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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역량 이론으로 본 전략의 역할

핵심 역량 첫발은 ‘미래의 시장 예측’
AI 업고 덩치보다 순발력 먼저 키워라

신현암,정구현 | 388호 (2024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은 1994년 게리 하멜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와 2010년 작고한 C. K. 프라할라드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시한 개념으로 당시 주류 이론이었던 마이클 포터의 ‘5forces’와 달리 기업 내부적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은 핵심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의도(Strategic intent)를 바탕으로 전략 아키텍처를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전략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제휴를 만들고, 시장에서 실험하고, 글로벌 유통망을 구축하고, 글로벌 표준을 설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성형 AI는 기업이 핵심 역량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오늘의 핵심 역량이 내일의 일반 역량’으로 바뀌는 속도도 빨라진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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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을 키워야 한다. 핵심 역량이란 경쟁 상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능력이나 우수한 수준으로 서비스 수혜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힘을 뜻한다. 핵심 역량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한 인물이 게리 하멜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와 2010년 작고한 C. K. 프라할라드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다. 핵심 역량이라는 용어는 이들이 1994년에 공저한 『시대를 앞서는 미래경쟁전략(Competing for the Future)』에 처음 등장한다.

이 둘은 1977년 처음 만났다. 당시 하멜은 미시간대에서 국제 비즈니스 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프라할라드는 막 전략학 조교수로 채용된 신참 교수였다. 둘은 전략 전공 교수가 국제 비즈니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연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다. 그날 오후 이 둘은 상당히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아, 정말 심하다. 아마 저 두 사람은 앞으로 평생 안 볼 거야’라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이 논쟁은 둘 사이에 상호 존경과 우정이라는 씨앗을 뿌려줬다. 이후 둘은 다양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게 된다.


전략적 의도와 핵심 역량

이후 둘은 1989년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략적 의도(strategic intent)’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들은 당시 미국 기업을 누르고 급성장하고 있던 일본 기업 사례를 통해 어떻게 더 작은 경쟁자가 더 크고 부유한 회사(주로 미국 회사)를 이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둘은 일본 기업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 일본 기업이 야심을 갖고 있었고,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고 이를 ‘전략적 의도’라 명명했다.

논문에서 둘은 위대한 성과를 낸 기업들은 자신들이 가졌던 제한적인 자원이나 능력을 뛰어넘는 원대한 야망, 즉 전략적 의도를 가졌던 기업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은 현재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집착하고 끊임없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업계의 거인 제록스를 예로 들었다. 논문에 따르면 실제 캐논은 항상 ‘제록스를 쳐부수자(beat xerox)’라는 신념과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이처럼 전략적 의도는 야심 차고 이뤄야 할 꿈이자 미래로의 여행에 정서적이고 지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이다.

이후에도 여러 아티클을 공저했던 이들은 1994년 본서를 발간한다. 17년간의 연구 결과를 모은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1990년대는 IT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소위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이 풍미했던 시대다. 일본 기업의 거센 공세에 다운사이징, 리스트럭처링 같은 단어가 일반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멜 교수와 프라할라드 교수는 이러한 추세에 반기를 들었다.

기업 이익의 기본 공식은 ‘분모에 비용, 분자에 수익’이다. 그리고 기업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는 분모를 줄이거나 분자를 늘려야 한다. 당대의 경영자들은 이익을 늘리기 위해 비용을 삭감해 분모를 줄이는 것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당장 몇 년은 버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분자를 늘리는 경영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산업을 재발명하고 전략을 쇄신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후 다양한 연구를 함께한 두 학자는 ‘경쟁 공간’에서의 포지션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경쟁 공간을 창출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당시 주류 이론이었던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분석 틀 ‘5 forces’와 배치되는 발견이었다. 두 학자는 마이클 포터의 분석 틀이 기존의 산업 구조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산업을 재형성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답을 주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업은 내부적 역량인 핵심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학자가 정의한 핵심 역량은 ‘고객에게 혜택을 주고 경쟁력을 차별화해 주는 고유한 기술, 지식, 경험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경영 전략의 역사에서 1980년대가 마이클 포터 교수를 필두로 하는 ‘포지셔닝의 시대’라면 1990년대는 ‘핵심 역량의 시대’라 불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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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경쟁의 모습 1 :
산업 예측력에 기반한 전략 아키텍처 도출

그렇다면 전략적 의도와 핵심 역량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개념 하나를 알아야 한다. 바로 전략 아키텍처(Strategic Architecture)라는 개념이다. 하멜 교수의 이론에서 전략적 의도와 전략 아키텍처의 관계는 기업의 장기적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경로 사이의 연결고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관계를 통해 기업은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명확한 계획과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래 경쟁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전략 아키텍처 도출이 중요하다. 일단 미래 경쟁 전략을 이야기하려면 미래 경쟁이 어떤 모습일지 정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본인이 속한 산업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해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① 어떤 새로운 유형의 혜택을 고객들에게 5년, 10년, 15년 안에 제공할 것인가? ② 고객들에게 그러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구축하거나 획득해야 하는 새로운 역량은 무엇인가? ③ 몇 년 후 고객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 필요한 것이 ‘생각의 소스로서의 데이터’다. 라이프스타일, 기술, 인구통계학, 지정학 관련 트렌드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생성해야 한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이 데이터를 잘 엮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상상력이 핵심 키워드가 된다. 결국 예측력은 상상력에 의존한다. 미래를 창출하려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사람들의 삶을 바꾸겠다는 갈망’도 빠져서는 안 된다.

산업 예측을 했으면 전략 아키텍처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높은 수준의 청사진을 의미한다. 미래의 우리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예측하고, 그러려면 어떤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 어떤 역량을 축적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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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가 1977년 NEC 고바야시 회장이 주창했던 C&C다. [그림 1]처럼 X축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전화에서 출발한다. 시기는 1900년대 초. Y축은 컴퓨터다. 1940년대에 시작한다. 따로따로 진화하고 있다. 대각선에는 진공관에서 출발해 트랜지스터, IC로 발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신기한 것은 LSI(대규모 직접 회로, Large scale Integration), VLSI(초대규모 집적 회로, Very Large scale Integration)로 발전하면서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이 만난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1977년에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이런 멋진 그림으로 미래를 예측하면서 구체적인 준비를 한다면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 될 것이다.

전략 아키텍처는 세세한 계획이 아니다. 구축해야 할 주요 능력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을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또한 모든 직원과 공유해야 한다. 비밀로 하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제의 핵심 역량이 오늘의 일반 역량이 된다. 결과적으로 전략 아키텍처는 지도와 같다. 나아갈 방향만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그 방향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힘, 연료는 무엇일까?


전략 아키텍처의 연료 :
스트레치와 레버리지

전략 아키텍처에서 정한 방향으로 조직을 나아가게 하는 힘은 전략 스트레치(stretch)와 레버리지다. 먼저 전략 스트레치는 현재의 기업 상황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일 정도로 야망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을 뜻한다.

1960년대 일본의 건설 장비 기업 코마츠는 ‘마루 C’라는 전략 슬로건을 발표한다. 마루는 일본어로 원을 의미한다. C는 당시 건설업계의 거인인 캐터필러를 지칭한다. 캐터필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캐터필러를 포위하라(Encircle Caterpiller)’는 전략적 의도가 담긴 슬로건을 발표한 것이다. 코마츠의 모든 구성원은 뭔가에 홀린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캐터필러를 타도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이처럼 전략적 의도는 회사를 활기차게 만든다. 전략 아키텍처가 뇌라면 전략적 의도는 심장인 셈이다. 열정과 비장함이 있어야 하고, 직원 만족(satisfaction)을 넘어 신바람을 창조(excitement)해야 한다.

이러한 높은 목표를 달성 가능토록 해주는 것이 전략 레버리지(leverage)다. 문자 그대로 지렛대다. 몇 사람의 힘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큰 바위를 지렛대와 지렛점만 있다면 혼자서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의 원리에서 따온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코마츠는 캐터필러를 눌렀다. 자금, 인력 등 경영 자원이란 관점에서 보면 코마츠가 훨씬 적은 양을 갖고 있었다. 결국 자원을 덜 갖고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한 이유는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북베트남이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게릴라전 등 창의적 전술을 활용해 승리한 것이다. 레버리지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브리티시항공 사례를 보자. 브리티시항공은 더 훌륭한 항공사로 거듭나고 싶었다. 하지만 자원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히스로 공항의 도착 라운지에 주목했다. 야간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샤워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 중요한 회의를 가기 전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운영했다. 장거리 비행 끝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충혈된 눈에 부스스한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에게 도착 라운지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다른 항공사가 아닌 브리티시항공을 이용할 이유가 충분해진 것이다. 자원 레버리지의 좋은 사례다.


미래 경쟁의 모습 2 : 이동 경로 단축 경쟁

전략 아키텍처가 도출됐으면 그에 의거해서 미래로 이동해야 한다. 미래로의 발 빠른 이동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활동이 필요하다.


① 제휴 만들고 관리하기

신상품이나 서비스가 결실을 맺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모두 갖고 있는 회사는 없다. 글로벌 경쟁에선 정치적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도 제휴를 만들고 관리한다. 잠재적 경쟁자들끼리도 협력해 미래 라이벌 관계가 될 위험을 줄인다.


② 학습하고 시장에서 실험하기

미래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미래 수요의 중심부가 어디인지를 경쟁자보다 더 빨리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탐험적 마케팅’이 필요하다. 일단 시장에 론칭하고, 시장 검증을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가다듬어 나가는 방식이다. 시장 리스크가 낮은 제품만 출시하면 어떻게 될까? 일부 나이 든 충성고객을 잡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젊은 구매자들 사이에서 짜릿한 흥분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결국 시장 주도권이 경쟁자에게 넘어간다. 수많은 미국 기업이 70~80년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당한 생생한 사례가 있다.


③ 글로벌 브랜드와 유통망 구축하기

글로벌 유통력이 없으면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도 수익은 경쟁사가 가져가게 된다. 기저귀 시장에서 카오(花王)와 P&G가 좋은 예다. 1985년 카오는 기술적으로 탁월한 초강력 흡수 기저귀를 일본에서 출시해 P&G를 깜짝 놀라게 했다. 새로운 기저귀는 즉각 P&G의 팸퍼스를 따라잡았고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아시아 외부에서 브랜드파워나 유통력이 거의 없던 카오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사이 P&G는 자사의 초강력 흡수 기저귀 버전을 개발해 전 세계에 출시했다. 결국 새로운 기저귀 기술로 이윤을 얻는 것은 카오가 아니라 P&G였다.

글로벌 유통 능력만으로 다른 영역에서의 역량 부족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래도 혁신에 수익을 배가하는 중요한 요인임은 틀림없다. 카오의 예에서 보듯 전 세계적인 유통 능력이 함께하지 못하면 큰 혜택을 가져가지 못한다. 진짜 수익은 글로벌 시장에 가장 먼저 진입한 회사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④ 표준 설정과 규제에 영향력 행사하기

비디오테이프 시장에서 VHS 대 베타맥스의 대결은 유명하다. 기술적으로 베타맥스가 탁월했지만 표준을 먼저 장악한 VHS가 시장에서 이긴 것은 얼마나 표준 설정이 중요한지 말해준다. 특히 미래에는 기술 개발 과정이 더욱 복잡해지고 시간도 많이 걸리게 된다. 특정 기업이 혼자 성과를 내기도 불가능하다. 향후 어떤 기술, 어떤 상품이 표준이 될지 항상 센싱을 하고 있어야 한다.


⑤ 핵심 역량에 투자하기

미래에 먼저 도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역량의 개념을 이해하고 확보하는 것이다. 핵심 역량은 회사가 고객들에게 특정한 혜택을 주는 기술과 스킬의 조합이다. 소니가 고객에게 주는 혜택은 휴대성이며 핵심 역량은 소형화다. 페덱스의 혜택은 약속 시간 내 배달이며 핵심 역량은 물류 관리다.

핵심 역량의 조건으로 고객 가치(customer value), 경쟁적 차별화(competitor differentiation), 확장 가능성(extendability)을 꼽는다. 소니의 워크맨이 잘나가던 시절을 떠올려 보자. 소니 제품은 작고 깜찍하다. 그래서 고객은 비싼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다른 제품들과는 분명 다르다. 소니는 워크맨에 이어 캠코더 등으로 소형화 역량을 확장시켜 나갔다. 소니에는 소형화 기술이 핵심 역량인 것이다.


핵심 역량 구축 방법

모든 초일류 기업은 자사만의 독특한 핵심 역량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이 떠나지 못하고, 경쟁자가 감히 흉내내지 못한다. 우리 회사가 나름 잘나간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내부에서 토론해 볼 필요가 있다. 또는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 볼 수도 있다. 구성원 간에 합의를 본다면 그것이 바로 핵심 역량이다.

소니는 언제부터 소형화 기술을 핵심 역량이라 정의했을까? 사실 ‘소형화에서 우리의 핵심 역량을 찾자’고 부르짖으면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1948년 미국에서 트랜지스터가 발명된다. 1952년 미국으로 출장 간 소니의 이부카 마사루 회장이 우연히 트랜지스터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특허권을 보유한 웨스턴 일렉트릭이 특허료를 지불하면 사용을 허락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외화 반출을 꺼리는 일본 정부를 설득하면서 결국 특허 사용권을 얻었다. 주위로부터 ‘보청기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뿌리치고 진공관 라디오가 아닌 트랜지스터라디오에 도전한다. 품질로서는 진공관을 따라잡는 것이 어불성설이었지만 결국 휴대용이라는 개념을 도출하며 진공관 라디오와 차별점을 찾는다. 마침 로큰롤이 유행했고, 이런 류의 음악을 집에 있는 진공관 라디오로 듣는다는 것은 심지어 미국에서도 금기사항이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붐을 이루면서 소니의 성공 신화는 시작된다.

이런 역사를 살펴보면 소니는 소형화를 핵심 역량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다 보니 그것이 소형화였던 것이다. 물론 이후 ‘소형화가 핵심 역량’임을 파악하고 워크맨 등 경박단소형 제품에 집중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최초의 핵심 역량은 ‘이제 내가 핵심 역량을 만들어야지’ 하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업에 성공했는데 알고 보니 이것이 성공 요인이었네. 이를 내가 잘 보존하고 키워나가야지’라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늘의 핵심 역량이 내일의 일반 역량’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예의주시하면서 회사가 지니고 있는 핵심 역량도 계속 진화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산업 예측력에 기반한 미래 모습 도출’을 끊임없이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AI 시대의 핵심 역량 구축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핵심 역량 구축을 위한 첫 단추는 미래의 경쟁이 어떻게 변할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기업이 다양한 분야에서 AI 기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데이터 통합 및 활용 기반 구축이다. 나이키는 2017년 소비자 직접 공략(Consumer Direct Offence) 전략에 따라 소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D2C(Direct to Customer, 소비자 대상 직접 판매) 채널을 강화했다. 이를 위해 데이터 품질 정비 및 AI 기술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전체 프로젝트 비용 중 약 80%를 오직 데이터 확보, 정제, 품질 향상에 사용했다.

스타벅스 리워드로 대표되는 스타벅스의 디지털 전환은 어떠한가. 2009년부터 낙후된 레거시 시스템을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해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비로소 시작됐다.

데이터 활용 기반을 갖췄으면 다음 단계는 ‘데이터 인텔리전스 플랫폼 구축’이다. 조직 내부 임직원이 쉽게 데이터에 접근해서 다채로운 분석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단계다.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사용자는 제대로 된 플랫폼을 활용해서 인사이트를 얻고, 혁신을 모색하며, 신속하고, 똑똑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분석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러한 방식을 기존 시스템에 장착해서 플랫폼을 더욱 똑똑하고 쓸모 있게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

생성형 AI는 그 자체로 핵심 역량 구축에 영향을 미친다. 제약산업에 있어 신제품 개발 역량은 핵심 역량 중의 하나다. 단백질 LLM, DNA LLM의 개발 가속화를 통해 의약품 개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과거 신약 개발 과정을 보면 가설을 수백 개 만들고 그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작업으로 진행됐다. 가설을 만드는 작업에만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AI 기술을 활용하면 손쉽게 수백 개의 가설을 만들 수 있다.

영화산업은 어떠한가. 시나리오 개발 역량도 핵심 역량 중의 하나다. LLM은 문장 창작 능력, 문장 해석 및 판단 능력을 지원한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나리오가 개발될 수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시나리오를 제안했다면 이제는 AI가 만든 시나리오를 검증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뀐다.

어디 제약산업, 영화산업뿐이랴. 모든 산업에서 AI를 활용해서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일례로 풀무원은 SCM(공급망 관리)에서 AI를 핵심 역량 강화에 활용하고 있다. SCM을 잘하려면 속도, 비용 품질 등 모든 측면에서 뛰어나야 한다. AI는 재고 및 경로 파악을 통한 물류 최적화, 수요 예측, 리스크 관리에서 이상치 감지 등의 작업을 수행해 오토노머스 오퍼레이션(autonomous operation)을 가능케 한다. 풀무원은 이를 통해 시간적, 금전적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생성형 AI의 경우는 SCM AI 에이전트가 여러 부서 및 외부 기관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 SCM 관련 부서 간의 효율적인 협업을 돕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최종 의사결정 권한은 인간 관리자가 갖는다. SCM AI의 역할은 작업 히스토리를 통해 의사결정을 돕는 것이다.

생성형 AI를 통해 ‘보다 고부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핵심 역량 강화는 주요 화두다. 하지만 기업에 근무하면서 핵심 역량 강화에만 오롯이 시간을 쓸 수는 없다. 쉽게는 각종 서류 업무, 회의 등 부수적인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AI를 활용하면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즉 핵심 역량 강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AI가 지원해주는 것이다.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필름 카메라는 현상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한 장 찍을 때 소중하게 찍어야 한다. 한 통을 다 찍어야 결과물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암실 작업을 통해서 말이다. 반면 디지털카메라는 몇 번을 찍건 비용이 들지 않는다. 어떻게 찍혔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맘에 안 들면 버리면 그만이다. 따라서 일단 많이 찍고 그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고르는 것으로 ‘사진을 찍는 행위’의 정의가 바뀌었다.

AI 시대에는 경비(cost)가 엄청 절감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이를 구현하는 데 과거에는 큰 비용이 들었다. 이것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장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런 장벽을 없애준다.

생성형 AI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면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주먹으로 싸웠다면 이제는 총으로 싸운다. 과거에는 핵심 역량을 혼자 힘으로만 구축했다면 이제는 AI와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

체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총을 빨리 뽑는 능력이 중요하다. 총을 빨리 뽑는다는 것은 진화하는 AI를 더욱 빨리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AI의 혁신으로 인해 우리의 컴퓨팅 기술은 자전거에서 증기기관으로 진화했다”고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 신현암 신현암 | 팩토리8 연구소 대표

    신현암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경영학)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 등을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실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설렘을 팝니다』 『잉잉? 윈윈!』 등이 있다.
    gowmi1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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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구현 |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정구현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2003년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4년에는 한국경영학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한국경영교육인증원을 추진, 2005년 설립하는 성과를 낸 바 있다. 2003∼2008년 삼성경제연구소장을 지냈고 2012년 한국경영학회가 경영학의 발전에 기여한 학자에게 수여하는 ‘상남경영학자상’을 받았다.
    jungkh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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