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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4 현장 리포트: 기술과 비즈니스의 미래

비용 줄이고 효율 높이는 AI 서비스 부상
‘당장 돈 내고 쓸 만한’ 서비스 툴 빛났다

배미정,김윤진 | 386호 (2024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CES 2024에서는 당장 시장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차별화된 가치 제안을 한 기업들의 전략이 돋보였다.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기업 수요를 구체적으로 공략한 서비스들이 생성형 AI 기술 발전의 흐름을 타고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또 개발 단계에서부터 잠재 고객과 시장을 구체적으로 정의한 솔루션들이 주목받았다. 한편, 사용하기 쉽고 누구나 쉽게 설치할 수 있어 기술 적용의 불편과 장애를 최소화한 비침해적(non-intrusive) 방식을 활용하거나 해킹과 사생활 침해 등 기술 오용의 부작용을 제거한 솔루션들이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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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는 전 세계에서 온 4300개 이상의 기업이 가장 최신의, 혁신적인 기술을 뽐내며 14만 관람객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불꽃 튀게 경쟁하는 현장이었다. 획기적인 기술들에 담긴 창의성에 감탄하고, 그것이 바꿀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며 가슴이 뛰는 다른 한편으로 과연 이 중에서 ‘어떤’ 신기술이 ‘언제’ 기존 기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이번 CES에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은 것은 현대차그룹의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 Advanced Air Mobility) 법인 슈퍼널(Supernal)이 최초 공개한 5인승 전기 수직이착륙항공기(eVTOL, electric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S-A2’의 실물 모형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외부에 설치된 실제 수직 이착륙 비행장(Vertiport)을 연상시키는 전시장에서 마치 이륙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S-A2 실물을 보면서 하늘을 나는 택시를 타는 미래가 머지않았음을 실감했다. 또 고질적인 도심의 교통 체증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신재원 AAM 본부장 겸 슈퍼널 CEO가 직접 말했듯 최첨단 기체 개발 기술은 항공 모빌리티 생태계가 선제적으로 구축돼야 빛을 발할 수 있다.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내건 슈퍼널의 앞으로 과제는 기술 고도화보다 정부 기관, 항공 산업 관련 기업들과 긴밀히 협업해 기술이 쓸모 있게 활용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신기술이 기존 기술을 대체하려면 우선 기술 자체가 고객의 욕구를 더 나은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가치를 제안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런 가치 제안이 비즈니스가 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다른 외부적인 요소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CES 2024에서는 슈퍼널처럼 기존의 생태계와 충돌해 당장은 실현 불가능하지만 새로운 생태계를 주도하고자 하는 기술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생태계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기술들, 특히 이제 막 시장에 선보여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한 기술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화려한 기술들이 펼치는 향연 속에서 DBR은 현재 생태계에 바로 적용할 가능성이 큰 기술들을 중심으로 해당 기술이 고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함으로써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최선’이 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사례들을 선별해 취재했다. 이 중에서 실제로 어떤 기술이 더 많은 고객의 선택을 받아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들 사례가 가진 공통점으로부터 최신 기술이 가치 제안하는 방식과 차별화 포인트에 관한 구체적인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1. 생성형 AI로 더욱 강력해진 기업 타깃 생산성 툴

생성형 AI가 보편화되고 빅테크가 개발한 대형 언어 모델(LLM)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고품질의 AI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적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기술적 경쟁우위 못지않게 시장 전략의 가치가 더 커지는 이유다. 최근 기존 업무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각종 생성형 AI 도구가 속속 출시되고 있는 가운데 CES 2024에서는 특히 확실하고 구체적인 기업 수요를 공략한 서비스들이 생성형 AI 기술 발전의 흐름을 타고 빠른 성장을 거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장 비용 절감과 생산성 개선을 추구하는 기업 고객이 ‘기꺼이 돈을 낼 만한’ 서비스를 앞세워 차별화에 성공한 셈이다.

네덜란드 스타트업 포커스(Focus)는 글로벌 특허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AI 분석 플랫폼으로 CES 2024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전 세계 특허 데이터의 업데이트 빈도, 관련 패턴 인용률 등을 측정해 현재 어떤 기술을, 언제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해 조언한다. 기술 트렌드가 급속도로 빠른 오늘날, 미래의 불확실성을 상대로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는 리스크가 걸린 연구개발(R&D)은 경영진이 의사결정에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분야다. 포커스의 피에르 폰테스 데이터사이언스 엔지니어는 “사내 전문가나 외부 컨설턴트들이 하면 6개월에서 1년 걸릴 자료 조사부터 예측까지의 과정을 우리 플랫폼을 활용하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1∼2주 안에 끝낼 수 있다”며 “기업 의사결정자들이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R&D의 우선순위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포커스는 오픈AI의 챗GPT4와 벡터 검색, 다변량 회귀모델 등을 활용해 기업의 관심 기술과 관련된 특허와 발명을 탐색, 비교, 요약한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기술의 미래를 예측한다. 2019년 말 창업해 2021년 말 최초로 플랫폼을 공개했는데 LLM과 벡터 검색 등 AI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정확성이 높아지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회사 측은 레킷, LVMH 같은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미국 백악관과도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한국 스타트업 스튜디오랩의 ‘셀러 캔버스’는 창업 초기부터 “패션 마케팅 대행사를 대체한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가지고 마케팅 비용 절감을 기대하는 기업 고객들을 타깃으로 삼은 서비스다. 패션 상품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생성형 AI 모델이 15초 만에 스타일, 색상 등 상품의 주요 특성을 파악해 어울리는 이미지 레이아웃과 설명 문구를 담은 상세 페이지를 작성해준다. 원래는 스튜디오랩이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고용해 100만 장의 패션 상품 데이터를 일일이 라벨링하고 AI 모델을 훈련시켰는 데도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은 더 완결성 있고 통일성 있는 페이지의 제작을 가능케 했다.

셀러 캔버스의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 자체보다도 온라인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는 물론 상품 상세 페이지를 계절별로 수천 개씩 작성해야 하는 패션 대기업들을 잠재 고객으로 정의하고 이들이 ‘귀찮지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작업을 AI로 대체했다는 점이다. 강성훈 대표는 “국내 상위 10개 패션 회사 대부분이 관심을 보여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생성형 AI 서비스는 많지만 패션 산업에서 이렇게 시장을 뾰족하게 찾아 공략한 기업은 없다는 게 국내외 기업들의 호평을 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AI 부문 혁신상을 수상한 국내 기업, 파이온코퍼레이션의 광고 영상 생성 솔루션 ‘브이캣 AI(VCAT AI)’도 마케팅 프로세스 자동화에 대한 기업 니즈를 정확하게 겨냥해 쿠팡, 네이버, G마켓, SSG, 롯데온 등 대형 플랫폼 기업들을 고객사로 확보한 경우다. 글로벌 뷰티 기업인 로레알도 아시아 8개 언어권별 광고 영상의 브랜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브이캣의 솔루션을 활용 중이다. 브이캣AI는 기업 홈페이지나 제품 상세 페이지 등 URL만 입력하면 몇 분 안에 GPT 기반의 생성형 AI가 광고 숏폼 영상이나 광고 배너 등을 대량 제작해준다. 이 회사는 GPT 적용 이전에도 “광고 제작 업무를 자동화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브이캣AI 서비스를 구현해 왔다. 이전까지 사람이 URL에서 좋은 문구와 이미지를 미리 골라 놔야 했고, 텍스트가 조금씩 길이가 안 맞거나 부자연스러우면 일일이 고쳐야 했다. 그런데 문맥을 이해하고 자연스러워진 GPT의 출현은 이런 사전, 후반 작업의 필요성까지 제거함으로써 제작 비용을 대폭 줄였다.

브이캣AI가 빠르게 유료 고객들을 확보하고 해외시장으로 확장까지 할 수 있게 된 경쟁력은 광고 플랫폼 업체 FSN을 운영하고 상장시킨 경험이 있는 창업팀이 처음부터 광고 시장의 미충족 수요를 명확히 파악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정범진 파이온코퍼레이션 대표는 “애드테크 비즈니스에 10년 정도 종사하면서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마케팅 채널별로 광고를 타기팅하고 개인 맞춤형 광고를 노출시키는 기술이 발전하는 데도 불구하고 막상 노출할 광고 콘텐츠의 제작은 여전히 사람이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는 데 주목했다”면서 “광고 유통뿐 아니라 제작까지 자동화함으로써 관련 시장 전체를 커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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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술-시장 핏(fit)을 뾰족하게

치열한 기술 경쟁 속에서 범람하는 유사 서비스 틈새에서 살아남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지불 용의가 있는 잠재 고객을 뾰족하게 정의하는 역량이 기술 그 자체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CES 2024에서도 타깃 고객과 시장에 대한 이해, 비즈니스 모델 정립이 선행된 상태에서 서비스를 최적화한 기업들의 기술이 눈길을 끌었다.

젠다카디언(Xandar Kardian, 이하 젠다)은 샘 양 대표가 조성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와 공동 창업한 한국계 스타트업으로 CES 2024뿐 아니라 패스트컴퍼니 등 다수 해외 매체로부터 수차례 혁신상을 받은 유망 기업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두고 창업 초기부터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젠다는 미국 정부가 국가 보험인 메디케어, 메디케이드를 통해 65세 이상, 저소득층 만성 환자에 대한 원격 건강 상태 모니터링을 지원한다는 점을 노려 국가 지원금이 필요한 요양 시설을 주요 타깃 고객으로 삼은 결과 미국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다. 젠다가 자체 개발한 레이더(radar) 기반 생체 신호 모니터링 솔루션은 현재 미국 내 100개 이상의 요양 시설에 설치돼 있으며 2024년 600여 개 시설에 약 3만 개가 설치될 예정일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디지털 레이더 신호 처리 기술을 활용해 신체 움직임, 호흡, 심장 박동 등의 생체 신호를 정확히 파악해 환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함으로써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양 대표는 “한국과 달리 사용자나 요양병원이 원격 모니터링에 별도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는 건강보험 시스템 덕분에 미국은 젠다가 개발한 ‘앰비언트 헬스 센싱(ambient health sensing)’ 기술이 자리 잡기 좋은 환경”이라며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510(K) clearance)을 받으면서 업계의 신뢰를 업고 빠르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미국 내 교도소에도 설치돼 마약 복용, 자살 시도 등으로 건강 상태가 취약한 수감자들을 적시에 치료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양 대표는 “기존의 웨어러블 기기는 안정 시 심박수 등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우며 사용자가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며 “레이더 기술을 활용하면 환자의 안전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면서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교도관이나 간호사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조기업인 3M은 CES 2024에서 세계 최초로 자가 충전이 가능한 무선 방음 헤드셋을 선보였는데, 이종 기술의 결합을 기반으로 하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일반 소비자가 아닌 산업 현장 작업자들을 잠재 고객으로 겨냥했다. 2024년 가을 출시 예정인 이 헤드셋은 파워포일(Powerfoyle)이라는 태양전지 기술을 활용해 햇빛이 있는 야외뿐 아니라 인공조명이 있는 실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충전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3M은 스웨덴 기술 기업 익세져(Exeger)가 개발한 파워포일 기술을 3M의 자체 필름 기술과 결합해 제품에 최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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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워포일 기술을 적용한 자가 충전 제품들이 시중에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3M의 헤드셋이 특별한 이유는 일반 소비자가 아닌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음 헤드셋에 태양전지 기술을 최초로 적용했다는 점이다. 3M은 자가 충전 기술이 일반 소비자보다는 일회용 배터리를 교체하기 위해 시끄러운 소음 환경 속에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헤드셋을 벗어야 하는 현장 작업자들에게 훨씬 더 필요한 솔루션이라고 판단했다.

헤드셋과 연결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작업자는 태양전지의 에너지 사용량과 충전 정도를 사전에 모니터링할 수 있다. 매년 산업 현장에서 수백만 개의 일회용 배터리가 버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보호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 3M은 헤드셋에 자가 충전 기능뿐 아니라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쉽게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소음 제거 마이크 등 작업자의 안전과 소통, 생산성을 강화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익세져의 지오바니 필리 대표는 “자가 충전 헤드셋은 사용자의 편의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높임으로써 산업 현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스타트업 나야(naya)는 컴퓨터 키보드 조작이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3D 디자이너, 음악 프로듀서 등 크리에이터를 위한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키보드 ‘나야 크리에이트(Naya Create)’를 선보였다. 기존의 일체형을 키보드와 마우스, 터치패드 등을 서로 떼낼 수 있는 분할 모듈식으로 전환해 최소한의 손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업무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디자인을 혁신한 것이 특징이다. 모리츠 안게르만 나야 대표는 “하루 6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IT 개발자, 특히 최근 늘어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은 만성적으로 팔, 목, 어깨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런 부상을 완화하면서 생산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제품은 2023년 소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5분 만에 1699명의 후원자로부터 65만2578유로를 후원받으며 펀딩 목표를 달성하는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더 나아가 나야는 키보드 하드웨어뿐 아니라 이와 연동하는 소프트웨어 ‘나야 플로(Naya Flow)’를 함께 개발해 사용자가 키보드의 작동 방식을 개인의 워크플로에 맞춰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했다. 안게르만 대표는 “디지털 창작이 확대되면서 관련 소프트웨어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반면 하드웨어 도구의 발전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크리에이터들이 나만의 키보드로 건강하고 생산적인 워크플로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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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침해적 방식으로 기존 기술의 불편 해소

많은 기업이 자사의 기술을 내세우면서 간과하기 쉬운 점은 해당 기술이 과연 고객의 문제를 해소하는 여러 가지 수단 가운데 ‘최선’이냐는 점이다. 대부분 회사가 개발한 기술은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사용이 쉽고 편리한지, UX/UI가 고객 친화적인지 등 사소한 디테일에서 승부가 갈릴 수 있다.

싱가포르와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타트업 나미(nami)는 기존 와이파이 센싱 기술의 불편과 장애 등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고 누구나 쉽게 설치할 수 있어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즉 비침해적(Non-intrusive)인 솔루션으로 AI 사물인터넷(AIoT) 업계의 큰 관심을 받은 사례다. 이들이 CES 2024에서 선보인 무선 모션 감지 솔루션은 와이파이 파동을 분석해 사물을 감지하는 와이파이 센싱 기술을 AI 기술과 융합해 사람, 진공청소기, 애완동물 등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특히 필립스의 가전 사업부인 베르수니(versuni)와 협업해 한국에도 올해 출시 예정인 ‘필립스 홈 안전 5000 시리즈’는 이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가정용 실내 보안 시스템으로 플러그 형태의 심플한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와이파이 센싱 기술은 와이파이 라우터의 위치에 따른 센싱의 사각지대가 발생했지만 나미는 초경량 콘센트 센서 3개를 활용해 140㎡(약 40평)의 넓은 영역을 끊김 없이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나미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혁신책임자(CIO)인 제롬 르로이는 플러그 형태 센서의 설치 용이성을 강조했다. 그는 “‘플러그 앤드 플레이’ 형태로 센서 칩이 들어 있는 플러그를 집 안 콘센트에 꽂기만 하면 회로 전파 경로에 장애물이 있는 비시선(Non Line of Sight) 상태에도, 즉 사각지대와 벽 같은 장애물을 뛰어넘어 집 안의 움직임을 실시간 안정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며 “카메라나 마이크, 별도의 웨어러블 기기 없이도 사용자가 쉽게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침해적인 솔루션”이라고 설명했다.

나미는 앞서 일본 현지 조인트벤처인 오키덴 시플러스시(Okiden CplusC)와 손잡고 일본의 오키나와현 14개 지방자치단체의 노인 가구를 대상으로 노인들의 움직임과 수면 패턴을 감지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실시해 효과를 인정받았으며 일본 전역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는 고령자를 위한 건강과 안전 솔루션으로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지만 앞으로 스마트홈의 사용성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기대가 커진다. 스마트홈 표준화 단체 CSA가 주도하는 사물인터넷(IoT) 표준 플랫폼 매터(Matter)에서 무선 신호 기반 앰비언트 센싱 그룹의 의장으로 활동중인 제롬 르로이 공동 창업자는 “정확한 재실(occupancy) 센싱 기술로 가전제품 사용을 제어하게 된다면 안전뿐 아니라 에너지 절약 측면에서도 효용이 커질 수 있다”며 “이를 위해 한국의 가전 회사들과도 긴밀한 논의를 이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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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케어 부문에서도 ‘눈에 띄지 않고 비침습적인(Unobtrusive)’ 솔루션이 성행했다. 똑같은 진단 및 치료일지라도 피부를 관통하지 않고, 즉 불편이나 이물감을 초래하지 않고, 가급적 지각되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가 늘었다. CES 디지털 헬스 부문에서 혁신상을 받은 한국 스타트업 엠마헬스케어의 스마트 아기 침대 ‘베베루시’는 카메라의 비전 AI와 음성 인식 기술을 활용해 아기의 심박수나 호흡수, 스트레스 지수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2024년 한국과 미국, 유럽 출시를 앞둔 이 침대는 아기가 깨거나 울면 스스로 위아래 바운싱 동작을 하고 사전에 녹음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면서 아기를 재운다. 시각, 청각 센서 데이터를 통합한 일종의 ‘멀티 모달 AI’ 제품이다. 그런데 엠마헬스케어가 이렇게 아기 침대에 얼굴 및 음성 인식 등의 멀티 모달 AI 기술을 적용한 까닭은 다름 아닌 ‘아이 몸에 센서를 부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손량희 엠마헬스케어 대표는 “과거에 웨어러블 제품을 개발한 적이 있지만 아기는 피부가 예민하기 때문에 몸에 뭔가 이물질을 붙이는 접촉 방식은 부모와 아기가 불편을 느끼고 오래 사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런 미충족 수요와 시장의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AI 기반의 다음 세대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웨어러블을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카메라를 따로 장착하거나 별도 제품을 구매할 필요조차 없이 앱만 다운로드받으면 얼굴 인식, 음성 인식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많아졌다. 한 예로 영국 스타트업 블루스카이AI는 컴퓨터비전과 자연어처리를 결합한 기술로 기존 휴대폰과 태블릿PC에서 얼굴 표정과 음성을 해독해 건강 상태를 포착하고 감정을 식별해주는 앱을 공개했다. 자폐증, ADHD, 알츠하이머병 등 얼굴이나 목소리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 징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통역해주는 미국 스타트업 카펠라의 유료 앱도 같은 부류에 해당한다. 미국 MIT, 버클리, 스탠퍼드 창업팀이 합심해 만든 카펠라의 음성 인식 AI 기반 서비스는 월 10달러 비용을 내면 아기의 울음소리를 해석해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를 갈아 달라는 건지, 졸린 건지 등 우는 이유를 정확하게 통역해준다. 카펠라에 따르면 부모가 아기가 우는 원인을 추측했을 때의 정확도가 약 30%인 데 비해 회사의 AI 모델 정확도는 92%라고 한다. 협력 병원에서 확보한 약 1500건의 아기 울음소리와 부모들로부터 제공받은 약 8000건의 울음소리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AI 모델을 훈련한 결과다. 카펠라의 창업자이자 CEO인 아폴리네 데로시는 “아이 울음소리를 인식하고 통역하는 유사 서비스들이 많지만 앱 하나만으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우리뿐”이라며 “경쟁 서비스인 큐베어(Qbear+)의 경우 새로운 장치를 구매해야 하고 자운드림(Zoundream)은 베이비 모니터를 설치해야 하는 것과 대비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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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보 보안, 사생활 침해 등 심리적 장벽 제거

CES 2024에서는 아마존, 구글, 삼성, LG 등이 모두 눈독을 들이는 스마트홈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와 AI가 가져올 변화가 여실히 확인됐다. 하지만 CES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보안 없이는 진정한 AI 혁신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의 말처럼 AI가 집과 같은 일상의 공간에 침투하게 되면서 상용화에 앞서 보안이나 사생활 등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한 대책을 얼마나 고민했냐가 차별화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스마트홈 업체들도 제품 및 서비스를 설명할 때 사생활 보호, 개인정보 보호 장치를 강조했다. 안면 인식, 음성 인식, 동작 인식 등 기술 도입에 있어 중국 기업들의 보안 의식이 상대적으로 미흡할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AI 보안 위험에 대한 사용자들의 경각심을 이해하고 기술 오용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 최대의 홈 IoT 기업인 루미의 스마트홈 브랜드인 ‘아카라(Aqara)’는 모든 센서가 연결된 스마트홈 시나리오를 선보이면서 실내 ‘사생활 보호 모드’를 강조했다. 온라인 연결 없이 센서를 통해 인물의 신원과 음성을 인식하고, 오로지 긴급 상황에서만 카메라의 모니터링 시스템에 신호가 전달돼 감시가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집 안에서 노인이 넘어지거나 특정 인물의 이상 행동 및 음성이 오프라인 센서를 통해 감지되는 순간에만 카메라가 고개를 돌려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이상이 없을 경우 카메라를 향해 손짓하면 다시 카메라가 렌즈 방향을 돌림으로써 모니터링을 중단하는 식이다. 아카라의 해외사업 담당인 시 시앙은 “카메라에 내장된 NPU(Neural Processing Unit, 신경망처리장치로 딥러닝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서) 덕분에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터넷 연결 없이도 기기가 자체적으로 인물을 식별하고 울음소리나 비명 등 인식할 수 있다”면서 “또한 사생활을 최우선으로 두기 위해 언제든 녹음기나 카메라를 끄고 렌즈의 각도를 활동 반경으로부터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등 실내 사용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를 활용해 직접적으로 스마트홈과 디바이스 보안과 연결된 잠금장치의 해킹 위험을 낮추는 제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에어비앤비, 미국 부동산중개사협회, 스키 장비부터 창고에 이르는 다양한 렌털 업체을 상대로 B2B 비즈니스를 하는 싱가포르의 스마트록 업체 이글루컴퍼니가 대표적이다. 주로 미국과 캐나다, 동남아 고객사들을 상대하는 이 회사는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잠금장치에 AI를 도입한 신제품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사물인터넷(IoT)에 암호화 기술을 더한 스마트록으로 에어비앤비 숙박객이나 부동산 중개업자는 물론 일반 가정의 가사 도우미, 배달부, 가전 수리사 등의 출입 관리를 지원한다. 그리고 AI 기술이 발전하자 IoT 기반의 2세대 스마트록, 암호화 기술 기반의 3세대 스마트록을 넘어 AI 기술을 더한 4세대 스마트록까지 개발해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첫 번째 출시 예정인 스마트록은 문이나 현관 등의 잠금장치에 카메라를 설치해 출입을 희망하는 인물의 얼굴을 인식한 뒤 사전 등록돼 있거나 주인이 원격으로 등록한 얼굴과 일치하면 잠금을 해제하는 제품이다. 두 번째 출시 예정인 스마트록은 사용자 위치를 탐지하는 AI 엔진으로 출입이나 사용이 허가된 인물이 특정 손짓이나 행동을 취하면 이를 감지해 잠금을 해제한다.

또한 이글루컴퍼니도 루미의 아카라와 마찬가지로 제품이 온라인 연결 없이 오프라인 상태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앞세우고 있다. 해킹에 취약한 와이파이 연결이 필요 없다는 게 보안상의 최대 강점이라는 설명이다. 이 회사의 스마트록은 자체 개발한 암호 기술을 기반으로 한정된 시간에만 유효한 QR코드 내지는 일회성 비밀번호(OTP, One Time Password)를 고객 스마트폰에 발급해 일시적으로 출입을 허용한다. 이글루컴퍼니의 앤소니 차우 CEO는 “이렇게 제한 시간을 두지 않으면 비밀번호를 제3자에게 넘기거나 양도할 수도 있고 온라인 연결을 통해 모니터링하면 상시 해킹의 위험이 있다”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유물을 더 쉽고 편리하게 대여하고 사용을 관리할 수 있게 하려면 이런 잠금 기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안전을 보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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