 시장 사례(market practice)가 뒷받침하는 분석인 셈이다. 그렇다면 창업자 1세대 김범수 의장은 위의 특징에 부합하는 것일까? 조금은 달라 보인다. 김범수 의장의 리더십은 카리스마형이 아니라 자유방임형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창의력이 뛰어나고 대담한 의사결정도 자주 내린 승부사였으나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한 ‘좋은 형님’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이는 카카오그룹의 ‘자유방임형’ 문화와 연결됐을 가능성이 높다. 총수 한 명이 기업 문화를 완전히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리더의 자세(tone and manner)가 기업 문화 형성에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은 창업자 1세대인 김 위원장에게 ‘좋은 형님’ 역할에 머무르기보다는 위기에 맞는 결단과 돌파를 해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독재 왕국을 건설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아 현 대표에게 경영을 맡겨 놓고 본인은 한발 빗겨 나 있는 모습만으로는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거기에 카카오가 자체적으로 왜곡된 기업 문화가 위기의 본질이라고 진단했기에 더더욱 김 위원장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한 번 뿌리내린 기업 문화를 바꾸기는 어렵고 바꾸려면 고위 경영진부터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 문화는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경영진은 일반적으로 기업 문화를 ‘신념 체계’ ‘조정 메커니즘’ ‘보이지 않는 손’ ‘직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 ‘행동 기준’ ‘회사의 성격을 결정짓는 분위기’ 등으로 설명한다. 북미 지역의 상장, 비상장기업 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1348명을 대상으로 컬럼비아대와 듀크대 경영대 연구진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영진의 93%는 자사의 문화를 ‘가치 기반’으로 묘사했으며 가장 자주 언급된 문화적 가치는 결과 지향(55%), 공동체 지향(49%), 협력(39%), 적응력(38%)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경영진의 92%가 자사의 문화를 개선하면 회사의 가치가 증가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반면 이들 중 단 16%만이 자사의 문화가 이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응답했다. 정리하자면 많은 경영진이 기업 문화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바꾸지 않는 것일까? 응답자의 69%는 기업 문화에 대한 투자 부족을 탓했다. 기업 문화에 대한 투자 부족의 원인으로는 조급한 외부 투자자, 직원 간 신뢰와 조정의 어려움, 시간과 자원의 부족, 부적절한 거버넌스 구조, 촉매 요인의 부재 등이 꼽혔다. 놀라운 것은 응답자의 약 20%가 고위 경영진이 기업 문화의 변화를 저해한다고 지적한 점이다. 최고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라는 점에서 이는 일종의 자기 고백과도 같다. 고위 경영진이 ‘고인 물’, 즉 변화의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시장은 카카오 거버넌스 개선에 대해 큰 기대가 없다

시장이 카카오의 거버넌스 개선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카카오가 본격적으로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기 시작한 2023년 초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김 위원장이 인적 쇄신의 구원 투수로 영입한 김정호 전 총괄은 취임 2개월 만에 사내 회의 중 욕설을 하고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카카오 내부 비리 의혹 등을 폭로하면서 문제가 됐다. 이에 카카오 상임윤리위원회는 조사에 나섰고 김 전 총괄이 허위 사실에 기반한 명예훼손,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사내 정보 무단 유출, 언론 대응 가이드 위반 등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해고를 결정했다. 이 사건에 대해 말을 막 하는 듯 보이는 김 전 총괄의 개인적인 성격 문제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일련의 소음은 그만큼 카카오 기업 문화의 개선이 어렵다는 신호를 시장에 전달했다. 당시 김 전 총괄의 내부 비리 폭로를 두고 김 전 총괄이 내부 개혁을 원하는 김 위원장의 의도를 대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순간 화가 나서 지른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김 전 총괄은 해고됐다. 시장이 이 같은 전개 양상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보자. 아마도 김 전 총괄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동시에 카카오 내부에서 기업 문화 개선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카카오는 사법 리스크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기 위해 2023년 11월부터 비상경영체제를 도입하고 2024년 초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김범수 위원장은 2023년 11월 경영쇄신위원장을 맡아 본격적인 개혁에 나섰다. 그는 카카오의 새 리더로 정신아 대표를 선임했으며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김성수·이진수 공동대표 대신 권기수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장윤중 글로벌전략책임자(GSO)를 요직에 배치했다. 또한 카카오게임즈에서는 조계현 대표의 후임으로 한상우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선임했다. 그러나 2024년 초부터 인사와 관련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2021년 카카오뱅크 상장 직후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행사해 거액의 차익을 실현한 정규돈 전 카카오뱅크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본사 CTO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해 카카오페이 상장 직후 스톡옵션 차익을 실현했던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가 재선임됐고 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대표 해임을 권고했던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도 연임됐다. 이러한 인사 결과에 김 위원장의 ‘형님 리더십’과 ‘돌려막기 인맥 인사’가 단지 뜬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게 됐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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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는 2023년 11월 독립기구인 ‘준법과 신뢰위원회’를 출범했다.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카카오 계열사의 준법 및 신뢰 경영 체계를 확립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설치된 독립 기구다. 위원회는 협약을 체결한 계열사를 대상으로 준법 지원 활동을 한다. 협약 계열사는 카카오,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뱅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페이 등이다. 위원회의 권한과 역할은 주식시장 대량 거래, 인수합병 및 기업 공개, 내부 거래 등에 관한 의견 제시, 준법 의무 위반 사항에 대한 조사 및 시정 요구, 준법 감시 시스템의 실효적 작동을 위한 감독 및 권고 등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위원회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이런 형식의 위원회는 태생적으로 권한과 책임이 불명확할 수밖에 없다. 개별 계열사를 계열사 외부에 있는, 법적 실체가 불분명한 조직이 감독하고 제언을 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문제가 불거져도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 딱 좋은 구조다. 위원회가 계열사의 이사회에 책임을 미룰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법적 실체가 불분명한 느슨한 연합체 형식의 준법감시기구를 두는 것은 과거 재벌 총수들이 사법 리스크에 직면할 때 이미 여러 차례 사용한 위기 극복 대책이다. 하지만 막상 이런 기구가 성과를 낸 사례는 드물다. 시장이 합리적이라면 이런 기구가 거버넌스를 개선해줄 것이라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향후 카카오의 과제는?

우선 카카오는 기업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그 출발점은 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엄격한 거버넌스 제도를 자발적으로 기업 정관에 도입하는 것이다. ‘준법과 신뢰위원회’ 같은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한 조직으로는 시장의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기 힘들다. 카카오는 상장 계열사만 카카오,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카카오게임즈, 넵튠, SM엔터테인먼트, 디어유, 에스엠라이프디자인그룹, 에스엠컬처앤컨텐츠, 키이스트 등 10개에 달한다. 이 계열사들의 이사회가 상장회사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제대로 돌아가기만 해도 사법 리스크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효과적인 방법은 사외이사(감사위원)를 선임할 때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고 일반 주주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다. 감사위원 전원 분리 선임(현재는 감사위원 1인 분리 선임만 의무)과 집중투표제를 카카오 정관에 도입하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도는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이사 선임과 별도로 독립적으로 선출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대주주의 지배력을 견제하고 감사위원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현재 카카오는 감사위원 1명만 분리 선출하고 있다. 만약 카카오가 자발적으로 이 제도를 감사위원 전원으로 확대한다면 거버넌스 개선과 준법 문화 확립에 대한 의지를 시장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출할 때 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는 소수 주주가 자신의 지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고안됐으며 대주주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소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회사가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있다. 카카오가 이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참신한 시각의 이사를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영입한다면 준법 감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불법 행위는 대부분 내부자들의 공모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임원(이사 및 감사)의 자격 요건을 정관에 도입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수 있다. 한국은 특정경제범죄법이나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등 특수한 경우에 기업체 취업을 제한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사의 자격 제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상장회사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제출하는 지배구조보고서 공시를 보면 기업지배구조 헌장과 내부 규정에 따라 범죄에 연루된 임원의 선임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힌 곳들도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이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고 특히 지배주주에 적용되는지는 불투명하다. 이렇게 자격 요건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회사와 관련된 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자가 별다른 제약 없이 문제를 일으킨 회사에 복귀하는 관행에 대해서는 자발적 규율이 필요하다. 카카오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의 임원 자격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규정을 자발적으로 정관에 도입하는 방법도 염두에 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임원 보수 주주 심의제(Say on Pay)의 도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카카오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 하락의 출발점이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집단 스톡옵션 ‘먹튀’ 사건이었음을 상기해보면 이 제도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2021년 12월 10일, 카카오페이의 류영준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 8명이 보유한 주식 약 44만 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도해 약 878억 원의 차익을 실현한 이 사건이 카카오가 시장의 신뢰를 잃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카카오페이가 2021년 11월 3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발생했는데 경영진이 집단적으로 상장 직후 대규모 주식을 매도한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임원 보수 주주 심의제는 임원의 과거 보수 지급 실적 및 미래 지급 계획에 대해 주주총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 표결을 하는 제도다. 카카오가 이런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집단적으로 스톡옵션 ‘먹튀’ 사건을 일으켰다”고 평가하는 일각의 비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장의 기대를 바꾸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현재 시점에 카카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창업자 1세대 김 위원장의 리더십 변화다. 김 위원장은 카카오 위기에 대해 무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시장이 창업자 1세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3~4세대에게 요구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카카오의 비전과 가치, 그리고 이 비전과 가치를 구현하는 일상적인 규범(norm)이 합쳐진 것이 기업 문화다. 기업 문화가 바뀌려면 창업자 1세대인 김 위원장이 직접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기존 ‘고인 물’들의 저항을 뚫고 나가야 한다.

김 위원장이 개혁을 위해 형식상 직접 나서든 대리인을 내세우든 그것은 김 위원장이 판단할 몫이다. 아마 재판 중 보석으로 나온 현 상황을 의식해 본인이 전면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업 문화를 바꾸겠다는 김 위원장의 진정성과 의지가 카카오 내부뿐만 아니라 주주 등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반드시 전달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김 위원장이 움츠러들고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계속 의지하게 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혹시라도 김 위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아 보니 세상에 믿을 사람 없더라” “최측근만 믿고 가자” 같은 생각에 매몰돼 쇄신의 기회를 놓친다면 카카오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 있다.
  • 이창민changmin74@hanyang.ac.kr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이창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Indiana University at Bloomington)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금융, 기업재무, 지배구조, 규제 및 정치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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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김윤진truth311@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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