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가 불황에 접어들면서 성장성(말)만 앞세우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수익(사람)까지 고루 갖춘 ‘켄타우로스형 기업’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투자 유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더라도 지속가능하게 경영하려면 실제 현금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켄타우로스형 기업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창업팀이 우수한 메타인지력을 바탕으로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한다는 점,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빠르게 응집한다는 점, 업황에 흔들리지 않고 사업 모델을 확장할 수 있는 기술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경기의 호불황이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것은 불가피한 만큼 켄타우로스형 기업으로 거듭나야 ‘스타트업의 겨울’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다.
‘유니콘의 시대가 끝났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난 몇 년간의 급성장에 쉼표를 찍고 불황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은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성장성을 담보로 가치를 인정받았고, 그렇게 높아진 밸류에이션에 걸맞은 투자금으로 더 큰 성장에 도전했다. 유니콘은 스타트업이 응당 목표로 해야 하는 것, 스타트업의 본질로 여겨졌다.
이는 경기가 좋을 때는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불황에 ‘성장성’만을 담보로 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기업 정보 포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기준 전 세계 벤처 투자 규모는 약 745억 달러로, 전년 동기 1640억 달러 대비 반 토막이 났고 직전 분기 대비 34%가 줄었다. 특히 이전이었다면 유니콘으로 나아가야 할 후기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를 통칭하는 메가 딜(Mega deal) 또한 약 296억 달러 규모로 직전 분기 대비 44%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스타트업도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이 명확해졌다. 기업의 본질은 매출을 내고, 이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롭게 화두가 된 개념이 ‘켄타우로스’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베세머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이하 베세머)가 2022년 5월, 현 시기를 ‘켄타우로스의 시대(The Age of Centaur)’라고 명명하며 확산됐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런 반인반수에 비견되는 켄타우로스 기업은 현실적인 수익(사람)을 바탕으로 성장(말)하는 기업을 일컫는다. 위축된 경기 상황에서는 투자 유치가 예상 시점에 이뤄지지 않더라도 자생하기 위한 현금 흐름이 중요하다. 이에 성장성과 성과를 모두 만족시키며 경영하는 켄타우로스 기업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투자자들의 관심사도 사뭇 달라졌다. 그간 소비자들의 욕구나 욕망을 충족해 주머니를 열도록 하는 B2C 서비스들에 자금이 크게 몰렸다면 경기 불황을 맞은 지금은 특정 산업군의 운영상 비용을 절감하거나 효율화하고, 공급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업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세머가 켄타우로스의 시대는 곧 SaaS(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 Software as a Service)의 시대라고 설명한 이유다. 연간 반복되는 수익을 통해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