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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디자인

늙지 않는 뷰티 필터, 과연 아름다운가

윤재영 | 385호 (2024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스마트폰 카메라 앱을 통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본인의 얼굴을 원하는 대로 보정하는 ‘뷰티 필터’가 상용화됐다. 그러나 이는 외모의 미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집착하게 되는 신체이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를 유발할 수 있다. 최근 나이, 성별, 인종 등을 바꾸는 필터가 출시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필터는 특정 집단을 조롱한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뷰티 필터를 제공하는 앱은 기능에 대해 가치중립적으로 서술하고, 뷰티 필터를 선택이 아닌 기본 설정으로 두는 UI/UX는 지양해야 한다.



순수한 마음을 지닌 청년 도리언은 화가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림 속 내 모습이 참 아름답구나. 세월이 흐르고 나는 점점 늙어 가겠지만 그림 속 나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겠지. 정반대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젊음을 간직하고, 이 그림이 나 대신 늙어준다면 내 영혼이라도 바칠 텐데!”

도리언의 간절한 바람대로 그는 젊음을 유지하게 됐고, 대신 초상화 속 도리언이 늙어 가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나이 듦을 두려워한 주인공 도리언의 이야기를 다룬다. 늙지 않는 외모를 열망해 초상화 속 자신을 부러워했던 도리언처럼 우리도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한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뷰티 필터’ 기술은 스마트폰으로 촬영 시 외모를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정해 주는데 판타지 같기만 했던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느낌이다.


늙지 않는 외모로 큰 힘을 얻다

젊음을 유지하게 된 도리언은 사교계에서 유명해진다. 그가 옷을 입는 방식, 말하고 행동하는 스타일, 심지어 그가 의도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까지 사람들이 따라 하면서 유행이 됐다. 도리언은 자신이 갖게 된 사회적 지위를 몸소 실감했고, 마치 ‘황제’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외모를 갖게 된 도리언은 철학, 예술, 종교, 역사 등 다방면에서 지적인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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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헤어스타일, 탄력 있는 피부, 운동으로 단련된 몸, 세련된 화장 등으로 잘 가꿔진 외모는 그 사람의 행동에 자신감을 더해 준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매력으로 작용해 일을 할 때도 좋은 성과로 이어진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이와 관련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가상환경에서 ‘매력적인’ 아바타를 부여받은 사용자는 그렇지 않은 사용자에 비해 더 친밀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키가 큰’ 아바타를 부여받은 사용자는 그렇지 않은 사용자보다 더 자신감 있게 협상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1 이렇게 자신의 외형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행동에 변화가 생기는 현상을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를 ‘프로테우스 효과(Proteus Effect)’라 한다.

누구나 자신의 외모에 아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위축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뷰티 필터를 사용하면 클릭 몇 번으로 매끈한 피부, 도톰한 입술, 또렷한 눈매, 날카로운 턱선 등을 가질 수 있다. (그림 1) 아침에 얼굴이 좀 붓더라도 상관없고, 화장이나 다이어트의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뷰티 필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올해 틱톡에서 나온 볼드글래머(Bold Glamour)인데 사용자가 얼굴을 세게 흔들고, 잡아당기고, 얼굴 일부가 가려지는 상황에서도 사용자의 얼굴을 잘 인식하고 필터가 감쪽같이 적용돼서 큰 화제가 됐다. 현재 해당 필터는 해시태그 조회 수 10억 회를 넘어설 정도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보정된 모습이 실제 모습과 달라도 될까

한편, 도리언은 조금씩 늙어가는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현실 속 자신은 젊고 빛나는데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은 더럽고 흉측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이 대신 늙어준다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지다가도 자신의 영혼이 상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무엇보다 누군가 이 그림을 보고 비밀을 알아차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항상 불안해 한다. 결국 도리언은 초상화를 장막에 덮어 아무도 못 보게 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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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뷰티 필터 사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인플루언서는 “필터를 벗으면 내 자신이 못생겨 보인다. 필터를 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을 볼 때 혼란스럽다”고 말했다.2 또 다른 인플루언서는 필터를 사용한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며 필터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3 (그림 2) 필터 사용자들 역시 “필터를 사용하지 않은 사진을 올리는 게 부끄럽다” “필터를 사용하고 난 후부터 내 실제 입술이 너무 얇게 느껴져 집착이 심해졌다” “필터 사용 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역겹게 느껴졌고, 이중 턱을 없애는 수술을 고민 중이다”라며 필터 사용에 대한 후유증을 호소했다.4

하지만 이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침에 나가기 전에 화장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온라인 세계로 가기 전에 디지털 화장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의견이다.5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뷰티 필터로 인해 사용자들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고 실제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6 또한 외모의 미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집착하게 되는 신체이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가 유발될 수 있는데 이는 곧 성형 중독으로 이어지고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 나아가 정신질환으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7

일각에서는 뷰티 필터를 SNS의 놀이 문화 정도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8 물론 가끔 재미로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미성년자 사용자나 자존감이 낮은 사용자들이 지속적으로 필터를 사용할 경우에는 자신의 외모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과 믿음이 자리 잡을 수 있다.


아름다워졌는데 왜 불안하고 우울할까

도리언은 초상화가 하인들의 눈에 띄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자신에게 큰 힘을 선사해 준 이 초상화가 언제부턴가 극도로 싫어졌고, 심한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초상화 화가를 죽이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초상화까지 없어지면 자신은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 생각한다. 도리언은 초상화를 없애기 위해 나이프를 움켜쥐고 그림을 힘껏 찔렀다!

도리언의 방 안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자 하인들은 방 안으로 들어갔고 도리언은 늙고 야윈 모습으로 칼에 찔려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림 속의 도리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젊을 때의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모를 아름답게 해주는 뷰티 필터는 왜 사용자들을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까.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뷰티 필터를 사용하면 얼굴이 갸름해지고, 피부 톤이 밝아지고, 눈이 커지고, 코는 오뚝해지고, 눈썹이 진해진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외모는 아름답다고 하기엔 얼굴이 크고, 피부는 어둡고, 눈이 작고, 코도 낮고, 눈썹은 듬성하구나”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 있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가치이다. 하지만 필터는 그들이 임의로 정한 기준에 맞춰 얼굴을 획일적으로 아름답게 변형시키고 있다. 결국 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의 외모는 어떤 식으로든 변형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사람은 하자가 있는 외모를 가진 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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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바꿔주는 필터 외에도 살찐 모습, 다른 인종의 모습, 나이 든 모습, 못생긴 얼굴 등으로 바꿔주는 필터 등도 출시됐는데 이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관심과 흥미를 목적으로 자신의 살찐 모습9 , 인종을 바꾼 모습10 , 나이든 모습11 , 못생겨진 얼굴 등의 필터링된 사진을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특정 집단에 조롱으로 느껴질 수 있어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모욕적이거나 상처가 될 수 있다. 일례로 한 인플루언서가 노인 필터를 사용한 자신의 모습을 끔찍해 하는 영상을 업로드했는데12 그녀를 선망하는 어린 사용자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편향되고 왜곡된 기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뷰티 필터를 통해 늙고 살찌고 처진 것은 추악한 것, 그리고 젊고 날씬하고 탱탱한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는 편향된 인식이 사용자들에게 은연중에 자리 잡게 할 위험성이 있다.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했던 도리언처럼 필터를 씌우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수치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더 나은 외모를 통해 자신감과 좋은 기분을 얻기 위해 시작했던 뷰티 필터가 오히려 자괴감과 우울증이라는 역효과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사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리언은 사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쩌다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됐을까. 그의 옆에는 헨리라는 연상의 친구가 있었는데 세상의 이치, 인생의 가치관 등에 대해 조언하며 도리언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도리언, 자네의 그 빼어난 외모로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 이 세상은 자네의 것이 될 거야. 아름다움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따분한 이야기에 젊은 날들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자네의 삶을 즐기도록 하게.”

도리언의 비극에는 헨리의 이 같은 꼬드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SNS 세상이 우리를 부추기고 있다. 필터를 씌운 우리의 모습에 조회 수, 좋아요, 댓글들이 늘어나고, 이는 곧 게시물마다 점수화돼 서로 비교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를 준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자신의 실제 모습은 덜 보여주게 되고, 호응과 찬사를 더 끌어낼 수 있는 필터를 습관처럼 사용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를 지배하는 SNS 문화의 부추김이자 서비스가 의도하고 디자인한 방향이다.

서비스 내 카메라에 뷰티 필터 기능을 기본 설정(디폴트)해 놓은 것도 문제다. 틱톡의 경우 사용자가 필터를 선택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동으로 사용자의 얼굴을 보정해서 논란이 됐다.13 사용자들은 해당 서비스가 명시적 동의 없이 자신의 얼굴을 왜곡시켜 보여줬고, 이 기능을 해제하기도 어렵게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불쾌해 했다.14 이를 위해 구글의 ‘머티리얼 디자인’ 지침은 필터 기능을 기본으로 비활성화시킬 것을 권장하고 있고 자사의 스마트폰(Pixel) 카메라에도 필터 기능을 기본으로 비활성화시켰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동으로 실행되는 필터 기능이 카메라 성능을 좋아 보이게 만들 수 있어 당장은 유리했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더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디자인을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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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Beauty) 필터’ ‘보정(補正) 앱’과 같은 용어에도 문제가 있다. 이 용어에는 필터를 통해 ‘아름다워지다’ ‘바르게 고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필터를 쓰기 전의 실제 외모가 좋지 않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줄 수가 있다. 이를 위해 머티리얼 디자인에서는 더 가치중립적인 단어인 ‘리터치(Retouch, 손질)’라는 용어를 제안하고 있고(그림 4)15 현재 사용되는 용어 중에 ‘얼굴 필터’ ‘AI 필터’ 등도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이라 무난해 보인다. 서비스 내 필터가 작동되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투명하게 표시하고, 만약 기본 설정일 경우에는 사용자에게 미리 동의를 받아야 하며, 사용자가 해제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끌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 국가에서는 뷰티 필터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보고 필터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에서는 광고나 인플루언서의 게시물에서 필터 등을 사용해 이미지나 영상을 보정할 경우 이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불법이다. 이에 발맞춰 영국과 프랑스 등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추진 중에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도 뷰티 필터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뷰티 필터를 금지시키기도 했다.16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렇게 필터 사용을 규제하는 것만으로 필터의 부작용을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지적한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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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등 세면용품으로 유명한 도브(Dove)사는 ‘외모와 신체에 대한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캠페인(Self-Esteem Project)을 2004년부터 진행해왔다.18 그중 ‘신체를 왜곡하는 디지털 필터 사용을 중단하고 돌아서자’는 #TurnYourback 캠페인이 하나의 예인데 많은 이가 동참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서는 우리가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특징들이 우리의 개성이고 이를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자 매력(Bold Glamour)’임을 일깨워주고 있으며 가정과 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육 도구(Confidence Kit)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19 이 캠페인은 2023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미디어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20

도브의 피르다우스 엘 혼살리 부사장은 “자신의 모습을 왜곡하면 자신의 마음도 왜곡된다”고 말했다. 소설 속 도리언과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일상에서 가볍게 사용하는 뷰티 필터가 우리의 가치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온라인 세상의 부추김에 현혹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과 주의가 필요하다. 아름다움의 가치는 우리 본연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 윤재영 | 홍익대 디자인학부 교수

    필자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시각디자인 학사를, 카네기멜론대에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석사와 컴퓨테이셔널디자인(Computational Design)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UX디자인 리서처로 근무했다. 주 연구 분야는 사용자 경험(UX), 인터랙션 디자인(HCI), 행동 변화를 위한 디자인 등이며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사용자를 유인하고 현혹하는 UX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디자인 트랩』이 있다.
    ryun@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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