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수명은 채 100년을 넘기 어렵다. 하지만 전 세계 대도시들은 대부분 죽지 않고 꾸준히 성장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도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던 핵심은 ‘다양성’에 있다. 도시는 수많은 다양한 인재가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그 안에서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소비하며 끊임없는 혁신을 창출한다. 그러나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고 비즈니스의 목표가 분명한 기업의 경우 도시와 비슷하게 다양성을 창출하고 관리하는 것이 어렵다. 기업은 이 선천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영과 조직 관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해야 한다. 그 패러다임이 바로 ‘존중’이다. 하지만 존중은 단순히 메시지와 프로그램으로 내재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 조직 활동 곳곳에서 존중을 너징(Nudging)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기업은 존중의 전략과 패턴을 문화화함으로써 생존과 성장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론 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는 그의 저서 『스케일(Scale)』에서 인간과 동물 주변 조직의 다양한 데이터를 모아 그 성장과 죽음을 분석했다. 그 결과, 거대 중심 도시 대부분이 한번 형성되면 죽거나 축소되지 않고 심지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지속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도시는 때로는 국가보다도 오래 살아남아 길게는 수천 년 이상 생존을 지속해오고 있는 가장 오래되고 확장성이 높은 플랫폼이다.
이에 반해 기업은 어떨까? 애석하게도 기업의 생존과 성장 패턴은 도시와 정반대였다. 제프리 웨스트 팀이 195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기업 시장의 데이터11S&P 500으로 잘 알려져 있는, Standard & Poor’s 데이터.
닫기를 모아 분석한 결과 기업은 시간이 갈수록 성장을 멈추고 정체하다가 결국 대다수가 죽었다. 분석에 따르면 기업이 100년 동안 존속하는 경우는 100만 개 중에서 약 45개에 불과하고 200년 동안 존속할 확률은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
왜 도시는 살고 기업은 죽을까? 도시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제프리 웨스트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놓은 답은 ‘다양성’이었다. 그는 어떤 플랫폼이 생존하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창발(emergence)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열역학 법칙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또 소비하기를 반복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반면 기업은 한계가 있다. 기업도 물론 설립 초기, 당연히 비즈니스 모델과 상품, 서비스의 혁신을 통해 등장하고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기업은 혁신의 패턴을 반복해 만들어내지 못한다. 결국 ‘규모의 경제’와 ‘효율화’에 초점을 두고 조직을 관리하다 또 다른 혁신 기업이나 시장 변화에 의해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재형re.jae@kakao.com
엠지알브이(MGRV) CHRO, 이사
필자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휴먼컨설팅그룹(HCG) 수석 컨설턴트를 거쳐 인공지능 스타트업 수아랩(현 코그넥스 코리아)과 핀테크 스타트업 어니스트펀드의 조직/인사를 총괄했다. 현재는 코리빙(Co-Living) 브랜드 맹그로브(Mangrove)를 운영하는 임팩트 비즈니스 기업 MGRV의 피플 그룹을 리드하고 있다. 저서로 『초개인주의: 가장 인간다운 인간, 조직, 그리고 경영에 대하여(한스미디어, 2022)』, 공저로 『네이키드 애자일: 경영의 눈으로 애자일 바로보기(미래의 창, 201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