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은 폐암 신약 ‘렉라자’를 도입(라이선스 인)하고 수출(라이선스 아웃)한 데 이어 상용화에 따른 수익까지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은 2015년부터 추진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 10년은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 병목을 제거하고 조직 외부와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경계를 뛰어넘는 분산형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1) R&D와 경영 간 사일로 완화 2) 개방형 인재 전략 채택 3) 내부 기업가정신 육성 등 조직 내부의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아울러 조직 외부로 지식 기반을 연결하고 확장하기 위해 파트너와의 목표를 하나로 정렬하고 상호 호혜적 관계를 구축했다. 이렇게 다져진 신뢰는 기술 이전 이후에도 자사의 실익을 챙기고 기술 도입 과정에서 정보 접근성을 극대화하는 배경이 됐다.
축포를 터뜨리긴 이르다. 2024년 8월 19일, 국산 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토종 항암제로는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뒤 유한양행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항암 신약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을 뚫었지만 최대 경쟁 약품인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의 지난해 매출이 약 7조70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만큼 이와 어깨를 견줄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 원 이상) 제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그리소의 독주 체제를 깨고 폐암 치료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유한양행이 이렇게 시장의 눈높이와 엄격한 잣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게를 견뎌 온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98년 역사의 회사를 지탱하는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철학,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라는 신조가 유한양행의 브랜드 평판을 높여주는 동시에 조직과 개인 차원의 행동을 감시하는 규범 체계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유한양행이 “제약사 본업으로 돌아가자”며 신약 개발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본격화한 이후의 약 10년은 국내 바이오 벤처는 물론 다국적 제약사의 마음을 얻기 위한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혁신에 필요한 내부 역량이 부족하니 외부의 힘을 빌려 채우자는 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었지만 그 성공에는 ‘신뢰’라는 필요조건이 따랐다. 오픈 이노베이션 실험이 결실을 맺었다는 것은 그동안 회사가 파트너들을 상대로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쉬운’ 신뢰를 지키기 위해 살얼음판을 걸어왔다는 방증이다.
2018년 10월 유한양행이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의 제약 부문 자회사인 얀센에 비소세포폐암11전체 폐암의 80~90%를 차지하며 이 가운데 약 40%는 EGFR(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
닫기 신약후보물질인 레이저티닙을 처음 1조4000억 원에 기술 수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부 바이오 벤처가 가지고 있던 숨은 원석을 발굴해 보석으로 다듬은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공 사례라고 시장은 환호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FDA 승인을 위한 글로벌 임상 과정에서 양사의 기대와 목표를 일치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뒤따랐다.
신약 개발의 경험과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국내 제약사가 막대한 자본력과 인력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글로벌 제약사와 손발을 맞추려면 조직 구조와 인력은 물론 문화까지 바꿔야 했다. DBR은 2019년 4월 1호로 발간된 DBR 270호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유한양행의 개방형 혁신을 다루면서 회사가 2013년 신약후보물질을 도입해(license-in, 라이선스 인) 2018년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license-out, 라이선스 아웃)하기까지의 5년간의 변화를 집중 분석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수출의 성과가 가시화하고 상용화의 결실을 맺은 현시점에서 다시 유한양행의 조욱제 대표이사 사장과 김열홍 R&D총괄 사장을 만나 이 신약이 글로벌 임상을 마무리하고 빛을 보기까지의 이후 5년간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장장 10년에 걸쳐 회사가 어떻게 조직 안팎의 경계를 뛰어넘고 지식 기반을 확장해 세계 항암 시장의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었는지 성공 요인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