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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Interview: 현동진 현대차 로보틱스랩장

로봇에 대한 과도한 환상은 금물
구체적인 임무부터 차근차근 시켜야

김윤진 | 368호 (2023년 05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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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환경을 인지, 판단, 제어하는 기반 기술을 놓고 볼 때 자율주행차와 로봇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를 비롯해 테슬라, 도요타 등 완성차 제조 업체들이 로봇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쟁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 역시 한국에서는 로보틱스랩을 중심으로, 미국에서는 2021년 약 1조 원에 인수한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중심으로 로봇 선행 기술을 내재화하고 서비스, 모빌리티, 웨어러블에 이르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의 집합체인 로보틱스를 통해 현대차가 구현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가치 있는 ‘서비스’다. 그 형태가 로봇이 될지, 자동차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가상의 디지털 ICT에 실물의 매개체가 가진 강건함, 안정성 등의 이점을 얹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구현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현동진 로보틱스랩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간대 기계공학 석사와 UC버클리(UC Berkeley) 기계로봇 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웨어러블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마윤 카제루니 교수의 지도를 받아 외골격형 로봇 과제를 수행했고, 이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2014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뒤 융합기술개발팀장, 로봇플랫폼팀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현대차그룹의 로봇 관련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세상이 챗GPT로 떠들썩하고, 인공지능(AI)이 인류 문명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AI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분야가 있다. 바로 ‘로봇’이다. AI라는 소프트웨어가 발전할수록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AI를 인간이 존재하는 아날로그 세상으로 꺼내기 위한 하드웨어의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I가 인간을 위해 일하고, 인간과 협동하고,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려면 똑똑한 두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줄 물리적 매개체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인간과의 접점에서 서비스를 구현하고 완성해 줄 로봇 시장의 급성장이 예견됨에 따라 국내 대기업들도 로봇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 찍고 있다. 이제까지 로봇의 근간이 될 기반 기술 연구개발(R&D)에 집중해 왔다면 최근 들어서는 상용화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로봇 사업을 회사의 신성장 동력으로 공언한 삼성전자는 2023년 1월 ‘EX1’이란 시니어 케어 로봇의 출시를 예고하고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협동 로봇 개발 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을 인수했다. LG는 일찌감치 로보스타 등 로봇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서비스 로봇 ‘클로이’를 선제적으로 출시하는 등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내 대표 로봇 사업자로 현대차를 빼놓을 수 없다. 2022년 10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테슬라봇)’의 시제품을 공개한 테슬라, 지주회사 우븐플래닛을 주축으로 로봇 지식재산권(IP)을 긁어모으고 있는 도요타 등 제조에 특화된 완성차 업체들이 로봇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업체는 ‘(환경) 인지-판단-제어’ 기능 구현을 위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기술적 유사성을 놓고 볼 때 자율주행차와 로봇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 로봇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 역시 한국에서는 연구개발본부 내 로보틱스랩을 중심으로, 해외에서는 2021년 약 1조 원에 인수한 세계적인 로봇 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중심으로 로봇 선행 기술을 내재화하고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중이다. 2022년 8월에는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케임브리지에 로봇 AI 연구소(BD-AI)를 설립하면서 AI와 로보틱스의 연계를 강화하고 범용성 있는 로봇을 선보인다는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인간을 위한 기술 개발’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로봇 전쟁에 뛰어든 현대차 로보틱스랩의 비전과 전략을 엿보기 위해 DBR이 현대차의 로봇 사업을 총괄하는 랩의 수장, 현동진 상무를 만났다. 그로부터 로보틱스랩의 연구개발 현황과 상용화 계획, 보스턴다이내믹스와의 협업 시너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완만하게 성장하던 로봇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조짐이 있나?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느끼는 몇 가지 징후는 있다. 먼저, 자율주행차처럼 로봇과 기술적으로 유사한 산업에 자본이 몰리면서 여기에 필요한 센서류의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이 싸지고, 공급망 생태계가 갖춰지고 있다. 저전력 CPU(중앙처리장치), 고사양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소위 로봇의 ‘인지-판단-제어’를 뒷받침하는 반도체 시장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 로봇을 위해 이런 시장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비관련 분야에서 센서, 모터, 모터제어, 라이다, 레이더, 엔코더 등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 기계공학과 전자/컴퓨터공학을 합친 융합 기술)라 불리는 요소들의 생산이 늘어나고,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고, 품질이 좋아지고, 단가가 낮아지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로봇 시장을 가능케 하는 공급망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또한 로봇을 판매, 서비스하는 전방 산업도 더불어 발전하고 있다.

다만 로봇 시장이 그동안 더디게 성장해 왔다는 것도 일종의 선입견일 수는 있다. 우리는 자동차도 페달을 밟으면 바퀴가 돌아가고, 운전대를 돌리면 방향을 바꾸는 일종의 로봇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이 100여 년간 성숙했기에 이 로봇에 ‘자동차’란 이름이 붙여졌을 뿐이다. 이처럼 어떤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아직 시장이 꽃피지 않았을 때 로봇이라 불리다 보니 로봇 시장은 항상 ‘영세하다’ ‘안 된다’는 선입견이 생겼을 뿐 늘 성장하고 있었다.

AI 기술의 발전도 로봇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로보틱스는 특정 형태의 로봇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이 아니라 기술의 집합체다. AI도 그 기술 중 하나다. 사실 사이버 세계에만 머물러 있으면 AI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게 굉장히 한정적이다. 환경이나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환경이나 인간은 소프트웨어로 디지털화하기에는 정형화되지 않고 복잡하다. AI가 지속가능한 수익을 만들어 내고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면 결국 사람이 있는 물리적 세계로 나와야 한다. 가상과 현실을 이어줄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 매개체가 사람이 처음 보는 생소한 제품일 때 사람들이 통상 로봇이라고 부른다. 로보틱스는 소프트웨어만 가리키는 것도, 하드웨어만 가리키는 것도 아니며 궁극적으로 ‘서비스’를 지향한다. 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융합돼 일종의 ‘가상 물리 시스템(cyber-physical system)’을 구성할 때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고 사람들이 놀랄 만한 로봇이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디지털 ICT에 실물의 매개체가 가진 강건함, 안정성, 대량 생산 등의 이점을 얹을 필요가 있고, 그 접점에서 로봇 시장에 기회가 생기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도 로봇의 활용 범위를 확장해 이런 접점을 넓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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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를 비롯해 국내 대기업들이 산업용이
아닌 사람 가까이에 있는 서비스용 로봇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국내 대기업이 서비스용 로봇 시장을 신산업으로 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산업용 로봇은 보수적 시장이다. 시장의 크기가 확 커지지도 않고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순위도 고정돼 있어 역동성이 부족하다. 또 산업용 로봇은 기업 이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 가격에 민감하고 기존 거래처를 다른 거래처로 교체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 신사업을 하려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 이런 보수적 시장에 선뜻 뛰어들기는 힘들다.

두 번째, 공장 안에 있는 사람보다 공장 밖에 있는 사람 수가 더 많다. 제품의 수혜를 받는 사람이 많다는 건 기업 입장에서 수익 창출의 기회도 더 많다는 뜻이다.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하니까 특수한 환경인 공장보다는 더 일반적인 환경, 일상을 지향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아울러 공장에선 로봇이 예쁘든 말든 별로 가치가 없지만 밖에선 로봇이 예쁜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감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의 곁에서 로봇이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가 더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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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산업용이 아닌 이 서비스용
로봇 시장에서 경쟁 우위가 있나?

앞서 로보틱스가 복잡한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기술의 집합체라고 했는데 현대차 로보틱스랩의 경쟁력은 우리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 기술을 다 만들면서 철저하게 내재화를 해 왔다는 점이다.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고 첨단의(state-of-the-art) 기술을 얹으면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총동원해 주어진 문제의 최적 해를 찾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실외 배송 로봇이 당면한 과제는 ‘편리하고, 안전하고, 빠른’ 배송 서비스를 구현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풀기까지 몇 가지 병목(bottleneck)이 있다. 가게에서 집까지 무사히 가더라도 계단을 오르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등 집 앞 라스트마일 장애물을 뛰어넘는 게 힘들다. 이런 장애물을 자체 기술로 돌파하고 있다는 게 현대차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정밀 지도를 만드는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기술만 보더라도 빠르게 궤도를 수정하고(replanning), 움직이는 물체를 재빨리 인지하고, 장애물의 움직임을 예측해 회피하는 등 차별점이 있다. 지난해에는 배달의민족과 손잡고 광교 앨리웨이에서 가게 앞에서 집 앞까지 ‘엔드 투 엔드(end to end)’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배송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는 실증사업(PoC)을 수행했는데 사업적으로는 아직 검토할 부분이 남았지만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상용화를 계획 중이다.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도
공을 들이는 것 같다.

현대차는 모빌리티 회사로서 트럭도 만들고, 일반 승용차도 만들고, 경차도 만든다. 그렇다면 실외 환경에서 기존 제품군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은 어디인지 생각해보자. 인도나 횡단보도 등이 남아 있다. 이런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제품은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만든 게 바로 초소형 모바일 로봇 플랫폼 ‘모베드’다. 모베드의 특징은 ‘홀로노믹(holonomic)’하다는 점이다. 즉, 회전할(steering) 수 있는 각에 제한이 있는 게 아니라 아무 방향이나 갈 수 있다. 바퀴가 달린 휠 타입의 플랫폼이지만 4족 보행 로봇과 같은 구조(configuration)를 가지고 자유롭게 몸을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짬뽕을 올리면 국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고, 카메라를 올리면 흔들림 없이 촬영할 수 있으며, 유모차를 올리면 턱을 넘을 때 아기를 깨우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 이렇게 바퀴가 내리누르는 힘을 제어하고 중력과 원심력을 잘 조합함으로써 안정적인 운송이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면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고, 그렇게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만들어 특허까지 낸 제품이 바로 모베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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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완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렇게 초소형 모듈을 만드는 까닭은?

기술을 고객까지 도달시키려면 결국 공용화, 표준화가 핵심이다. 그리고 규모의 경제가 생겨야 한다. 모빌리티를 모듈 단위로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소형 모빌리티 모듈에 단점도 있지만 우리는 장점에 주목했다. 가령, 제네시스 G90같이 대형 세단의 경우 시속 200㎞로 주행해도 편안함을 주는데 초소형 모빌리티는 절대 그 속도로 갈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좁고 복잡한 공간에서는 초소형 모빌리티가 게걸음을 할 수도 있고, 제자리에서 돌 수도 있고, 훨씬 더 움직임이 자유롭다. 그런데 로봇이 배송 등 서비스 영역 곳곳에 진출하려면 결국 좁은 골목길이나 복도, 달동네 등도 다닐 수 있는 홀로노믹1 한 특성이 중요하다. 하드웨어에서 가지고 있는 한계가 줄어들면 그만큼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 부담도 줄어들고 최적화가 더 쉬워진다.

초소형 모빌리티에 사람이 타는 것도
계획하고 있는가?

그렇다. 상용화를 안 했을 뿐 사람의 하중을 견디고 사람이 탈 수 있는 퍼스널 모빌리티도 이미 개발해 놓은 상태다. ‘로딩(loading, 싣는 것)’이냐, ‘라이딩(riding, 사람이 타는 것)’이냐의 차이지 모듈의 조합이라는 점에선 같다. 배송물의 모빌리티든, 사람의 모빌리티든 전부 ‘PnD(플러그 앤 드라이브)’ ‘DnL(드라이브 앤 리프트)’ 등 모듈을 조합해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가령, 배송물은 멀미를 하지 않는데 사람은 멀미를 하니까 당연히 필요한 기술이 조금씩 다르다. 이 라이딩을 할 수 있는 퍼스널 모빌리티를 우리가 훗날 자동차라 부르게 될지, 로봇이라 부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경차 브랜드 ‘모닝’보다 작은 사이즈의 ‘탈 것’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전기차 충전 로봇도 선보였는데
개발 경위가 궁금하다.

전기차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충전 시간이 짧아져야 한다는 데 많은 이가 동의한다. 그런데 충전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현재까지 초고속 충전이 유일하다. 빨리 충전하려면 전류가 그만큼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저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을 물이 지나가면서 식혀줘야 한다. 이런 설계를 고려하다 보니 초고속 전기차 충전 케이블의 무게는 보통 10㎏가 넘는다. 여성이나 교통 약자들이 케이블을 충전구에 꽂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또 날씨에 따라 바람이 불 수도 있고, 어두울 수도 있는데 이런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않고 누구나 쉽게 급속 충전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게 전기차 충전 로봇 ACR(Auto Charging Robot)이다. ACR은 충전구를 인식해 충전 케이블을 대신 꽂아준다. ACR은 다양한 충전기에 범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개발이 진행 중이며 나중에는 자율주행과 결합해 로봇이 주차부터 충전 종료 후 이동까지 알아서 할 정도의 단계를 목표로 삼고 있다.

기술을 내재화하는 게 현대차의 강점이라고
했는데 로보틱스랩의 인적 구성이나 조직
구조도 궁금하다.

현재 전기/기계/컴퓨터공학/물리/경제/경영/디자인 등 없는 전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배경의 인력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비스 안내 로봇 ‘달이(DAL-e)’의 경우도 개발한 지 2년도 안 돼 현대차 송파대로 영업점에서 실서비스를 했는데 이렇게 빠른 속도로 우리가 가진 기반 기술을 제품에 녹여낼 수 있었던 건 집단 지성의 힘이었다. 로봇을 서비스한다는 것은 실패의 연속이고, 대부분의 결정은 ‘무엇을 포기할까’에 대한 것이다. 공급자는 최대한 많은 기능을 넣고 싶다. 하지만 A~F의 기능을 다 넣기엔 컴퓨팅 파워 및 배터리의 용량에 한계가 있다. 개발자가 어디에 중심을 두는지에 따라 어떤 기능을 빼야 할지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공론화하고 토의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

조직 구조는 목적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특정 서비스 로봇 등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편성할 때도 있고 인공지능, 컴퓨터 비전 등 기능 단위로 편성할 때도 있다. 서비스를 빠르게 론칭하고, 시장 수요에 즉각 대응하고, 책임 소재를 명료하게 하는 데는 프로젝트 단위가 낫지만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는 기능 단위가 낫다. 지금은 고도화의 시기라고 판단해 기능 단위로 조직을 재편한 상태다. 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로봇 서비스 과정에서 경험한 실패나 어려움은 없었나?

약 4년 전 개발해 현대로템에 기술 이전했던 웨어러블 로봇 ‘벡스(Vex)’와 ‘첵스(Cex)’를 현대차 정비소 등 국내 사업장에 시범 도입한 바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많은 불만이 있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의 근력을 보조하고 근골격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것인데 “불편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땀이 찬다’ ‘쉴 때 방해가 된다’ ‘피부가 쓸리면 아프다’ ‘입은 채로 누울 수 없다’ ‘화장실 갈 때는 어떡하냐’ 등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현재 이런 의견을 반영한 후속 제품의 보급을 준비 중에 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이켜 보면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동작이나 임무가 광범위하다(general) 보니 제품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도 이 넓은 범위에 모두 적용되는 로봇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앞섰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로봇이 어떤 임무에서는 유용하지만 다른 임무에서는 방해가 됐다. 이에 모든 걸 충족할 수는 없고 구체적인(specific) 임무를 타깃으로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사실 애플의 맥북만 해도 수많은 진화를 거듭해 왔고 노트북처럼 사람과 떨어져 있는 제품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불만이 있기 마련인데 사람이 직접 몸에 착용하는 제품에 불만이 없긴 어렵다. 이런 피드백을 듣는 것이 신제품 준비에 큰 도움이 됐고 확실히 진보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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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이 주로
웨어러블 로봇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웨어러블 로봇의 경우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치와 혜택이 분명한 편이다. 특히 헬스케어 시장에서 그렇다. 사실 로봇을 착용한다는 것은 신체에 질량 덩어리를 붙이는 일이다. 누구나 몸에 무거운 걸 붙이는 건 싫어한다. 옷도 입는 것보다는 안 입는 게 더 편하지 않나. 앞서 공장 작업자들도 불편을 호소했듯이 이런 명백한 불편을 감수하게 하려면 명백한 이득을 줘야 한다. 그런데 하반신 마비 환자를 걷게 할 수 있다면? 오래 작업을 해도 질병에 안 걸리고 피로를 덜 느낀다면? 입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하반신 마비 환자들은 오랜 휠체어 생활을 하다 보니 2차 합병증이 발생해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착용 로봇이 누군가의 수명을 늘리고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한다면 그 누구도 효용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두고 “왜 만드냐”라고 많이들 질문하듯이 로봇이 존재 가치를 입증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존재 목적이 뚜렷한 웨어러블 로봇에 관심을 두고 상용화를 하려는 것 같다.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HRI, Human Robot Interaction)에 대한 연구도 중요해지고 있다고 들었다.

사람들은 로봇에 대해 굉장히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다. 로봇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원하는 정보를 바로 주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길 바란다. 그런데 앞서도 언급했듯이 로봇은 구체적인 임무를 수행할 때는 유용하지만 사람처럼 광범위한(general) 임무에 다 적용하기 시작하면 기대치에 현저히 못 미치기 쉽다. 로봇의 지능이 사람에 비해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웨어러블 로봇이나 로봇 팔, 원격 조종 로봇 등은 사람이 인지와 판단을 담당하고, 로봇은 제어만 담당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다. 이에 반해 사람의 인지, 판단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로봇이 광범위한 지능을 갖추게 하는 일은 훨씬 난도가 높고 시간이 걸린다. HRI는 어떻게 하면 로봇이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원하는 경험을 줄 수 있을지 연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언제쯤 현대차의 서비스 로봇을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될까?

우리의 서비스 로봇은 주로 B2C를 지향하는 만큼 2025년 내에 주변에서 더 많은 로봇을 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송파대로 영업점에서 달이를 선보였을 때 아동과 로봇의 상호작용, 즉 HRI를 연구하는 한 교수님이 매장을 찾은 적이 있다. 그런데 달이가 춤을 추면 아이들이 따라서 추는 등 우리의 예상보다 아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로봇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목격했다. TV에 로봇이 등장하긴 하지만 아이들이 실생활에서 접할 기회가 잘 없다 보니 높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아이들이 달이를 체험해 보길 원하는 학부모들이 많았고, 로봇이 더 많은 아동용 콘텐츠나 서비스를 제공해 줬으면 하는 수요도 발견했다. 모든 서비스는 오류를 동반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오류를 사용자가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려면 서비스 로봇이 다양한 콘텐츠와 매력, 디자인 등 무형의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신경 써서 일상 속의 다양한 로봇 솔루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이후 협력하거나
공동 연구하는 과제들이 있나?

한국 로보틱스랩에서 한 팀을 보스턴다이내믹스에 파견해 기술 교류를 하고 소프트웨어 개발, 컴퓨팅 파워 관리 등 여러 영역에서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같은 경우 환경 인식,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나 걷고, 뛰고, 춤추는 등 움직임(locomotion)에 특화돼 있고, 이와 관련된 개발 파이프라인을 잘 쌓아왔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다. 대신에 로보틱스랩은 사람 인식, 사람과의 상호작용이나 위치를 파악하고 매핑하는 SLAM 내비게이션 기술 등 소프트웨어에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대표 4족 보행 로봇인 ‘스팟’에 접목해서 공장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서비스 로봇(Factory Safety Service Robot)을 시범 운영한 적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으로 사회적으로 이런 안전사고에 민감하기 때문에 로봇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것이고, 이 기술은 현대차 생산기술센터로 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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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의 강점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시너지를
모색하고 있는가?

같은 모빌리티 플랫폼을 만들더라도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발이 달린 ‘레그드(legged)’ 제품을 개발한다면 현대차는 기본적으로 자동차 회사라 바퀴가 달린 ‘휠(wheel)’ 제품을 개발한다. 이 중 무엇이 더 나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서비스다. 가령, 레그드가 보기엔 더 멋지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발을 계속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고, 걸을 때 소리가 나서 소음이 심하다. 또 휠은 조용히 굴러가다가 배터리가 방전되면 제자리에 멈춰 서는데 레그드는 쓰러지거나 균형을 잃을 수 있다. 환경 인식,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강점이 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는 B2B에,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현대차 로보틱스랩은 B2C에 집중한다는 정도의 차별화는 가져가되 고객이 요구하는 서비스 적용 영역에 따라 필요한 모빌리티의 형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레그드와 휠을 결합한 여러 솔루션을 선보이려 한다.

마지막으로 현대차 로보틱스 랩의
비전이나 목표는?

로보틱스 기술이 포함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장점과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조합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 그 제품의 이름이 로봇이 될지, 자동차가 될지, 비행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의 사명인 ‘인간을 위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ies)’에 걸맞게 사람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고,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도록,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배송 로봇이 배송 일자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배송원이 직접 계단을 오르고 엘리베이터를 탈 것이냐, 아니면 관제와 모니터링만 할 것이냐라는 ‘선택’의 문제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많은 대중이 로봇이라고 하면 공상과학(SF) 영화나 소설을 떠올리고 많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로봇과 인간의 공생’을 이야기하고 로봇에 험한 일을 시키거나 다치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 묻기도 한다. 하지만 로봇은 살아 있지 않다. 인간을 돕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지나치게 환상을 품을 필요도 없고, 어떤 형태를 띠든 로보틱스란 기술의 집합체가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는 생각으로 연구개발과 상용화 노력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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