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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챗GPT 시대의 인적자원 관리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
“게이머 아닌 창의적 게임 체인저 키워야”

김은환 | 365호 (2023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앞으로 기업 인재는 AI의 발전을 주목하고 발전 단계에 따라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는 역량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구글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 ‘검색’이 최고의 상품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페이스북이 사람들 간의 ‘친교와 대화’가 상품이 될 미래를 내다본 것처럼 말이다. 이 같은 비즈니스 상상력 등 AI가 기계 학습으로 성취하기 어려운 인재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인적자원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1. 역피라미드 조직 구조 혹은 기존 사업은 경영진이 담당하되 신사업은 중간 및 고위 간부가 맡는 모델 등을 확립해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2. 자사만의 독특한 전략을 구상하고 추진할 새롭고 개성적인 인재상을 구체화한다.

3. 애플의 앱 개발자, 아마존의 아마존 셀러, 구글의 유튜버 등 크리에이터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는 허브와 다양하고 역동적인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로서 입지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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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은 오는가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2035~2045년 인공지능(AI)의 능력이 인류의 지성을 초월하는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1 AI가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더 똑똑해진다는 것이다. 노동의 종말이 닥쳐오는 걸까. 소설가, 음악가, 기자, 경제분석가, 은행가, 교사…. 사라져버릴 직업이 줄줄이 떠오른다. 역사 속에서 신기술은 언제나 기대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AI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중용이 답이다. 과도한 기대에 도취한 ‘테크 마니아’도, 과도한 두려움에 얼어붙은 ‘테크 포비아’도 정답이 아니다.2

나날이 커지는 AI의 영향력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패닉, AI에 의해 인간 노동이 완전히 대체될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창조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은 대체 불가하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는 희망 섞인 낙관론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적절한 반응은 아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고 나는 퇴물이 됐다’는 자조와 자학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충격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가장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는 빌 게이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향후 2년 안에 일어날 변화는 과대평가하면서 향후 10년 동안 일어날 변화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3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외관에는 충격을 받으면서도 장기적으로 벌어질 실제 변화에 대해서는 대비하지 않는 세태를 빌 게이츠는 경고한다. AI는 아직 세상을 뒤바꿀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지만 그냥 지나가 버릴 한때의 유행은 결코 아니다. 산업과 기술의 패러다임을 무너뜨릴 파괴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일상에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따금 챗GPT 등장과 같은 눈에 띄는 사건이 일어나면 막연히 위기감을 느끼다 다시 잊고 일상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은 쓰나미보다는 빙하를 닮았으며 AI도 예외가 아니다.

챗GPT, 충격적이지만 “Don't Panic”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 능숙한 전문가처럼 답변하는 챗GPT는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필자는 이렇게 물어봤다. “챗GPT 같은 AI보다 인간인 내가 더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을 활용하는 등 당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고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누군가에게 말하듯 쓰라.” 훌륭한 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 스피커의 쳇바퀴 같은 대답에 실망했는데 이번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챗GPT의 놀라운 성능에 일부 미국 학교에서 챗GPT 사용을 금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앞으로 학생들이 쓴 대학교 리포트를 받을 수 없을 것이며 심지어 인간이 논문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제기된다. 그러나 성급하게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이 모든 일은 엄청난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변화일 뿐이고 여전히 많은 선택지가 있다.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화가들은 낙담했지만 회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IBM이 만든 체스 특화 AI 컴퓨터 ‘딥블루’가 체스를 없애지 않았고, 알파고 때문에 바둑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근세 화가들은 3차원 이미지를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원근법을 비롯한 다양한 기법을 개발하고 공들여 수련했다. 사진의 등장은 이 모든 노력을 한순간에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화가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다. 대상을 입체적으로 정확하게 모사하는 것이 아닌 “형과 색에 대한 탐구로 공감각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회화의 목적을 새롭게 설정한 것이다. 4 피카소 등 입체파로부터 본격화된 추상미술은 회화의 본질을 바꿔놓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진 예술의 등장이다. 카메라는 화가를 없애기는커녕 사진 예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피사체를 선정하고 화면을 구성하는 활동을 통해 사진은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이 됐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기술이나 예술 장르를 대체한다. 그리고 사람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다.

바둑에서 AI는 인간 최고수를 이긴 데서 그치지 않고 지금은 프로 기사에게 3점 접바둑을 강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변하면 AI는 처음부터 다시 학습해야 한다. 만약 19줄 바둑판을 20줄 또는 18줄로 바꾸면 기존의 기계 학습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5 이런 간단한 규칙 변화만으로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AI와 달리 인간은 변화된 게임에 더 빨리 적응한다. 이처럼 인간의 고유한 역할은 탁월한 게이머가 되는 것이 아닌 창의적인 게임 체인저가 되는 것이다.

기업 인적자원 관리의 충격, ‘대퇴직’과 AI의 오버랩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는 가운데 또 하나의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 바로 ‘대퇴직(Great Resignation)’이다. AI의 발전과 대퇴직의 확산이라는 두 물결의 충돌은 어떤 현상을 일으킬까. 얼핏 생각하면 두 현상은 혼돈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충격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불이 났는데 갑자기 비가 오거나 유가가 폭등했는데 날씨가 따뜻한 것처럼 말이다.

산업혁명 당시, 기계의 확산이 숙련공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면서 이들은 ‘러다이트’, 즉 기계 파괴 운동이라는 폭력으로 저항했다. 영국은 공권력으로 숙련공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지만 프랑스는 기계 도입에 실패해 제조업 분야에서 상당 기간 영국에 뒤처지게 된다. 만약 노동시장의 수요가 우위인 상황에서 지식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사수하려 한다면 AI는 21세기 러다이트와 같은 커다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업을 떠나거나 적극적으로 구직하지 않는 대퇴직 시기에 AI의 확산은 오히려 안성맞춤이 아닐까. 방향성만 보면 일리 있는 생각이지만 문제는 속도와 타이밍이다. AI가 대체할 수 있는 역량과 지식 근로자의 퇴직으로 유실되는 역량 사이에는 커다란 갭이 있다. 이 갭을 무시하고 사람을 AI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금융회사에서 IT 회사로 변신한다’는 모토 아래 일찍이 혁신을 추진했다. 금융은 AI로 대체될 직업 분야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증권회사에서는 이미 투자를 전담하는 AI가 실무에 적용된 지 오래다. 골드만삭스는 보다 철저하게 혁신하길 원했다. 2017년 주식 매매 트레이더 600명 중 단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해고했다. 그 자리를 소수의 컴퓨터 엔지니어가 메웠다. 6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2년, 기대와 달리 골드만삭스는 야심 차게 진출한 소매 금융에서 누적 3조 원대의 손실을 내는 등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객 보호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미 연방준비위원회의 조사까지 받았다. 7 늘 업계를 선도하던 골드만삭스가 단단히 체면을 구긴 것이다. 8 AI의 위력을 과신하고 지나치게 과감한 사업 확장을 벌인 것이 패인이었다.

AI가 인력을 대체할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 기업, 직업에 따라 대체의 정도와 속도는 천차만별이며 그 과정 또한 복잡하다.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AI가 고스란히 들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보다는 인간과 기계가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AI를 실무에 투입하는 것은 예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AI가 기능상 탁월하더라도 다양한 규제나 윤리적 이슈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대출 심사나 채용 등에 적용된 AI가 대상의 프로필에 따라 차별적 행태를 보이는 사례가 보고됐다. 이에 2017년 미국 뉴욕의 시의원 제임스 바카는 ‘알고리즘의 설명책임 법안’을 발의했으며 9 이는 2022년 현재 미국 상하원에서 입법 과정을 밟고 있다. 10 이런 규제 강화는 사람에 의한 AI 설계 및 운용에 있어 추가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규제 법안을 입력하면 AI가 알아서 학습하고 자신의 메커니즘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이다. ‘대퇴직으로 인한 공백을 AI로 메운다’는 단순한 프레임으로는 골드만삭스가 범한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 AI가 강점을 갖는 기능을 도입하되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 역할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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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전략에 맞는 새로운 인재 수요 창출

AI로 인해 위협받는 것은 인간의 노동만이 아니다. AI가 노동을 대체하면 기업 경영자와 기술 엘리트는 저비용과 고수익을 누리고 이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이솝우화의 개구리와 쥐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개구리와 몸을 묶은 쥐가 물에 빠져 죽자 솔개미가 쥐를 낚아챘다. 결국 살아 있던 개구리까지 딸려 올라가 솔개미의 밥이 됐다. 이처럼 노동과 경영은 한배를 타고 있다. AI가 노동만을 조준해 정밀 타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AI는 노동과 함께 비즈니스 모델, 사업, 경영 시스템을 와해한다. 근로자가 모두 로봇으로 대체된 스마트 팩토리에서 공장의 경영 관리자가 필요할까. 노사 관리도, 고충 처리도, 사기 진작도 필요 없다. 공유 차량 플랫폼은 택시 기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 택시 업체를 대체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AI에 대체되지 않을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는 것이다. 마치 바둑의 규칙을 바꿔야만 알파고를 따돌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플랫폼으로 위기에 몰린 택시 업체는 장애인이나 어린이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 서비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기 구독 서비스 등 새로운 모델을 시도할 수 있다. 11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게임 체인저가 되면 회사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함께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AI는 노동을 대체하지만 AI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은 새로운 유형의 노동 수요를 창출한다. 카메라가 사진작가라는 새로운 예술가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넷플릭스가 좋은 예다. 넷플릭스의 강점은 고객 선호에 따른 맞춤형 추천 시스템이다. 방대한 시청 데이터를 활용한 AI의 분석은 사람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범위와 깊이를 과시한다. 단순히 누가 어떤 영화를 봤는지뿐만 아니라 영화를 끝까지 봤는지, 중간에 멈췄는지, 빨리 감기했는지, 다시 봤는지 등 모든 디테일을 분석한다. 이처럼 영화 시청 패턴은 AI가 완벽하게 포착하고 데이터화할 수 있다. 데이터양만 충분히 확보된다면 인간 통계 전문가보다 훨씬 뛰어난 분석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AI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구독자의 시청 행태가 경이로운 수준으로 세밀하게 분석된다 해도, 이는 행태 분석일 뿐 이들이 어떤 영화를 좋아할지 알려면 영화가 분류돼야 한다. 물론 영화를 관습적으로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공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구분으로는 정확한 추천을 기대할 수 없다. 똑같은 로맨스 영화에 대한 선호도 천차만별일뿐더러 최근에는 로맨스, 스릴러, 코미디를 결합하는 장르 융합의 경향도 두드러진다. 이런 상황에서 관습적인 장르 분류로는 영화 팬의 선호를 맞추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넷플릭스는 사람의 직관과 감성을 동원한다. ‘태거(Tagger)’라고 하는 전문 인력이 이미 7만7000개에 달하는 세부 영화 분류를 기반으로 새로운 영화가 추가될 때마다 태그를 부여한다. 영화의 잔인성, 로맨스, 성적 표현 등 다양한 속성에 대해 5점 스케일로 점수를 매긴다. 이 스코어링을 위해 36쪽 분량의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영화 내용 기반의 필터링이 이뤄지고 사용자의 선호를 적중하는 것이다. 12 원래 태거란 AI 학습을 위해 사진에서 개와 고양이를 태깅하는 플랫폼 경제 시대, 긱 노동자의 대표 사례였다. 이들은 배달 앱의 라이더와 함께 디지털 시대의 약자이자 양극화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태거는 다르다. 이들은 회사의 핵심 인력이며 AI의 조련사이자 파트너다.

영화 추천은 넷플릭스가 블록버스터를 추월하게 해준 핵심 무기이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기반이다. 단순한 영화 유통을 관객과의 소통, 그리고 고객 경험의 차별화로 승화시킨 넷플릭스의 전략은 비즈니스 모델만이 아닌 ‘태거’라는 새로운 인재 유형을 창조했다. 챗GPT도 마찬가지다. 언어를 이해하고 문장을 생성하는 단계까지는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로는 그럴듯한 대답을 해낼 수 있도록 몇 개월의 훈련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는 13 각 분야의 인간 전문가들이 가정교사처럼 붙어 “잘했다” “못했다”라는 피드백을 줘야 한다. 각 분야 AI의 개발 과정마다 해당 전문가가 거의 떠먹여 주다시피 하는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AI의 사업 적용에서 핵심 키워드는 ‘대체’가 아닌 ‘보완’ 또는 ‘협력’이다.14 이런 보완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퇴직과 AI 사이에서 기업은 방향 감각을 상실할 것이다.

AI가 길을 잃을 때, 패러다임 전환의 일상화

AI의 본질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범위와 규모의 대안들을 탐색하면서 조금씩 판단의 정확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씩’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인간은 직관과 통찰을 통해 과감하게 답이 아닌 부분들을 가지 쳐 가면서 나아가지만 AI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시행착오를 고속으로 수행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진행 과정은 ‘조금씩’, 즉 점진적으로 나아간다. AI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정확도 점수가 조금씩 상승하며 연속적인 스케일을 형성해야 한다. 간극이 발생하면 AI는 도약의 방향을 찾지 못한다. 쉽게 말해 길을 잃는 것이다.

챗GPT의 등장으로 이제 AI가 과학 논문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이 나온다. 지금 당장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지금과 같은 발전 속도라면 어느 시점에서는 인간 과학자보다 정밀하고 예리한 논문을 쓰는 AI 과학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15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제약이 따른다. 특정 패러다임 아래 모든 연구가 이뤄지는, 토머스 쿤이 말한 정상 과학의 시기여야 한다는 점이다.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혼돈기가 찾아오면 이론의 적합성을 판정해주는 연속적인 스케일이 무너진다. 인간은 이 시기를 직관과 통찰의 힘으로 견뎌내지만 AI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 방향성을 잃는다. 동일한 현상이 패러다임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므로 이론과 현상의 적합도가 들쭉날쭉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도 과학과 비슷하다. 증기기관, 전기와 모터, 컴퓨터로 이어지는 기술 체제의 교체는 패러다임 전환을 닮아 있다. 하나의 패러다임 내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명확하게 정의됐으며 기업이 역점을 둬야 할 전략도 방향성을 공유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넘어 과연 패러다임이 있는가라는 회의론마저 대두된다. 이제 산업의 경계도 무의미하고 신·구 기술이 융합하며 기술과는 무관하게 비즈니스 모델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AI가 바둑기사와 과학자를 위협하고 있지만 과연 기업과 경영자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처럼 하나의 룰이 장기간 지배하는 체제가 없어지고 패러다임 전환이 일상화된다면 AI는 기계 학습 자체를 진행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간의 정상 패러다임 시기가 이어지고 패러다임 교체가 간헐적으로 일어난다면 AI는 인간을 위협할 것이다. 이는 기업 조직과 인적자원 관리에도 중대한 파장을 일으킨다. 직무 설계에서부터 교육 훈련, 승진과 배치라는 모든 과정은 일반적으로 기업의 사업과 전략, 역량이라는 안정적인 시스템 위에 짜인다. 그러나 AI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기업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숙련’은 더 이상 기업 내에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고정된 스케일 내에서 점진적으로 향상되는 역량은 AI의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숙련은 전문가로서의 아성이나 방벽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신과 게임 체인징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정해진 역량의 스케일을 스스로 과감하게 벗어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게임을 창안할 때 AI를 따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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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화할 뿐이다

AI는 인간 노동 자체가 아닌 기존의 직업, 일하는 방식,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을 대체한다. 아무리 새로운 혁신도 루틴으로 굳어지고 성과를 측정하는 척도가 자리 잡히면 AI의 추격이 시작된다. 알파고가 프로 바둑 기사를 따라잡은 속도는 경이롭다. 그런 일들이 모든 부문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는 『거울세상의 앨리스』에 등장한 ‘붉은 여왕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붉은 여왕은 “여기서는 힘껏 뛰어야 제자리이며 이동하려면 지금보다 두 배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AI는 멈춰 선 사람과 기업, 나아가 산업을 대체한다. 대체되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만 AI는 인간을 공격하는 적이 아니다. 인간은 AI를 이용할 수 있다. 앞선 사례에서 보았듯이 넷플릭스의 태거들은 AI를 이용해 더욱 섬세하게 영화 장르를 구분한다. 챗GPT는 글쓰기를 위한 사전 자료 조사나 심층 연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AI와 격리돼 완전한 아날로그 영역에 머물러야만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로부터 구별되는 인간의 정체성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며 AI는 그중에서 최신, 최고 수준의 도구일 뿐이다. AI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할 수 있지만 압도되거나 무력해질 필요는 없다. 최근 AI의 다양한 버전은 보다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인간 사용자와의 인터페이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AI가 기계 학습을 하는 동안 인간도 AI 활용을 학습할 것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필요도, 어렸을 때부터 코딩 훈련을 받을 필요도 없다. 워드 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를 익히는 것보다 딥러닝 프로그램을 더 쉽게 다루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 문명을 거부하고 아날로그의 정체성을 고집하면 오히려 AI의 손쉬운 타깃이 된다. 아날로그 감성을 모방하는 것은 AI에 쉬운 일이 되고 있다. 강화 학습 AI가 렘브란트의 그림을 그려 미술사 전문가를 속이고 챗GPT가 래퍼 에미넘의 랩 가사를 써낸다.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주가 조작에 연루된 청년을 주제로 한 도스토옙스키 문체의 장편 소설 『21세기 죄와 벌』을 써내는 AI는 특이점을 기다릴 것도 없이 불과 몇 년 안에 현실화될 것이다. 가수, 아이돌, 배우조차 AI에 의해 대체되는 세상이다. AI 광고 모델은 스캔들과 사고의 리스크가 없어 더욱 환영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경직된 역할 규정 및 역량 프로필에 의해 육성되는 기업 인재는 AI에 의해 가장 먼저 대체될 유물처럼 보인다.

앞으로 기업 인재는 AI의 발전을 주목하고 발전 단계에 따라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는 역량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게임 체인징은 단순히 무언가를 바꾸는 것, 이를테면 축구를 농구로 바꾸는 것과 같이 기존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구글은 인터넷 시대를 맞아 ‘검색’이 최고의 상품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페이스북은 사람들 간의 ‘친교와 대화’가, 애플은 스마트폰상에서 ‘인터넷 기능의 활용’이 상품이 될 미래를 내다봤다. 기존의 산업과 시장의 프레임으로는 볼 수 없는 ‘큰 그림’이었다. 이런 미래를 보려면 달라진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상상은 불연속적이며 현실을 조금 바꿔보는 것만으로는 쉽게 떠올릴 수 없다. 이런 상상의 도약이야말로 AI가 기계 학습으로 성취하기 어려운 능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16 초거대 AI가 보편화되는 시대, 대체 불가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의 인적자원 관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1. 역피라미드 조직 구조

기업은 다양한 실험과 시도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고정된 사업, 기술, 시장에 묶인다면 곧 경쟁 기업은 물론 AI의 타깃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보기술(IT)이 가장 두려운 적수였다. 손목 위에서 경쟁을 벌이던 시계 제조사들은 시장의 가장 큰 부분을 스마트 워치에 빼앗겼다. 살아남은 시계 제조사들도 이제는 모두 IT를 접목한 제품을 생산한다. 이 밖에 IT에 의해 대체되거나 소멸된 업종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문제는 이제 단순한 IT가 아닌 AI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현재 다루고 있는 제품과 서비스에 AI가 도입된다는 사실을 감안해 시장과 고객 체험에 어떤 지각변동이 일어날지를 미리 상상하고 기획해야 한다.

이를 위해 회사의 조직 구조를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 역피라미드 조직, 즉 현장에서 먼저 실행하고 그중 최선의 결과를 선택하는 의사결정 구조는 꽤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다. 17 그러나 위계를 중시하는 기업 조직에서 이런 역발상이 자리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다 실행 가능한 모델로서 미국 스탠퍼드대 로버트 버겔만 교수는 기존 사업은 경영진이 담당하되 신사업은 중간 및 고위 간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8 경영자는 기존 사업에서 수익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간부들이 마음껏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수익성과 혁신을 계층별로 분리하고 기존 사업에서 성공한 경영자의 입김을 신사업에서 배제한다는 아이디어다. 실제로 영미 기업에서는 “HiPPO”라는 표현이 쓰인다. “Highest Paid Person’s Opinion”의 약자, 즉 ‘CEO의 독단’이란 뜻으로 이는 기업 내에서 다루기 어려운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적어도 신사업에 관해서는 HiPPO를 배제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역피라미드 조직으로 가는 필수 코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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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업 전략에 부합하는 인재상 확립

기업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인재를 해고하고 소수의 컴퓨터 엔지니어와 AI를 그 자리에 투입하는 것은 모범 답안이 아니다. 물론 기존의 인재를 껴안고 가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해결책은 유니크한 전략을 구상하고 이를 추진할 새롭고 개성적인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 경제가 도래하면서 기업이 필요한 역량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개방적 혁신의 허브, 중심축으로서 기업 인재는 여전히 필요하다. 혁신은 결국 인간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이런 인재를 확보하고 이들을 게임 체인저로 육성해야 한다.

이런 게임 체인저는 어떤 인재일까.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천재 프로그래머일까. 미국 스탠퍼드대 AI연구소,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CSAIL(Computer Sci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ab), UC버클리대의 BAIR(Berkeley Artificial Intelligence Research) 출신의 특 A급 인재들일까. 19 우선 수능 성적으로 순위를 매기듯 인재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다는 관념부터 지울 필요가 있다. AI가 가장 따라잡기 쉬운 상대가 척도가 명확해진 역량이다. 현재 천재적인 프로그램 개발자 중에는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인력이 많으며 대학 졸업 학위는 프로그래밍 능력과 무관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20

이제 어떤 기업에서나 똑같이 받아들여지는 우수 인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과 전략에 따라 적합한 인재는 역동적으로 변한다. 기업은 자사 전략에 부합하는 우수 인재상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자사만의 인재상과 요구 역량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명품 구매 플랫폼 트렌비는 ‘상대를 탄복시킬 수 있는 겸손함’이라는 이미지를 역량의 핵심으로 설정한다. 모바일 간편 투자 서비스 핀트는 ‘금융을 소비자 관점의 서비스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인재상으로 내세운다. 마이데이터 플랫폼 뱅크샐러드의 인재상은 ‘데이터와 실험을 기반으로 임팩트를 만드는 사람’이다. 21 아직 추상적인 표현에 머무르고 보다 발전돼야 할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업종과 전략에 꼭 맞는 각자의 인재상을 확립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롭고 의미 있다.

기업의 유니크한 전략과 긴밀히 연결되는 개성적인 인재상은 인재의 역량과 가치가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제 외부의 기준이 아닌 기업 전략에 부합하는 고유한 기준으로 모든 인적자원과 기회를 평가해야 한다. 그 기준은 기업마다 다르고 새롭고 독특하기 때문에 AI가 쉽게 학습하기 어렵다. 이처럼 기업이 고유한 인재상을 확립하고 인재는 그에 맞는 차별화된 역량을 개발해나갈 때 AI를 도구로 부리며 주체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3. 크리에이터 경제 허브로 도약

크리에이터 경제라는 말이 시사하듯 이제 기업이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역량을 사내에서 확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 폐쇄적 프레임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오픈 이노베이션, 더 나아가 크리에이터 경제의 허브가 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플랫폼 기업은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 메이커들의 네트워크로 거듭나고 있다. 애플의 앱 개발자, 아마존의 아마존 셀러, 에어비앤비의 슈퍼 호스트, 구글의 유튜버는 단순한 긱 노동자도, 영세 자영업자도 아니다. 이들은 각각 비즈니스의 주체이며 플랫폼을 풍요롭게 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최초 출시할 당시 앱 스토어 아이디어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의 꿈의 결정체인 아이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 개발한 앱이 깔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아이폰의 성공은 거의 전적으로 앱 생태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제되지 않는 앱 생태계가 아이폰의 정체성과 가치를 유지하는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기업의 인적자원 관리도 회사 내 직원 관리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비즈니스 생태계 관리 차원으로 도약해야 AI에 쉽게 잠식되지 않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초거대 AI 시대, 기업이 여전히 산업의 주역이자 허브로서 살아남으려면 AI가 창출하는 콘텐츠에 맞설 원천이 필요하다. 고인 물이 된다면 아무리 탁월한 인재들이 모인 기업이라도 곧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다양하고 역동적인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의 중심에 입지하고 크리에이터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는 교차로가 되는 것이 앞으로 성공적인 인적자원 관리의 필수 조건이 될 것이다.
  • 김은환 | 경영 컨설턴트•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장

    필자는 경영과학과 조직이론을 전공한 후 삼성경제연구소(현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25년간 근무했다. 근무 중 삼성그룹의 인사, 조직, 전략 분야의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삼성 계열사 전체가 사용하고 있는 조직 문화 진단 툴을 설계하기도 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 및 컨설턴트로서 저술 활동과 기업 및 공공 조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저서 『기업 진화의 비밀』로 정진기언론문화상 경제·경영도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격변기를 맞아 기업과 전략의 변화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serike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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