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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틱스

코딩 모르던 LG맨… 챗GPT 만나 잔디 보수 로봇 개발 100억 매출코앞[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동아일보 | 업데이트 2025.10.11
골프 코스 관리 로봇 시대 여는 엑스업
2주 만에 퍼팅라인 읽은 기기 개발… 스스로 놀라 ‘뭐든 가능할 것’ 자각
사내 팀 결성해 3개월 만에 창업… 골프장 관리 구인난 ‘새 시장’ 발견
1년 안 돼 디보트 보수 로봇 만들어… 필드 넘어 국방 분야까지 진출 야망
이용수 엑스업 대표이사가 2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주야간 자율주행 골프장 디보트 보수 로봇 ‘채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같은 대규모 골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채움을 개발했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15년간 LG전자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가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 궤도에 있던 이 엔지니어는 2023년 초 서울대학교 파견 교육을 받다 직전 해 말에 나온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경험하게 된다. 이 만남으로 그의 지향점은 LG 임원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바뀌게 된다. 코딩 한 줄 제대로 써 본 적 없던 그는 2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서 처음으로 골프장 코스를 관리하는 로봇을 만들어 국내외 시장에 동시 진출하려는 참이다.

2일 이용수 엑스업 대표이사(42)를 서울 강남구 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엑스업은 일일이 손으로 하던 골프장 잔디 보수를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이 대표는 “골프장들이 잔디 보수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장 실증을 통해 로봇의 보수 성능을 증명했다. 내년 3월을 양산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 2023년 생성형 AI 써 보고 ‘충격’

이 대표는 LG생산기술원에서 15년간 주로 표면 처리 관련 신공법 및 기계 설비 개발을 담당하는 자동화 프로세스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LG그룹 계열사에서 기계 설비나 자동화 공정을 개발해 달라고 주문하면 만들어 줬다. 안정적인 대기업 생활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자신만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무거운 대기업 시스템에서는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기 어려웠다.

2023년 초 그는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으로 파견돼 교육을 받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2022년 11월 나온 챗GPT를 써 보게 됐는데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신기술이어서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수준이었지만, 이공계 출신인 그는 남다르게 반응했다. 코딩 지식이 전무했던 그가 챗GPT에 물어보며 전자회로 기반 아두이노 프로그래밍을 해냈다. 2주 만에 골프 퍼팅라인을 읽어 주는 전자기기를 만든 것이다. 기능만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해 주고 컴파일링하는 법까지 알려 주는 것을 경험하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대표는 “내가 계획하고 혼자 디바이스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창업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다.

● 창업 팀 꾸리고 함께 시장 조사

2023년 중반부터 창업 준비에 들어간 이 대표는 같이 교육을 받던 김한수(엑스업 최고전략책임자·기구 설계와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장호민(엑스업 최고제품책임자·모듈 설계와 제품 개발 전문가)을 설득해 팀을 꾸렸다. 처음에는 퍼팅라인을 읽는 기기 개발로 창업을 결심했지만 더 큰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세 사람은 함께 시장을 조사했다. 이 대표는 “대기업의 안정적인 자리를 버리고 하는 창업이었다. 큰 시장이 있다는 데 같이 공감할 필요가 있었다”며 공동으로 시장을 조사한 배경을 들려 줬다.

기계 자동화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새롭게 얻은 AI 역량을 결합할 분야를 찾다가 골프장 관리 시장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왔다. 20조 원 규모로 성장했던 한국 골프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위축되고 있었다. 여기에 골프장 운영의 핵심인 잔디 관리를 모두 수작업에 의존해 관리 부담이 컸다. 이 대표는 “골프산업의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노동력 중심의 골프장 관리”라고 했다. 그는 “전국 약 600개(18홀 기준) 골프장에서 연간 1조5000억 원이 잔디 관리에 투입되는데 이 중 65%가 인건비였다”며 “18홀 골프장 기준으로 매일 발생하는 7600개의 디보트(divot·골프 스윙으로 인한 잔디 손상)를 일일이 사람이 보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대표와 공동창업자들은 LG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 ‘스튜디오 341’에 지원했다. 6개월 육성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최종 5개 팀에 선발돼 스핀오프(사업 부문의 독립 회사 분리) 자격을 획득했다.

● 로봇 개발 속도전

지난해 7월 LG전자로부터 정식으로 분사해 엑스업을 설립했다. LG전자와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공동으로 창업 자금 4억 원을 투자했다. 불과 2개월 만에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TIPS)에도 선정돼 2년간 연구개발 자금 5억 원도 추가로 확보했다.

자율 주행 골프장 디보트 보수 로봇 ‘채움’이 골프장에서 작업하는 모습. 잔디 파인 곳을 찾아 모래를 넣어 주는 배토 작업을 하고 있다. 엑스업 제공
엑스업 핵심 제품은 페어웨이 디보트 보수 로봇 ‘채움’이다. 채움은 실시간 운동학적 글로벌 위치 측정 시스템(RTK GPS·오차 몇 cm 단위. 몇 m 단위인 일반 GPS보다 정밀)과 AI 비전(카메라나 센서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기술) 기술을 결합해 골프장을 자율 주행하며 잔디 손상 부위를 찾아내 자동으로 모래를 뿌려 복구한다.

주로 산자락에 있는 골프장에서 자율 주행할 수 있으며 잔디 손상지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사계절 환경적응형 AI 비전 기술을 개발했다. 야간에도 로봇 자체 조명만으로 손상지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은 엑스업만의 핵심 차별화 포인트다. 밤에도 골프장 잔디를 보수하는 로봇이라면 하루 24시간 운용이 가능한 것이다.

엑스업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충북의 한 골프장에서 진행한 실증 시연에서 채움은 RTK GPS 기반 자율 주행, AI 비전 기반 디보트 탐색 및 자동 판별, 정밀 배토(培土·잔디밭 잔디 사이사이에 토양을 넣어 주는 일)및 균질화 작업, 홀과 홀 사이 무인 이동, 장애물 회피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엑스업은 채움과 함께 골프장 그린에 생긴 볼마크(골프공이 떨어져 생긴 자국)를 보수하는 로봇 ‘세움’도 개발했다. 골프장 페어웨이와 그린을 밤낮없이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또, 골프장을 떠나 버린 2030세대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도록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집어넣은 AI 캐디 서비스 ‘버디’ 개발도 마쳤다. 앞으로는 벙커 정리 로봇, 수질 정화 로봇, 잡초 제거 로봇 등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계획이다.

● 국내-일본 시장 동시 진출

창업 1년여 만에 성과가 나고 있다. 엑스업에 따르면 골프존 같은 대기업과의 개념실증(PoC·새 기술이 실현 가능한지, 실질적 가치가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실제 환경에서 시연하는 과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현재까지 30여 골프장에서 도입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는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솔루션 도입을 바라는 골프장이 전국 골프장의 14%에 이르는 82개소다. 골프존은 100대 규모 구매 의향을 밝혀 실질적인 비즈니스로 연결되고 있다”고 했다.

올해 매출은 3억 원을 예상한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도입 의사를 밝힌 골프장의 절반에만 공급해도 1∼2년 후 100억 원 이상 매출이 날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검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과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특히 일본은 국내와 거의 동시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1921년 지금의 서울 효창공원에서 한국 최초의 골프장 효창원이 개장했다. 엑스업은 국내 골프장 도입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로봇이 골프장 코스를 관리하게 만들게 된 것이다.

엑스업 로봇 기술은 골프장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골프장을 누비는 기술로 농업이나 공원, 스포츠 시설은 물론 국방 분야까지 진출해 잔디를 넘어 모든 필드의 표준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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