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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4는 AI를 어떻게 풀어냈나

SW 구독 넘어 ‘지능구독시대’ 예고
생활 방식 바꾸는 기술이 미래의 승자

박제홍 | 386호 (2024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2023년 생성형 AI가 대중화에 성공하면서 모바일-스마트폰 시대의 뒤를 잇는 본격적인 AI 기술 슈퍼사이클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 기술 슈퍼사이클 초입에서 열린 CES 2024에서는 ‘데이터(Input)’ ‘연산 능력(Computing)’ 및 ‘애플리케이션(Output)’이라는 AI 혁신의 각 영역에서 다양한 양상의 경쟁이 펼쳐졌다. 비록 오픈AI를 필두로 한 AI 모델 분야의 선두 기업들은 빠졌지만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는 고객과의 접점에서 AI 모델을 활용하는 여러 아이디어와 시도가 쏟아져 나왔다. AI 혁명은 AI 모델로 표현되는 제3의 지능을 구매해 사용하는 ‘지능구독시대(IQ-as-a-Service, IQaaS)’의 시작을 예고한다. 그리고 CES는 어떤 전자기기나 서비스가 지능구독시대의 핵심 ‘인터페이스’ 역할을 할 것인지, 어떤 킬러 콘텐츠가 인간의 생활 습관과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대중화를 선도할 것인지를 엿보는 하나의 장이 될 수 있다.



2024년 1월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었다. CES가 내세운 행사 주제인 ‘All On’은 모두가 모여 인류의 문제를 적극 해결하자는 뜻을 담았으며 주최 측과 참여 기업 모두 이를 위한 핵심 도구로 AI를 지목했다. 하지만 CES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은 모두가 이야기하는 AI가 어떻게 CES와 연관이 되는지 여전히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필자 또한 개별 기업이 AI를 활용하는 방식이 이전 디지털 전환 시기 등장한 애플리케이션과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행사를 참관했다. ‘사람과 대화하는 반응형 가전기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온 기술인데 여기에 AI를 접목했다고 사용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는 ‘혁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올해 CES가 어떻게 AI를 풀어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생성형 AI’라는 기술이 어떤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쳐오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또한 AI가 인터넷과 모바일을 잇는 또 하나의 기술 슈퍼사이클이라고 한다면 지금 AI의 대중화를 위해 어떤 분야의 기술 혁신이 요구되는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CES 행사와 키노트 스피치에는 AI가 범용 기술로 자리 잡기 위해 앞으로 어떤 분야의 혁신이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이 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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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기술 슈퍼사이클 ‘AI’

1946년 최초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에니악(Eniac)이 탄생한 이후 인류의 기술 진보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특히 1980년대 시작된 퍼스널컴퓨터 시대, 1990년대 후반 전 세계를 휩쓴 인터넷 시대, 2007년 등장한 스마트폰의 시대는 인류가 생활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하나의 시대(Era)로 구분할 만하다.

월스트리트에서는 1970년대 이후 10~15년 주기로 등장하는 이러한 새로운 기술 혁명 주기를 ‘기술의 슈퍼사이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2023년 대중화에 성공한 생성형 AI가 모바일-스마트폰 시대 다음의 새로운 기술 슈퍼사이클을 의미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나의 기술 슈퍼사이클은 전 세계 보급률이 90%에 이를 무렵 성숙기에 진입한다. 2023년 기준 모바일의 전 세계 보급률이 85.74%1 에 달했다는 점은 우리가 현재 스마트폰-모바일 기술 사이클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생성형 AI의 대표 서비스인 챗GPT의 보급률이 2.2%2 란 점에서 우리는 현재 스마트폰-모바일 기술 사이클의 끝자락과 동시에 AI 기술 슈퍼사이클의 초입을 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기술 슈퍼사이클이 전파되는 속도다. 지난 50년간 우리가 경험해 온 기술 슈퍼사이클의 주기는 반감기의 형태를 띠며 그 전파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미국을 기준으로 할 때 퍼스널컴퓨터의 경우 전체 인구의 50% 보급률을 달성하기까지 20년이 걸린 반면 인터넷은 12년, 모바일은 단 6년 만에 해당 보급률에 도달했다. 생성형 AI의 경우 50% 보급률 달성에 3년이 걸릴 전망이다. (그림 2) 2025년이 되면 미국 인구 두 명 중 한 명은 생성형 AI를 매일 활용할 정도로 AI가 범용 기술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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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I 특이점의 지평선

AI 기술 발전의 핵심은 생산성의 혁명이다. 과거의 기술 슈퍼사이클을 이끌었던 퍼스널컴퓨터, 인터넷, 모바일-클라우드 시대가 인류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이전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생활 방식을 가능하게 했듯이 AI 또한 우리가 생활하고 협업하고 기기와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모든 정보가 활자의 형태로 저장되고 개개인이 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처리했다면 퍼스널컴퓨터 시대에는 개인의 영역에 디지털 정보 저장 및 처리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실시간 협력이 이뤄졌다. 과거 ‘초연결’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했던 이런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인류의 ‘장소 귀속 탈피’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여전히 ‘매뉴얼’에 의존해 왔다. 디지털 업무라 할지라도 서류 작성, 코딩, 디자인 등의 작업은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사용해 명령어를 입력하거나 클릭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표적인 협업 툴인 노션(Notion)이나 칸바(Canva)를 예로 들어보자. 이런 소프트웨어들은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협업을 가능하게 해주고 비대면 업무를 지원해주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문서 기록이나 직접 만나서 이뤄지던 토론을 웹상으로 옮겼을 뿐이다. 산출물을 만드는 방식은 여전히 매뉴얼 입력과 그에 따른 출력이라는 기계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AI는 인류 생산성의 마지막 남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매뉴얼 방식에 대한 도전이다. 매뉴얼 방식에서는 개개인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 업무의 산출물에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동일한 워드프로세서를 제공하더라도 고등학생이 작성한 논문과 교수가 작성한 논문은 내용 자체가 다르다는 의미다.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차이가 논문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내가 어떻게 명령어(Prompt)를 사용하고, 얼마나 더 발전된 AI 모델을 사용하는지가 산출물의 결과를 좌우하기 때문에 고등학생의 논문이 교수의 논문의 질을 뛰어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모든 지식 업무가 매뉴얼 작업을 벗어나 자동화된다는 것은 또 다른 생산성의 혁명을 의미한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리포트 작성을 위한 문헌조사와 필사에 한 달 이상 소요됐지만 PC 시대에 컴퓨터를 활용하면서는 이 시간이 주 단위로,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에 정보 접근과 협업이 용이해지면서는 하루 단위로 단축됐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명령어만으로 원하는 리포트를 생성할 수 있어 업무에 걸리는 시간이 분 단위로 줄고 업무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 소재의 한 핀테크 기업에서는 AI가 전담하는 고객 응대 관리 비용이 1건당 0.13달러로 인간이 전담했을 때의 건당 2.58달러보다 약 95% 줄었다고 한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AI의 업무 효율성이 인간을 넘어서고 있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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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술 슈퍼사이클은 ‘인터페이스’ 혁명이었다. 인류가 디지털 기기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퍼스널컴퓨터는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어디에 어떻게 저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끝에 로컬 드라이브가 서버, 그리고 클라우드 형태로 진화했다. 반면 AI 혁명은 AI 모델로 표현되는 제3의 지능을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다. 결국 오늘날 AI 기술 경쟁은 더 나은 ‘지능’을 개발하기 위한 경쟁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데이터(Input)’ ‘연산 능력(Computing)’ 및 ‘애플리케이션(Output)’의 각 영역에서 경쟁이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3. CES는 AI를 어떻게 풀어냈나

CES는 전자기기 분야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이 행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AI 기술 발전상을 온전히 담아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특히 현재 AI 분야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전쟁터라고 할 수 있는 오픈AI를 필두로 한 AI 모델 분야는 CES와 그다지 접점이 없어 이번 행사에서도 종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CES의 키노트를 살펴보면 주최 측에서 현재 AI 발전의 중요한 기둥이 되는 노력들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1) AI의 인풋: 데이터와 초개인화

주어진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고도화되는 AI 모델의 개발에 있어 ‘차별화된 데이터 확보’는 모델 성능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다. 차별화된 데이터에 기반한 AI 모델은 폭넓은 시나리오와 사용자 그룹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특정 상황이나 데이터에 과적합되지 않고 실세계의 다양한 상황에서 더 건강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분야나 산업에 특화된 데이터는 그 분야 맞춤형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이다. 금융 산업에 대한 정보, 법률 판례에 대한 정보 없이 금융, 법률 분야의 AI 솔루션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범용 AI 모델만큼이나 주목을 받는 분야가 바로 특정 버티컬에 특화된 엔터프라이즈 AI 모델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기호와 선호도, 취향을 반영해야 하는 많은 컨슈머 기반 서비스는 어떻게 자사에 특화된 AI 모델을 확보할 수 있을까? 답은 바로 ‘초개인화된 정보’다. 이번 CES의 한 축을 담당했던 디지털 헬스 분야의 수많은 참여 기업이 강조한 것도 ‘어떻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개인의 활동 정보를 수집했는지’였다. 스마트워치, 피트니스 트래커, 스마트 패치 등 착용 가능한 기기를 통해 사용자의 건강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든, 개인의 유전 정보 및 바이오마커를 분석해 건강 상태와 질병 위험 요소를 파악하든 이들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은 결국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개인의 건강 정보를 얼마나 수집하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CES의 대표 키노트 스피치로 로레알이라는 유서 깊은 화장품 회사가 선정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로레알은 뷰티 테크의 미래를 그리며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화장품 추천은 물론 피부 상태 및 건강 상태에 대한 진단 및 처방으로 확장되는 사업의 로드맵을 제시했다.3 이는 로레알이 AI 시대를 맞아 ‘고객과의 접접’과 ‘초개인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방향성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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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챗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냅의 공동 창업자 에반 슈피겔이 CES를 찾은 이유 또한 ‘AI를 활용한 개인화’라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스냅은 경쟁사인 메타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대항한 소셜미디어로서의 포지셔닝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바로 AI를 활용한 사용자 몰입도와 개인화된 콘텐츠다. 이런 개인화의 과정에서 스냅은 개인을 둘러싼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커다란 상업 플랫폼으로 변모한 페이스북과 달리 스냅은 여전히 친구와 가족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소셜 채팅이라는 전략적 위치를 강조하면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Relationships are the heart of everything we do. Our content team has used insights around relationships to recommend content in Spotlight that people want to share with their close friends.”

(관계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핵심입니다. 저희 콘텐츠팀은 관계에 대한 인사이트를 활용해 사람들이 친한 친구와 공유할 만한 콘텐츠를 스포트라이트에서 추천해 왔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뉴욕연방지방법원에 제소한 사건 또한 AI 시대에 데이터를 가진 기업과 이를 활용한 AI 모델 기업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차별화된 데이터가 AI 시대 기업 생존을 위한 핵심 도구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번 CES를 통해 다양한 개인화 기기들의 핵심은 바로 이 초개인화 정보와 관련이 깊다.


2) AI 컴퓨팅: 연산 능력의 분산을 가능하게 하는 온디바이스 AI

올해 CES 행사장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키노트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인텔과 퀄컴이다. 미셸 존슨 홀타우스 인텔 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 총괄 겸 수석 부사장은 CES 2024 인텔 오픈하우스 기조연설에서 “인텔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 PC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온디바이스 AI 시대의 개막을 본격적으로 선언했다.

온디바이스 AI란 클라우드 등 서버를 거치지 않고 디바이스 자체에서 이미지 생성, 작곡 등의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술이다. 현재 가장 범용화된 생성형 AI 서비스인 오픈AI의 챗GPT는 모든 명령어를 오픈AI 서버에 전송한 후 다시 답변을 받는 서버-클라이언트 모델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 접근 방식은 사용자가 몰리거나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서비스가 다운되는 등 여러 가지 한계점을 노출하고 있다.

결국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AI 서비스 연산 수요를 처리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분할 접근 방식이다. 디바이스에 내장된 AI 모델을 통해 수행할 수 있는 연산은 로컬 기기에서 직접 처리하고, 이를 넘어서는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서버-클라이언트 모델을 활용하는 접근법이 온디바이스 AI의 핵심이다.

퀄컴은 온디바이스 AI가 기기 내에서만 데이터를 처리하기 때문에 속도 및 전력 효율성이 뛰어날뿐더러 개인 혹은 회사의 민감한 정보를 클라우드에 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보안성 또한 뛰어난 진보된 기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는 이번 CES에서 아예 온디바이스 AI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차세대 컴퓨팅 시장은 클라우드 시대에서 디바이스로 넘어갈 것”이라며 “AI가 디바이스에 탑재됐다는 것은 인터넷 연결 없이도 AI가 당신의 모든 터치와 입력을 학습하고 다음 행동을 예측해 준다는 의미다”라고 언급했다. AI 시대에 디바이스를 가진 기업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며 소비자 가전이 가지는 위상 또한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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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I 애플리케이션: AI는 지능을 구독하는 시대 (IQ-as-a-Service, IQaaS)

디지털과 모바일 시대에 가장 주목받은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꼽으라면 단연 소프트웨어를 구독 형태로 사용하는 SaaS(Software-as-a-Service)일 것이다. 클라우드가 보급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한 구독형 소프트웨어는 세일즈포스를 필두로 허브스폿, 서비스나우, 워크데이, 트윌리오와 같은 수십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은 소프트웨어 기업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많은 전문가는 다가오는 AI 시대엔 소프트웨어를 구독하는 시대를 넘어 ‘지능’을 구독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가령 우리가 오픈AI가 제공하는 챗GPT의 상위 버전인 GPT-4를 월 20달러를 주고 구독한다고 할 때 이는 단순한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픈AI가 서비스하는 GPT-4의 ‘검색’ ‘추론’ 및 ‘요약’이라는 지능을 빌려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가전기기는 인간과 기계의 접점을 이룬다는 점에서 미래 ‘지능구독서비스’를 위한 핵심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 모든 기술 슈퍼사이클은 모두 서로 다른 형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혁신을 동반했다. 사람이 컴퓨터가 위치한 곳으로 이동해 업무를 처리하던 시기를 거쳐 컴퓨터를 집에 두는 PC 시대가 왔다. 이후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업무를 처리하던 인터넷 시대,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술 사이클은 우리가 전자기기와 상호작용하는 습관을 바꿔 놓았다.

AI 시대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바로 이 지능구독서비스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과 LG가 애완견 형태의 가사도우미 로봇인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를 다시 선보인 이유 또한 스마트홈 시대에 인류가 생성형 AI를 탑재한 가전기기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무관치 않다. 가사도우미 로봇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집 안 곳곳의 가전기기와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집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이용자의 요구를 수집하는 ‘컨트롤 디바이스’가 필요한데 삼성과 LG는 이를 위한 최적의 형태로 ‘가사 로봇’을 제시한 것이다. 가사 로봇이 여전히 가장 친근하면서도 접근성이 뛰어난 폼팩터라고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지능구독시대’에 대비한 다양한 디바이스의 경쟁과 향연은 이번 CES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였다.

엔터프라이즈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지멘스의 CEO인 롤란트 부슈는 이번 CES 키노트 연설에서 “지멘스는 산업용 메타버스를 현실과 거의 구분할 수 없는 가상 세계로 생각하며, 이는 사람들이 AI와 함께 실시간으로 협업해 현실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활용해 고객들은 혁신을 가속하고,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며, 새로운 기술을 규모에 맞게 빠르게 채택해 전체 산업과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AI 시대에 산업용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몰입형 엔지니어링을 제시했다. ‘지멘스 액셀러레이터’라는 생성형 AI 개발 플랫폼을 통해 엔터프라이즈 환경에 최적화된 개방형 비즈니스 플랫폼을 확장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월마트는 AI를 활용한 리테일 경험 혁신의 핵심으로 ‘적응형 리테일 (Adaptive Retail)’이란 개념을 꺼내 들었다. 현재 쇼핑의 경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양분돼 있는데 적응형 리테일 전략을 채택해 이렇게 둘로 나뉜 온오프라인 채널을 넘나들면서 고객의 쇼핑 경험을 최고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원하는 물건을 찾고, 해당 물품을 구매하고, 이 물품이 집 안까지 도착하는 전 단계에서 생성형 AI가 새로운 경험의 촉매재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월마트의 CEO 더그 맥밀런은 “미래의 공급망 관리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에 대한 수요를 예측할 뿐 아니라 해당 제품이 어디에 어떻게 보관돼야 하는지를 통합적으로 관리해 고객 수요에 100% 부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AI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이 어떻게 유통 업체를 거쳐 고객의 경험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4. 결국 미래의 승자는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기술

과거 모바일-스마트폰 경제 태동기에 등장한 핵심 애플리케이션을 떠올려 보면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경제 기업이나 인스타그램, 왓츠앱, 스냅, 카카오와 같은 소셜미디어 기업을 들 수 있다. 또한 모바일 보급률이 50%를 넘어가고 온디맨드 서비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한국에서는 배달의민족, 쏘카, 컬리와 같은 기업이, 미국에서는 도어대시와 인스타그램과 같은 기업이 조 단위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이러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의 특징은 우리가 말하고, 생활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 생활 습관에 녹아들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카카오톡이 없는 세상, 쿠팡이 없는 세상, 배달의민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새로운 기술 슈퍼사이클이 대중 서비스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들의 등장과 확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생성형 AI를 새로운 기술 슈퍼사이클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직까지 AI를 활용한 킬러 서비스를 꼽으라면 챗GPT가 유일하다. 하지만 AI를 전면에 내세운 이번 CES는 AI를 활용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시도가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원래 미래에서 보는 과거만큼 명확한 것이 없고 현재에서 바라보는 미래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는 법이다. 이번 CES가 그리고자 한 AI의 큰 흐름이 현시점에서는 중구난방에 맥락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5년 후에 되돌아보면 분명 AI의 대중화를 선도할 기술들이 태동한 무대였다고 평가받을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이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흥미로운 영역이다.
  • 박제홍 | 아틀라스퍼시픽 대표

    박제홍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다. 에이티커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국내외 대기업과 다수의 성장 전략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이후 국내 사모펀드에서 중소중견기업 경영권 인수 및 성장 자본 투자를 이끌었다. 현재는 실리콘밸리 소재 벤처캐피털 ‘아틀라스퍼시픽’에서 전 세계 혁신 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으며 스타트업 및 테크 전문 뉴스레터 ‘CapitalEDG’를 운영하며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DBR 주최 CES 2024 참관 투어에서 현지 모더레이터로 활동했다.
    jehong@atlas-p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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